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라우니’라고 불린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아마 공립 중학교를 다니다가, 어떤 남학생이 ‘야 쟤 브라우니 닮지 않았냐?’라는 말을 한 것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웃고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모 사건을 계기로 학폭이 시작되며 다들 나를 바이오로이드 보듯이 대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중에도 수도 없이 뭉친 종이가 날라오고, 화장실에서는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책상은 너덜너덜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선생들? 이미 국가가 기업한테 지배당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는데 그런 나라에서 공무원들이 뭔 의지를 갖고 이런걸 계도할까?

뒷골목에서 남자들한테 집단으로 험한 꼴을 보고 난 뒤, 나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어차피 몇 달 버티다보면 익숙해진다. 부모님도 체념하듯이, 내 방 문 앞에 음식만 두고 갈 뿐 없는 자식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성형같은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이미 바이오로이드로 인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날백수로 지내며, 최소한의 복지지원금만 받고 살아가는 시대였다. 각종 방송매체에서는 연예인들이나 부자, 권력자들이 끝내주는 뷰를 가진 아파트에서 사치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화려하게 각종 파티에 나가고 시사회에 참석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우리집은 그러지 못하였다.

차라리 브라우니가 아니라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닮았으면 나았을까. 기왕 닮으려면 오드리같은 고급 개체를 닮을 것이지, 왜 하필 가장 저렴하고 가장 흔하고 다나까밖에 못쓰는 존재와 외모가 비슷하게 된거지? 왜 부모라는 사람은 나를 브라우니처럼 낳아놓고 아무런 대안도 못 찾아주는거지? 

 

그러던 중, 철충의 공격을 받아 인류사회는 점점 패퇴하기 시작하였다. 공무원 바이오로이드에 의해 나는 방안에서 강제로 끌어내졌고, 피난민 행렬에 끼어 부모님과 떨어져 어느 섬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세계정부는 철충과의 전쟁이 종식될때까지 강제 동원령을 선포한다. 퇴역하여 민간으로 보내진 바이오로이드들까지 모두 동원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내용이었다.

동원령 속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신고를 당해도 뇌물로 어찌저찌 바이오로이드를 보유하거나 했겠지만, 주변에 그나마 나를 보호해줄 부모님도 없어진 상황에서 나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징병소로 끌어져나왔다. ‘민가를 돌아다니는 브라우니 1기를 잡아왔다’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난 브라우니가 아니라고 항명을 했지만, 징병소 공무원은 간단한 시리얼 번호 조사조차 안하고 나를 바로 스틸라인 배속지로 보내버렸다. 좋게보면 전시라서 그렇게 한 걸 수도 있지만, 분명 평시라도 일을 그렇게 처리했을 것이다, 

 

허름한 천막에 강제로 던져지자, 내 주변을 나랑 닮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둘러쌌다. ‘인간님임까?’‘인간님이 여기 왜 오셨슴까?’같은 소리가 반복되었다. 그들은 시각이 아니라 뇌파로 인간을 구분한다는 말을 들었다. 뭐라도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눈물만 나오고 목이 메여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브라우니 하나가 나한테 초코파이를 하나 건냈다. ‘일단 이거라도 드시고 계십쇼, 제가 상황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때마침 군부대 장교가 한명 브라우니 숙소를 들어왔고, 초코파이를 건낸 브라우니가 그 장교에게 ‘여기 이 사람은 브라우니가 아닙니다, 인간입니다’라고 한 순간 장교는 권총을 뽑아 브라우니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브라우니들은 항명을 할 수도 없고,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니들 헛소리하지 마. 그리고 시체는 알아서 치워’ 장교는 짤막하게 그 한마디를 하고, 다른 브라우니 한명을 지목한 다음에 데리고 나가버렸다. 

브라우니들은 인간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전우의 시체를 치웠다. ‘인간님은 그냥 저기 계십쇼’. 그리고 그 끌려간 브라우니도, 아마 보기 힘들거라는 말을 했다. 그날의 성처리 담당으로 지목되고, 보통 마지막은 총살로 끝을 맺는다고 했다. 어차피 저렴하니까, 쓰고 버리는 느낌으로,

 

그날 밤, 공습경보가 울렸다. 브라우니들은 ‘인간님은 그냥 여기 계십쇼’라고 했지만, 인간 장교들이 그런 모습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었다. 나는 브라우니들과 함께 초소에 배속되었다. 브라우니들은 사주경계를 하면서, 콧노래로 뭔가 노래를 불렀다. 군가였던 것 같다. 그들이 알고 있는 노래가 군가 밖에 없지 않겠나. ‘인간님도 같이 부르시지 말입니다.’ ‘어차피 멜로디 몇 개 없고, 우리도 군가를 제대로 음 알고 있는건 몇 개 없지 말입니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그 멜로디에 편승해서 흥얼대기 시작했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른편에 앉아있던 초소에서 총성이 울리고, 곧 저 멀리에서 철충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파괴력은 대단했고, 바이오로이드들의 화력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 정신없이 총을 쏘는 중에, 초소 안으로 뭔가 동그랗고 LED가 반짝이는 것이 떨어지자, 브라우니들은 ‘인간님을 보호해!’라고 외치고 나를 둘러쌌다. 수류탄이었다.

 

폭발음. 그리고 브라우니들이 나를 감쌌지만, 폭발의 파편까지 막진 못했다. 브라우니들의 잔해 속에 파묻혀서 배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었지만, 발가락이 안느껴지는 것을 봐선 아마 나도 곧 그들과 함께 가지 않을까 싶다.

짧은 몇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인간이라고 확인해 준 것은 브라우니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날 위해 무언가를 주었고, 죽음을 무릅쓰고 상위자에게 보고를 하였고, 노래를 알려주고, 지켜주려고 했다. 어차피 나 또한 그냥 브라우니로 전사처리 될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인간으로서 죽는거 보다, 브라우니로 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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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한 영상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 참고로 저 상황은 ''버거는 클로드에게 자신이 잠시 대신 있어 줄 테니 옷을 바꿔 입고 나가서 쉴라와 친구들을 만나라고 말한다. 클로드가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사이, 갑작스레 클로드의 부대가 베트남으로 전출되고, 버거는 클로드 대신 전쟁터로 끌려가 죽는다.' 는 거임


멸망 전 인류 중에서도 바이오로이드를 닮은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있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다가

하필 브라우니를 닮아서 험한꼴을 보지만, 결국 브라우니들로부터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떨까 싶어서 써봄. 근데 필력이 안좋아서 그냥 아이디어성으로 투척만 하게 된 꼴같이 되었네...


그건 그렇고 썸네일로 사복입은 브라우니 창작물 걸어보고 싶었는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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