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동시에 노동 조합법은 근로자에 대한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말씀하신 자위대법 108조에 의하면 노동관계조정법만이 아니라 노동조합법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고 되어있습니다.”

 마츠시타는 대학 시절 관련 레포트를 쓴 적이 있었다. 사회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이 노동법을 읽지 않고 대학을 다닐 리가 없었다. 학생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어렴푸레 떠올릴 정도로 읽었던 책들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두 법안에 대한 해석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원한 것은 그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법정싸움이란 옳고 그른 것을 다투는 게 아니에요. 누가 더 그럴싸한 법률 해석을 들고 나오는가 하는 시간 싸움입니다.”

 “그 말씀은 애초에 파업을 한다고 선언한 이유가 ‘그 사건’의 재판에 대한 관심과 정부 영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말대로였다. 실제로 ‘그 사건’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이었다. 국토방위를 맡은 해자대의 총파업. 그것 앞에서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자대 총파업에 대한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소송을 걸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 바이오로이드 살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고 판례가 만들어지고 그에 기반한 규율을 만든다는게 막료감부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해자대 총파업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할지도 모릅니다. 정부와 협상을 한다 치더라도 해상막료장의 목이 날아가는 선에서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해자대 수뇌부에 대한 전반적 물갈이 정도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겠죠. 그에 대한 대비는 되어있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진지하게 해상막료장은 할복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옷을 벗는다고 여론은 수그라들지 않을 것이었다.

 “기자님, 월간지 기자셨죠.”

 “네. 월간 치바란 이름대로입니다.”

 “발간일이 매월 언제죠?”

 갑작스런 질문에 마츠시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대답을 했다.

 “매월 25일입니다.”

 “그러면 기사가 나갈 즈음에는 재판이 끝나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엠바고를 지켜주시는 대신 한가지를 가르쳐 드리죠.”

 엠바고. 그 말을 꺼낼 정도면 엄청난 정보라는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무로다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해자대는 총 파업을 할 계획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츠시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총 파업을 선언했지만 총파업을 하지 않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계획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 하지만 조금전에 위협이 아니기 위해 법률적 조사까지 한 것 아닙니까.”

 “블러핑이란 말이죠. 하겠다는 말만으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뿐인 블러핑은 금방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진짜 블러핑은요, 정말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정말로 하기 직전까지 가야 통하는 것입니다. 해자대는 총 파업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총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해자대가 정부가 얕볼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마츠시타는 할 말을 잃었다. 국방을 건 블러핑이라니, 그런 건 듣지고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이 나라의 국방을 책임진 자들의 입에서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정부가 총파업을 예고한 날짜 이전에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정부가 협상을 제시하거나 파업건에 대해 소송을 거는 것이죠. 최악의 경우는 정부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정부의 무력진압이었다. 해자대의 총 파업 선언이 일본의 국방을 위협한다고 판단하면 총리는 육상자위대나 항공자위대에 출동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육상병력이 적은 해자대는 육자대의 출동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손쉽게 제압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 해자대에 정부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면. 총 파업이라는 극단의 수까지 가져온 해자대는 그저 놀림감이 될 뿐이었다. 아무도 지지해주지 않은채 얻는 것도 없이 오히려 선언을 안하느니 못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총 파업은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막료감부는 어떻게든 정부를 협상테이블로 끌고 나올 생각이에요. 오늘 아침, 열도 북부를 담당하는 오미나토 지방대에 대한 전원 귀항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미나토 지방대는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하는 부대죠.”

 러시아. 어쩌면 일본에 있어서 가장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을 열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세기초,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2차 세계대전말, 일본은 소련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미군에게 밀리면서도 소련을 두려워한 일본 군부는 최정예인 만주군을 소련에 대한 견제로 놔두었지만 소련의 한번의 기동작전에 완전히 분쇄된 것이었다.

 일본의 소련에 대한 두려움은 냉전시기에도 계속되었다. 홋카이도에 가장 최신예 무기가 배치되는 것은 그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여러가지로 도발하지만 러시아는 항상 단순한 수를 썼다. 핵무장한 폭격기로 일본 열도를 일순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도 필요 없었다. 그저 비행기 하나로 전 일본을 공포에 떨 수 있게 하는 나라였다.

 그런 러시아에 대한 최전선이 바로 오미나토 지방대였다. 그런 함대를 전원 귀항한다는 것은 일종의 위협이었다. 자신들이 한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명목상은 정비를 위함이라고 했지만 전 함대 일제 귀항은 전례가 없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명령의 의미를 알겠죠. 우리는 정부가 협상테이블로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않을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부를 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츠시타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전쟁이란 단순히 적이 빈틈을 보인다고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는 그를 위한 수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그 준비과정에서 반드시 들통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력집단이 국방을 빌미로 협박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브레이크가 달린 트럭은 멈출 수 있었다. 그 브레이크만 믿고 달린다면. 세상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멈춰야 할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순식간에 멈출 리가 없었다. 제동거리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 제동거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인가.

 만일 그럼에도 정부가 협상테이블에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저 블러핑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트럭은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면 자신들이 싣고 있는 화물이 자신들을 덮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방위는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정부 관계자도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말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낫겠군요.”

 무로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오른편에 공터가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마츠시타는 무로다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방위성 청사 뒷편의 운동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두대의 대공미사일 진지가 있는 것도 보이시겠죠.”

