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리오, 지금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이유가 뭐야.”

 리오의 말이 길어질 것같았던 바이킹은 손을 들고 말했다.

 “아까 이야기했잖아. 결국 너희와 관계될 수 있는 일이야. 체류중인 국가에서 격변중인
사태라고. 그것도 빗치에 관한 이야기야. 우리랑은 관련없습니다. 하고 선을 그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행정부와 해상자위대는 왜 싸우는 건데? 고작 군인 하나가지고 이렇게나 큰 사건을 만드는 거야?”

 벨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는 군인이 아닌 자위관이야. 이 나라에는 군대가 없어.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사건의 논쟁은 바로 빗치가 인간이냐 아니냐 싸움이야. 해상자위대는 배라는 이름의 수많은 닫힌 사회를 가지고 있어. 빗치를 박살내고 강간하면 어떤 대가를 치루는지 소속 자위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야. 한바디로 군기를 잡는다는 거지. 점차 빗치 도입이 늘어날텐데 문제를 막지 못하면 대부분의 해상자위대 함정은 군함이 아닌 섹스선이 될 거야.”

 아직 미국은 고블린 같은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를 군용으로 도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차라리 총기사고가 더 많았으면 많았을 것이었다.

 “행정부는 반대 입장이야. 일본 정부는 어떻게든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를 도입하려 하고 있어. 하지만 국회는 전투용병으로 자위대를 무장시키려 하지 않고 있어. 그걸 우회하려는 핑계가 바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거야. 바이오로이드는 단순한 병기기 때문에 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위용 물자에 불과하다. 하는 것이지.”

 “사건에 얽힌 재판은 핑계고 서로가 원하는걸 얻고자 하는 거군.”

 캐슬은 비웃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모든 일에는 결국 덴세츠 사이언스가 존재해. 앞으로 우리가 추궁해야할 대상이기도 하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어. 3일전, 일본에 3명의 미국인이 위장입국했어. 시라이온 소속의 용병들이지.”

 “씨발.”

 맥켄지는 욕을 내뱉었다.

 “시라이온. 물개 놈들이 전역하면 가는 전역파티장이지. 꼴통들이 모인 블랙옵스를 위한 PMC야.”

 만만찮은 꼴통들이 모인 퀵샌드의 대장의 말이었다.

 “그래. 네이비 씰 출신의 용병들이 일본에 들어왔어. 그 배후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블랙 리버야. 빌어먹은 윗놈들. 현지 정보원은 패싱하고 자체적으로 활동하려 하다니. 나도 다른 정보원을 통해 들은 이야기야. 그들이 왜 일본에 입국했는지는 모르지만말야, 최소한 이 사건에 얽혀있는거 분명해.”

 “블랙리버가 덴세츠에 개입하겠다는 거지.”

 크로아상의 말을 들은 맥켄지는 혀를 찼다. 바이오로이드를 개조해 판매하던 토무라 하루키는 토모를 덴세츠 사이언스가 입수했다고 했다. 이제 한창 어떻게 덴세츠 사이언스에 잠입해 토모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두 대기업간의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일본에서 더 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모두의 목적이었다.

 “그럼 일이 터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자고.”

 “바이킹, 헛소리는 그만둬. 방법이 있으면 여기 앉아서 이 지겨운 이야기나 듣고 있겠어?”

 “계획이라면 없는 건 아니잖아.”

 “저 죽어가는 빗치 데리고 덴세츠에 방문해서 거기서 정보를 얻자고 했던거? 엿먹어. 그딴 일이 통할 리가 없잖아.”

 맥켄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덴세츠 사이언스 서비스센터에 손님으로 위장해서 방문한 다음 점거, 컴퓨터를 통해 데이터를 빼내자는 아이디어였다.

 “왜 안되는지 굳이 다시 설명해야겠어? 어떤 바보가 각 서비스센터와 자사의 중요 기밀을 서로 연결된 서버에 놔두겠어. 가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끽해야 덴세츠 사이언스에 방문한 고객 명단 정도일 거야. 그런 정보따윈 우리가 가져봐야 필요도 없는 거고.”

 크로아상의 말에 바이킹은 수까. 라며 짧은 욕을 내뱉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난 다들 진정하고 이 자리에서 기다리는 걸 추천해.”

 “엿이나 처먹어.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채로 기다리기만 하라고? 차라리 밖에 나가서 총질하다 경찰에 끌려가는 게 낫지.”

 캐슬은 리오는 중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다른 정보원은? 본사로 간 토무라 하루키로부터의 정보는?”

 크로아상의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리오는 입술을 찡그렸다.

 “그게 문제야. 본사에서는 지금쯤이면 그 일본인에게 빼낼 정보를 다 빼내고 본사 지하의 빗치 처리기에 처넣었겠지. 문제는 내게는 아무 말도 안해주고 내가 물어도 아무 답도 안준다는 거야. 개새끼들. 새 용병을 보낸건 토무라를 고문해서 얻은 정보 때문이겠지. 우리는 그냥 나가리 된 거고.”

