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1808335



한참을 울던 하르페이아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몸을 가늘게 떨며 남자의 품 속에서 훌쩍인다.


남자 역시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하르페이아를 안고 등을 토닥여 주고 있다.


"흐윽.. 우으윽... 흐끕!.. 흑.. 훌쩍.. 흐으.. 흐윽..."


"......."


말없이 그녀를 위로하는 남자의 모습은 얼핏 보기에는 무척 감동적으로 보인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의 바로 옆에는 방바닥에 앉아서 껴안고 있는 남녀를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C구역 관리자가 서 있었고, 거의 10분 동안이나 울고 있는 하르페이아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 역시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하듯 관리자의 눈치를 본다. 


게다가 눈치없이 흘러가버린 시간은 그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한눈에 봐도 부티가 흐르는 남녀노소의 손님들이 열린 방문 안으로 펼처진 이 난장판을 흥미롭다는 듯이 엿보고 있다.


분명 그들의 추악한 욕망을 충족시킬 즐거움만을 위해 이곳을 찾은 자들에겐 이 광경이 참으로 낯설고도 새로우리라.


"...이제 좀 진정이 됬니?"


나지막하게 물어보는 남자의 말을 듣고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르페이아의 반응을 살핀 남자는 곧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코트를 여매어 준 후에 그녀를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가 풀렸는지 자꾸만 무너지듯 주저않고, 그 모습을 보던 관리자는 그들을 위해 조용히 방문을 닫아준다.


밖에서 그 진귀한 풍경을 감상하던 인두껍 쓴 괴물들은 아쉽다는 듯이 흩어지며 약속된 그들의 자리를 찾아간다.


세 번째 시도마저도 결국 엉덩방아를 찧은 하르페이아는 혹시라도 자신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을까봐 불안해하며 남자를 올려다본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안심시키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몸을 굽혀서 그녀를 안아든다.


'생각보다 가볍네..'


남자는 놀랄 만큼 가뿐하게 들리는 하르페이아의 무게에 감탄하며 그녀를 들어올리고, 그에 놀란 하르페이아가 몸을 크게 떨며 그의 품속에 파고든다.


'일부분이 없어서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안아든 남자는 곧 그의 머리속에 기어들어온 좆간을 내쫓으며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관리자에게 시선을 옮긴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의 저의 무례를 사과드리고 싶네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 아이와 고객님과의 관계를 잘못 넘겨짚은것 같군요. 충분히 기분 나쁘셨을 수 있죠. 고객님께서 과거에 파일럿이셨다면 이 아이가 고객님의 동료나 부하 군인이었나요?"


품안에서 작게 떨고 있는 하르페이아를 잠시 보며 생각하던 그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린다."


"어... 아.. 예.. 그게.. 네, 동료 비슷한 거였, 아니 관계였죠. 네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하르페이아 역시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안아든 남자를 올려다본다.


하나부터 열까지 수상한 행동 뿐인 남자였지만 관리자는 더 생각해 보지 않기로 하고 그를 배웅하기 위해 문을 열어주고 그들을 안내한다.


망가진 바이오로이드를 안고 복도를 걷는 그의 모습은 역시나 아까 방 안에서처럼 손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의 섬뜩한 시선을 느낀 하르페이아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서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입구 앞까지 도달한 남녀를 배웅하는 관리자는 남자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정말 주인 등록과 명령권 각인을 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십니까? 그러다 사고라도 나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어쩌피 바이오로이드는 자의로 사람을 해칠 수 없지 않나요? 살인명령 역시 퇴역하면서 지워졌을 거고요."


"음.. 그건 맞습니다만... 고객님의 결정이 그러시다면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폐를 너무 많이 끼쳤네요. 수고하세요."


관리자와 덕담을 나눈 남자는 곧 완전히 어둑해진 가을 밤의 테마파크를 걷는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옷차림의 남자가 만신창이가 된 채 코트만 입은 여자를 안고 멀리 보이는 놀이기구를 배경삼아 빠르게 걷는 기묘한 모습은 나와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테마파크를 찾은 방문객들, 접객용 바이오로이드 직원들, 인간 직원들까지 신기한 눈으로 그 남녀를 바라본다.


처음 얼마간은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행동하던 남자도 수많은 시선이 좀 부끄러운지 그들과 가급적이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C구역을 지나 B구역을 가로지를 때 쯤, 계속해서 집중되는 어그로를 견디지 못한 하르페이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작게 속삭인다.


