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오르카의 비밀작전>의 외전격 팬픽



닥터의 '세인트 오르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모두가 오르카로 복귀한 이후에도 파티는 계속되었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모여 떠들며 세인트 오르카에서 받은 선물들을 열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워울프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책상 위로 올라가서는 큰 소리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 놓고 있었다. 


10시 쯤이 되어 콘스탄챠가 LRL, 알비스 같은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재우러 데려다준 이후로는 좀 더 은은한 분위기의 파티가 계속되었다. 본래 오르카 내부에서는 금주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오늘만큼은 서로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을 허락해주기로 했다.


물론, 나에게는 한 모금도 권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레오나와 칸 사이에 말이 오갔는지, 발할라와 호드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연회장 한 자리에 함께 모여 담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외에도 서로 작은 무리를 이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이대로 둬도 괜찮겠지. 


나는 아무도 모르게 연회장을 빠져나와, 조용한 오르카의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적막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아까까지 시끌벅적했던 분위기와는 반대인 조용함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음?'


복도의 한 구석, 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방이 있었다. 


'저긴...기록 보관실인데......'


조심히 다가가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보관실 한 구석에서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아 한 기록집을 읽고 있는 매지컬 모모였다. 


"모모?"


"어맛? 사령관님?"


모모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좀 돌아다니다가 불이 켜져 있길래 와봤어."


"헤헤, 매지컬 문 라이트의 기운을 느끼고 온 거군요?"


정확하게는 문 라이트가 아니라 형광등 불빛이지만, 마법소녀에게 그런 사소한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에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모모야 말로 여기서 뭐해? 연회장에 안 있고." 


"헤헤......" 모모가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법소녀가 술을 마실 수는 없잖아요? 어린이들이 보고 배운다구요. 그리고 지금은 파티보다는......"


모모는 말끝을 흐리며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은 기록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기록에 첨부된 사진들에는 모모, 백토, 그리고 아직 실제로 보지 못한 다른 마법소녀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무슨 기록이야, 그건?"


"오늘 깜짝파티를 위한 준비를 하러 나갔던 발할라 분들이 가져온 기록 중 하나에요. 이맘때는 늘 겨울특집 마법소녀 매지컬 공연을 했었거든요." 


모모가 사진 하나를 들여보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색이 바래졌지만, 해맑게 웃으며 매지컬 티타늄 카타나로 악의 부하 하나를 세로로 양단해버리는 모모와, 그것을 보며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뚜렷이 보였다. 


"음......" 나는 미묘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모모와 아이들의 표정만 보면 순수함 그 자체인데, 무대 위에 낭자한 선혈은 순수함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바라보는 모모의 눈빛은 추억에 잠긴 듯 했기 때문이다. 


"즐거워보이네요. 멸망 전의 모모는. 모모도 어린이 친구들의 웃음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상식 자체가 어긋난 세계였지만, 어쨌든 모모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였다. 어린이들의 미소를 보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느끼지 않을까?


"그래도 LRL이나 알비스 같은 아이들은 모모 덕분에 늘 즐거운 걸?" 모모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요~!" 모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모모는 모든 어린이들을 아끼는 걸요? 이번에 오르카 어린이들에게는 모모가 따로 선물도 줬다구요."


"그랬어?" 


다시 기운을 차린 듯한 모모를 보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아." 모모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사령관님, 지금 시간 되시나요?" 


"딱히 계획은 없는데, 왜?" 


"사실은, 어린이 친구들의 선물을 고르다가 백토와 이야기를 나눴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백토가 오늘 같은 날에는 반드시 매지컬 치킨을 먹어야 한다지 뭐에요?" 


치킨이 뭔지는 알지만, 매지컬 치킨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뽀끄루와 백토를 처음 데려올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8월의 야상곡 때 먹던 매지컬 송편의 겨울 버전인 걸까.


혼란한 나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모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늘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자꾸 찾아나서겠다는 걸 겨우겨우 말린 참이거든요. 아직도 할로윈 때 그 매지컬의상을 벗지 않은 상태라서......" 


