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2362464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2373271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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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항해 중에는 맑은 밤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날씨가 험하면 더욱 그랬다. 지나고 있는 항로 상에 점유 중인 섬이 있거나, 하루가 멀다하고 불어대는 태풍이 지나야만이 가능했다.

그 많지 않은 기회 중에 하나가 찾아온 날이었다. 장거리 항해 일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의 한 때, 섬을 낀 채 고개를 내밀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범고래의 갑판에서 나는 담배를 물었다. 뭉쳐있던 나른함이 후후 뿜어내는 연기와 함께 날아가는 듯 했다.

짙푸른 색의 하늘에는 온갗 별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인간이 멸망한 후에는 날만 밝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고, 야간작전을 펼치고 복귀한 대원들이 은하수가 어떻니 별자리가 어떻니 재잘댄 적도 있지만, 오르카 붙박이와 다를게 없는 나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얘기였다.


흔하게 느낄 수 없는 운치에 젖어서 였을까, 그 날 밤은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침 다가온 그녀가 함께였기에 더욱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눈 앞의 풍경이 선사하는 특별함과는 또 다른 특별함을 그녀에게서 느끼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고생하네."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건조한 목소리 덕에 얼핏 들으면 무심한 듯이 대한다고 느껴질 법 하지만, 그녀와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나는 안다.

상황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목소리 톤과 표정들을 늘 봐온 나라면 그녀가 지금은 어떤 기분인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오늘 근무는 끝났습니다."


짙은 자주 빛 머리칼을 뒤로 한 번 시원하게 쓸어내고는 나와 같은 방향을 응시한다. 두 손을 포개어 난간에 올려둔 그 모습이 고양이의 그것을 보는 듯 했고, 늘씬하게 뻗은 다리와 꼿꼿이 편 허리 덕인지 다소곳함 또한 느껴졌다. 서로 말이 없는 수 십 여초 동안, 몇 번 곁눈질 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는 답지않게 꼼지락대며 잠깐 머뭇거리는 기색을 비추더니 스읍-하고 숨을 한번 작게 들이쉬고는 말했다.


"각하, 그…"


"응? 아, 미안. 담배연기 안좋아했지 참. 바로 끌게."


"아니 그게, 그런 건…"


그녀에게는 언제나 신경이 곤두 서고 만다. 아주 작은 부분의 변화도 놓치고 싶지 않고, 아주 조금의 불쾌함도 주고싶지 않다. 오늘 날에서야 그녀의 기분을 파악하는 눈치가 제법 생겼지만, 오르카에 사령관으로 막 부임했을 무렵을 생각하니 그 어찌 부끄러운 짓들만 해왔는가 싶어 감히 우쭐대며 여유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자정에 끝나서 다행이네. 나참, 장거리 항해 중이라 전투는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방심했어."


실없이 웃으며 말하니 그녀는 조금 기운이 빠지면서도 의아하다는 듯, 고개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한 채 말했다.


"각하."


"응?"


"다행이란 건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아, 발키리는 항상 전투임무 외에 근무도 빠짐없이 서잖아. 심지어 전투가 있는 날에도 근무를 서질않나. 너무 열심이라 걱정 될 정도야."


"각하께서 걱정하실 게 아닙니다."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따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딱딱하게 말하면 역시 기가 죽게 된다. 어떤 다른 의도로 말한게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기운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당황한 그녀는 고개와 손을 짧고 빠르게 휘저으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뇨…그, 그런게 아니라…그, 밀어내거나 그런건…"


"그래 뭐, 발키리가 그렇게 말하니 괜찮은 것 같네. 난 또 요새 좀 많이 피곤해보인다 싶어서."


하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지은 뒤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슬슬 자러 갈테니까. 천천히 있다 와."


함내로 들어가기까지 채 열 걸음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각하!"


평소와는 다른, 살짝 목매인 듯 하면서도 다급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막 돌리려던 참이었다.

어느새 다가온것인지, 뒤에서 그녀가 뻗어온 양 팔이 내 흉부 언저리에서 교차했다. 

방금까지의 다급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양 팔은 살짝 떨리면서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갑자기 뭐냐고 물으려던 것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의 팔에 양 손을 포개었다.


"처음에…"


"어? 뭐?"


"가, 감사하다고…"


"감사해? 뭐가?"


내 되물음에 잠깐 뜸을 들이더니 굵고 짧게 후우-하고 숨을 들이 쉰 그녀는


"처음 부임하셨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늘 감사했고, 감사드립니다. 항상…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자연스럽게…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드리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늘 붙임성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 들이 쉰 숨이 일종의 용기였음을, 부끄러움을 견디기 위한 자기암시였음을, 그것을 깨달은 나는 포개던 손으로 그녀의 팔을 푼 뒤, 뒤돌아 마주보았다. 

나 또한 굵고 짧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쉰 뒤 미소지었다.


"고마워. 내일 봐."


"…정확히는 오늘이 맞습니다만."


눈을 피하며 내뱉듯이 말하기에 나는 그녀의 이런 부분을 알아도 모른 척, 또 다시 실없이 웃으며 그녀에게 왜 그러냐 묻는 것이었다.

보는 이는 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들 뿐일 텐데도, 왜인지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은 모습을 보이고 만 것 처럼 부끄러워, 나는 다시금 "내일 봐." 라고 다급히 말하고선 침실로 향했다. 뒤돌아서는 잠깐의 사이에 보게 된,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어색하게 느낄 그런 포근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고 한 숨이 절로 나와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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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말하는데, 할 말만 짧게 하고 떠나."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지포라이터를 몇 번 흔들고는 주머니에 넣고 눈 앞의 바이오로이드를 쏘아보며 말했다. 

