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여정 1화

뜻밖의 여정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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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로 사령관이 되어버린 남자는 오르카호의 사령실 의자에서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착용하고 있던 강화외골격은 정비실을 담당하고 있는 포츈에게 맡겨 수리와 강화를 부탁했다. 남자는 입고 있었던 너덜너덜한 셔츠와 바지를 벗고 깔끔한 사령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밝은 색감의 제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말에 마지못해 입게 되었다. 몸에 꽉 끼는 제복은 그 감각이 옷보다는 구속복 같았다. 남자는 불편함에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제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남자의 생각과는 별개로 제복차림의 그는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 매우 어울렸다. 군살 없이 탄탄하고 훤칠한 그의 신체는 제복의 맵시를 살려주었고 강건하고 대담한 분위기의 외모는 제복과의 조화가 훌륭했다. 깍지를 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남자의 자태는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위엄 넘치는 사령관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신세한탄을 하는 것이다. 남자는 이제는 습관처럼 한숨을 푹 쉬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왜 그렇게 죽상인가?”

 

 사령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자신을 사령관으로 만들어버린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갈색 머리카락을 묵어 정리한 바이오로이드. 남자는 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강 건너 불구경보다 더 기분 나쁜 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라고 못 들어봤나?”

 

 “나는 그저 받아야할 빚을 받았을 뿐이다. 설마 스스로 한 말을 지키지 않겠다는 건 아니겠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남자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버린 남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고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칸의 앞으로 걸어갔다. 칸과 키가 엇비슷한 남자는 서로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칸에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린 결정을 말했다.

 

 “나를 데리려 왔을 때 함께 왔었던 녀석들에게 사령실로 모이라고 전해라.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칸은 남자의 말에 알겠다고 답하며 사령실을 나갔다. 남자는 두통으로 시큰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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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집합 명령이 떨어지고 5분도 체 지나지 않아 마리, 레오나, 메이, 리리스, 콘스탄챠가 사령실에 모였다. 갑자기 떨어진 집합 명령에 긴장한 지휘관들과 달리 콘스탄챠는 사령관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보며 밝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리리스도 오르카호에 오른 이후로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 

 

 “칸으로부터 저희들에게 하실 말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각하.”

 

 지휘관들 중 특히 긴장한 마리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집합명령을 내린 이유를 물었다. 마리의 질문에 남자는 손가락으로 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옛날에 저 녀석에게 빚을 진 적이 있다.”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때 나는 나중에 저 녀석을 다시 만난다면 그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는 것으로 빚을 갚겠다고 했지. 그런데 오늘 정말 우연히도 내가 숨어 지내던 은신처에서 저 녀석과 재회했다.”

 

 남자의 말에 칸을 제외한 나머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남자가 오르카호에 합류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칸은 남자를 설득한 것이 아닌 강제로 끌고 온 것이다. 말하면서 기분이 더러워진 남자는 혀를 차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나에게 사령관이 되라고 했다. 내 입으로 약속했으니 맹세를 이행하겠다. 하지만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군. 난 너희들이 다른 인간을 찾는 그 순간 이 잠수함에서 내릴 거다. 너희들이 원하는 건 저항군을 이끌 사령관이란 존재이지 인간이 아니지 않나. 나를 대신할 인간을 찾는다면 굳이 내가 없어도 되는 문제이니 그때까지만 내가 저항군의 사령관이 되어주마. 사령관으로서 책무의 의무는 성실하게 이행하겠다. 좋든 싫든 사령관이 되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겠지.”

 

 남자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그녀들은 당황했다. 남자는 매우 단호했고 방금 한 말이 진심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들을 뒤로하고 남자는 사령관이 된 이후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지휘관들은 함께 논의할 것이 있으니 남아라. 콘스탄챠, 너는 가서 커피 5잔만 타 와라. 블랙 리리스 너는 돌아가도 좋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만 명령을 내려주지 않자 리리스는 서운한 기색을 보였지만 남자의 말에 따라 얌전히 사령실을 나갔다. 콘스탄챠는 남자가 요구한 커피를 타기 위해 사령실을 나갔고 사령실에는 남자와 지휘관들만 남았다. 

