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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실에서 나와서 부관으로 활동하게 된 첫날 아침,

리제는 괜시리 초조하게 옷매무새 같은 걸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다듬기로 했어.

오드리가 아직 합류하지 않아서 딱히 대단한 걸 준비한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래도 하냐 마냐는 차이가 크니까.

그리고 공용 샤워실에서 씻을 때부터 주변에서 뚫어져라 달라붙는 시선을 느끼고 순식간에 가시방석에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지.

어느새 미호나 켈베같은 A급 전투원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걸 보자니 더더욱 그랬어.


하지만 차마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어.

자기가 조동아리를 잘못 놀린 것 때문에 모두의 야스 라이프까지 당분간 봉인되어 버린 셈이니까

그나마 6지까지는 그래도 야스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니까 그 전까지만 성공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내심 싹싹 빌면서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져.

반드시 사령관을 유혹해서 사랑 따위 없는 야스를 하게 만들겠다고.


자연스럽게 몸단장을 도와주는 다프네를 포함해서 지금 당장 집중되고 있는 시선은 추궁 같은 게 아니라 흥미 10할일 뿐이라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


*   *   *


한편 콘스탄챠랑 마리한테 근질근질한 시선을 받고 있는 사령관도 사실 골치가 아프긴 마지막이었어.

그 후의 말싸움이나 내기 같은 건 둘째치더라도, 리제한테 마음 운운한 것 자체가 반 정도는 충동적이었거든.

좌우좌에게서 진실 (※ 진실아님)을 듣고 나니 리제의 행동 대부분을 이해하게 된 건 좋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울컥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그러는 와중에 리제가 마음까지 내주는 건 좋고 싫고 이전에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까지 생각하면 더 그랬지.

리제의 그 말이 정말로 전 주인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었는지, 혹은 바이오로이드로서의 구속 같은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살짜쿵 미망인을 유혹하는 듯한 배덕감이 있는 게 아니냐고 하면 아주 부정은 못하겠지만, 이미 지른 건 지른 건데 뭐 어쩌겠어.

아무튼 자신을 처음 봤을 때나, 마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터질 듯이 얼굴을 붉히는 리제가 정말로 귀여웠던 게 문제였을 뿐이지.


하지만 골치가 아픈 것일 뿐, 후회는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아직 상식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지만 사령관도 그 나름대로 결의를 다져.

반드시 리제를 꼬셔서 그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게 만들겠다고.


일단 그 전에 상자 뒤에서 빼꼼거리며 눈을 빛내고 있는 그리폰이랑 좌우좌는 돌아가게 만들어야 했지만 말이지.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의 두 명은 대환장으로 파티도 아니고 올림픽을 열어버렸음.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를 못하고, 그냥 온갖 사소한 일에도 지휘 콘솔을 붙잡고 지시를 내리는 사령관이랑 부대별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특기사항이 있으면 알리는 정말 기초적인 업무의 난이도를 모기만도 못한 목소리로 수직상승시키는 리제의 콜라보.


흐뭇하게 보는 것도 처음 한두시간이지, 브라우니 통신으로 오르카 호 전체에 쫙 퍼질 즈음에는 모두가 직감하게 되어버렸지.

답이 없네.


리제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이번에도 몸이 문제였음.

원래의 완벽한 계획대로라면 "적당히 몸을 밀어붙이기만 해도 아다인 사령관 따위 순식간에 육욕에 패배하겠지!"였는데, 그보다 접근했을 때 자기 몸이 발광하는 정도가 더 심했거든.

이러다가 오히려 자기가 야스가 고파서 사령관한테 굴복해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사령관의 경우에는 아직 산전수전 다 겪은 7지 이후의 사령관이 아니라...는 점도 있긴 한데

사실 굳이 따지자면 리제가 자기를 의식하는 티가 너무 뚜렷하게 나서 오히려 이쪽까지 부끄러워진 지분도 적지 않았어.


거기에 리제랑은 달리 사령관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보내는 시선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으니까 더 부담스럽기도 했지.

아무튼 그렇게 어색함만 쌓여가던 와중에 에이다가 접촉해온 건 사령관에게든 리제에게든 반가운 일이었어.


그렇게 에이다로부터 프레데터가 탄생한 연구소의 이야기를 듣던 중,

에이다는 사령관이 "아직은" 인간적이라는 촌평을 내려.

철충 감염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


야스를 떼어놓고 생각해도 6지에서 해결될 걸 몰랐으면 참 위험한 상황이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사령관의 머리 한 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리제는 곧 다른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가 있었지.


그러고 보니 마리도 사령관과 철충의 공통점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었으니,

멸망 전부터 생존해온 자신 또한 그걸 알아봤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달아.

어쩌면 그 부분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해둘 거리가 있으리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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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오르카호 실시간 멤버들은 해당 지역에서 드랍되는 애들 정도까지만 있는 느낌임.

6지 끝난 다음에는 이벤트다 뭐다로 우르르 몰려오겠지만 암튼 지금은 비헌 정도만 S급일듯.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1951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