동굴 안에 있는 바위에 엉거주춤 걸터 앉은 모양새가 이 바이오로이드에게는 꽤나 생소하고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일 것이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타닥타닥하고 타오르는 모닥불의 크기가 조금 줄었기에, 무심히 장작을 던져넣고는 가냘프면서도 안정된 숨소리를 내며 자고있는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내 눈 앞에 있는 이 바이오로이드, 발키리라는 개체는 동굴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않아 알비스와 짧게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서로 내비치는 기색이 생이별한 자매의 재회인 것 마냥 조금은 애달퍼 보였지만 무슨 대화를 나눴는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거친 절단면을 가진, 알비스의 잘려나간 한 쪽 귀를 보듬 듯 어루만지는 걸 보니 이제는 아무래도 좋을 한 때의 그녀가 잠깐 비쳐보인 듯도 하여 나는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애써 속으로 눌러 삼키면서 한 동안 동굴입구에서 서성였다.



발키리의 손에 이끌려 두 아이가 잠에 들고나서야 동굴로 들어온 나는, 백화점에서 챙겨온 티백 녹차를 머그에 두 잔 달여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발키리에게 한 잔을 건냈다. 백화점에서 알비스가 따로 챙긴, 하치코라 불리는 바이오로이드 개체가 아담하게 데포르메 된 머그컵을 발키리는 입가로 조심스레 몇 번 가져 간 뒤 입을 열었다. 


"걱정했습니다. 사령관 각하... 인간님..."


표정없이 초점이 맞지 않는 멍한 눈으로 먼 곳에 있는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내며 발키리는 나지막이 말했다.


"할 말만 하라고 했어."


"…"


"걱정했다느니 하는 실없는 소리 들으려고 널 여기 들인게 아니야"


"…오르카와 무적의 용 휘하의 함대는 공멸했습니다."


애써 담담하게, 먼 과거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발키리는 말을 이어나갔다.


"각 부대의 소수의 팀만이 생존이 확인 됐고 함대 또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력의 과반수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습니다."


"그게 하고싶은 말이야?"


"생존한 인원들의 위치는 현 위치에서 북쪽으로…"


"야."


"각 부대의 현 관계상… 소수의 인원들은 국지적으로 퍼져…"


"야."


"인간님이 계신다면 다시 규합하는 것은…"


"야!"


들고있던 머그 잔을 집어던질 뻔한 것을 꾹 참고 숨을 몰아쉬기를 몇 초. 그 간극 속에서 발키리는 조금은 촉촉해진 눈을 한 채로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끓어오르는 온갗 감정들은 아이들을 의식해버려 다시금 차분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다시 수십여 초. 나는 담배를 한대 더 입에 물고 말을 꺼냈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각ㅎ…"


"씨발."


"…죄송합니다. 인간님."


다시금 아이들을 살리려 매달리던 날이 떠올랐다. 발키리, 그녀들. 내가 지금 그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

차분히, 눈 앞의 바이오로이드는 의식하지 않은 채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그녀들을 어찌하고 싶은가?, 나 자신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 그녀들 모두에게 죄가 있는가?

만약 모두에게 죄가 있는게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하나 일일히 따져 묻는 것이 맞는 것인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고장난 나침반이라도 된 양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적을 잃은 듯 방황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두통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하나하나 죄를 따져 물을 것이라면 적어도, 내 눈 앞에 있는 발키리는 죄가 있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원망 비슷한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 더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신호로, 나는 왜인지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집어삼키고 바이오로이드에게 고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채비해 놔.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


그 말을 남기고 담배를 한 대 더 입에 문 채 나는 동굴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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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커다란 고래가 눈 앞을 지나갔다. 넋 놓고 앉아 시간을 죽이면서 기다리려니,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앞이 훤히 트여있는 선수에 가까이 선 채 정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수면에서 아주 미약하게 닿는 빛이 걱정스러운 마음만 더 부추겼기에 초조함이 표정에, 신체 전반에 드러났다.  



"주인님. 모든 지휘관 개체들이 집합했습니다."


인상보다 조금은 성숙하면서도, 상황을 반영한 탓인지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고마워. 콘스탄챠."


꾸벅, 고개를 까딱이고 가벼운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콘스탄챠에게 한 번 시선이 가고, 뒤돌기를 잠깐 머뭇거리고, 다시 정면에서 노니는 고래들에게 눈길을 주기를 몇 번. 나는 질끈, 눈에 한 번 힘을 줘 꿈뻑인 뒤, 뒤를 돌아봤다.


함교의 출입구를 등진 채 열을 맞춰 꼿꼿이 서 있는 지휘관들의 모습은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듬직한 풍채를 가진 개체들이 내뿜는 기세는 평소보다 더 날이 서 있었고, 그렇지 않은 개체는 풍채는 작았을지언정 그 표정에서 오는 기백은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듯 보였다.


그래,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계속, 믿어의심치 않는 부하들에게서, 전우들에게서 불온한 것을 느끼는가. 

아니, 어쩌면 내가 애써 불온한 것을 찾아내려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오늘의 보고 회의를 위한 첫 운을 뗐다.


"보고서 몇 장으로 넘어가려고 했다면 오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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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꺼 읽어보니까 호칭이나 장소 명칭에서 통일되지 않은 부분이 있네 미안해 ㅜㅜ 라붕이들이 잘 이해하고 넘어갈거라 믿어

최대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수정할게. 오타와 어색한 부분 지적은 언제든 환영이야

재밌게 읽어 줘~



https://arca.live/b/lastorigin/22421992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