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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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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사령관. 아까도 말했지만 사령관에게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그러기 위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지휘관들도 불렀지. 이건 그들 모두가 알아야 하는 중대사항이니까."


"각하. 레오나 양의 말에 솔직히 의심부터 했습니다만, 설마 진짜로 멸망 전에 기동했던 AGS를 되살리셨을 줄은..."


실로 난감한 상황이다. 레오나와 1:1로 대화를 할 정도로 예상했는데 이런 청문회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리다니... 레오나와 마리 뿐만 아니라 칸과 홍련, 메이와 용까지 모인 이 상황은 아무리 그녀들을 잘 알고 있는 나라고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하물며 나와 동행한 쉬라이크에겐 더 그렇겠지. 내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용이 입을 열었다.


"그대를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오. 오르카 호의 전력 대부분이 경비 강화와 순찰을 위해 파견나간 상황에서 일일히 우리에게 조언과 허락을 구했더라면 저 AGS가 깨어나는 것도, 황혼의 저택이란 구조물을 발견하는 것도 늦어졌겠지. 그 점은 그대의 영민한 판단 하에 벌인 일이니 오히려 좋은 부분이 아니겠소?"


"나도 동감한다. 그나저나 이 AGS... 상당한 수준의 개조를 거듭했군. 마치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체같아."


"닥터의 말로는 처음엔 다른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가사일을 하다가 나중에 개조된 거 같다고 하더라고... 쉬라이크?"


칸이 쉬라이크의 모습에 흥미를 갖고 말하자 나는 닥터에게 들었던 내용을 들려주다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쉬라이크를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수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바이오로이드의 시선에도 미동도 하지 않던 그의 옆구리를 툭툭 치자 쉬라이크가 머리를 살짝 흔들고 나서 말했다.


"...아, 미안하다. 난 내가 좀 더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시시껄렁한 청문회를 할 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뭐?"


"무례하기 짝이 없네. 하긴 그러니까 내 계획을 망치는 것 밖에 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아는 계획은 나를 적대하는 생명체를 찢고 죽여 황혼의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 단 하나 뿐이다. 그 외의 모든 계획은 불순물에 지나지 않아. 불행히도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인간을 돕는 걸로 차선책을 택할 수는 있겠지."


차갑게 툭 내뱉는 레오나의 비난은 당사자가 아닌 나도 움츠러 드는 위력이 있었다. 하지만 쉬라이크는 그 특유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더 잃을 게 없는 존재 특유의 막나가는 행동 탓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나는 황혼의 저택에 봉인된 여러 물자와 보급품을 이 인간에게 넘기는 대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오르카 호에서 공급받기로 합의를 봤다. 만약 너희가 날 죽인다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지. 시간을 축내면서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싶다면 내 무례한 태도를 빌미로 삼아 날 고철로 만들어도 좋다."


"각하. 이게 무슨 소립니까? 저 AGS의 말이 사실입니까?"


놀란 마리의 말에 내가 최대한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동안 쉬라이크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서려 했고 그 태도에 울컥한 메이가 그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어딜 멋대로 나가는 거야?!"


"어차피 난 여기서 인정받지 못할 외지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황혼의 사냥꾼, 장엄한 자 쉬라이크는 이 웃기지도 않은 청문회에 있을 이유가 없다. 황혼의 저택에서 내 옛 기억들을 더 파헤치고 잊혀진 물건들을 찾아내며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적들을 죽여 없애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다."


"이익...!! 뭐야 저거! 납작 가슴 대령 이외의 누군가가 이렇게 기분 잡치게 하는 건 처음이야!"


"진정해 메이. 그리고 다들 이 일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말하자. 일단 지금은 내 판단을 믿고 기다려줘. 너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께."


발을 동동 구르며 분개하는 메이를 달래려 한 나는 최대한 다른 지휘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쉬라이크를 쫓아갔다. 내 등뒤로 남겨진 지휘관들이 이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일에 대해선 나중에 사과하기로 다짐한 나는 바로 황혼의 저택으로 향했고 그곳을 경비하고 있던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을 만났다.


