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존나 패도 된다.. 미안하다...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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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나도 사실은 알고있었다. 자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함선 내 분위기를 잘 못읽었다 변명해도, 추잡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단 것도 잘 알고있었다.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말한 것들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과도 같았다. 그 사실을 알고, 마키나는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20


멸망의 메이. 둠브링어의 대장이자 심판의 옥좌에 앉아 철충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는 방식의 전투를 행해왔다. 메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능력이 이정도나 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인류가 멸망하기 이전엔 메이는 그 버튼을 누르는 행동 하나하나에 엄청난 무게감을 느끼며 전투를 수행했지만, 철충을 상대하는 지금은 거리낄 게 없어 자신이 내키는 대로 발포했었다.. 사령관의 허가가 있다면. 메이는 모든 게 멸망하고,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앞에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더 많은 자가 자신의 능력을 보고 자신을 칭송하길 바랬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렇게 해주는 것을 늘 거부했었다. 메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위력을 뽐낼 수 없으니 오르카 내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기존 사령관을 미워하게 되었고, 그게 점점 커지다 만난 게 현재의 사령관이였다. 처음엔 좋았다. 희생을 불사하고 이득을 취하는 화끈한 면모를 보았고, 기존 사령관보다도 뛰어난 외모에, 그 무엇보다 메이가 드디어 전술핵을 쓰게 됨으로서, 메이를 만족시켰고 메이의 신임을 얻었다.


다른 지휘관기들 또한 마찬가지로, 늘 기존 사령관의 부족한 점에 질려, 모든게 완벽해보이는 현재 사령관을 택했다가, 모조리 그 피해를 보고있었다. 메이는 성대를 잃었고, 마리는 실성했으며, 아스널 또한 그가 에밀리를 학대하는 걸 보고 완전히 등을 돌렸다. 한마디로 현 사령관의 편은 아무도 없었으나, 현 사령관이 여태 살아있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명령권 때문이였다. 강력한 명령권 앞에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의 입지는 이전보다 좁아졌고, 바이오로이드들은 그저 하나의 도구로서 삶을 살아가게 되자, 모두 이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자신이 택한 걸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내년이 있던 오르카호는 이제 한 치 앞도 불투명해졌다. 그러자,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을 다시 한번 축출하고 싶어했었으나, 그마저도 낮아진 권력으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이제 그들은 사람이 아닌 도구로 돌아갔다. 도구가 주인에게 반항하는 일은 있을 리 없는 일이다. 심지어로는 사령관은 이제 몸을 바꾼다고 한다. 그 이후론 당연히 힘이 더 강해진 사령관의 학대가, 더욱 심하게 변할 것이다. 한마디로..

오르카 호엔 미래가 없었다.


06-5


'사령관 각하께선.. 파멸을 맞은 오르카에 들어가, 단신으로 그 인간을 처리하고, 다시 사령관 자리에 오르시려는 거군요. 

다 쓰러져가는 오르카 호를 다시 일으켜세운, 영웅이 되어 말이죠.'


'정확해. 정말로 편한 작전이지. 내분을 일으키고, 기회를 엿봐 사령관을 죽여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선다. 이미 한 번 날 버린 오르카를 용서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 다시 한 번 오르카를 이끈다. 정말 영웅같은 이야기가 다름없지.'


로크는 사령관의 계획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그렇기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전략이였다.


21


"용, 들려? 칸도 옆에 있지?"


"그렇소. 할 말을 하시오."


용은 평소보다 고조된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지간해선 흥분하지 않는 용이였지만, 이번만큼은 흥분을 하고 있었다. 원래 줬던 무전기는 단말기였으나, 근 며칠동안 기지국을 만들어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로도 충분히 무전이 통했다.


"사령관은 새 몸으로 갈아탄 상태야?"


"아니오. 하지만 내일 당장 출발한다고 하오."


"좋아. 이제 내일이면 만나겠구나. 내일 몸을 바꾸러 가면 그때 무전을 걸어. 마지막 계획을 설명해줄게."