 

 남자는 앉아 있던 사령관석에서 일어나 사령실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원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사령관석 바로 앞, 사령실문을 기준으로 바로 정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남자가 앉은 자리가 원탁의 중심이 되었고 그의 옆으로 지휘관들은 차례로 앉았다.

 

 “어떻게 불러주기를 원하나? 이명과 함께 불러주기를 원하나? 아니면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은가?”

 

 자리에 앉은 남자는 지휘관들에게 어떻게 호명해주었으면 하는지 물었다.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각하.”

 

 “나도 상관없다 사령관.”

 

 “뭐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이름으로 부르는 걸 허락해줄게.”

 

 “평소라면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겠지만. 뭐, 좋아 호명을 허락해줄게.”

 

 지휘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남자에게 호명을 허락해주었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블랙리버가 만든 지휘관 개체는 총 여섯 종류였는데. 로열 아스널과 무적의 용은 아직 합류하지 않았나?”

 

 남자가 기억하기로 블랙리버가 제작한 지휘관 개체들은 총 여섯 종류다. 불굴의 마리, 철혈의 레오나, 신속의 칸, 멸망의 메이, 로열 아스널과 무적의 용. 사령실에 있는 지휘관 개체는 총 넷으로 로열 아스널과 무적은 용은 없었다. 마리가 남자의 질문에 답했다.

 

 “무적의 용은 저와 라비아타 통령이 오랫동안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져 있는 듯 합니다. 로열 아스널은 멸망 전쟁 중 모든 개체들이 사망해 유전자 씨앗을 찾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임시로 저항군을 이끌던 라비아타 통령도 전투의 부상 때문에 잠시 이탈한 상태입니다.”

 

남자는 마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으로 물자와 식량에 관한 질문을 했다.

 

 “물자와 식량은 풍부하고?”

 

 이번에 대답한 이는 레오나였다.

 

 “풍부하다고는 못한 상태야. 우리 자매 중 안드바리란 아이가 어떻게든 아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물자와 식량 자체의 수량이 적어.”

 

 물자와 식량마저 부족하다는 말에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슬슬 두통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지금 당장 전투가 가능한 병사들의 수는?”

 

 “스틸라인과, 컴패니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둠 브링어, 베틀메이드, 내가 이끄는 앵거 오브 호드 비롯해 전투 가능한 병사들의 수는 충분하다. 부대를 이끌던 대장이 없을 뿐이지 군단을 구성하던 전투 인원들이 합류한 경우들도 있다.”

 

 칸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며 고민에 잠겼다. 현재 남자의 주관으로 오르카호의 상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개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지휘관 개체의 부재,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의 이탈, 부족한 물자와 식량.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물자와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허탈한 조소를 할 뻔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타이밍 좋게 콘스탄챠가 쟁반을 들고 사령실에 들어왔다. 깨끗한 은색 쟁반에 커피를 탄 컵 여섯 잔이 올려져 있었다. 콘스탄챠는 남자와 지휘관들의 앞에 커피 잔을 놓았다. 남자는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남자는 잔을 내려놓으며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유전자 씨앗 확보, 물자와 식량 확충, 인간 탐색, 이 세 가지를 앞으로의 행동 방침으로 하겠다. 내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탐색을 나가도록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으면 일단 나에게 보고부터 해라. 철충들과의 전투는 어지간해서는 피해라 싸워다가 전사자가 발생하면 우리만 손해다.”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오르카호의 방침 외에 여러 가지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지휘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실을 나갔다. 남자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사령관으로서 해야 할 수많은 업무들을 생각하니 두통이 다시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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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령관 말이야. 생각보다 굉장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령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중 레오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다른 지휘관들은 놀랐다. 그 철혈의 레오나가 저런 말을 할 줄이야.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언제나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만을 말해. 방금 사령실에서 보였던 모습을 보면 사령관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여.”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 나는 그것보다 사령관이 어떻게 우리에 대해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지가 의문이야.”

