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 병신이니까 감안하고 봐줘라

때는 우리 아버지가 20대 무렵, 그러니까 40년 정도 된 이야기임

아버지는 원래 서울에서 혼자 살다가 개인 사정으로 본가에서 3개월 정도 살았다고 하는데 그때 일어난 일이라고 함.

우선 본가가 있는 곳은 여주인데 수도권 치고는 아직도 좀 후미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골임.

본가로 들어가는 길은 차가 겨우 두 대 지나가는 좁은 외길에, 주변은 다 산이고 심지어 가는 길에 공동묘지도 하나있음.

지금도 명절에 내려가서 보면 밤에는 가로등도 몇 개 없어서 혼자 돌아다니는게 개쫄리는 정도임

아무튼 그 정도로 외진 곳에 본가가 있는데, 그 당시 할아버지는 읍내 쪽에서 직장을 다니셨고, 퇴근하시면 그 어두운 길을 항상 혼자 걸어오셨음.

할아버지는 술을 즐기시는 편이 아니셔서 항상 저녁에 퇴근하시자마자 바로 집으로 오시는 편인데다가 어쩌다가 늦게 들어오셔도 밤 9시정도면 들어오셨다고 함. 

그런데 사건이 있던 그날은 밤 12시가 넘어도 돌아오시질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함.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이 늦은 새벽까지 할아버지를 찾다가 결국 못 찾아서 다음날 실종신고를 하기로 함.

다음날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경찰서로 가려고 하는데 누가 집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와서 보니까 할아버지였다고 함. 근데 문제는 할아버지 상태인거지.

할아버지가 입고 있던 옷은 다 찢어지고 난리가 나서 말 그대로 넝마가 따로 없었고, 온 몸에는 상처투성이에 눈도 반쯤 풀려있었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급하게 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완전 탈진상태에 수분부족이었다고 함.

엄청나게 오랫동안 휴식이랑 수분섭취 없이 달리면 될 것 같은 그런 상태 있잖아.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되신 거냐 하고 여쭤보니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상황은 이랬다고 함.

평소처럼 퇴근해서 분명히 집으로 가는 외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나무가 빽빽한 처음 보는 산 한가운데였다고 함. 너무 당황스러워서 주변에 있는 민가를 찾았는데 빛은 한 점도 보이지도 않았고 하필 그날따라 달도 없어서 완전 캄캄한 산을 헤매는데, 갑자기 그 막 전설에 고향에 나올 것 같은 요사스러운 웃음소리가 바로 뒤에서 누가 웃고 있는 것처럼 미친 듯이 크게 들렸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엄청나게 놀란 할아버지가 달려서 도망치시는데, 문제는 그 웃음소리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계속 근처에서 들려가지고,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웃음소리를 피해서 도망치신거임. 근데 이제 해가 뜰 무렵이 되니까 주변이 점점 밝아오면서 할아버지가 원래 알던 동네 길이 나와서, 완전 탈진한 상태로 본가로 돌아오신거지.근데 처음에 말했다시피 본가로 가는 길은 좁긴 해도 외길 인데다가 할아버지는 본가에서 태어나서 계속 본가에서만 사셨기 때문에 수십년동안 다녔던 길을 헷갈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음.

더군다나 술기운에 산에서 해매셨다고 생각하기엔 그날은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셨다고하심.

당시 동네 사람들은 여우한테 홀렸느니 도깨비한테 홀렸느니 했다는데, 진짜로 뭔가에 홀리지 않고서야 일어나기가 힘든 일이었다고 함.

아무튼 이 사건 때문에 할아버지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일주일이 넘게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누워만 계셨다고 함.

그리고 아버지는 이 사건 때문에 그전에는 하나도 안 믿던 귀신같은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함. 나도 귀신 같은거 잘 안 믿는 편인데 이 썰 듣고 나니까 뭔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아버지한테 들을 때는 나름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는데 글로 써놓고 보니까 하나도 안무섭네 ㅅㅂ

어쨌든 재미없고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