"알겠소.. 드디어 내일이면 그대를 만나게 되는구려. 이만 끊겠소."



전 사령관은, 다시 한 번 오르카호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게 필요했고, 그걸 위해 미리 벙커에다 준비를 해놨으나, 그 벙커는 바로 챙길 수 있는 짐만 챙긴 채로 버렸다. 사령관은 아늑하고 익숙한 벙커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곳으로 가다가 잘못하면 걸릴 수 있었다. 완벽한 작전을 위해, 내가 걸리는 것 만큼은 피해야했다. 즉 다시 준비를 해야했다. 그러나, 지금은 체스가 더 중요했다.


"로크, 내가 널 따로 벙커쪽으로 작전을 보냈을 때 기억나?"


로크는 룩으로 사령관의 나이트를 잡으며 말했다.


"예. 그땐 중요한 전력을 낭비한다 생각했었죠. 정말 격에 안 맞는 임무였었습니다."


사령관은 폰으로 룩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서로 킹 하나, 폰 셋, 룩 하나, 나이트 하나를 남기고 엔드게임에 들어섰다.


"그때 주변엔 팬텀을 생산하던 곳이 하나 있었어."


로크는 바로 루크를 진영 끝으로 보내, 폰 셋을 앞에 내세운 뒤 뒤에 숨어있는 킹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세웠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듯이 말했다. 체스의 기본인 매너를 지키는 행동이였다.


"하하. 체크메이트입니다, 사령관 각하."


"그곳에서, 팬텀이 쓰던 미채복을 하나 생산할거야."


"..사령관 각하?"


"그리고.. 그때!"


사령관은 판 위의 기물을 킹과 자신의 나이트 하나를 빼고 전부 치워버리고, 자신의 나이트를 적진 옆에 세워둔 뒤, 자신의 킹으로 로크의 킹을 밀친 다음 그 자리에 킹을 세웠다.


"모두 갑판 위에 올라와있을 때, 로크 너가 시야를 잡아끌고, 내가 그 사이에 미채복을 켜서 침투한 다음, 사령관을 처리하고 올라간다."


".....사령관 각하가 진 판을 계획된 것처럼 치워버리시곤 능청스럽게 작전 설명을 계속하시는군요."


"크흠.. 아무튼, 판도 엎어졌겠다 그 공장을 가동시켜줘. 재료는 거기 다 있을거야. 내가 쓸 미채복은 하나면 충분해."


"사령관 각하, 그건 그렇다 쳐도 제가 시선을 어찌 끌겠습니까?"


"걱정마, 넌 예전 오르카호 최고의 주둥아리를 가졌어. 자부심을 가지렴."


로크의 데이터베이스엔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었고, 그걸 베이스로 특유의 성격과 말투, 위압적인 거대한 몸이 모두 합쳐져 오르카 최고의 만담꾼이자 최고의 주둥아리를 가졌다 볼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팩트를 듣고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힘을 과시했다.


"그렇단 말은.. 제가 하고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내도 괜찮단 말씀이십니까?"


로크는 기대에 찬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입이 근질거렸던 모양이 분명했다.


"당연하지. 자, 이제 거기서 미채복 한.. 20개정도 뽑아서 갖고와줘. 실수로 팬텀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돌아와선 체스를 다시 한 번 하기로 하죠."


필요한 것들을 모두 준비하기엔 이틀이 걸린다. 하지만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그에 맞춰 가장 필수적인 팬텀의 미채복만 생산하기로 했다. 광학 미채복인 만큼, 들킬 염려는 사실상 없다. 주변이 일렁이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미채복을 작동시킬 전력이였다. 미채복은 팬텀의 생체전기를 이용해 가동시키는 방식이였는데, 그걸 해결해야했다. 로크의 것은 로크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전기를 쓰면 됐으나, 전 사령관 자신의 것만큼은 미채복을 개조하는 방법밖에 답이 없어보였다. 가장 간단한 방법인 건전지를 사용해 개조하기로 결정한 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 몰라서, 오자마자 바로 개조할 준비를 해야했다. 건전지는 전의 그 태양광 발전기에서 뜯어오고, 도구는 평소 식자재를 조달해왔던 곳에서 가지고 왔다. 도구를 가져오자, 로크가 마침 수북한 미채복과 함께 돌아와있었던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령관 각하. 자 그럼 체스를 마저... 그건 뭡니까?"


