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니지마. 니지마(新島)라는 이름처럼 니지마는 일본의 수많은 섬들 중 하나였다. 다른 섬들과 다른 점이라면 도쿄에서 100km 넘게 떨어진 곳이었지만 공식적으로 도쿄도에 속한 섬이라는 것이었다.

 이즈 7도라 불리는 제도에 속하는 섬이었다. 도쿄도 최남단의 오가사와라 제도에 비하면 도쿄에 그나마 가까운 편이었지만 이곳을 도쿄도라 불러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외진 섬이었다.

 니지마 섬은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관광이 주력 상품이었다. 일본 최장의 모래사장과 온천 등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가진 곳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배편과 항공편으로 니지마를 찾았다.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도착하면 펼쳐지는 이국적인 광경에 비하면 전혀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런 니지마섬의 남쪽 끝,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시설물이 하나 있었다. 니지마 실험장. 그 시설물의 정문에 쓰인 명칭이었다. 방위장비청 소속의 로켓 실험장중 하나로 로켓의 폭발이나 추락에 대비해 외진 섬에 지어진 것이었다.

 물론 니지마 시험장이라는 이름은 옛날의 것이었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동안 방위성은 미사일이나 로켓을 연구할 여력이 없었고 실험장은 자연스럽게 폐쇄가 되었다. 20년간 주민들을 괴롭혔던 로켓발사음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는 소문이 들었다. 최근 니지마 시험장에서 굉음이 들릴 때가 있다고. 시험장에서 다시 시험이 시작되었다고.

 진실은 주민들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시기는 해상자위대가 덴세츠 사이언스로부터 100기의 바이오로이드를 발주했을 때였다. 덴세츠 사이언스는 납품 대금 대신에 버려져있던 니지마 실험장의 양도를 요구했다.

 쓸모없는 시설로 쓸만한 바이오로이드 100기를 얻는다. 방위성으로서는 좋은 거래였다. 사실상 공짜로 바이오로이드 초기물량을 얻은 것이니. 이 일은 언론에 공표되지 않은 물밑 거래였다. 아무도 모르게 니지마 시험장을 얻은 덴세츠 사이언스는 그곳을 자사 바이오로이드의 실험장으로 사용했다.


 “빨리 달려! 뒤쳐지는 년은 오늘 저녁은 없다!”

 타케다 겐은 외치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한무리의 여성들은 국방색 탱크톱을 입고 달리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낮이었지만 그들은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몇시간이나 달리고 있었다. 온몸이 땀과 비에 흠뻑 젖은 여성들 중 한둘은 달릴 힘이 떨어졌는지 달리는 자세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남쪽에 있는 니지마에 눈이 오는 일은 없었다. 도쿄 시내라면 눈이 올 시기에도 같은 도쿄도인 니지마에서는 비가 왔다. 그렇다고 지금이 따듯한 시기라는 것은 아니었다. 비는 뼛속까지 얼려버릴 것같이 차가웠고 해 하나 비치지 않는 시험장은 한겨울이나 다름없는 온도였다.

 여성들의 하의는 자위대의 위장복과 비슷한 색을 한 위장복이었다. 빗속에서 군화를 입고 몇시간이나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에 젖어 몸은 무거워지고 땅을 질척해져서 내딛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초인적인 힘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그도 그랬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직 공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덴세츠 사이언스의 프로토타입 바이오로이드였으니까.

 그들의 훈련이란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정신력 운운하는 것이 아니었다. 타케다가 호루라기를 불자 달려가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추어서 앉아쏴 자세로 표적에 사격을 가했다.

 총소리가 울리고 세워져있던 표적들은 일제히 쓰러졌다. 타케다가 다시 한번 호루라기를 불자 잠시 멈추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중 하나가 일어나려다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42번! 자리에 서있어라!”

 타케다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소총 들고 사격해!”

 타케다가 버튼을 누르자 쓰러져있던 표적이 다시 일어났고 42번이라 불린 바이오로이드는 소총을 들어 표적들에 사격을 가했다. 사격을 할 때마다 표적이 하나씩 쓰러졌다. 타케다는 그런 바이오로이드의 귀옆에 권총을 대고 쏘았다.

 바이오로이드를 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폭음은 42번 바이오로이드의 정신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뒤이은 바이오로이드의 사격은 과녁에서 빗나갔다.

 “똑바로 쏘지 못해!”

 타케다는 외치면서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달랐다. 바이오로이드의 차탄은 정확하게 표적에 맞았다. 타케다는 방아쇠를 빠르게 두번 당겼다. 그리고 표적을 바라보았다. 표적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4번, 7번, 고정 과녁 옆에 서라!”

 달리고 있던 두 바이오로이드가 벽 한가운데에 있는 과녁 옆에 멈추어섰다.

 “사격 준비!”

 과녁 양옆에 선 바이오로이드가 소총을 들었다.

 “42번은 총에 맞건 말건 과녁에 계속해서 사격한다!”

 42번은 소총을 들고 과녁에 대해 사격을 시작했다. 매 총알이 과녁의 정중앙에 맞았다.

 “4번, 7번, 사격!”

 과녁 옆에 서있던 두 바이오로이드 역시 사격을 했다. 목표물은 42번이었다. 두발의 총알이 42번의 가슴에 맞았다. 피는 튀기지 않았다. 42번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탱크탑은 단순한 천이 아닌 방탄 재질로 되어있는 것이었다.

