[창작물] "알비스야 절대로 제작을 하면 안돼"

ㅇㅇ



“그럼 부탁 좀 할게, 알비스.”




“응! 나한테만 맡겨두라고!”




알비스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령관을 올려다보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사령관님, 정말로 다 끝난 뒤에 초코바 잔뜩 주는 거 맞지?”




사령관은 그런 알비스에게 걱정 말고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응. 그래, 맞아. 내가 부탁한 대로 알비스가 해준다면 약속했던 대로 초코바를 잔뜩 줄테니까 걱정 마!”




사령관은 여기까지 말하고 알비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을 내려서 양 손으로 알비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알비스의 몸을 가볍게 돌려세운 뒤에 이어서 말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해줘. 자, 그럼 알비스 출동!”




“사령관님, 약속 꼭 지켜야 돼?”




알비스는 등 뒤에 있을 사령관에게 말하면서 오르카 호 복도를 달려서 전투원 제작 시설로 나아갔다.







전투원 제작 시설로 향하면서 알비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사령관님이 홀로 다니는 모습에서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바로 그 사령관님이 자신을 보자마자 부둥부둥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위화감 따위는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사령관님이 묘하게 평소보다 친절한 태도로 자신에게 명령이 아닌 부탁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부탁을 들어준다면 마침 다 떨어졌던 초코바를 잔뜩 준다니.




알비스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던 것이다.




알비스의 머릿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채 피어오르기도 전에 알비스는 전투원 제작 시설에 도착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전투원 제작 ‘시설’이지 그냥 하나의 방에 불과했다.




알비스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초코바~ 초코바~ 세상에서 젤루 맛있는 쪼꼬바~.”




절로 노랫소리가 날 정도로 신난 알비스는 열고 들어왔던 문을 닫고 기계 앞에 섰다.




“사령관님이 뭐라고 말했더라?”




알비스는 잠시 눈을 감고 방금 전에 사령관님이 자신에게 했던 부탁을 떠올려보았다.




‘전투원 제작 시설로 가서 바이오로이드 특수 제작을 하는데 부품 영양 전력 모두 9900을 넣고 고급 모듈을 100개 넣고 제작을 해줘. 급속 완성 회로를 쓰는 것도 잊지 마.’




사령관님은 분명 알비스에게 이렇게 부탁했었다.




그리고 사령관님은 이렇게 덧붙였었다.




‘내가 직접 해도 되지만 나는 지금 바로 대장급 정기 회의에 참석해야 돼서 시간이 없어. 그래서 우리 알비스에게 대신 부탁하는거야. 알겠지?’




사령관님이 바빠서 자신에게 대신 부탁하는 것이다.




게다가 시설 안에 들어오면서 그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 없이 알비스는 자신의 앞에 놓인 기계를 만지기 시작했다.






‘절대로 제작을 하면 안 돼.’라고 전에 사령관님이 알비스를 비롯해서 오르카 호 내의 모든 전투원에게 당부했지만, 알비스가 그 사실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사령관의 부탁대로 알비스는 기계에 부품 9900, 영양 3300/3300/3300, 전력 9999, 고급 모듈 100개, 유전자 씨앗 1개를 입력하고 ‘제작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자원과 재화가 소모되고 제작이 진행되었다.




기계와 연결된 모니터에 표시된 시각은 ‘04:44’였다.




속으로 내심 ‘07:27’을 기대하던 알비스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로 작게 한숨 쉬었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띡- 띡-’ 하는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알비스는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모니터에 표시된 시각은 ‘04:40’이었다.




04:39, 04:38, 04:37, ……. 남은 시간은 4시간 44분이 아니라 4분 44초였던 것이다.




자꾸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놀란 알비스는 당황하면서 기계를 마구 만졌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알비스의 머릿속에 문득 4시간 44분으로 제작되는 바이오로이드는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는 사실을 깨달은 알비스는 시설 밖으로 나가려고 문으로 향했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문에 손잡이가 없어진 것이었다.




분명 안에 들어와서 문을 닫을 때만 해도 평범하게 생긴 손잡이가 붙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문은 그 자체로 벽과 용접된 듯 빈 틈이 없었다.




차라리 벽에 네모를 그렸다는 게 맞을 정도로 문과 벽이 일체감을 이루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알비스는 문을 밀어보려고 온몸을 부딪혔지만, 문과 벽에는 그 어떠한 미동도 발생하지 않았다.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선 알비스의 시선에 모니터가 들어왔다.




모니터에는 빨간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로 ‘04:00’이라고 표시되었다.




1초 뒤에 검은색 배경에 빨간색 글씨로 ‘03:59’라고 표시되었다.




1초 간격으로 모니터 속의 글자색과 배경색이 반복되면서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다.




좁은 방 안에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기계에서 ‘띡- 띡-’하는, 마치 전자 시계의 초침 소리 같은 것이 계속 흘러나와서 방 안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알비스는 사령관님이고 초코바고 뭐고 간에 빨리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저기, 사령관님? 알비스가 잘못했어. 알비스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알비스의 두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말 잘 들을테니까, 나가게 해줘…….”




알비스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바로 그 순간 알비스의 머릿속에 ‘급속 완성 회로를 쓰는 것도 잊지 마’라는 사령관의 말이 떠올랐다.