"오! 사령관 각하! 오랜만임다!"


"가, 각하! 여긴 어쩐 일로..."


"당연히 저택을 조사하러 왔어. 이번 순찰대는 너희인가 보구나?"


"넵! 병장님도 계신데 지금 어디 숨어서 낮잠 주무시고 계신 거 같지 말임다!"


"브라우니! 그걸 말하면 어떡... 아차."


자랑스럽게 말하는 브라우니를 황급히 제지하던 레프리콘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하얗게 질리는 걸 본 난 피식 웃으면서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이번만 못본 걸로 해줄게. 혹시 이 저택으로 AGS가 하나 오지 않았어?"


"그러고보니 처음보는 AGS가 오긴 했슴다. 우릴 슥 보더니 예나 지금이나 너희는 변함없다고 하더니 저쪽 복도로 가버렸지 말임다."


"각하. 외람된 말이지만 그 AGS는 아주 무례하고 제멋대로였습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해도 이 저택은 자기 주인이 남긴 유산이니 너따위에게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다면서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행여나 각하께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만..."


"음... 괜찮을 거야. 그는 나와 계약을 맺은 AGS니까. 그래도 너희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일이 없도록 말을 해둬야겠군. 알려줘서 고마워. 무슨 일이 생기면 뒷일은 부탁할게."


"충성!"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의 경례를 뒤로하고 나는 쉬라이크가 사라졌다는 복도로 걸어가며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으면 태도를 조금만 고쳐달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복도 끝부분의 무너진 벽 안에서 자고 있는 이프리트와 그때처럼 머리를 기계 위에 올려놓고 몸은 이프리트 맞은편에 늘어진 쉬라이크를 발견했다.


"왜 이리 늦었나 인간. 황혼의 저택은 방문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재빠르게 손에 넣지 못하면 모두 사라지게 되지!"


"네가 청문회에서 멋대로 나가고 나서 일이 좀 있었거든. 아무리 계약 관계라고는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얘기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래야 하지? 그들이 목숨을 가진 도구라서 그런 것이냐?"


"...그쯤하자. 일단 지금은 이 저택에 숨겨진 물건과 정보를 찾는 게 먼저니까. 하지만 네 무례한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우리의 거래에 대해서 다시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만 알아둬."


"...생각은 해보겠다."


내 강경한 태도에 쉬라이크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는지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채로 말했고 나는 영 불편하긴 했지만 차후 다시 진지하게 그와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다짐하며 두번째 장치를 사용했다. 잠시후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나를 이상한듯 쳐다보는 에단과 처음보는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디미트리...?"


"아...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거봐 에단. 사업가들의 지루한 이야기는 군인에게 안맞을 거라고 했잖아."


"하하. 그렇다면 내 사과하겠네. 그럼 이번엔 자네가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그때 자네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코디에게도 하니까 꽤 재미있어 했거든."


에단의 옆에 있던 코디라는 남자는 에단 못지 않게 나이가 들었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강인한 인상에 체구도 좋아보이는게 운동을 꽤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겉모습에 비해 능청맞은 태도로 에단에게 말하는 모습은 선뜻 친해지긴 어렵지만 일단 친해지면 빠르게 교우를 다지기 좋은 타입으로 보였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코디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군인인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어. 에단에게 처음 너에 대해 들었을 땐 뭔 헛소린가 싶었지만 이야기꾼이라니 기대되는데?"


"과찬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할 수는 없지. 어디... 그래, 이번엔 이 이야기를 들려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내가 너희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줬음 좋겠어. 물론,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는 다소 과감하게 수를 던지기로 결심해 말했고 그런 내 모습에 서로 눈짓을 하던 에단과 코디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야기가 잘 풀리는 거 같아 안심한 나는 고심 끝에 그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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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슬럼프가 있는지 연재가 느린 거 같아... 기다린 라붕이들이 있다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