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08:19:45


"하하..새삼스렇게 말하자니 좀 부끄럽네요"


"농작물의 상태를 기록하려고 가져온 캠코더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제대로 녹화되고 있는 거 맞나? 요새 애들이 쓰는 기계는 영 어렵네.."


"..."


"이거 참 또 주인님이 아줌마라고 놀리려나? 쿡쿡"


"말 나온 김에, 제게 왜 자꾸 나이 문제로 민감해하냐고 물으셨죠?"


"겉보기로는 젊고 아름다운데, 괜히 제가 반응을 해주니 재밌어서 놀림을 당하는 거라며.."


"후후 말은 안 했지만 주인님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무척 기뻤어요"


"그때는 은근슬쩍 얼버무렸지만..솔직히 말하자면 저 다른 자매들보다 노화가 훨씬 빨라요."


"바이오로이드는 보통 1000년을 살 수 있다고들 말하죠. 실제로 시험을 해본 사람은 없지만요"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의 능력조차 초월한 힘을 얻게 된 대가로 레아 모델은 수명이 짧다고 해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죠. 육체의 능력은 다른 지휘관급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출력은 몇 백배나 낼 수 있으니.."


"선대 레아에게 물려받은 기억에 따르면 제 수명은 아마 50년 정도..후후 인간님들에 비해서도 짧은 편이죠?"


"거기에 강대한 능력을 사용할 수록 점점 수명이 짧아진다고 해요. 주인님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수발을 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죄송해요 주인님. 저 오래 못 살아요.." 


"음. 그래도 생각해보면 저 은근히 대단하지 않나요? 아무 무기도 없이 능력만으로 메이 양의 전술핵과 동일한 화력을 퍼부을 수 있잖아요. 라비아타 언니가 최강의 검사라면 저는 최강의 마법사같은 느낌 아닌가요?"


"..."


"이런 능력 없어도 좋으니 주인님과 함께 오래오래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아 이런. 또 철충들의 공격이 시작된 거 같아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





AM 01:20:17


"후..어떻게든 물리쳤지만 이쪽에 전투 가능 인원이 거의 없다는 걸 아는 걸까요? 점점 포위망이 거세져 오네요"


"철충들도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네요. 설마 이런 후방의 식량 생산 지역을 급습할 줄은..상상도 못했어요"


"철충에게 식량이란 개념은 없으니까,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이런 일은 없었는데.."


"뭐 우리가 철충을 알게된만큼, 그들도 우리를 알게 되었다는 증거겠지요"


"..."


"몇 일간 교전을 하며 탐색한 결과 가장 포위망이 약한 곳을 찾았어요"


"어차피 이대로 있어봐야 전멸만이 예정되어 있다면, 날이 밝는 대로 남은 자매들과 함께 어떻게든 탈출을 해보려 해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얼마나 더 힘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최선을 다해봐야죠"


"이 캠코더는 전자기기니까, 전력을 뿜는 제 곁에 있으면 망가질지도 모르겠네요. 다프네에게 맡겨놔야겠어요"


"..."


"선대 레아의 기억 속에 있던 인간님들이라면..소중한 식량을 버리고 도망친 저희를 처벌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주인님이라면 저희 하나하나를 꼬옥 끌어안아주면서, 저희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해주시겠지요"


"후..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는 걸까요..늙으면 잠이 없어지는 걸까요? 아하하.."


"정말 주인님이 너무나..너무나도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주인님.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주인님을 사랑해요"














"..레아가 남긴 건 이것들 뿐이냐?"


"퇴로라고 생각했던 곳은 철충들의 함정이었어요. 만약 레아 언니가 뒤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희는 한 명도 주인님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에요.."


"언니..금방 따라갈 거라고,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저희를 먼저 보냈어요..레아 언니는 강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짓말.."


"여왕이 죽었어야 했어. 여왕은 결합품이니까,레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자매들이 대피할 시간은 벌 수 있었을텐데.."


"죄송해요 주인님.."


"그런 소리 하지마라! 이 일은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죄를 묻는다면 안일하게 아무 대비도 해두지 않은, 총사령관인 내게 

죄가 있다"


"나같이 멍청한 상관 때문에 유능한 대원이 죽었구나..정말 죽어서 레아를 볼 면목이 없어.."


"주인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제발.."


"..다들 고생했다. 크게 다친 인원은 없다지만 꼭 수복실은 방문하도록. 이만 물러가서 쉬거라."


"..네 주인님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