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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여기에 누가 있다는거야."


물기를 머금은 흑갈 색 진흙에 잡초가 듬성듬성 난 공터로 발을 들이고나니 정면에 있는 연회색 컨테이너에 시선이 갔다. 군데군데 떨어져나가고 찌그러진 부위에서 드러나는 구리 색 얼룩은 이 컨테이너가 오도카니 맞아 온 시간들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이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주위에 있는 바랜 상아색의 텐트들은 솔솔 불어오는 이 바람에도 금방이고 날아갈 것 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내리니 발치에는 진흙과 피로 범벅 된 돌격소총이 한 정 나뒹굴고 있었다. 'F2090'. 알기로는 그런 이름이 붙은 소총이었다.


"분명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있었을겁니다…라고 말 끝을 흐리는 발키리를 뒤로 하고 주위에 있는 텐트를 훑어보며 컨테이너로 향했다.

컨테이너의 둥그런 문 손잡이를 잡고 몇 번 돌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에 진흙이 조금 묻어 있었던 탓에 나는 손을 대충 털어내고는 컨테이너를 등지고 공터를 찬찬히 훑어봤다.

산을 등지고 검푸른 색으로 물든 숲의 공터는 점점 강해지는 찬 바람이 더해져 한 껏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있었다.

생기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이 공터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 머물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추운건지 발키리의 양 손에 매달리듯 붙어 가늘게 떨고있는 알비스와 LRL이 눈에 밟힌 탓에 일단은 오늘 밤을 넘길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향하려 발을 뗀 그 순간, 나는 제빨리 고개를 돌렸다. 

눈 앞엔 시간의 풍파를 한가득 맞은 컨테이너 뿐이었지만 내 시선과 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컨테이너의 너머였다.

작지만 반복해 들려오는 소리, 추측컨데 땅을 파는 소리였다.

서둘러 컨테이너 뒷편으로 돌아가 보니 숲과 컨테이너 사이에, 오르카의 함교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이 펼쳐졌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서 삽을 든 채 몸을 기울여 땅을 파는데 열중인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있었다.

진흙 투성이의 멜빵바지 차림을 한 바이오로이드, 더치 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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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내 부름에 삽질을 멈추고 몸을 숙인 채 고개만 틀어 흘깃 모습을 확인한 더치 걸이 대답했다. 


"아, 오랜만이야. 사령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내 말에 더치 걸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삽질을 시작하면서 태평하게 마저 느껴지는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긴, 삽질 하잖아."


"그러니까, 왜 이런데서 홀로 삽질을 하냐니까."


"…주위에 안보여?"


"…"


더치 걸의 주위에는 여분의 삽 외에도 사람 하나가 들어갈만한 구덩이 두 개와, 몇 구의 바이오로이드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 확인해보니 브라우니 셋과 레프리콘 하나. 모두 뒷목에 커다란 관통상이 나있는 상태였다.


"자살한거냐?"


"총구를 입에 물고 쐈어."


더치 걸은 지친 기색도 없이 균일한 속도로 삽질을 하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해보인다. 

말투가 발키리의 그 것과 비슷했지만 더치 걸의 경우에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다는게 차이점이었다.

널부러져 있는 삽을 하나 집어들어 더치 걸 근처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아주 잠깐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내 땅을 파내는 소리만이 공터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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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사령관이라 부르지 말라고?"


"그래. 중요한 거야."


"인간 님이라고 부르긴 싫은데."


마지막 구덩이를 매운 뒤에 약속이라도 한 듯 더치 걸과 나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인간'과 '사령관'은 구분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늘어놓으면서 더치 걸은 피식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뭐, 인간 님.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야. 가기 전에 봐서 좋네."


"가기 전에?"


"뭐…알고 있잖아? 오르카고 뭐고 다 그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진짜 멍청이들이야. 안 그래?"


"이것들을 따라가겠다고?"


당황스러움에 살짝 톤이 높아진 내 목소리를 듣고 더치 걸은 손사래를 쳤다.


"아냐아냐, 자살은 무슨. 말 그대로 여길 떠나려 했다고."


"어디로 가려는데?"


