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19320052 레오나 애호문학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19383605 레오나 애호문학 1.5화


내가 처음 사령관을 봤을 때 느꼈던 첫 인상은 좋지 않았다. 한 눈에 봐도 유약하고 여려 보이는 인상. 나는 비록 복원된 개체였지만 다른 철혈의 레오나의 기억을 이식 받아 멸망 전 블랙리버 회사를 이끌었던 군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크게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바이오로이드를 하찮은 물건 취급했다는 것, 두 번째로 하나 같이 고압적이고 강압적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래도 전부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오랜 탐색 끝에 찾은 인간은 너무 약해보였다. 겁도 많아보였고 성격 또한 우유부단 할 것 같았다. 저렇게 나약해 보이는 인간이 인류재건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만약 겉모습처럼 실제 성격도 우유부단하고 더 나악 능력도 없는데 멸망 전의 인류처럼 바이오로이드들을 헌신짝처럼 쓰고 버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속으로 깊은 고심을 하고 있을 때 눈앞에 서있던 인간의 첫 마디는 나를 놀라게 했다. 

 

 “철혈의 레오나씨죠? 오면서 콘스탄챠와 그리폰에게 들었어요. 굉장한 지휘관이시라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친절하고 정중한 인사말, 인간이 바이오로이드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그때의 나에게 사령관의 인사는 큰 충격이었다. 

 

 “당신이 내 상관이 될 인간이야? 조금 약해보이는 인간이네. 나는 조금 더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뭐, 상관없어. 내 말만 들으면 앞으로 계속 승리할 거야.”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때 만약 내가 사령관에게 따뜻한 말을 해줬다면 나와 사령관의 사이가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내 말을 들은 사령관은 상처 받은 강아지처럼 풀이 죽더니 이내 애써 웃으며 내게 답해왔다.

 

 “하하...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레오나씨가 원하는 그런 사령관이 되어 볼게요.”

 

 사령관의 미소를 보며 나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얼굴에 걸렸었다. 라비아타가 옛날에 말했던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하고 아꼈던 극소수의 인간. 오르카호는 그런 극소수의 인간을 사령관으로 추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령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부디 저 남자가 나에게 걸맞은 훌륭한 남자이길 빌었다.

 

 --

 

 레오나의 말을 듣던 지휘관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령관의 인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훌륭하군.”

 

 “그래서 각하는 어떠셨나? 자네의 기대대로 능력마저 뛰어나셨나?”

 

 간부 식당에 자리 잡은 지휘관들은 어느새 각자 앞에 커피 같은 마실거리와 간단한 과자 등을 세팅해 먹으며 레오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마리의 질문에 레오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달링만큼 지휘를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역시 자네가 각하를 가르친 거로군.”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쳤지. 도중에 몇 번 말다툼도 했었고.”

 

 레오나는 홍차로 건조해진 목을 적셨다. 지휘관들은 레오나에게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재촉했고 레오나는 홍차 한 잔을 전부 비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

 

 “그게 아니야 사령관. 그런 허술한 작전으로는 아군의 피해만 생겨.”

 

 “죄송해요...레오나씨.”

 

 “죄송해하지 말고 더 노력해줘. 나에게 어울리는 사령관이 되겠다고 말했었잖아.”

 

 “네...더 노력할게요.”

 

 “그리고 존댓말은 그만해. 사령관은 내 상관이고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야. 나는 사령관의 부하고 상관은 절대 부하에게 그런 자세로 대하지 않아. 좀 더 사령관으로서 위엄을 갖춰줘.”

 

 “네..아니, 알겠어... 레오나.”

