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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아무튼 하자.

거기까지 각오를 마친 리제의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가 팟 하고 떠올라.

사실 당하기만 하니까 더 정신 못차린 게 아닐까?

리제도 종이장갑인 대신 극공형이니까 이쪽이 치고 나가면 나름대로 길항할 수 있지 않을까?

틀림없다. 역시 난 머리가 좋아.


뭐 그딴 생각을 하면서 리제는 자신에게 덮여있던 이불을 슬쩍 들어서 사령관을 덮어.

아무튼 다 보이는 건 아직 저항감이 있고, 이 편이 종잇장같은 방어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후들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사령관의 위로 올라서서 자세를 잡으니까 근거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뭣보다 사령관이 정말로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음.

그래서 모처럼 폼 잡을겸 쿨하게 웃으면서 당초의 목적대로 사령관을 덮치고자 함.

그러면서 사랑을 속삭이기라도 하면 아다 사령관 따위 한 방이겠지. 리제 서약 대사를 응용하면 되려나.

뭔가 아래쪽에 와닿는 감각이 심상찮다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리제는 천천히 몸을 내리고.

다음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감각에 그대로 머리까지 꿰뚫림.


그리고 이 상황을 사령관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리제의 의도랑은 180도 달랐음.

진즉부터 기진맥진해서 혹시 좀 쉬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연인(일단은)이 비틀거리면서도 아득바득 자신에게 다가와서는,

수줍은듯 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걸로 우린 영원히 서로에게 짝이 되는 거라고 속삭인 다음 야스를 시작한 거임.

그리고 연결된 순간에 갑자기 멈추더니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대로- 라고 속삭이는 거야.


여기서 이걸 이 행복함을 계속해달라는 고백이 아니라 이대로 잠깐 멈춰달라는 항복 선언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건 이제 아다 탈출한지 1분도 안 지난 사령관에겐 무리한 요구였음.


상반신을 일으킨 사령관에게 리제는 딱 맞게 들어와 안겼고, 그대로 진짜 야스가 시작됨.

처음에는 어떻게든 허리를 놀려서 맞추려고 했지만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눈앞이 번쩍이는데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했지.

그나마 전희 상태에선 사령관을 끌어안기라도 했던 팔도 이제는 어깨에 얹혀서 흔들거리는 정도가 최선이었음. 

절로 흐윽거리는 소리가 나오는걸 입술을 깨물어가며 버티려고 하는 것도 사령관의 손이 등을 쓸어내릴 때마다 족족이 신음으로 바뀌어 버려.


모르겠다. 이런 건 몰라. 아니, 아무 것도 모르겠어.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나마 지각할 수 있는 건 온 살을 마주대고 있는 남자의 이름 뿐이었고, 리제는 그렇게 열병이라도 오른 것처럼 사령관의 이름만 부르다가 지금까지 겪은 것 이상의 새하얀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음.


*   *   *


그 후, 리제가 다시 눈을 뜨니까 아침이고, 자신은 사령관의 팔을 베개 삼아 자고 있던...

것이 아니었음.


사령관은 침대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고, 자기는 여전히 침대였음.

사령관이 가볍게 닦아줬는지 몸이 끈적하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남아있는 열기 같은 걸 고려해도 정사가 끝난지 얼마 지난 지 않은 건 명확했지.

기껏해야 10분? 어쩌면 더 짧을지도 몰라.

바이오로이드의 회복력을 생각하며 아담님 에바님 지석놈한테 감사의 인사라도 올릴까 생각하던 리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령관과 시선이 맞음.


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쑥쓰러워져서 이불을 눈밑까지 끌어올린 상태로 가만히 바라보자니, 사령관이 피식 웃으면서 다가와서 머리카락을 쓸어줌.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괜히 불퉁하게 뭐예요, 라고 했더니 예뻐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는 견디지 못하고 베개를 집어던져 버렸지만 뭐 웃으면서 넘어갔지.

정말로 야스를 해버렸구나. 그것도 아다끼리 한 것 치고 참으로 끝내주는 야스를.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는 동안 사령관이 이불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을 그대로 뒤에서 끌어안는 것까지도 뭐 괜찮았어.

엉치뼈 즈음에 와닿는 뭔가를 느끼기 전까지는.


설마, 하는 시선으로 끼릭끼릭 고개를 돌렸는데 사령관은 이미 한 번 몸을 섞었더니 주저고 뭐고 없어진 건지 슬금슬금 자신을 안고 있던 팔을 아무리 봐도 응큼한 의도밖에 안 느껴지는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몸을 쓸어내림.

이 이상 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은 거의 척수반사로 나온 달뜬 신음에 묻혀버리고,

머잖아 다시 헐떡이는 숨소리가 방을 가득 채워버림.


*   *   * 


결국 그대로 리제는 하룻밤만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령관이랑 몸을 섞어버려.

그 와중에 사령관의 테크닉은 무슨 쫄작이라도 뛰는 건지 체감이 될만큼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해버리는 게 더 곤란했음.

과연 그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를 야스로 평정한 남자- 라고 감탄할 정신머리는 이미 없었지.

거기다가 원작에서도 살짝살짝 암시되었던 소프트한 S끼도 어디 간 게 아니라,

새벽 즈음에는 진짜 자지러지다못해 엉망이 된 얼굴을 필사적으로 가리려던 걸 굳이 정상위로 바로 보게 하면서 절규에 가깝게 사랑 고백까지 하는 꼴로 마무리를 지었으니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니었어.


어차피 하루 내내 꼼짝도 못하게 되어버리는 결과가 마찬가지라면,

바이오로이드의 회복력이라도 없었다면 차라리 금방 실신 엔딩으로 끝나기라도 했을 텐데.

아담놈 에바년 지석새끼한테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 퍼붓던 리제는, 문득 더더욱 무서운 사실을 알아챔.


아무리 하룻밤 내내 실전을 벌였다고 해도 지금의 사령관은 어디까지나 막 아다를 졸업한 뉴비 사령관.

콘스탄챠로 튜토리얼을 마치고 마리로 응용력을 익히고 알렉산드라로 심화과정을 마스터하면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와 절차탁마한 끝에 그 아스널도 능히 감당해내는 8지 이후의 사령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명백.

거기에 아직 제대로 된 몸은 얻지도 못했으니, 6지 이후까지 고려하면 더욱 더 강해지면 강해지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도 뻔했어.


한편으로 사령관의 태도에서 미루어보아 적어도 당분간 사령관이 자기 이외의 누군가랑 야스를 할 것 같지는 않았음.

그것들을 전부 조합해본 결과는 너무나도 확실했지.


죽는다.


난 틀림없이 사령관에게 시달리다 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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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버리는 이야기 (X)

야스를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버리는 이야기 (O)



하루만에 거진 8천자를 쓸 줄은 정말 몰랐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2144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