"건전지랑 미채복을 개조할 도구들. 미채복 들을 이어붙여서 너꺼를 하나 만들고, 내가 쓸것도 하나 만들어야돼."


"아하.. 그래서 미채복을.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방법은 아십니까?"


"대충은. 이제부터 작업 시작하자."


"이..이렇게까지 해야겠소?"


용은 평소에 당황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멸망 전 인류가 성추행을 해와도 그저 매서운 말투로 응했으면 응했지, 당황하진 않았다. 허나, 이번에 용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어서 내 얼굴을 치도록."


...칸이 자신을 치라 청해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령관한테 명령을 받는단 것은, 사령관실로 찾아갔단 말인데, 사령관실에 들어갔단 말은 곧 쳐맞았단 거란 칸의 주장으로, 칸이 자처해서 용에게 맞기로 한 것이였다. 사령관이 갑판으로 전 부대를 소집했다는 대담한 거짓말을 치기 위해선, 리얼함을 조금 입혀야한단 칸의 주장이였다. 용은 그 말을 듣고 납득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칸을 치기엔 너무 미안했다. 패는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


"그..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소? 차라리 내가 맞는다던지.."


"흠.. 하지만 난 힘이 과하게 센 점이 있어서말이지."


"그래도..."


"난 멍이 잘 들어서, 약하게 때려도 멍이 들거다. 차라리 내가 맞는게 나을테지.. 아, 그 방법이 있었군."


칸은 웃으며, 사령관실쪽으로 다가갔다. 용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해서 칸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아..아니되오! 그것만큼은 안되오! 차라리 내가 때리겠소!"


"그 대답을 기다렸다. 어서 쳐라."


칸은 정말로 기다렸는지, 바로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용이 치지 않으면 칸은 사령관한테 맞게 될 것이였다. 하지만, 전 사령관은 칸이 맞지 않길 바랬으므로 자신이 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아.. 미안하오, 조금만 버티시오."


찰싹.


"윽!"


용은 자신이 치고도 놀라서 소리를 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너무 얼얼한 감각은, 칸이 맞은건지 자신이 맞은건지 헷갈리게 했다.


"무슨.. 뺨이 돌덩이로 되어있소? 어째서 나만 아파하는거요..?"


"...어떻게 됐든간에, 이정도면 멍은 들겠군."


22


"그 인간이 결국 몸을 바꾸러 항해할 준비를 끝냈다. 함내 인원들을 모두 선동할 준비는 되었지. 사령관, 그쪽은 어떤가."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전 사령관과 로크는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왔었다. 근 반년동안 계획해온 만큼, 실패는 용납될 수 없었다.


"준비는 완벽해. 언제쯤 출발할 것 같아?"


"이제 곧이다. 슬슬 준비해야하지 않겠나?"


"음, 출발하면 무전 걸어줘. 따라서 갈게. 이상."


무전을 끝마치고 로크를 바라보았다. 로크의 붉은 발광체는 오늘따라 유독 더 흔들리고 있었다. 스텔스 비행이란 걸 처음 해보는거라 그런걸지도 모른다. 문득 보면 기대감에 찬 눈빛같아보인다.


"드디어 이 때가 왔군요. 크크.. 명예를 등진 자들을 심판할 날이, 드디어.."


"진정해. 함선 내 인원을 단 한명도 죽여선 안 돼."


"물론 알고있습니다. 허나 그자들이 제 유려한 말솜씨에 압도당해 반박도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만한 전경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 쪽이였구만."