할로윈의 백토 의상. 이번에는 망토 하나만 달랑 거친 백토의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몰려왔다.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지만, 이 추위에 그런 옷차림으로 다녔다간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잘했어. 모모. 그런데 오늘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은 거야?"


"오르카 근처 도시에만 가면 바로 찾을 수 있을거에요. 냉동보관되는 거라 매지컬 디텍트를 쓰면 금방 찾을 수 있다구요?" 


설마했는데 매지컬 치킨도 냉동보관되는 음식이었다니. 멸망 전의 인간들은 생각보다 여러 방면으로 이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잠깐 갔다 올까? 깜짝파티를 준비하면서 주변은 이미 정리했겠지만, 만일의 상황에는 호위를 맡겨도 될까?"


모모는 의자에서 폴짝 뛰며 좋아했다. 


"물론이죠! 사령관님을 위협하는 나쁜 악당은 모모의 요술봉으로 해치울게요! 헤헤헤....그럼 지금 갈까요? 매지컬 레디~!"


☆★☆


오늘은 마침 달이 밝은 날이었다.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은 땅에 소복히 쌓인 눈에 반사되어, 한밤중이었지만 주변이 꽤나 환했다.


"오늘은 매지컬 문 라이트 파워가 강력한 날이네요!" 모모는 신난다는 듯이 내 주변을 돌며 주제가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143의 작은 체구였지만, 허리춤에는 매지컬 티타늄 합금 카타나를 차고 RPG 탄두가 장전된 요술봉을 꼭 끌어안은 채 매지컬 뾰로롱 날개로 날아다니는 모모는 충분히 든든해 보였다. 


"그나저나, 아이들에게는 무슨 선물을 줬어?"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것저것 넣어줬지만, 역시 메인 선물은 매지컬 마법소녀 굿즈 시리즈겠죠? 모모, 백토 피규어랑, 모모 스티커가 무려 20종이나 들어있는 알찬 구성이랍니다?"


그건 좀 부러운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참에, 모모가 갑자기 내 앞에 섰다. 


"사령관님도 하나 드릴까요?"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은 걸까. 멍하니 모모를 바라보자, 모모는 이 생각조차 읽은 듯 해맑게 웃었다. 


"헤헤, 오늘 같은 날은 마법이 함께 한다구요? 오늘은 모모를 도와드렸으니, 돌아가면 칭찬 모모 스티커를 드릴게요."


"기대되는걸?" 


모모는 다시 정체불명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앞장섰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기록 보관실에서 사진을 바라보던 모모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법소녀라지만, 모모도 다른 모두와 같은 바이오로이드였다. 주인을 섬기지 못하던 메이드나 컴패니언 시리즈들이 느끼던 슬픔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모모도 어느정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문득 백토를 수색하던 때가 떠올랐다. 레아는 당시 모모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주는 게 존재 이유인 마법소녀가 슬픈 이야기를 해선 안된다고 하면서도 백토를 찾지 못한 우울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었다. 


그리고 처음 백토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복귀 시간을 어겨가면서까지 수색을 하려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꿈과 희망을 나눠주는 마법소녀. 그리고 동시에 친구를 찾지 못해 슬퍼하는 바이오로이드. 동심과 성숙함이 함께 가진 듯한 모모는 그런면에서 짊어진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알 수 없는 반짝거림을 내는 매지컬 뾰로롱 날개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오르카에서 멀지 않은 도시의 한 백화점에서 모모는 금방 매지컬 치킨을 가지고 돌아왔다. 매지컬 치킨은 결국, 모모와 백토의 얼굴이 포장지에 새겨진 냉동치킨으로 밝혀졌다. 


"헤헤, 그럼 돌아갈까요? 백토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매지컬 치킨을 한 아름 품에 안은 채 모모가 말했다. 매지컬 치킨을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지만, 시간은 어느 새 11시였다. 


