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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리제에 대한 원작 리제의 평가가 그냥 해충에서 변태 해충으로 내려가고 있을 즈음.

사령관은 라비아타가 준비해온 기내식(?)에 감탄하고 있었음.


- 소완에게도 밀리지 않겠는데?

- 과찬이세요.


라비아타는 그렇게 말했지만 콘스탄챠나 바닐라가 뿌듯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만 봐도 헛말이 아니라는 건 명백했어.

재능이야 원래부터 있었다 한들, 그 이상의 노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이를 수 없었을 솜씨였지.


- 정말이야. 나중에 레스토랑을 열어도 손색이 없을 걸.

- 그렇게 말씀하셔도 더 드릴 건 없어요?


그렇게 서로 가볍게 웃고 넘어가긴 했지만 라비아타는 내심 뿌듯했어.

단순한 농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령관의 시야에는 전쟁이 끝난 후에 대한 희망 또한 들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   *   *


- 어서 와, 사령관. 환영할게.


도착한 사령관을 맞이한 건 레오나를 필두로 현재까지 복원된 기종이 각각 한 명씩 - 사령관은 전훈을 기준으로 골라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음 - 정연하게 선 광경이었지.

워울프의 야유로 시작했던 호드와는 정말 정반대구나.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 사령관은 레오나와 나란히 발할라가 거점으로 삼은 쇼핑몰(이었던 것)로 들어갔음.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고야 말았지.


- 즐겁게 보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 내가 휴가에서까지 자매들을 들볶을 사람으로 보여?


상업 지구 - 쇼핑몰의 장점이 무엇일까.

이런저런 것이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는 건 다양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발할라의 대원들은 그 목적에 걸맞게 각자 흥미 있는 분야를 찾아서 마음껏 나뉘어 있었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집에서 볼이 미어 터져라 과자를 밀어넣으면서 주변에 권하는 알비스와, 표정은 곤란한데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는 님프.

다른 부대의 누구에게 선물을 줄 생각인지, 주류 매장 앞에서 곰곰히 생각에 잠긴 발키리와 혼자 잔을 기울이고 있는 샌드걸.

의류점에서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이나 장신구 등을 늘어놓으며 웃고 떠드는 님프와 베라.

전자 구획에서 삼삼오오 머리를 맞댄 채 쑥덕이며 침을 흘리는 그렘린.

중앙의 메마른 분수대에 둥그렇게 앉아서 책 - 로맨스 소설 ? - 을 돌려보는 베라와 발키리.


알비스는 대체로 먹을 것들에 심취해 있고, 그렘린은 곧 죽어도 전자제품에서 떨어지질 않는다는 일관성 정도는 있었지만.

그 정도를 뺀다면 기종과는 관계없이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느긋하게 지내는 광경은 그 자체로 보기에 좋았지.

다만-


- 내가 괜히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 알아.


호드는 똘똘 뭉쳐서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으니 그 덩어리에 끼어들면 그만이었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오손도손 지내는 발할라에 남자 혼자 끼어들어서 좋은 그림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

그리고 레오나는 사령관이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말을 받았고.


- 그러니까 잠깐만 이쪽에 어울려 줘.


*   *   *


- 이건…….

- 선물이야. 그 사이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레오나와 부관 발키리가 사령관을 데려간 곳은 기성복 매장이었음.

적당히 추려봤으니 알아서 골라. 라는 말에 사령관은 난감해하면서 늘어선 옷들을 바라봤지.


- 이런 쪽의 센스에는 자신이 없는데.

- ……그래?

- 응.


아무튼, 전투 지휘 외의 상식은 아직도 배울 것이 한참 남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어.

대신 상대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살짝 빗겨서 들어오는 시선을 확인하고, 사령관은 짐짓 가볍게 물어봤음.


- 그러니까 레오나가 골라주겠어?

- …어쩔 수 없네.


말로는 그러면서도 정장과 구두, 손목시계까지 늘어놓는 손길엔 거침이 없었지.

그 뒤에 놓인 봉투를 하나 더 확인하긴 했지만- 사령관은 굳이 지금 묻는 대신 일단 옷을 갈아입었음.


- 어때?

- 제법 괜찮지 않아?.

- 예. 잘 어울리십니다, 각하.


이런 정복을 입은 건 서약식 이후 처음이던가.

조금 어색한 기분에 넥타이를 고쳐 매는 사령관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레오나는 흘리듯 말했어.


- 우리는 싸워서 승리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벗어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전쟁 이외의 삶도 조금씩이나마 자매들에게 돌아오기 시작했지.

- 응.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 ――사령관이 우리에게 준 거야.


그러니까, 지휘 이외의 행사에 나설 때 입을 옷 정도는 챙겨주고 싶었다고.

시선을 내리깐 채 중얼거리는 레오나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끄덕이는 발키리에게-

사령관은 깊은 미소로 대답했음.


- 그렇네. 전투 외의 자리에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 ……그래.


사실은 이미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흘러나오려는 마음을 모듈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어하고, 레오나는 뒤에 두었던 봉투를 내밀었음.


- 사령관의 옷이랑 세트로 맞춘 거야. 부관에게 전해줘.

- 응, 고마워. 나도 조금 골라봐도 될까?

- 마음대로 해. 애초에 우리 것도 아닌 걸.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를 붙여,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몫까지 더함으로서 성립한 상황.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선물을 고르는 사령관을 바라보다가-

레오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음.


'지금은' 이라는 제한을 두는 시점에서 - 역시 자신은 저 남자를 마음에 둔 게 맞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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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할라 편이빈다

어째 사령관이 나쁜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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