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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하게 미호와 동문이 되어버린 3학년 1학기.

 

하지만 미호도 나도 바빠서, 마음처럼 마냥 서로를 찾을 수만은 없었다.

 

학교에서의 미호에게는 나와 함께하는 것 말고도 

 

과 생활이 되었든, 혹은 강의를 챙겨듣는 것이 되었든 간에

 

나 이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미호 생각에 강의에도 집중할 수가 없고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내 멋대로 미호가 기껏 들어온 대학에서의 첫 걸음을 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내가 멋대로 넘겨짚어 버린 것이었던지,

 

강의가 끝나고서 집에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뜬금없이 미호의 전화가 왔다.

 

"어, 아직 학교 아니야?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처음인데"

 

"철남아, 너 요즘 나 피해?"

 

"아니, 그럴 리가... 아직 학기 초고, 지금은 일단 학교에서 자리를 잡아야"

 

"철남아, 나 너 보고 싶어, 많이."

 

"..."

 

"아직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야? 철남아, 그런 거 아무래도 좋잖아"

 

"응, 알았어. 그러면, 우리 주말에 어디 놀러라도 좀 가자"

 

"응, 철남아"

 

 

그래, 나의 생각이 조금 과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미호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미호가 아니다.

 

미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일지는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 멋대로 미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판단한 셈인가.

 

미호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만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에, 미호와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서 점수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은...

 

 

 

 

 

 

 

 

‘야 벚꽃축제 가본 놈 있냐‘

 

‘본인 이런 거 가본 적 없는데 ㄱㅊ? 그리고 갈 거면 어디가 좋음’

 

‘그걸 왜 여기서 물음?‘

 

‘씨발년아 ㅋㅋ’

 

‘유희왕’

 

‘삼도수군통제사’

 

‘김제동’

 

‘연애가 쉬운 세상을 만들던가!’

 

‘가슴이 뻥~’

 

‘울컥 울컥’

 

 

 

 

...여기는 이딴 걸 물어볼 곳이 아니구나.

 

나는 컴퓨터를 끄고, 과 동기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지인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창피를 무릅쓰고 정보 수집을 완료한 나는,

 

이번 주말에 열리는 ㅇㅇ시 벚꽃 축제에 미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을 위해서 새 옷도 사고 머리도 조금 만져 봤다.

 

미호야, 이 오빠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 봐.

 

그렇게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네"

 

"아... 이게 아닌데...."

 

"응? 철남아 뭔 말 했어?"

 

"아니 미호야 어, 미호야 일로 와"

 

"어? 아... 그... 고마워 철남아"

 

머릿속에서는 엄청 로맨틱한 그림을 그렸었는데, 생각대로 되지를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딴 건 꽃을 구경할 분위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작게 푸념하던 날 보던 미호의 뒤로,

 

웬 돼지 새끼가 땀에 잔뜩 쩔어서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을 제치고 다가오기에,

 

나는 미호의 팔을 강하게 잡아서 내 쪽으로 당겼다.

 

"저기, 철남아... 나 팔이 조금 아픈데."

 

"응? 아, 어, 미안하다 미호야, 나도 깜짝 놀래서"

 

...미호의 얼굴이 조금 가깝다.

 

그렇게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다가,

 

""아, 미안해""

 

하고서는, 홱 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왜인지 서로 아무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되었다.

 

마주보면 등을 타고 오르는 간질간질한 느낌에 눈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손끝만 간신히 잡고서는 조용히 걸을 뿐이었다.

 

이 미묘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하고 싶은 내 마음도 몰라주는 벚꽃 잎만,

 

팔랑 팔랑 하고 쓸데없이 예쁜 색을 빛내면서 천천히 공중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저기, 미호야... 그 오늘은 내가... 미안했다."

 

"응, 왜 그래, 철남아"

 

"조사를 나름대로 해 본다고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어"

 

"그, 요새는 내 딴에는 너 배려하고 싶어서 이래저래 생각한 건데, 너 기분만 상하게 하고..."

 

"저번에도, 난 너 학기 초니까 좀 애들이랑 친해지라고 일부러 약간 멀리 한건데"

 

"그래서 오늘 좀 만회하고 싶어서 옷도 차려입고, 잘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아... 나 왜 너한테 이딴 소리까지 다 하고 있지... 찌질하게"

 

"그러니까, 그... 뭐냐, 미호야. 담에 볼 때는 내가 미리 조사를 더 잘 해서"

 

"...철남아"


미호가 들어올린 손가락이, 내 입술에 닿아서, 나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철남아, 너 나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철남아, 너 내가 첫사랑이지, 그렇지?"

 

"처음부터 죄다 멋있게 잘 해내는 사람이 어딨어, 실수도 하고 사는 거지"

 

"그리고 나 그거 그렇게 화 안 났어, 너 그렇게 신경 너무 많이 쓰는 거 하루이틀이니?"

 

"오늘도 말야, 넌 실패라고 생각할지도 몰라도... 나는 좋았어, 너랑 둘이서 나가는 게"

 

"하루 종일 설렜어, 니 얼굴 봐서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 우리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을 거잖아"

 

"그래도, 니가 너무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

 

"그럼 내가 한개만 선물을 줄게"

 

그러고는 미호는 내 품에 들어와서 안기었다.

 

"....."

 

거리 한복판에서,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서로 안고 있었다.

 

 

 

 

 

 

 

 

 

"그러면 철남아, 나 들어가 볼게"

 

"오늘은 즐거웠어"

 

"다음 데이트는 조금 더 즐겁게 해 줘"

 

그렇게 말하며 들어가는 미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앞으로의 학교생활에서 미호와 좀 더 함께할 것을 결의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