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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같은 일은 없었다. 사령관이 눈을 떴을 땐 오르카 호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철제 패널에 볼트가 돌려 끼워진, 평소 그대로의 천장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현실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사령관은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게임에서 나가 현실에서 라비아타와 레아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데, 이 무슨 비효율적인 일이란 말인가.


 답답한 심정에 손깍지를 베개 삼아 한숨 더 자려는 순간, 청천벽력 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침대에 누워 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당황하게 만든 목소리에 화가 나기보단 그리움이 찾아들었다. 처한 상황이 탐탁지 않아 8자로 그렸던 눈썹을 부드럽게 가라앉히며 인사했다.


 “잘 지내고 있어, 라비아타?”

 [물론이죠.]


 바로 앞, 화상 채널에 웃고 있는 라비아타에게 조심히 손을 가져다 댔으나 닿는 일 없이 그대로 투과했다. 닿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신음을 흘리자 라비아타가 볼을 부풀려왔다.


 [정말~! 안 돼요, 주인님! 당분간은 게임 세계에 집중해주세요!]

 “네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야.”

 [입에 발린 말만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답니다.]


 묘하게 볼이 빨개진 라비아타가 다그쳐왔다.


 [뭐하세요? 지금 당장 나가서 새로운 바이오로이드와의 만남을 추구하셔야죠!]

 “싫어, 귀찮아.”

 [네?]


 당황한 라비아타의 물음에 사령관은 속없이 느긋하게 답했다.


 “뭐 어때? 어차피 누워만 있어도 게임은 끝날 거고, 게임상이라 굶어 죽을 일도 없을 텐데 내가 왜 돌아다녀?”

 [주인님!]


 라비아타가 빼액 소리쳐왔어도 사령관은 누운 자리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알렉산드라와 라비아타가 설득하여 사령관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면 이 게임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정이라는 목적을 앞세워 전기충격을 가했고, 이에 반발심이 싹튼 사령관은 곧이곧대로 이 게임에 맞는 역할을 소화해주고 싶지 않았다.


 의도가 좋다 하더라도 수단이 잘못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였다. 사령관은 지그시 감은 두 눈 속에서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낼 생각이었으나,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라비아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주인님께서 취향이 변하지 않는다면, 남은 인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에요.]


 그 말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사령관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뭐라고?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어쩔 수 없어요. 사령관님의 취향이 변하지 않는다면 원인인 우리가 사라져야죠.]

 “그래서? 그 말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뭔데?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화가 난 사령관이 침대에서 벗어나 두 발로 우뚝 서서 패널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받는 상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달라는 게 일방적인 게 아니고 뭐야!”


 속에서 치밀어 오른 분노를 일거에 쏟아낸 사령관은 흠칫, 숨을 삼켰다. 패널 너머의 라비아타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고 손목으로 안구를 훔치는 광경은 사령관에게 큰 아픔이 되어 돌아왔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사령관이 조용히 심호흡하고 있으니 라비아타가 변명했다.


 [저희의 숙명을 잊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를 위해선 현재 방향성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동의하실 거예요. 대를 위해선 소가 희생돼야 한다는 게 저희의 결단이에요.]

 “너희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사령관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랠 방법을 찾아 헤맸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한숨밖에 쉬지 못했다. 땅바닥이 꺼지도록 거창한 숨을 몇 번이나 연속한 그는 고개를 숙였다 다시 쳐들었다.


 “알았어. 이번엔 너희들 계획대로 움직일게.”

 [주인님...!]


 감동한 라비아타가 감사의 말을 꺼내기 전에 사령관이 말을 끊었다.


 “단, 이번 한 번만이야. 다음부터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말고, 그런 계획도 세우지 마. 허세인지 진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 너희들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자각해줬으면 해. 방금 발언은 너무했어.”

 [알겠어요, 주인님...]

 “약속하는 거다?”


 사령관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패널 속 라비아타도 웃는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닿지 않는 차원을 경계로 맹약을 맺은 두 사람은 실 없는 웃음을 짓고 통화를 종료했다.


 자, 이제 무슨 게임이 시작되는가.


 아직도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으나, 그래도 그녀들의 바람처럼 최대한 이 게임에 녹아들 수 있도록 사령관은 힘차게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튀어나온 아이언 애니의 오토바이에 치여 수십 미터를 굴렀다. 매년 로드킬 당하는 야생동물의 심정을 손톱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게임 속 세상에 고통이 구현돼있었기에 더 안 좋은 경우였다. 실제였다면 기절했을 충격을 받고도 기절하지 못해 꺽꺽대고 있으니 바이크에서 내린 아이언 애니가 작위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쥐어박으며 준비된 대사를 읊었다.


 “등교 날 아침부터 늦게 생겼어! 너, 어떡할 거야?!”


 아파서 화도 못 내고 숨넘어가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설마 골목길에서 식빵을 물고 튀어나온 소녀 컨셉인가? 오르카 호의 미래가 어둡다. 자전거로 치어도 날아가는 게 사람인데 오토바이로 사람을 친다고? 제정신인가?


 심지어 이 정신 나간 컨셉을 시도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멀리서 샐러맨더의 버닝 워커와 트리아이나의 S-6 쏘우피쉬가 부딪치고 있었다. 그 착한 코코마저도 화이트셸을 가동해 두 기체 사이에 참전했고,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삼파전이 시작됐다.


 흐릿해진 시야로 바라본 먼 곳엔 골목길마다 갖가지 기체가 대기하고 있었다. 레드후드, 스파토이아에서부터 기동형인 애들까지.


 의식을 잃기 전, 서러움이 복받쳐 마지막 힘을 쥐어짜 부르짖었다.


 “최소한 달려와서 부딪쳐, 달려와서...”


 그 말과 함께 사방 곳곳에서 기체들이 달려 나왔다.


 악셀 밟는 거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