 

 메이는 레오나의 말에 동의하면서 본인의 질문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의 이름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무적의 용을 알고 있어. 혹시 사령관은 멸망 전에 최고위층에 속해 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블랙리버는 삼안 산업과 달리 대중들에게 바이오로이드를 광고하는데 열을 쏟지 않았다. 그렇기에 삼안 산업 정점의 바이오로이드가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블랙리버 정점의 바이오로이드가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블랙리버의 최고위 바이오로이드가 무적의 용임을 알고 있는 자는 멸망 전 최고위층에 속해 있던 인간들뿐이다. 

 

 “사령관이 최고위층 사람일 거란 추측은 틀렸다고 본다. 나는 사령관과 70년 전 고비사막에서 만나 한 번 싸워본 적이 있다.”

 

 메이의 추측을 칸은 부정했다. 남자를 오로카호로 데려온 장본인이 입을 열자 다른 지휘관들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우렸다. 칸은 남자와 싸웠던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사령관과 싸웠을 때 그는 이미 전투에 굉장히 노련한 상태였다. 마치 한 평생을 싸워온 전사처럼 사령관은 나와 대등하게 싸웠고 나를 이기기까지 했다. 그는 권력자보다는 군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 사령관이 무적의 용을 알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대? 그리고 과거 인간들 중에는 신체개조를 받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았어.”

 

 “고작 신체개조를 받는 것만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령관이 착용하고 있던 강화외골격이 너만큼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가장 강한 무기를 들고 있어도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심지어 사령관은 그 강화외골격에 장착되어 있는 무기들 중 칼만을 사용해 나와 싸웠다. 사령관이 전투에 익숙한 군인이란 증거라고 생각한다만.”

 

 메이와 칸은 서로가 어떤 주장이나 추측을 할 때마다 그에 대한 논리를 들며 반박했다. 

정작 대화의 주제를 던진 이는 레오나였지만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칸과 메이는 서서히 언성을 높여갔다. 대화는 서서히 말다툼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곧 칸과 메이는 의미 없는 말다툼을 그만두었다. 

 

 “말다툼은 끝났어? 얼마나 유치한지 듣다가 하품이 나올 뻔 했어. 사령관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뭐 그렇게 중요해? 물론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상관없잖아. 나는 그런 사소한 것 보다 사령관이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기뻐. 겨우 찾은 인간이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면 곤란해.”

 

 레오나는 칸과 메이와 달리 남자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어떤 과거를 가진 인간이든 지금은 자신들이 모셔야 할 인간이자 저항군의 총사령관이 된 자이다. 설령 그의 과거가 추악하고 끔찍하다 할지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레오나는 생각했다. 

레오나가 남자에게 바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유능함. 

 

 “그 인간이 멸망 전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면 어떻게 할 건대? 설상가상으로 더 악독한 인간이라면?”

 

 “설마 라비아타가 말한 바이오로이드를 생명체 취급해주는 착한 인간이기를 바란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만함으로 가득한 너도 이상이란 걸 꿈꿀 수 있나봐?”

 

 레오나는 메이의 질문에 조소하며 냉정하게 답했다. 레오나의 눈빛은 한 마리의 암사자처럼 싸늘했고 말을 암사자의 이빨처럼 날카로웠다.

 

 “어차피 우리를 생명체 취급해주는 인간은 없었어. 우리는 사령관이 유능한 사람이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다행히 우리가 사령관으로 추대한 인간은 유능한 인간으로 판단되고.”

 

 레오나의 말은 극지방의 눈보라처럼 차가웠다. 북방의 암사자이자 철혈이란 이명으로 불리는 레오나는 따스한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사령관이 유능한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상당한데? 너야말로 이상적인 생각에 잠긴 녀석 같은데?”

 

 “사령관으로서 책무의 의무는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직접 말했잖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네가 더 이상한 녀석이지. 겉모습만 괜찮고 정작 실속 없는 인간은 과거에 차고 넘쳤어.”

