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요다구 이치가야역. 도쿄를 가로지르는 칸다강과 맞닿은 정취있는 역이었다. 도심에 있지만 도심 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었다. 이치가야 역에서 내려 칸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다보면 강을 막아 만든 낚시터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낚시대를 보다가 가끔 지나가는 지하철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낚시터를 볼 여유가 없었다. 바쁜 걸음으로 이치가야교를 건너 맞은편의 신주쿠구로 가기 마련이었다. 아무도 이치가야 역은 치요다구에 있지만 막상 이치가야는 신주쿠구에 있다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상함을 느낀 것은 오직 토모뿐일지도 몰랐다. 토모는 마츠시타에게 그 사실을 말해보려 했지만 마츠시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중 하나였다. 토모는 조용히 마츠시타의 뒤를 걸어갔다.

 이치가야교를 지나 서쪽으로 대로를 향해 바라보면 건물들 너머에 높이 솟은 구조물이 보였다. 그렇게 높이 솟는 것은 안테나밖에 없었다. 단순한 TV 안테나도, 단순한 위성접시도 아니었다.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안테나의 집합이었다. 그 안테나만 보아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치가야혼무로쵸 방위성 청사. 그것이 그 안테나가 있는 곳이었다.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처럼 보이는 단지였지만 단지내 모든 구조물의 위에는 옅은 초록색의 장식이 붙어있었다. 마치 청동을 보는 듯한 색이었다.

 방위성. 이름 그대로 일본의 방위를 책임지는 곳이었다. 각 자위대를 통솔하며 일본 내각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곳이었다. 방위대신은 관방장관을 잇는 총리가 될 수 있는 중요 자리기도 했다.

 그런 기관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방위성 이치가야 청사 정문에는 무장한 경비들이 보였다. 푸른 코트를 입고 정복 모자를 쓴 그들은 자위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들고있는 자동소총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평소에는 이정도 분위기가 아니었다. 방위성이라 해도 결국은 국가기관이었고 국가의 얼굴중 하나였다. 그런 곳을 완전무장한 자위관으로 채울 사람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웃는 얼굴로 국민을 맞이할 수 없었다.

 방위성청사의 맞은편에는 한무리의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자대 총파업 철회!”

 “방위성은 대책을 마련해라!”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각자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이 외침은 곧 덴세츠가 원하는 목소리였다. 이 모든 일의 근간은 바이오로이드가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토모를 길가에서 떨어지게 했다. 토모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저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무슨 일에 말려들지 몰랐다. 작은 토모를 마츠시타는 건너편의 시위대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싶었다.

 “무슨 일이시죠?”

 경비가 청사로 들어가려는 마츠시타를 제지했다. 마츠시타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해상막료감부 홍보실의 무로다 실장과 인터뷰가 있어서 왔습니다.”

 해상막료감부. 해상자위대를 이끄는 해상막료장의 직속부대였다. 한마디로 말해 해상자위대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이 별도의 건물도 아닌 방위성의 작은 부서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그 작은 부서 때문에 방위성 전체가 긴장상태로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정부와 해상자위대의 갈등은 그저 이 단지 내에서 이뤄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경비는 인터폰으로 무어라 이야기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여기 방문자증입니다. 해상막료감부는 A동에 있습니다. 방위성 청사에는 기밀 시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을 돌아다니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경비는 두개의 방문자증을 건네주었다. 마츠시타는 받은 방문자증 하나는 자신의 가슴에 달고 하나는 토모에게 주었다. 방문자증을 받아든 토모는 마츠시타처럼 가슴에 달려고 했지만 잘 달아지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게.”

 마츠시타는 토모 대신에 토모의 가슴에 방문자증을 달아주었다. 아무래도 후드티를 입어 증에 달린 집게로 달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마츠시타, 고마워.”

 토모는 웃으며 말했다.


 방위청 이치가야 청사 A동 5층 해상자위대 해상막료감부 홍보실의 입구에는 나무로 된 팻말이 하나 있었다. 해막홍보라 검은 글씨로 쓰여있는 목판이 그것이었다. 작은 해자대깃발의 아래의 목판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었다.

 각종 디지털 홍보, TV 홍보, 애니메니션 홍보등 다양한 현대 문화를 아우르는 곳임을 생각하면 어색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자위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문 양쪽으로 신규 배치된 항모인 시나노급의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어색함은 늘어났다.

 “실례합니다, 마츠시타라고 합니다만…”

 마츠시타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며 마츠시타에게로 다가왔다.

 “아, 어서오세요. 실장인 무로다 일등해좌라고 합니다.”

 자위관처럼 보이지 않는 중년의 남자가 마츠시타와 토모를 맞았다. 자위대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그는 평범한 공무원처럼 보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어수선하니 조금 트인데서 인터뷰하는 걸로 할까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것저것 바빠서 말이죠. 여기서 좀 가면 직원 휴게소가 있어요. 거기서 인터뷰하면 좋겠네요.”

