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19320052 레오나 애호문학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19383605 레오나 애호문학 1.5화

https://arca.live/b/lastorigin/19575004 레오나 애호문학 2화


 1m 내로 접근하지 말라고 레오나가 엄포를 했던 그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레오나의 싸늘한 말을 들은 사령관은 자신이 레오나를 화나게 했음을 알아차렸다. 점점 멀어져가는 레오나를 붙잡고 당장이라도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사령관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었다. 매일 행해졌던 그녀와의 전략전술 수업도 그 후에는 더 이상 없었다. 레오나는 오르카호 그 어떤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발할라 소속 대원들에게 개인적으로 레오나와 만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침묵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일주일이 흘렀다. 여전히 레오나는 보이지 않았다. 식당, 편의점, 휴게실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령관은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혹시 레오나가 오르카호에서 내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초조해진 사령관은 작전회의를 핑계로 레오나와 만날 계획을 세운 후 그녀를 호출한 적도 있었지만 함장실에 모습을 나타난 자는 레오나가 아닌 부관인 발키리였다. 사령관을 향한 발키리의 시선은 너무 차가웠다. 그녀의 눈빛은 사령관을 더 이상 사령관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을 대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 발키리의 시선에 사령관은 잔뜩 위축되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발키리는 손에 작은 구체 기계를 들고 있었다. 발키리가 기계를 책상에 내려놓자 구체에서 홀로그램이 뜨더니 검은색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에는 ‘Leona’ 라는 영단어가 보였고 화면에서 레오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전 회의라는 중대사에도 당신을 보기 싫다. 레오나의 확실한 답변이었다. 나는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정신줄을 놓은 채로 작전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의 방침이 결정되자 레오나는 먼저 화면을 꺼버렸고 발키리는 구체를 들고 함장실을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발키리 수고했어.”

 

 “예.”

 

 내 말에 발키리는 딱딱하게 답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차가운 태도였다. 레오나가 자취를 감춘 후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은 전과는 다르게 대했다. 그 어떤 무례한 언행도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사령관은 자신을 바라보는 발할라 대원들의 시선이 매우 날카롭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봄날 햇살처럼 따스했던 그녀들의 눈빛은 이제 한겨울의 눈보라처럼 싸늘해졌다. 발키리는 항상 하던 경례도 하지 않고 구체를 들고 함장실을 나갔다. 

 

 “레오나...”

 

 “내가 미안해...정말...미안해...”

 

 작은 함장실에 혼자 남겨졌을 뿐이지만 사령관은 그러지 않았다.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듯 한 공허함이 사령관을 집어 삼켰다. 사령관은 순간의 감정에 휘둘렸던 자신을 자책했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해라. 레오나가 처음 수업 때 그렇게나 강조했었던 말이 문뜩 떠올랐다. 사령관은 깨달았다. 레오나가 없는 자신은 그저 감정에 휘둘리는 어린애일 뿐임을 그리고 그녀가 없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것을. 

 

 --

 

 “대장 이제 그만 각하를 용서해주시죠.”

 

 숙소로 돌아온 발키리는 의자에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는 레오나에게 말을 걸었다. 레오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발키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한 번 말해봐.”

 

 “지난 일주일 동안 각하께서 많이 반성하셨을 겁니다.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각하는 지금 대장님이 필요하십니다. 지금 각하를 보고 있자면 마치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발키리 입 조심해.”

 

 가만히 듣고 있던 레오나는 발키리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특정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오나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발키리는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령관에게 버려진 강아지라니, 그럼 내가 사령관의 주인이라도 된다는 뜻이야?”

 

 “그..그런 뜻이..”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는 말문이 막혔다. 

 

 “사령관은 이 오르카호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통수권자이고 주인이야. 그 사실을 잊지마. 그리고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데 나는 이미 사령관을 용서했어. 사실 사령관과 다투고 하루 지난 후로 그에 대한 앙금은 남아있지도 않고.”

 

 “사령관 각하께서 말을 함부로 하셔서 화가 나서 지금까지 안 보셨던 것 아니셨습니까?”