 리오는 안전가옥에 도청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마음놓고 본사욕을 했다. 본사직원 앞에서는 절대로 못할 말이었다. 그도 몇몇 소문을 들었고 그중 몇은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는 없다 해도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거잖아. 우리는 우리대로 조사를 진행하면 되는 거 아냐?”

 “벨, 그건 좀 달라요. 여기는 일본이에요. 지금 정부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총격전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요. 누구라도 걸리면 전부 죄를 뒤집어 씌울 거에요. 우리가 한 일로 처벌을 받겠지만 우리가 하지 않은 일도요. 시라이온이 덜미를 잡히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신들이 살려면 우리를 경찰에 바치고 튀겠죠. 그러면 우리는 엿된 거에요.”

 “엿 같은 이야기네. 그러면 우리가 먼저 물개놈들을 엿먹이자고.”

 벨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가운데 손가락을 하늘로 향했다. 일본 어딘가 있을 시라이온 용병들에게 날리는 욕이었다.

 “너무 날카로워지지 말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정말로 덴세츠 사이언스와 본사가 첩보전을 벌인다면 말야, 필연적으로 피해가 발생하게 돼. 그걸 우리가 노리는 거야. 어딘가 약점이 드러날 것이고 침투하기 좋은 시기가 오겠지.”

 “그게 언젠줄 알고 기다리라는 거야. 그걸 기다리는동안 두 회사중 하나가 부도나겠네.”

 바이킹은 불만가득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모두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바이킹의 말에 동의했다. 리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뭐, 일종의 휴가라 생각해. 기껏 안전한 외국에 왔는데 관광객 기분이라도 내라고.”

 리오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려보려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그 순간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리오의 단말기가 울렸다.

 “브리핑중에는 핸드폰을 끄는게 상식 아냐?”

 “전화나 알람이 중요한 직종이다보니 어쩔 수…”

 벨의 비난을 한귀로 흘려듣던 리오는 단말기를 들자 말을 멈추었다.

 “시발.”

 나지막히 욕을 뱉은 리오는 역시 책상 위에 놓여있던 TV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일동은 리오의 행동에 집중했다.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미국의 CNN을 일본어 자막을 붙여 틀어주는 케이블 방송이었다. 안전가옥에 나오는 유일한 영어 방송이었고 모두는 어쩔 수 없이 그 방송밖에 볼 수 없었다.

 -오늘 15시, 일본 해상자위대 마츠오카 에이지로 해상막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만일 정부가 자신들이 제소한 재판에 이 이상으로 개입한다면 전 해상자위대가 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군대가 무슨 파업이야.”

 방송을 본 모두는 넋이 나갔다. 그도 그럴만했다. 정부의 국방을 담당하는 무장집단이 대규모 파업을 한다니,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12월 25일, 제 부하중 하나가 바이오로이드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약 한달 뒤 그 자위관은 살인죄로 기소가 되었습니다. 이는 군기를 지키기 위해 당연한 것입니다. 자위대내의 일은 자위대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대해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이유로 제소된 살인마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의 자위대에 대한 과도한 개입입니다. 자위대는 일본의 방위를 위한 것입니다. 절대로 정치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난세기 군이 정부의 마음대로 움직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해상자위대는 결코 외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소된 살인마 하마마츠 신야의 재판은 다음주인 2월 20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그 일주일간 정부가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이 아니라는 기존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무기한 파업에 들어설 것을 이 자리에서 경고합니다.

 “저게 가능한 거야?”

 맥켄지는 당황한 얼굴로 요크셔를 바라보았다. 일본인인 요크셔라면 뭔가 알 것에 틀림없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갑자기 모두와 눈이 마주친 요크셔는 놀라며 말했다.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저 해상막료장이 제가 자위대에 있을 시절부터 꼴통이란 소리 듣긴 했지만 저정도까지 나갈 줄은 몰랐어요.”

 “최소한 본사의 정보부는 눈치를 챘을 거야. 단순히 정치싸움이라면 굳이 용병을 파견할 필요가 없었겠지. 최소한의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고 용병으로 이간질을 시킬 셈인 거야.”

 리오는 주머니에서 액상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일본 정부는 저 파업선언을 잠자코 보고 있을 리가 없어. 어쩌면 이나라 자위대의 첫 실전은 자기 자신이 될지도 모르지. 그리고 덴세츠나 본사나 그 실전을 좀 더 일찍, 좀 더 크게, 좀 더 화려하게 만들 생각인 거고.”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엿된 거고.”

 “아니.”

 맥켄지의 말에 리오는 씩 웃었다.

 “아까 요크셔가 한 말 잊었어? 일본 정부는 진범이 아니라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어. 우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작업해도 세상은 펑펑 터져나가느라 신경을 쓰지도 않을 거야. 무슨일이 생기면? 우리에겐 희생양이 있잖아. 네이비씰 놈들 경찰에 바치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