 

 사령관은 군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략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전술에도 일가견이 없었다. 나는 사령관이 엉터리 작전을 세울 때마다 그 작전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수정했었다. 사령관과 하루에 3시간 씩 옆에서 전략과 전술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다행히 사령관의 전술적 기량은 나날이 발전해갔다. 내가 하나하나 가르쳤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나와 사령관은 얼마 안 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사령관과 다투기 하루 전, 그날에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오르카호는 항상 자원부족으로 시달렸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외부로 탐색을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날은 평소보다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면 그에 따른 피해도 마땅히 큰 법이다. 나와 사령관은 함께 밤낮으로 완벽한 승리를 위해 작전을 세웠고 여러 번의 검토 끝에 작전을 실행했다. 목표는 작전 수행 일대 지역의 철충들의 격파 및 쓸 만한 자원들을 수급하는 것이었다. 

 

 스틸라인과 발할라의 병력을 중심으로 세운 작전은 성공이었다. 최전방에 선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들은 누구보다 용맹하게 나서 철충들을 분쇄했고 노움은 명령 받은 대로 발포 콘크리트로 벽을 세워 아군들을 보호했다. 전투가 비교적 탁 트인 장소에서 벌어졌기에 발할라 자매들의 특기를 완전히 살릴 수는 없었지만 훌륭한 저격수인 발키리들은 브라우니들의 사각지대에 있는 철충들을 제압하면서 아군을 지원했다. 적지 않은 부상자가 나왔지만 사망자는 없었고 우리는 자원을 챙기고 다시 오르카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령관이 처음으로 나와 함께 작전을 짜고 승리를 거둔 전투였으니 그 전투가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아직 부족했지만 사령관의 지휘 능력이 처음보다 많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던 전투였다. 

 

 사령관의 성장에 나는 애써 기쁨을 감추었다. 그가 순간의 성취에 취해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몰랐던 사령관이 나와 함께 작전을 세우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된 만큼 성장한 것은 아주 기뻤다. 그가 서서히 나에게 어울리는 남자로서 성장해 간다는 사실에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돌아가면 일단 그의 공적을 칭찬하고 평소보다 조금은 따뜻하게 대해주자고 마음 먹었다. 오르카호로 돌아간 나는 바로 사령관을 찾았다. 

 

 “사령관 완벽한 승리야. 나와 함께 작전을 세우고 직접 군을 지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다니. 내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구나.”

 

 “아...네 그렇네요.”

 

 사령관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는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웃고 있지 않았다. 어딘가 매우 불편한 듯 사령관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이 철혈의 레오나가 먼저 칭찬을 해주었는데 저런 반응을 보인다고? 나는 그것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사령관 왜 그래? 혹시 몸이 안 좋아?”

 

 내 질문에 사령관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하지만 나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의 미소는 매우 슬픈 미소였다. 정말로 기뻐서 웃는 미소가 아닌 억지로 쥐어 짜낸 건조한 미소. 그는 나에게 처리할 서류가 있다면서 먼저 함장실로 돌아가 보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에게 다가가 왜 그런지 캐묻고 싶었지만 나는 그때 멀어져 가는 사령관을 붙잡을 수 없었다. 무엇이 내게 그런 생각을 들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니 그때 그는 모래로 만든 성처럼 건드리면 무너질 듯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사령관을 붙잡지 않고 확보한 자원의 수량을 확인하기 위해 보급 창고로 발을 돌렸다.

 

 전투가 있고 다음 날, 내가 사령관과 다투었던 날. 사령관은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어제 있었던 전투에서 확보한 자원들의 수량 보고와 앞으로의 일들을 논의하기 위해 오전 동안 계속 그를 찾았지만 불가능했다. 사령관이 어디 있는지 알기 위해 콘스탄챠와 블랙 리리스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녀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에도 나는 사령관을 찾을 수 없었다. 콘스탄챠를 비롯한 메이드들과 블랙 리리스 같은 경호원들은 하나 같이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점심 식사 후 함장실에 놓고 발할라의 숙소로 향했다. 

 

 “대장님, 잠시 수복실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숙소로 돌아갔을 때 나에게 수복실로 가보라고 한 이는 베라였다. 어제 전투에서 입었던 가벼운 경상으로 오늘 아침 수복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수복실로 가보라니 수복실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는 그녀의 말에 알겠다고 말하고 바로 수복실로 향했다. 수복실에서 나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던 사령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부상자들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령관. 뭐 하고 있는거야.”