 마츠시타는 잘 알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위협이 생길때마다 언론에서 실컷 보여주는 그것이었다. 미국제 PAC-5 패트리어트2 대공미사일.

 “도쿄 한가운데 중거리 대공미사일 진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위협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 대공진지는 아무 쓸데도 없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도쿄를 향해 날아온다고요? 만일 그렇다고 쳐도 도쿄 한가운데에서 요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무로다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토모는 이유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북한의 탄도탄 발사시 요격은 해자대의 이지스함이 맡고 있습니다. 만일 해자대의 요격이 실패한다 해도 육지에는 항공자위대의 요격시스템과 주일미군의 요격시스템이 있습니다. 혼슈를 가로질러야만 도쿄에 도달할 수 있고 요격을 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도쿄 한복판에 요격시스템을 둔다고요? 아무 의미도 없는 짓입니다. 오히려 반대죠. 귀중한 대공미사일 자원을 고작 정치적 메시지를 둔다는 이유로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 요격장치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곳은 도쿄의 중심이었다. 핵미사일이 도쿄로 날아온다면 분명 이곳 상공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도쿄의 마지막 보루가 저 패트리어트 미사일일지도 몰랐다.

 “도쿄는 아시아 최고의 방공망을 갖춘 도시입니다. 냉전시절부터 쌓여온 두려움에 대한 결과죠. 전시에는 핵 미사일은커녕 적 정찰기 하나 들어오기 힘들 정도일 겁니다. 또한 우리 해자대의 대공 방어 역시 아시아 최고의 수준입니다. 저 두기의 패트리어트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미 모든 게 끝났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로 봐야죠.”

 무로다는 손으로 핵폭발을 묘사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저 패트리어트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산 꼭대기에 배치된 방공포대보다 방위성에 설치된 포대가 가지는 의미가 더 큽니다. 왜냐고요? 방위는 곧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엮이지 않는 방위정책은 없습니다. 장성들이 왜 위장복을 입는지 아시나요? 장성들은 야전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 지휘소에서 보내죠. 위장복을 위장하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위장복을 입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홍보실장님의 결론은…”

 “방위란 본디 정치적이라는 겁니다. 정치는 방위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방위는 정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츠시타는 무로다의 말을 간략히 메모하고는 잠시 그 글을 보았다.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기자였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츠시타는 아무래도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이라 주장하는 집단에 대한 너무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기대감으로 가득해 이곳에 도착한 마츠시타였지만 지금은 실망감만 느끼고 있었다.

 “해자대는 현재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인간이라 인정을 한다면 헌법에서 인정한 인권보장등 다양한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해자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다. 이 주장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권리가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필요했다. 그렇다면 해자대는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고 그 책임이란 다른 말로 비용이라는 것이었다.

 “해자대는 그래서 다양한 복지책을 마련중에 있습니다. 근무환경의 개선, 주거구역의 개선 등 함상근무하는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지원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별개로 지급되던 배식 역시 일괄로 바꿀 예정입니다. 또한 바이오로이드 자위관에게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아직은 논의중인 사항이죠.”

 말뿐인 블러핑인지 실제로 행동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라면 그들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요건은 출생, 인지, 귀화로 규정되어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해자대에 배치된 바이오로이드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일본 출생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질문도 있습니다만, 전원 말레이시아 문화인형에서 생산된 OEM 개체거든요.”

 마츠시타는 그정도까지 바라진 않았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인간과 똑같은 권리와 복지를 제공한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바이오로이드를 생산하겠는가. 실업률이 올라가는 상황에 싸게 인간을 부려먹을 수 있는 시대였다. 비싼 값주고 바이오로이드를 구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역설적이게도 비인간적인 존재였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적인 존재였다.

 “그럼에도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해자대 바이오로이드 살인사건은 우리가 제소를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묻고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자위대 내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많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길거리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는데 알고보니 바이오로이드였다던가, 아예 바이오로이드를 실제로 죽이는 영화가 공중파에 광고로 걸리는 등의 일이 일어나는게 현대 일본입니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로다의 말이 맞았다. 누군가가 토모를 죽인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토모를 죽인 살인범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 무로다의 다른 말은 몰라도 그가 조금 전 한 말은 마츠시타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마츠시타는 옆에 앉은 토모를 보았다. 토모는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츠시타가 토모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세상에는 바이오로이드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의 많은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지막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츠시타는 태블릿을 끄며 말했다.

 “아, 벌써 끝인가요. 기자님이 오신다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인터뷰를 잘 했는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기사를 쓰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무로다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 했다. 마츠시타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 순간 무로다의 손을 잡은 건 토모였다.

 “좋은 이야기 잘 들었어요. 패트리어트, 애국자잖아요. 애국하는 자위관을 만나서 저도 반가웠어요.”

 토모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마츠시타는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토모가 가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네요.”

 “아, 괜찮습니다. 젊은 세대라 역시 다른가 보네요. 하하.”

 무로다는 잡은 토모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토모는 무로다를 따라 웃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토모, 장난은 그만치고 돌아가자.”

 “실례했습니다!”

 토모는 손을 놓고 꾸벅 인사를 하며 기운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로다는 웃으며 마츠시타와 토모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방위청 A동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마츠시타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기사로 만들 것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설레기는 오랜만이었다. 무로다의 말에 불편함도 느꼈지만 기자의 불편함이란 좋은 기사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기분 좋은 소식보다 최악의 소식이 최고의 기사를 만드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