"저.. 이,인..간님... 저... 걸을 수.. 있을거 같아요..."


"그러다가 또 넘어지려고?"


남자의 장난기 섞인 물음에 하르페이아가 크게 주눅들며 고개를 숙인다.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되도 않는 농담을 꺼낸 남자는 몹시 뻘쭘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하르페이아를 근처의 벤치에 부드럽게 내려놓는다.


"정말 설 수 있겠어?"


작게 끄덕인 그녀에게 남자가 그녀의 허리와 어께를 감싸며 부축해준다.


의외로 제법 쉽게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가 아주 약간 배신감을 느끼며 그녀를 본다.


벌벌 떨며 위태롭게 서있는 그녀는 맨발로 맨땅을 딛고 서 있는게 익숙치 않는지 연신 발가락을 꼼지락댄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하르페이아에게 말을 건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봐. 근처 상점에서 신발 하나만 사올게."


그리고 남자가 그녀에게서 몸을 돌리는 순간-


놀란 하르페이아가 다시 엎어지듯 그의 다리를 껴안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더듬거린다.


"시,시,싫어요...! 절, 저를 여기에 버, 버리고 가지 마세요.. 부탁, 부탁이에요... 제발요.."


예상치 못한 속박 공격에 넘어질 뻔한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려 그녀가 놀라지 않게 그녀를 부축해주며 말한다.


"그럼 같이 가자. 신발 사이즈도 맞춰봐야 하니 아무래도 함께 가는 게 더 좋겠지."


마침 홍등가인 B구역인지라 근처에 옷과 여성용품, 성인용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근처에 가득했고, 그 가게들 중 제일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게 하나를 골라 남자와 하르페이아가 들어간다.


아차,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는데 시팔 성인용품점 이었다. 화들짝 놀란 남자는 황급히 하르페이아를 챙겨 도망치듯 옆 가게로 향한다.


다행히 여기는 옷가게다. 점원인 콘스탄챠 모델이 가게에 들어온 요상한 조합에 잠시 당황한듯 했지만 곧 능숙한 솜씨로 그들을 접객한다.


"어서오세요 손님. 찾으시는 복장이 있으시면 바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반가워. 얘가 신을 신발이랑 간단한 평상복, 속옷 좀 사려고 왔어."


곧 콘스탄챠는 그들을 신발 코너로 안내하고는 몇 가지 옷을 챙기러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근처의 의자에 하르페이아를 앉힌 남자는 적당한 운동화를 몇 개 집어온다.


그리곤 그녀의 발을 들어 손으로 부드럽게 먼지를 털어 준 후 하나씩 신껴준다. 따뜻한 남자의 배려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르페이아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오른다.


"어때, 발에는 잘 맞아?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남자의 말을 들은 하르페이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신발을 고르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린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검고 파란 무늬가 있는 회색 운동화를 하나 들어본다.


"내가 보기엔 이게 잘 어울리는데 너가 생각하기엔 어때?"


하르페이아 역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마침 타이밍 좋게 콘스탄챠가 옷 몇 벌을 들고 온다.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부터 옆이 길게 트인 드래스, 메이드복, 비키니.., 교복... 아니 딴 건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교복은 왜?


콘스탄챠가 가져온 옷을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서 콘스탄챠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저기.. 내가 평상복이라고 하지 않았니..? 왜 그런걸..."


"..네...? 그래서 여기 평상복 컨셉들로.."


"......."


"...어.. 죄, 죄송합니다..?"


"아니, 우리는 집에 갈꺼야.. 그런거 말고 진짜 사복.. 너가 일 없는 날 입는 그런거 있잖아.."


그 말을 들은 콘스탄챠가 부끄러움으로 시뻘개진 얼굴을 숙이며 도망치듯 다른 옷을 챙기러 갈 때, 남자는 또 눈치없이 그녀를 불러세운다.


"아니야, 어쩌피 입혀 봐야 하니까 같이 가자."


여기선 그냥 보내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걸 알 턱이 없는 남자는 하르페이아를 일으켜서 부끄러운 콘스탄챠와 동행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옷들을 숨기려는 듯이 품에 안으며 걷고 남자는 그 옷들을 보며 생각한다.