 

 레오나와 메이는 서로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비록 같은 인간을 따르게 되었지만 그 인간에 대한 생각은 같을 수 없었다. 칸과 메이, 레오나는 그 후로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복도를 걸었다. 지휘관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오로지 마리만이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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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남자는 사령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사령관용 의자에 앉아 오르카호에 대한 정보들이 적혀 있는 문서들을 살펴보았다. 콘스탄챠는 남자가 서류를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문서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오르카호의 현재 상황과 물자의 정확한 수량, 운용할 수 있는 병력, 보강 및 수리가 필요한 구간, 손 봐야 할 곳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아주 개판이군.”

 

 지휘관들과 회의를 하면서 물자와 식량이 적다는 점에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남자는 더 심각한 문제를 확인하고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남자가 놀란 점은 제대로 된 취사병이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지급되는 식사를 정리한 식사표를 본 남자는 어이가 없어 문서를 구겨져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빵, 비스킷, 커피, 미트파이, 참치캔 식단의 구성은 단순했고 돌려막기식 식단에 기가 찼다. 다른 것들보다 식재료 확보와 그 식재료를 요리할 수 있는 취사병을 육성하는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군사가 많고 우수한 무수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도 먹을 게 없으면 전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배고프면 총알로 휘어서 나간다. 남자의 오랜 신조였다.

 

 “콘스탄챠, 설마 이 잠수함에는 요리가 가능한 바이오로이드가 없나?”

 

 “네, 주인님...수십 년 동안 인간님을 수색하느라 대부분 외부에서 활동해서요...하지만 다들 인간을 찾았다는 소식에 복귀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콘스탄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복귀하자마자 바로 병사들 식단부터 다시 짜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태로 저항군을 유지한 라비아타도 대단하군.”

 

 남자는 문서를 책상 한 곳에 치우고 마저 서류를 확인했다. 성실하게 서류를 처리하는 사령관을 콘스탄챠는 열심히 보좌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인류 재건에 뜻이 손톱 밑 때만큼도 없다던 남자가 여차저차해서 사령관이 되더니 이렇게 열정적으로 오르카호의 문제를 확인하고 보안점을 찾는 모습에 콘스탄챠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나?”

 

 “그냥 기뻐서요. 인류 재건에 뜻이 없으시더니 막상 사령관이 되시니 이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요.”

 

 “난 맡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한다. 그저 사령관직을 맡겠다고 했으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잊지 마라. 너희들이 새로운 인간을 찾는 순간 난 이 옷을 벗고 내릴 거다.” 

 

 남자는 콘스탄챠의 해맑은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말의 가식도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미소, 저 미소는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호의를 품고 있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다. 어차피 자신은 오르카호에 계속 남을 마음이 없고 콘스탄챠도 그걸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임시 주인일 뿐일 자신에게 저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콘스탄챠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남자는 이번에는 오르카호에 승선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정리한 문서를 들었다. 남자는 그가 운용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종류를 세심하게 살폈다. 문서를 읽던 중 남자는 흥미로운 글귀를 발견했다. 

 

 ‘오르카호 스틸라인 군단 지휘관; 불굴의 마리 4호

 

 키: 181cm

 

 몸무게: 67kg

 

 신체연령: 27세

 

 특이사항: 멸망 전에 생산된 개체로서 1차 연합전쟁, 2차 연합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음.

 

 “호오. 칸 말고도 멸망 전에 생산된 개체가 있을 줄이야. 심지어 짬은 더 길게 먹었군.”

 

 1차 연합전쟁 때 참전한 개체라면 불굴의 마리 개체들 중에서도 고참격이다. 수많은 불굴의 마리 개체들이 죽을 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에 남자는 경의로움을 느꼈다. 

 

 “마리 대장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시죠. 라비아타 언니가 동맹을 제시했을 때 블랙리버 바이오로이드들을 대표해서 동맹을 수락하고 저항군을 결성했으니 저항군의 원년 멤버 중 한 분이기고 하고요.”

 

 “호오.”

 

 남자는 계속해서 문서를 읽었다. 업무를 처리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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