 

 “레오나...씨.”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사령관은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내가 말해온 사령관으로 갖춰야 할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어떻게든 눈물을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눈가는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메이드들이 단정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다. 

 

 “설마 하루 종일 여기에 있었던 거야?”

 

 “네...응. 부상병들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내가 찾아도 안 보였던 거고?”

 

 “응...”

 

 “메이드들이랑 경호원들에게는 어디 있는지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응...”

 

 “실망이야. 사령관.”

 

 나는 사령관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던졌다. 좀 더 거친 독설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저런 상태로 독설을 들었다간 정신이 먼지처럼 날아갈 수도 있어서 자제했다. 하지만 사령관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제 있었던 전투 결과와 확보한 자원들의 수량 보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전투에 대비해 사령관과 내가 나눠야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어? 사령관 당장 함장실로 돌아가.”

 

 내 말에 사령관은 어른에게 꾸지람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시선을 피했다. 어서 함장실로 돌아가자는 내 말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사령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함장실로 돌아가기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절대로 내가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안 가느니만 못하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옛말에 큰 고난이 눈앞에 닥쳤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최악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서있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나는 사령관의 옷소매를 잡고 강제로라도 그를 함장실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때, 사령관이 내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사령관의 돌발행동에 나는 그를 째려보며 차가운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내 말에 사령관은 잠시 동안 입을 우물거리더니 쥐어 짜내듯 입을 열어 내게 말을 했다.

 

 “레오나는 저 부상병들을 보고도 아무 느낌이 안 들어? 죄책감이라던가...뭐 그런거?”

 

 “무슨 뜻이야?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

 

 사령관은 방금보다는 조금 감정이 격양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제 있었던 전투로 많은 애들이 다쳤어. 몇몇은 팔다리가 다치고 몇몇은 심하게 다쳤고. 사망자는 없었지. 하지만 나는 그 다친 애들 때문에 어제부터 진정을 할 수 없어,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사령관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설마 사령관 누군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인 것인가? 사령관은 인간이고 나는 군인으로 설계된 바이오로이드이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나와 사령관이 무언가를 받아드리는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있다. 

 

 “사령관, 전쟁에서 부상과 죽음은 언제나 있는 법이야. 사령관은 슬퍼할 이유가 없어. 이번 작전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사령관은 자랑스러워해도 돼.” 

 

 “레오나는 감정이 없는 것 같네.”

 

 사령관이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는 순식간에 내 심경을 긁었다. 내가 감정이 없다고? 도대체 사령관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내가, 아니 우리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가 어떤 과거를 겪었는지 알고나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모른다면 어떤 자격으로 저런 말을 감히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최후의 인간이자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절대통수권자라는 점이 자격이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오산이다. 나는 등을 돌렸다. 사령관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지금만큼은 그냥 아무 말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레오나...?”

 

 “시끄러.”

 

 사령관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차갑게 답해주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짧게 말했다. 

 

 “앞으로 내 1m 이내로 접근하지마.”

 

 나는 나를 부르는 사령관을 뒤로 하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감정이 터지지 않도록 최대한 억누르며 발할라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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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사령관이 선을 넘었군.”

 

 “각하께서 그때는 발할라의 과거를 모르셨다지만 그때 감정적으로 행동한 점은 내가 봐도 큰 실책이다. 만약 나였다면 그 자리에서 크게 호통을 쳤을 게 분명하다.”

 

 칸과 마리가 레오나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을 했다. 그녀들은 레오나가 해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한껏 몰입한 상태였다. 

 

 “그래도 잘 화해했군. 그래서 어떻게 화해했나?”

 

 “아 그건.”

 

 레오나는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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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감정에 휘둘리는 사령관을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령관 때문에 타인과 사이가 틀어지는 장면을 써보고 싶어서 써봤는데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네요. 언제나 별로인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