 무로다는 서둘러서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마츠시타와 토모는 무미건조한 복도를 그를 따라 걸어갔다. 무로다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건물 북쪽방향의 창가 휴게실이었다.

 “여긴 설계 실수로 생긴 곳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볕이 잘드는 남향을 찾기 마련이죠. 경치도 남쪽 방향 휴게실이 더 좋아요. 그러다보니 여기에 와서 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누가 볕도 안들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삭막한 건물뿐인 이런 곳에서 쉬려 하겠어요. 덕분에 여기는 홍보실의 인터뷰 전용장소가 되었어요. 봐요. 여기 홍보용 시나노 포스터도 붙어있잖아요.”

 무로다는 자신의 뒤에 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포스터에는 항공모함을 의인화한 만화캐릭터도 같이 그려져 있었다. 삭막한 국가기관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늦었지만 여기 명함입니다.”

 무로다는 명함을 내밀었고 마츠시타도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서로 명함을 교환하고 마츠시타는 무로다의 명함을 보았다. 왼편에는 해자대기가 그려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해상막료감부 홍보실 홍보실장 무로다 다이스케 일등해좌라고 적혀있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치바 사회부의 마츠시타 쥰이라고 합니다.”

 마츠시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무로다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감사하실 필요까진 없어요. 이 시기에 누가 해막홍보에 인터뷰하러 온다고요. 사건 터지고 나서 인터뷰 요청은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다른 기자들은 다른층의 방위성 홍보실에 가기 바쁘다고요. 오히려 우리가 기자들 바지 붙잡고 기사 써달라고 해야 할 판이었는데요.”

 무로다는 멋쩍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동행하신 분은?”

 무로다는 마츠시타의 뒤에서 조용히 서있는 토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조용히 있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미모를 지닌 토모였다.

 “토모라고 합니다. 잘 분탕드립니다.”

 “하하, 유머감각이 있으신 분이네.”

 무로다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마츠시타에게 잘 보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의외로 토모와 개그코드가 맞는 것일까. 아니, 토모는 개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되는 거죠? 주제는… 아, 뭐 결국 ‘그 사건’이겠죠. 해막에서는 살인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만요.”

 무로다의 말대로였다. 마츠시타는 해자대의 ‘그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견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 셈이죠. 다만 제가 준비하고 있는 기사는 단순한 사건의 정리가 아니라 다각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건을 다루려 하고 있어요. 워낙에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고 주장 또한 다양하니까요.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죠.”

 “그러면 저희는 몇번째 사람이 되는 거죠?”

 “물론 첫번째죠. 가장 먼저 사건의 중심이 된 곳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마츠시타의 말에 무로다는 살짝 좋아하는지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어쩌다보니 우연히도 점수를 얻은 모양이었다.

 “그럼 첫 인터뷰인에 대한 첫 질문은 뭐죠? 어떻게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건가요?”

 “아, 잠시만요.”

 마츠시타는 핸드백에서 태블릿을 꺼내들었다. 빨리 메모장을 연 그녀는 펜을 집어들었다

 “아뇨, 제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에요. 사흘전, 해상자위대 해상막료장은 일주일 뒤 해상자위대 총파업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판단을 한 거죠?”

 정적이 흘렀다. 마츠시타는 알고 있었다. 무로다가 원하지 않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무로다 입장에서는 결국은 설명해야 할 것이었다. 해막홍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논란을 불을 지핀 해상자위대 총 파업 선언. 그에 대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납득할만한 말로 전해야 했다.

 “이거, 첫 질문부터 허를 찔렸네요. 저 같은 홍보실장이 아니라 법무 수석에게 물어봐야 할 복잡한 일이긴 해요. 사실 해상막료장의 결정에 법무수석은 이런 말을 했어요. 공무원의 총 파업은 존재할 수 없다. 라고요. 그 말은 사실이에요. 우리는 총 파업을 할 수 없어요.”

 “그 말은 아무 근거 없는 위협이라는 말인가요?”

 마츠시타는 당황했다. 이 사태는 그저 협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우려하고 막으려 하는 최악의 사태는 애초에 아무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막료장은 법무수석에게 어떻게든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 오라고 했죠. 마음같았으면 정부의 개입이후 바로 발표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이의 시간이 존재했던 건 법률적 근거를 찾기 위함이었어요. 아무 법률적 근거도 없이 총 파업을 선언해봐야 내각에게는 아무 위협도 되지 않을테니요.”

 그렇게 말하며 무로다는 언제 준비했을 지 모를 책 하나를 내려놓았다.

 “자위대법입니다. 자위대법 108조에는 노동관계조정법의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관계법에는 공익을 해하는 파업은 금지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조항의 빈틈을 파고 든 겁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닙니다. 실제로 해상자위대는 총파업을 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