 6.5mm의 총탄은 탱크탑의 겉에는 구멍을 냈지만 그 속의 케블라 섬유는 뚫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박혔다.

 그 모습을 본 타케다는 발로 42번을 걷어찼다. 42번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은 42번은 다시 사격을 했다. 여전히 총알은 과녁의 정중앙에 맞았다.

 이 훈련은 단순히 42번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장은 언제나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극한의 장소였다. 그 극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련 역시 극한의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타케다는 권총을 들고 42번의 머리를 내리쳤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수도 있는 강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42번은 바이오로이드였다. 그정도 충격으로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42번은 계속해서 사격을 했고 매 총알은 과녁의 중심을 맞추었다.

 “4번, 7번!”

 명령에 두 바이오로이드는 다시 42번을 향해 사격했다. 이번에는 각각 3발씩 총 6발의 총알이었다. 상반신이 뒤로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량이었다. 그럼에도 탱크탑은 뚫리지 않았고 과녁은 다시 구멍이 뚫렸다.

 그때 어디선가 헬리콥터의 소리가 들렸다. 타케다가 수신호를 보내자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하던 일을 멈추고 타케다의 앞에 2열 종대로 모였다.

 타케다는 소리가 들려온 북쪽방향을 바라보았다. 섬의 중앙에는 공항이 있었고 간혹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일이 있었다. 기밀유출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섬 남쪽으로 항공기가 지나가는 것은 100% 덴세츠 관련자가 탑승했기 때문이었다.

 타케다는 권총을 홀스터에 끼우고 헬기 착륙장으로 걸어갔다.

 “타케다씨, 오랜만이군요.”

 헬기 문이 열리자 정장을 입은 여성형 바이오로이드가 내려 전통식 대나무 우산을 펼쳤다. 붉은 색 우산은 어두운 흐린날임에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산이 펼쳐진 뒤에야 값비싼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헬기에서 내렸다. 그녀가 발을 땅에 내딛자 날씨와는 다른 맑은 게다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렸다.

 이곳에 맞지 않은 모습의 그녀였다. 아마미야 휴우가.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덴세츠 사이언스의 마케팅 총괄이사. 특이한 사람이었다. 두껍게 입은 기모노는 아름다웠지만 편해보이지는 않았다. 많이 움직인다고 해봐야 손에 든 담배 파이프를 입에 가져가는 정도일까.

 반대로 굳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상이기도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조차 옆에 있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맡기는 그녀였다. 돈과 권력이 많아질수록 실용성에는 신경쓰지 않는 법이었다.

 “총괄이사,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오랜만에 이 아이들을 보고 싶어서요.”

 아마미야는 총총걸음으로 2열종대로 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다가갔다. 빗속에 서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0식 전투 인조인형이라니, 이름 한번 너무 재미없지 않아요?”

 아마미야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다가가 그녀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눈하나 돌아가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지은 이름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케팅 총괄이에요.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별명이나 애칭같은게 필요해요. 0식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60식이라는 더 유치한 이름이었다니까요? 그런데 0식이라는 이름도 슬슬 지겨워져서요. 좋은 이름 없을까요?”

 “마루는 어떠십니까?”

 자위대는 0이 붙은 무기에 마루라는 말이 들어간 애칭을 붙이곤 했다. 10식 전차는 히토마루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마루는 뭔가… 그래. 집에 기르는 개 이름같아요. 게다가 너무 남성적이에요. 이 귀여운 여자아이들을 부르기에는 뭔가 애정이 부족하달까, 좀 더 애교가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어요.”

 “애교 말씀입니까. 저는 자위대 출신입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고용한 거죠. 특수전 훈련을 받은 교관으로 바이오로이드를 훈련시키고 싶었으니요.”

 덴세츠 사이언스 개발부문 군사고문. 그것이 타케다 겐의 직함이었다. 특수작전군 출신의 일종의 용병에 가까운 그였다. 그가 맡은 일은 간단했다. 개발중인 바이오로이드의 전술 및 훈련에 대한 조언이었다. 조언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바이오로이드의 테스트, 훈련등 전반적인 개발에 개입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별로 바라지 않았던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가 바란 것 이상의 돈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별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라면 그저 이 섬에 박혀있느라 외부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국민을 지키는 친구, 토모!”

 “너무 노골적입니다. 게다가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뭐 좋은 이름을 말해주세요.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0식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정 그러시다면… 유진은 어떠십니까?”

 타케다는 토모를 듣고 문득 떠오른 이름을 말했다.

 “유진이요? 그것도 친구라는 뜻이네요. 게다가 꽤나 고풍스러운 느낌이고요. 그러면서도 영어로는 사람 이름이네요?”

 유진. 아마미야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별로에요. 역시 이 자리에서 이름을 짓는 건 아직 어렵나보네요.”

 아마미야가 옆에 서있는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아마미야의 손에 담배불이 붙은 담배파이프를 전해주었다.

 “기대하세요. 나라로 돌아가면 정말로 좋은 이름을 지을 거에요. 너희들도 기다리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게 만들어질 이름을 만들어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아마미야는 비와 땀으로 젖은 바이오로이드의 뺨을 꼬집었다.

 그 바이오로이드는 갈색 머리를 한 청록색 눈동자의 어린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