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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쳤다. 


단 한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였다. 내 눈 앞에 있는 그녀들이 나의 이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던,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방금 되돌아 온 그 말에 결국 참아온 화가 터져버린 탓이었다. 나조차 쳐놓고 놀랄 정도의 강도였기에, 고개가 돌아간 채 벌겋게 부어오른 뺨에 손을 대고, 고통스런 기색을 감추는 두 지휘관을 주위로 내 분노가 전해지기에는 충분했다. 

내 명령에 죽고사는 그녀들이었기에 지금 당장의 승리를 노리기보다는 방어적으로, 철저히 기반을 다져가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확실한 것을 취한다는, 초조해 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내 주요 행동강령에 그녀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당초 목표했던 지역을 포함해 더 넓은 지역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다소'의 피해는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습니다.'


듣기로는 맞는 말이다. 이번 전투는 나름 대규모라 불릴 만한 전투였으니까. 목표했던 세 곳은 철충이 빽빽히 깔려있었으니까.

그러나 결과물에 비해 아군 측의 피해는, 결코 '다소'의 피해라고 말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번 전투를 어떻게 해서든지 치뤄냈어야 한다고 해도, 피해를 최소화 하는 작전은 충분히 고안할 수 있었다.

욱씬대는 뺨에서 손을 뗀 뒤 몸을 추스르고 다시금 열중쉬어 자세로 대기하는 그녀에게 나는 얇은 보고서 뭉치에서 한 장을 빼들어 들이밀었다. 


"다소의 피해?… 마리, 도대체 이 숫자를 어떻게 읊어야 다소의 피해라고 말할 수 있는거지?"


스틸라인의 지휘관 마리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아꼈지만, 그 무표정에서도 나는 어렴풋이 그녀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이해 할 수 없다.'


그녀, 마리는 표정을 감췄으나 이해 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뺨을 맞는다는 처분을 이해하지 못한건지, 내가 꾸역꾸역 분노를 억누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건지는 몰라도,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분명히 이해 할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입을 제외한 온 몸으로 표현하는 듯한 모습에, 이번에는 내가 더욱이 그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보다 더 과거, 그녀들이 나를 찾아낸 후, 내가 사령관이 되고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직접 그 두 눈으로 목도 했을 터였다. 내가 직접 지휘했던, 아주 작은 오차로 잘못된 명령을 내려 수많은 전사자를 내었던 전투를.

지휘하는 입장에서는 사소한 실수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것이 가져온 결과의 현장에서, 허망하게 무릎꿇고 상체만이 덩그러니 남은 브라우니를 껴앉은 채 오열하는 한 때의 나를.

그런 나를 말없이 껴안으며 위로했었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간 탓에, 나는 한번 눈을 부릅뜨고는 끝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 분위기를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쌀쌀 맞은 말투로 마리의 옆에 서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 마리의 말에 완벽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틀린 점은 없어."


그녀의 말을 신호로 뇌에 스파크가 튄 듯 했다. 퍼뜩 쳐올린 시선을 그녀에게 가져가 멀뚱히 쳐다만 보았다.

이번에는 더더욱 이해 할 수 없었다. 

그 냉철하고 똑부러지는 지휘로 늘 최상의 결과만을 가져오는, 다름아닌 그녀가 꺼낸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의 양상은 먼 과거의 인류나 할 법한, 좋게 말해주더라도 육박전, 나쁘게 말해 전쟁놀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너 진심이냐?"


이제껏 없었던,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초유의 사태라 부를 만한 것이 또 한번 터졌다.

나는 이제껏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도 '너'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녀들과 생활하며 화나는 일, 빈정상하는 일, 그냥 이유 없이 기분나쁜 일 등등… 부정적인 감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더래도 그것은 금방 훌훌 털어버릴 민들레 꽃씨 같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는 진심으로, 헛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것을 꾹 참고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진심이냐고 물었어. 레오나."


"…현장 지휘관에게 되물어 보는게 어때?"


레오나는 새침하다고 하기엔 너무나 차갑게 느껴지는 태도로 시선을 피했다. 마리에게 되묻는다 해도 내 화만 더 돋구는 꼴이 될 것이란 걸 그녀를 포함한 이 자리의 모두가 알 것인데도 그녀, 레오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애써 차분함을 되찾으려 하면서도, 결국엔 터져나온 헛웃음을 참지못해 하- 하고 짧게 탄식하듯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참 믿기지가 않네. 이제 껏 해온, 사소한 것 하나까지 고려한 행동강령 정립이나 철충타입별 맞춤 분대 전술구상, 너희 모두, 그리고 참모들과 머리를 싸매고 눈 앞에 닥친 전투들에 대해 밤새 논의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하루 아침에 정신머리는 어디다 잃어버리고 오기라도 했나? 아, 혹시 이번 전투에서 잃어버린거야?"


나는 끓어오르다 못해 터져나올 것만 같은 감정의 마그마에 휩쓸리듯이, 누구 하나를 지목하지 않고 그녀들 모두에게 쏘아붙이듯이 지껄였다.


"왜 말들이 없지? 설마 진짜야? 정말 정신이 나간거야?"


목 끝까지 차오른 마그마가 결국 터져나오려는 걸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억누른다.


"이... 씨...발... 누구라도 좋으니 대답해 보라고!"


"진정하세요."


그 목소리에 결국 터져나온 마그마가 한 순간에 굳어버린다.

함교의 문이 열리고 집합해 있는 지휘관들의 등 뒤에서부터 마리와 레오나의 옆을 지나 내게 다가온 그 남자가 말했다.


"이번 전투의 총지휘는 제가 했습니다."