로크는 사령관이 직접 이어붙인 미채복을 몸에 둘렀다. 비록 하루라는 시간 내에 만들어야해서 모양새는 엉성했으나, 전력을 주입하자 미채가 활성화되었다. 기능 자체엔 결함이랄 게 없었다. 주변이 조금 일렁이는 정도의 미채. 이정도면 금란이 아닌 이상에야 미채를 눈치챌 인력은 없을 것이다.


"후후, 드디어 완성됐군요. 자, 제 등에 타시지요. 곧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때마침 올라탔을 때, 용에게서 무전이 들려왔다.


"곧 오르카가 출발할 것 같소. 김지석이라는 인간의 묘를 향해서."


"좋아, 로크. 슬슬 출발하자. 오르카가 정박하는 순간, 그 틈을 타 날 내려주고, 그대로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줘."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로크는 자신의 에너지 컨버터와 입자 가속기에 불을 붙이고,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날카로운 엔진음이 들려와 하늘을 메웠다.


키이이잉.


"출발하겠습니다. 5, 4, 3, 2, 1."


..



23


로크는 바닷가에서 잠시 정지한 채로, 상공에 떠있었다. 로크와 사령관 둘 다 오르카 호가 정박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둘은 너무 심심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하늘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그렇네. 정말로 시원하게 뚫려있어."


하늘은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했다. 텅 빈 하늘을 보고있자니, 둘 다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령관과 로크는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네, 당연합니다. 여태 살아왔던 세월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때였으니까요. 그때의 기억을 잃는단 건, 사령관 각하의 로크도 잃는단 뜻과도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행복했어. 지금은.. 소완이 해줬던 밥이 그립네."


"그.. 소완이라는 요리사가 그리도 뛰어난 자입니까."


"내가 아는 자들 중에선 소완이 요리로선 으뜸이지. 소완보다 잘하는 사람을 다른 분야에서 찾아보자면.. 역시 아우로라?"


"흠.. 요리란 걸 먹을 수 있다면 좋겠군요. 가능할 진 몰라도 나중에 돌아가서 닥터양에게 요청을 해봐야겠습니다."


"아, 달거라면 취하는 기능도 달아달라 해줘."


"오호.. 저도 마침 술 맛이 어떤지, 취한단 느낌이 어떤지 궁금했던 차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달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바다 아래에서 오르카호가 나타났다. 깔끔했던 외관은 이끼와 따개비가 붙어서 겨우 움직이는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전 사령관은 다시 가서 저것들 다 떼어낼 생각을 하니, 상상만 해도 몸에 소름이 끼쳤다. 전 사령관과 로크는 함선의 갑판에 착륙했다.


"돌아가고 나서 채널 열어둬."


"알겠습니다. 저희의 앞길을 밝은 별이 비춰주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전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로크에게서 떨어져 오르카 호로 침투했다.


'내가 잠시 없어졌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더러워질 줄이야.'


오르카 호 내부는 정말 엉망이였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 바닥에 낀 물때, 곰팡이가 피고 조금 녹슨 복도. 이런 곳에서 하루라도 살다간 기관지에 문제라도 생길 것 같았다. 전 사령관은 아랑곳 않고, 우선 그리 보고싶어했던 호라이즌과 호드 부대를 찾아갔다. 함선 내부는 정말 넓어서 어디였었는지 까먹어, 조금 많이 걸어야했다.


'여긴 스틸라인 구역이고.. 호라이즌 구역이랑 호드 구역이 어디더라.'


전 사령관은 걸어가면서 각오를 다졌다. 직접 동물같은 건 몰라도 바이오로이드나 사람을 죽여본 기억은 없었다. 허나 전 사령관이 해야만 했다. 남의 손에 사령관이 죽는다면, 그건 겉으로 보기엔 복수극일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전 사령관은 오르카의 애들한테 부탁을 했지, 명령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 여기가 발할라 구역이였지.'