"글쎄…뭐, 발 닿는데까지는 가지 않을까. 가다가 철충들이랑 마주치면 거기서 끝나는거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덧붙이면서 더치 걸은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한 모금 깊게 들이킨 뒤, 담배꽁초를 튕기 듯 치우고는 내 뒤편에 시선을 가져갔다. 


"저 뒤에 있는 친구들이 아까부터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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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이라면 샬럿이랑 같이 어제 떠났어."


칼로리 바를 한 입 베어물으며 더치 걸이 말했다. 이제와 생각하는 거지만 이 더치 걸 개체는 꽤나 붙임성이 있는 편이었다. 아이들이 내미는 물과 식사도 '오, 고마워.' '땡큐.'하면서 자연스레 받아내는 모습이 그런 상황을 겪고 난 뒤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태연함이었다. 나는 그런 더치 걸의 한 편에서 작은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굳이 어떠한 것도 캐물으려 하지는 않았다. 배려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노와 증오로 인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방향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발키리가 모닥 불 근처의 바위에 다소곳이 앉은 채 다시 더치 걸에게 물었다. 


"저기 보이는 숲으로 갔어. 그거 외엔 몰라. 뭐, 숲 너머에 산이 하나 더 있으니까, 일단 산을 오르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고맙습니다."


안좋은 꿈이라도 꾸는건지 알비스가 작게 끙끙거렸다. 모포를 덮은 채 품에 안겨 잠든 아이들을 어르듯 쓰다듬어주니 기분 좋다는 듯 꼬물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지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나무들 사이로 은하수가 한 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더치, 그래서 어떻게 할거냐."


하늘에 시선을 둔 채 더치 걸에게 물었다. 담배 냄새가 풍겨왔기에 쏘아볼 뻔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같이 가지 뭐. 거들게 있으면 말해 줘."


잘 자 라는 말을 끝으로 더치 걸은 앉아있던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 수십여 초 만에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피식 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인간님."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들어가려했다. 


"…그 둘이 향한 방향으로 가실겁니까?"


발키리의 목소리에 왜 걱정이 섞여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아르망과 샬럿에 대한 나의 처분을 걱정해서라면 그건 이 바이오로이드가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텐트 안으로 들이고 뒤돌아 발키리가 앉은 바위에 시선을 가져갔다.


"여기에 따로 나있는 길이 더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숲 외에 어디로 가란거냐."


"숲을 지나고나면, 나오는 산 이외에 다른 길이 있습니다."


발키리의 눈은 더치 걸이 들어간 침낭을 향해 있었다.


"숲 너머의 산으로 간다."


그 말을 남기고 텐트로 들어간 뒤, 간이 램프를 끄고 아이들 곁에 누웠다. 

텐트에 비쳐 일렁이는 앉은 모습의 그림자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한 듯 했지만 금방 몰려오는 잠에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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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숲 근처의 개울가로 가서 아이들을 씻긴 것을 마지막으로 길을 나섰다.

숲을 지나서 마주한 산은 어제 넘었던 산 보다 더 낮고 오르기도 쉬웠다. 그래도 산은 산이었기에 아이들이 힘에 부치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LRL은 어제와 다르게 피곤한 기색이 없었고 알비스야 물론 내가 걱정한 것이 무안해질 수준이었다.

내 바로 옆에서 무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더치 걸은 어제와 같은 태연함을 보이고 있었다. 

산을 거의 다 오르고 내리막길이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먼저 뛰어 올라갔던 알비스가 외쳤다.


"저기 봐! 저기!"


게슴츠레 눈을 뜨고 알비스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 보았다. 멀리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건물들과 그 건물들을 따라 나있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길, 그리고 그 크고 작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다른 건물보다 좀 더 화려해 보이는…일종의 기구와 시설들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멀리보이는 저 커다란 장소가 무엇인지 확인한 더치 걸의 어깨가 일순 떤 것 처럼 보였지만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는 듯 했기에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신이 난 알비스가 산을 오른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방 뛰며 소리높였다.



"저거! 그거야! 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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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유입 소원 마지막날까지 양껏 파밍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타지적 환영 그 외 여러 의견 및 좋은 지적 환영


재밌게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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