'평상복이라면서 비키니는 왜 들고온걸까.. 그것도 C스트링을.. 입히면 어울리긴 하겠네... 그건 그렇고 교복은 왜 가져온거지? 설마 내가 그렇게 페도새끼처럼 생겼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옷 코너로 들어간 남자는 벽에 있는 전신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그래도 페도의 관상은 아닐 꺼라고 애써 스스로에게 마음속으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곳에서 하르페이아를 위한 진짜 평상복을 몇 벌 고른 남자는 그녀를 콘스탄챠에게 맡기고 탈의실에 들여보내려 했지만 하르페이아는 마치 그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집을 부리며 하나뿐인 팔로 그를 잡고 탈의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결국 비좁은 탈의실 안으로 따라 들어간 남자가 하르페이아의 코트를 천천히 벗긴다.


"힉...?!"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그녀의 복장, 그리고 걸래짝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팔까지 하나 없는 하르페이아의 몸을 보고 콘스탄차가 입을 가리며 놀라움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본다.


남자도 그런 콘스탄챠의 시선에 크게 당황하며 말한다.


"내.. 내가 이런거 아니야..! 진짜로!"


다행히 그의 말을 믿어준 콘스탄챠는 세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탈의실 안에서도 능숙하게 하르페이아의 옷을 갈아입히며 옷 고르기를 도와준다.






"저희 가게를 방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옷 가게를 나가는 그들을 배웅하는 콘스탄챠에게 쇼핑백을 든 손을 흔들어준 남자가 몸을 돌려 하르페이아에게 나머지 손을 내민다.


하지만 그 손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하르페이아는 그저 남자의 손을 바라만 보고 있다.


'손을 뻗는 행위에 트라우마라도 있는 건가?'


남자는 아까 전 건물에서 자신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던 하르페이아를 떠올리며 그녀의 손을 잡는 대신 나풀거리는 코트의 오른쪽 소매 부분을 잡아 주고 그런 남자의 배려 같지 않은 배려에 따라 하르페이아 역시 걸음을 때기 시작한다.


아까 지나온 두 구역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A구역은, 그 둘의 기이한 꼬라지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 충분할 정도로 정상적인 놀이공원이었다.


야간개장 시간이라 아까 남자가 해메던 시간보단 사람이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방문객들이 남아 있었고, 쌀쌀한 가을 밤에 구겨진 셔츠 차림으로 한 손엔 쇼핑백, 나머지 손엔 팔을 끼지 않은 코트 소매를 붙잡은 남자와 코트에 한쪽 팔만 끼우고 얼굴을 크게 다친 듯한 한 소녀가 매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쫄래쫄래 남자를 따라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춥네... 얘는 기동형이니까 추위도 안 타지 않을까..?'


의외로 강력한 추위의 가을밤 속에서 잠시 하르페이아에게 입혀준 코트를 돌려받을까 고민하던 남자는 또다시 자신의 뇌를 방문한 좆간을 머릿속으로 매우 치며 담담히 출구로 향한다.


출구 근처로 온 남자는 몇 명의 잼민이에게 시달리고 있는 마녀 하나를 발견한다.


좀 띨띨해 보이는 마녀의 모습에서 남자는 그녀가 아까 자신과 동행해준 키르케임을 알아차린다.


하르페이아를 데리고 나오는 자신을 알아보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빠진 표정을 짓는 마녀에게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담아서 가벼운 목례를 한다.


그녀가 없었다면 남자는 하르페이아를 이렇게 빨리 만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키르케 또한 그런 그를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마녀는 복잡한 감정 속에서 출구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두 남녀의 인영을 오래토록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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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하르페이아는 이전에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한번도 없음.

남자만 할페를 알고 있고 할페는 남자를 못알아보는 이유도 나중에 나올 예정.

설정상 여기 테마파크는 블랙리버 소속의 테마파크. 인게임 이벤트 테마파크랑은 관계없음. 시설의 규모도 훨씬 작다는 설정.

관리자는 나쁜 사람은 아님. 그냥 하는 일이 이런 일일 뿐. 빛간까진 아니지만 좆간도 아님.

키르케가 좀 띨빵하게 나왔던 이유는 해당 테마파크 A구역 전담 바이오로이드여서 C구역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설정 때문.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만 알고 있는 정도.

남자는 바이오로이드를 인간과 동일하다 생각하고 있음. 그래서 여기 나오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신사적으로 대해줌

그림은 앞으로 나올수도 있고 안나올 수도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