말쑥한 차림에 나보다 반 뼘 정도 큰, 아마도 마리와 같은 키를 가졌으며 얇은 테의 안경을 쓴 지적인 이미지의 남자.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구해낸, 또 다른 인간 생존자였다.


"첫번째 사령관, 조금 진정되면 다시 얘기하시죠. 그녀들은 제 명령을 따랐을 뿐, 모든 책임은 제게 물으시길."


친근함이 느껴지는 생글생글한 웃음이 평소라면 퍽 좋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 묵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두번째 사령관, 무슨 생각으로, 누구의 허락으로 이번 전투를 지휘 했습니까? 각 지휘관들은 커녕, 참모들의 작전안이 단 하나도 입안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하하, 자신이 있었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군요. 첫번째 사령관님도 보고서를 보시면 아시듯이, 이번 전투의 전과는 굉장합니다. 오히려 그녀들을 칭찬하는 편이 알맞지 않을까요?"


"이딴 걸 전투라 부릅니까? 혹시 당신 19세기에서 살다오기라도 한 거에요?"


내 말에 이 남자, 두번째 사령관은 생글생글한 웃음을 유지한 채 말 없이 내가 들고있는 보고서를 가리키고는 그녀들을 향해 뒤돌았다. 두번째 사령관을 보는 각 지휘관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달라는 듯 매달리는 시선, 지금 상황은 아랑곳 않는, 약간의 애정이 담긴 듯한 뜨거운 시선, 불온한 것을 보는 듯 꺼림칙해 하는 시선 등, 그 모든 시선을 받고있는 남자가 말했다.


"내가 첫번째 사령관과 직접 대화 할 테니, 전투의 여독을 풀도록. 고생들 했어."


남자의 말을 신호로 즉각 함교에서 나가려던 몇몇 지휘관들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내 눈치를 보며 난감해 하는 기색이었다.


"…해산해."


나는 물 속을 헤엄치기라도 하는 듯한 발걸음으로, 지휘관들을 뒤로 한 채 갑자기 찾아온 무거운 현기증을 견디며 함교의 출구로 향했다. 

급하게 뒤따라온 콘스탄챠가 부축해 왔기에 고맙다고 말하려 했지만, 점점 어딘가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의식을 붙잡지 못해 돌이라도 얹은 양 무게를 더해가는 눈꺼풀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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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레일을 따라 난, 그리 비탈지지 않은 포장된 산길로 들어섰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두고 떠나올 수도, 반대로 길을 나서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들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끓어오르는가 하면, 애써 부정하려 해도 한 때의 추억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발키리를 만나고서부터는 더욱 아른거렸기에 이러다 결국 미쳐버리는 것은 아닐까하여… 

그래서 결국은, 나는 살아남은 소수의 그녀들과 직접 마주하고, 그 때 그 때 일어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기자고, 그렇게 정했다.

나쁘게 말하면 될 대로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는 말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기 전 들른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물자를 보충했다. 

휴대하기 간편한 취식물과 여벌의 의류, 멸망 전 기술이 가득 첨가된 캠핑용품과 서바이벌 용품.

알비스와 LRL이 본인들도 거들겠다는 말에 나는 한사코 거부했지만, 그 도와주겠단 말이 점점 생떼를 부리는 것으로 변해버린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아이에게도 짐을 부담케 하기로 했다. 두 아이는 나보다 열발자국 정도 앞서서, 보팔래빗이라 부르는 가방을 허리춤에 각각 하나씩 메고, 나와 함께 언젠가 같이 불렀던 것 같은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 할로윈 때 부르던 노래였던가요."


나와 비슷한 가방을 등에 멘, 조금은 캐주얼 하면서도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발키리가 말을 걸었다.


"한가한 소리 할 틈이 있으면 길 안내랑 주변경계나 똑바로 해."


발키리에게 무심히 쏘아붙이고는 앞서가는 아이들을 불러세웠다. 


"이 녀석들아. 챙겨준 식량은 먹었냐?"


나는 칼로리바 하나를 아이들에게 꺼내보이고는, 이 것과 같은 것을 제대로 챙겨 먹었느냐고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응, 먹었어! 맛 없어! 초코바 먹으면 안돼?"


"다 먹었어요."


'나중에 먹어라.' 

'그래 잘했어.'


각각 대답해온 아이들에게 웃음기 담은 대답을 돌려주고는 양 손에 두 아이의 손을 하나씩 맞잡았다.

걷다보니 자연스레 힘을 실어 손을 앞 뒤로 흔들게 된 모양새가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 하여 과열된 머리가 조금은 식는 것 같았다.

잘못 보았는지 발키리가 살짝 미소를 지은 듯 해 뒤돌아 확인해볼까 했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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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노을지는 무렵이 되어서야 산을 넘어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키리가 내려다보며 손을 가리킨 곳은 컨테이너와 텐트들이 여섯 개 정도 모여있는 숲과 인접한 공터였다. 나는 발키리가 가리키는 곳을 가만히 응시하고는 말했다.


"저기에 있는 건 누구야."


"…" 


발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었다. 

직접가서 확인하는 것이 더 좋을거라는 무언의 대답.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알비스는 초코바 덕인지, 전투부대의 대원으로 제작된 아이였기 때문인지 힘이 부치는 기색도 없이 꺄르륵대며 곧 잘 웃어댔다.

그런 알비스를 보니 옛날의 알비스와 전혀 다를게 없다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유모를 불안감이 솟아올라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조금 전 부터 안아들고있는 LRL은 아직 곤히 잠든 채 였다. 

어느정도 밝은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타까워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벌건 노을이 점점 푸른색으로 변해가는게 보여 잠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 그만두기로 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해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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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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