돌아가는 길에도 주변은 완전히 조용했다. 원활한 호위를 위해 매지컬 치킨을 건내받은 내가 눈을 밟으며 내는 소리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모모의 흥얼거림만이 조용한 세계에 나직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앞장선 모모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설마 지금도 주변에 탈론페더가 있지는 않겠지. 


"저기...모모?"


"네?" 모모가 나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는 아까 백화점에서 모모 몰래 주머니에 챙겨둔 작은 꾸러미를 꺼내 내밀었다. 


"자." 


모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가 내미는 꾸러미를 받아 풀어보았다. 주머니 속에는 커다란 빨간색 목도리가 들어있었다. 


"사령관님? 이건......"


선물을 건내주며 해줄 이야기는 대충 생각해두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조금 쑥쓰러웠다. 


하지만 쑥스러움은 얼마가지 않았다. 달빛을 받는 눈과 더불어 발걸음과 흥얼거림이 멈춘 세계는 너무나 조용해서, 정말로 세계가 마법에 걸린 듯 했다. 


이렇게 매지컬 문 라이트가 가득한 날엔, 마법의 힘을 조금 빌리도록 하자.


"저기...지금은 아직 전시라서 조금 무리지만, 나중에 상황이 조금 안정되면...그...어, 어린이들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마법의 힘을 빌린다지만, 역시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부끄럽다. 그것도 마법소녀 앞에서.


"그리고...그런 날이 오면, 매지컬 모모 시리즈를 다시 만드는 거야. 모모랑, 백토랑, 이번엔 뽀끄루까지. 그러니까, 그 때까지는 힘을 내줄래?"


모모는 가만히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모모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에...에헤헤, 괜히 신경쓰이게 해드렸네요, 사령관님. 모모는 정말 괜찮아요! 마법소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구요? 그러니까...저기..."


이렇게 당황하는 모모는 또 처음이다. 우물쭈물 하던 모모는 도중에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았다. 


아담한 품에 갑자기 꼬옥 안긴 나는 나대로 당황해하는 도중에, 모모가 귀에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사령관님." 


이 말을 하곤 모모는 조용히 나를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어..." 나도 모모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놈의 매지컬 치킨을 안고 있는 터라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모가 겨우 물러났을 때, 나는 목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걸 느꼈다. 


"이건?"


고개를 숙여 보니 목에서는 하얀 토끼 모양의 목걸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헤헤, 사실은 저도 오늘 사령관님께 선물을 드리려고 했거든요." 모모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정식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백토와 뽀끄루를 데려와 주신 것에 대해. 제 친구들을 되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꾸벅 인사를 하며 인사를 하는 모모에게, 나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고마워. 모모."


"헤헤헤." 다시 평소의 마법소녀로 돌아온 듯한 모모가 나에게서 받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는 말했다. 


"그러고보니 사령관님 그거 아세요? 아까 기록을 보다 발견한 건데, 오늘은 원래 인류 멸망 훠얼씬 전부터 소중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대요." 


"그래?" 


우연의 일치인가. 


"그리고," 모모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빨간 옷을 입은 산타라는 신비로운 사람이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는 날이기도 하대요."


그 말을 하며 모모가 점점 내게 다시 다가왔다. "빨간 목도리를 쓴 오늘의 모모는 매지컬 산타 모모랍니다? 오늘 착한 일을 정말 많이 한 사령관님께 특별한 선물과 오늘만의 매지컬 주문을 걸어드릴게요." 


매지컬 모모 스티커인가. 내심 기대하고 있던 내게 모모가 갑자기 다가왔다. 


쪽. 


하마터면 매지컬 치킨을 모두 떨어뜨릴뻔 했다. 


아직 어안이 벙벙한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매지컬 산타, 마법소녀, 바이오로이드인 모모가 나직이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사령관님." 


하늘 위의 밝은 달은, 여전히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날 솔로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썼던 첫 번째 라오 팬픽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모가 최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