 

 “물론 그때는 많이 화가 났어. 하지만 사령관이 우리 부대의 과거를 알 리가 없잖아, 내가 한 번도 우리의 과거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지.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앞으로 알아 가면 되는 문제니까.”

 

 “그러면 왜 먼저 사령관 각하께 다가가시지 않으신 겁니까? 왜 저희에게 사령관에게 일부로 차갑게 대하라고 명령하신 겁니까?”

 

 발키리의 질문에 레오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먼저 다가가면 끝나는 문제겠지. 하지만 나는 이번을 기회로 사령관이 나의 도움 없이 눈앞의 문제를 해결했으면 해.”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령관은 매번 모든 일을 나한테 의지하려고 했어.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작전을 세워 봤는데 어떤지. 뭐든 내가 좋다고 하지 않으면 하려고 하지 않았지. 사령관은 나한테 너무 의지해왔어. 이번에 내가 사령관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사령관은 나에게 더 의지하게 될 거야. 어쩌면 발키리 네 말대로 나와 사령관의 관계가 주객전도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그게 싫어. 나는 사령관이 더 그릇이 큰 남자가 되길 원해. 우리에게 의지하는 게 아닌 우리가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남자가 되길 원해. 어쩌면 이번 일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고. 너희들한테 차가운 태도를 요구한건 사령관에게 조금 고난을 준 거라고 생각해 줘.”

 

 발키리는 레오나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고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레오나는 사령관이 이 문제를 스스로 타개하길 바라고 있다.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발키리는 그전에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만약 각하께서 주저 앉아버리신다면 어쩌실 건가요?”

 

 발키리의 질문에 레오나의 표정이 굳었다. 사령관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선택지. 레오나는 사령관이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도 아닌 사령관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문뜩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발키리를 바라보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만약 사령관이 주저앉아버리면...”

 

 레오나는 입을 닫았다. 그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발키리도 레오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

 

 해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가고 시간이 많이 지난 밤 11시 쯤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령관은 침실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시는 따뜻한 라테 한 잔, 이 한 잔으로 그날 몸에 축적되었던 모든 피로를 씻어낼 수 있었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항상 즐겨 마시던 달콤한 맛이 강한 카페라테였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라테를 마실 때 행복하지 않다. 사령관은 고개를 살짝 돌려 구석에 있는 의자를 흘깃 보았다. 저 의자는 전략전술 수업을 할 때 레오나가 앉았던 의자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수업을 마치고 레오나와 함께 단촐한 티타임을 가지는 시간이다. 레오나는 매번 홍차를 사령관은 카페라테를 마셨다. 지금은 사령관 혼자뿐이다.

 

 “하아아아...”

 

 한숨 쉬는 것만이 사령관이 할 수 있는 전부다. 혼자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레오나가 옆에 없으니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오나는 훌륭한 지휘관이자 좋은 선생님이었고 덕분에 전략전술에 문외한이었던 사령관도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했다. 사령관은 책꽂이에서 레오나와 했던 수업 때 요점을 정리해둔 노트를 꺼내보았다. 절반 정도 글씨로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는 노트, 삐뚤삐뚤한 글씨와 반듯한 글씨는 각각 사령관과 레오나의 글씨다. 사령관은 노트를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레오나와 함께 수업을 했던 날들을 회상했다. 

 

 레오나와 사령관이 전략전술에 대한 수업을 시작한 날, 사령관은 잔뜩 긴장했었다. 옆에는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가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령관은 레오나를 볼 때마다 항상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뻔했다. 아름다운 외모에 긴 금색 머리카락과 훌륭한 신체, 무엇보다 고혹적인 목소리까지. 만약 정상적인 남자라면 이런 여자가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릴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는 꽃잎 속에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듯이 옆에 앉아 있는 레오나도 아주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사령관은 알고 있었다. 

 

 수업 준비를 마치고 전술교범을 펴고 수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레오나는 사령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령관, 사령관은 최악의 지휘관은 어떤 지휘관이라고 생각해?’

