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중학생 때 있었던 일.


1학년 때였나 그 때 중학생 학생회장 선거가 치러졌음. 그 때만 해도 학교에 실내체육관 시설이 없어서 선거 전 최종 후보 연설 시간은 운동장에서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때만하더라도 운동장 스탠드에 차양막도 뭣도 없었고 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운동장에 학생들 세워놓고 학생회장 후보들은 조회대에 마련된 단상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일장 연설하고 그랬음.



상대 후보가 이런저런 공약을 내세우며 마무리 연설을 한 뒤에 운동장에 기립해 있던 1 ~ 3학년 학생들의 영혼없는 호응을 받으며 퇴장하고, 다른 후보 차례가 되었음. 그 후보는 두발자율화(두발자유화가 아니었음)를 필두로 한 이런저런 공약들과 마무리 연설을 하는데, 포인트는, 이 때는 5월이었음에도 동절기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던지라 한층 혈기넘치는 학생들은 한층 더웠단 말이지.


그 때 갑자기, 연설하던 후보가 마무리로 이펙트 좀 강하게 하려고 손을 주먹으로 움켜쥐고 하늘로 치켜들며 연설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마치 무슨 마술 주문 외는 것처럼 외치는 순간, 거짓말같이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한동안 불어왔고, 동복으로 인해 따가운 햇볕과 봄 날씨도 충분히 괴로운 더위로 느껴지던 학생들의 더위를 남김없이 식혀주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오오오-!!!!!!'하는 감탄과 경외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더 신기한 것은, 그 후보가 연설을 마치고 최종 연설회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춘 듯이 바람이 사그라들었고, 영혼없는 호응과 리액션이 전부였던 이전 후보와는 다르게 그 후보에게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호응하고 열광했고, 이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당연히, 막판 유세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오듯 바람이 불어왔던 그 후보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