‘급속 완성 회로’를 쓰면 이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알비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알비스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두 손을 벌벌 떨면서도 기계를 조작해서 급속 완성 회로를 사용했다.




그러자 기계에서 ‘띵-’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모니터에 ‘00:00’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비스는 혼잣말했다.




“알비스, 이제 나갈 수 있지?”







그러나 그런 알비스를 비웃는 듯이 기계의 문이 열리고 기계 안쪽의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에서 촉수 하나가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검붉은 색에 반점이 굵게 나있는 촉수는 마치 오징어의 그것처럼 빨판이 잔뜩 붙어있었다.




빨판에는 마치 이빨처럼 날카로운 돌기가 가득 박혀있었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 두께 정도 굵기의 그 촉수는 새하얗게 투명하고 끈적끈적한 점액을 바닥에 뚝뚝 떨어트리면서 알비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계 안쪽에서 똑같이 생긴 촉수가 5개나 더 나왔다.




4개의 촉수는 알비스의 양 팔과 양 다리를 붙잡았다.




5번째 촉수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던 알비스의 목을 휘감아 졸랐다.




비명소리마저 지르지 못하게 된 알비스의 얼굴로 마지막 6번째 촉수가 다가왔다.




끝부분으로 갈수록 가느다란 그 촉수의 끝이 4방향으로 분열되면서 알비스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 상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촉수가 알비스를 끌어당겼고, 알비스는 기계 안쪽으로 빨려들어갔다.







한편 그 시각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주인님에게 다급하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주인님, 방금 또 한 명이 전투원 제작 시설에 들어간 것 같다는 펜리르의 보고를 받았어요!




“뭐라고? 분명 하치코와 펜리르가 서로 교대하면서 시설을 지키라고 명령했을텐데?”




“그게 사실, 하치코랑 펜리르가 서로 식사 교대를 하느라 잠깐 감시가 소홀해진 틈에 발생했다고 펜리르가 보고했어요…….”




“젠장! 또 당한 것인가? 누가 당한거지?”




리리스와 마찬가지로 주인님의 옆에 서있던 페로가 이어서 보고했다.




“주인님, 신속 대응 부대에 출동하라고 연락했습니다. 저희도 같이 시설로 가죠.”




“제발, 누군진 모르겠지만 무사해줘. 금방 갈게……!”




컴패니언의 경호를 받으면서 사령관 일행은 함장실에서 전투원 제작 시설로 달려갔다.




아무도 남지 않게 된 함장실의 책상 위에는 ‘오르카 호 이상현상 보고서’라고 쓰여진 한 편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문서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었다.





발신인 : 닥터


수신인 : 사령관


제목 : 오르카 호 이상현상 보고서


보안 등급 : AAA 등급 (사령관 외 열람금지)




오빠 안녕? 오빠가 저번에 말했던 것에 대해서 알아낸 사실을 보고할게.




지금 이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오르카 호 내에서 나랑 오빠 뿐이지만, 나는 가급적 오빠가 이 보고서를 읽고 중요한 내용을 다른 언니들에게 공개해서 더 이상의 피해가 안 생겼으면 좋겠어.




현재 오르카 호에 발생하는 이상 현상은 총 2가지인데 이 2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첫 번째로 오빠랑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 분신? 유령 같은 것이 복도에 나타나고 있어.




이를 바이오로이드가 목격하면 이 도플갱어 같은 것이 그 바이오로이드에게 제작을 해달라고 부탁해.




이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 중이지만 일단 오빠는 혼자 다니지 말고 컴패니언 언니들 적어도 2명 이상의 경호를 받으면서 행동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혼자 다니는 오빠가 하는 말은 듣지도 말고 피하라고 다른 언니들에게 말하면 될 거야.




이것은 그냥 부탁만 할 뿐 큰 피해는 끼치지 않는 걸로 판단돼.




하지만 그 다음이 중요해.




두 번째로 전투원 제작 시설이 그 자체로 망가졌어.




이 시설이 통째로 이세계와 연결되어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특수 제작을 하면 기계 안쪽에서 괴생명체가 튀어나오거나 시설 내부의 인원이 기계 안쪽으로 끌려가게 돼.




이 과정에서 시설은 밀실이 되어서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게 돼.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결과 그 조건을 알아냈어.




1. 혼자 시설 안에 들어가서 특수 제작을 할 때만 발생한다.


2. 특수 제작에 투입되는 부품·영양·전력의 평균에 비례해서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결정된다. 즉 평균이 900이면 9%, 9900이면 99% 확률이다.


3. 특수 제작에 투입되는 고급 모듈에 비례해서 현상의 위험도가 결정된다. 즉 고급 모듈이 10개면 10%, 100개면 100% 위험도다.




앞서 말한 도플갱어 현상과 방금 말한 이세계 현상이 서로 연관되면 굉장히 위험할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 피해를 막으려면 특수 제작을 하지 않거나 적어도 2명 이상이 시설 안에 들어가서 특수 제작을 해야 돼.




또한 시설의 문을 지키는 인원이 최소한 1명 이상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일은 아마 컴패니언 언니들이 잘 해낼거야.




여기까지가 이번 이상현상에 대해서 내가 알아낸 내용이야. 이 과정에서 수많은 AGS 로봇들이 희생되었지.




이후로도 계속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할게.




그리고 오빠에겐 별 일 없겠지만 오빠만큼은 피해받지 않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럼 이만 마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