 

 잔뜩 긴장해 있었던 사령관은 예상하지 못한 레오나의 질문에 허겁지겁 머리를 굴러 정답을 유추해냈다. 수업 첫 날부터 이상한 대답으로 레오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사령관은 짧지만 긴 고민 끝에 자신이 생각한 정답을 말했다.

 

 ‘부하를 버리는 지휘관?’

 

 사령관의 답변이었다. 레오나가 어떻게 생각을 하던 이것은 사령관의 진심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부하를 지키는 것. 큰 힘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꼭 가져야 할 의무라고 사령관은 믿었다. 레오나는 사령관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레오나가 미소를 짓자 사령관은 안심할 수 있었다. 

 

 ‘사령관은 착한 인간이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사령관과 레오나는 수업을 시작했다. 

 

 과거를 상기하던 사령관은 눈가가 촉촉해져 있음을 느꼈다.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나이가 몇 살인데 눈물이라니. 사령관은 옷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눈물을 닦아내고 사령관은 의자에 기대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레오나가 보고 싶다. 잘못했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테니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사령관은 레오나를 볼 용기가 없었다. 만약 찾아 갔는데 레오나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만약 그녀가 이미 마음을 문을 닫았다면? 온갖 망상이 사령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평소처럼 레오나가 자신에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그녀가 먼저 다가와 준다면 사령관은 납작 엎드려 그녀의 손을 붙잡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관도 알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다. 지금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령관 본인이 레오나에게 다가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사령관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컵을 내려놓고 사령관은 몸에 힘을 쭉 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물 속에 몸을 담근 것처럼 힘을 빼고 요동치고 있는 마음을 고요한 호수처럼 진정시켰다. 

 

 사령관은 생각했다. 더 이상 그녀와 만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자신은 레오나가 필요하다.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가? 그렇다. 그녀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그녀를 찾아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발할라의 숙소에 있을 것이다. 레오나가 보고 싶다. 지금 바로 당장. 

 

 사령관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침실에서 나와 발할라 숙소가 위치하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잠수함의 복도를 밝히는 형광등은 전력을 아끼기 위해 밤 10시가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금은 11시이기에 복도는 불빛 하나 없는 시커먼 어둠 그 자체였다. 사령관은 손전등을 끼고 복도에 깔린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할라 숙소로 가는 길은 알고 있었기에 사령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 앞까지 도착했다. 레오나의 방 앞에 도착한 사령관은 앞에 서서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여러 번 마음을 다 잡은 사령관은 천천히 손을 올려 문을 여는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손이 떨렸지만 사령관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과감하게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면 레오나가 보일 것이다. 그녀를 보자마자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자고 사령관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사령관은 레오나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령관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레오나는 방 안에 있었다. 연분홍색 네글리제에 네글리제 너머로 보이는 하얀 레이스팬티 차림에 레오나가 있었다. 이날 사령관은 레오나의 완벽한 몸을 보았다.

 

 --

 

 “그러니까 각하께서 찾아왔는데 그런 차림으로 만났다고.”

 

 마리는 레오나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위에 앉아 있던 지휘관들도 이점이 웃겼는지 하나 같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레오나는 혼자서 얼굴을 붉혔다. 지휘관들은 심각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헤프닝이 주는 웃음 포인트에 웃었다. 

 

 “그래서 서로 화해는 했나 보군.”

 

 “그래 그날 우리는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지.”

 

 “오! 깊은 대화라. 여자와 남자의 깊은 대화라면 역시 몸의 대화인가?”

 

 레오나의 ‘깊은 대화’에 아스널은 큰 관심을 보였다. 레오나는 아스널의 말에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혔다. 레오나가 부정하지 않자 지휘관들은 전부 놀랐다. 설마 마리가 합류하기도 전에 이미 두 사람이 깊은 관계로 발전한 것인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사실 거의 갈 뻔했지.”

 

 레오나는 그날 밤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

일주일만에 글을 올리네요. 넷플릭스 이게 아주 요물이네요.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정신없이 보다가 정신차라니 일주일이 지나 있는 매직을 체험했습니다. 올리는 속도가 많이 느리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이 시리즈를 완결시키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