이 방법이 좋진 않다는 것을, 전 사령관은 알고있었다. 스틸라인과 발할라, 둠브링어, AA캐노니어, 대부분의 부대가 사령관에게 피해를 입었다. 내가 다시 들어간다 해도 빠르게 피해를 복구시킬 순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미 그런 걸 생각할 때는 지났다. 애초에 전 사령관의 목적은..


그저 함선 내 새로운 인간을 제거할,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었다.

그걸 위해, 오르카 호를 조금 희생시켰을 뿐이였다.


그리고, 이건 시험이기도 했다. 새로운 인간이 나타난다면, 함선 내 부대원들은 어떤 반응을 할지, 자신을 버리는 자가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였다. 버리는 자가 있다면, 이참에 인간을 제거하면서 겸사겸사 같이 제거할 심상이였다. 하지만 부대원들을 제거할 순 없었다. 대부분의 부대가 내게 등을 돌린 만큼, 그자들을 쳐냈다간 정말로 복구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간을 제거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이득이다. 애초에 멸망 전 인류는, 하나같이 쓰레기니까. 그런 자들은 함선 내엔 필요없었다.


오르카 호의 몰락은 예견되어있었다. 처음 들어온 직후의 사령관은 그저 어떠한 전술적인 식견 등이 모자라, 전 사령관의 지휘 등을 어깨너머로 배워, 대충 따라한 것이였다. 허나, 그게 자신의 성향에 의해 변해 조금 공격적이게 되고, 아다리가 잘 맞아 그게 지휘관들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였다. 사령관은 그렇게 나를 통해 은연 속에 배운 전술로 지휘했겠지만, 오르카호의 특수성을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몇달동안 지속된 승리밖에 없던 전투 끝에, 지휘관들도 이 사실을 망각한 모양이였다. 오르카 호는 애초에 수가 몇십배로 불어도 철충 본대를 상대할 수 없었다. 수십년간 방어적인 전술로 아군의 수를 최대한 불려야 겨우 상대해봄직 한데, 그상태에서 공격적인 전술로 지휘한단 뜻은, 얼마 없는 병력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말 그대로 잠깐의 이득을 취했다는 뜻이였다. 장기적으로 볼땐, 부대원들의 역량을 늘려주는 방식인 방어적인 전술이 가장 효과적이였다. 브라우니같은 하급 병사들조차 여러번의 전투와 훈련을 몇년동안 몸에 쌓아온다면, 실력이 비교도 못 하게 늘어난다. 이는 T-14 케시크, 신속의 칸으로 증명이 된 사실이다. 칸은 지휘모듈과 상성이 좋아 그런걸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녀는 수많은 전투를 거친 자였던 만큼, 전술적인 식견 자체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뛰어났었다. 그런 자가 지휘모듈을 가진다면, 충분히 고급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 사령관이 취한 이 방식은, 지금 당장 보기엔 정말 좋지 않은 계획이였다. 허나, 장기적으로 볼땐 이득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십년간 세력을 키워야하는데, 그 사이에서 일어난 반년이 조금 넘는 손해를 감수하고, 향후 최소 20년 가량은 유지될만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배신했다간,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교훈을, 감히 내게 반기를 들지 말라는 교훈을.

잊는다면, 다시 상기시켜줄 계획을 다시 세워서 어떻게든 이 기억을 뇌리에 박아놓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아, 여기가 호드의 구역이구나. 호라이즌 구역도 옆에 붙어있고.'


전 사령관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유이하게 내 편을 들어준, 두 부대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칸, 용, 세이렌, 카멜.. 반가운 얼굴을, 반년 넘게 못봤다. 우선 심장을 진정시키고, 호드 숙소의 문을 열었다.


"어?"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왜이렇게 늦었냐 했는데 아무래도 글 하나를 두개로 찢어서 쓰는건 너무 날로먹는다 생각해서 아예 한편 더 이어붙였어.

그래도 말도 없이 이런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날 존나 패라..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