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1    /    2    /   3   /    4







오르카 호로 복귀한 나는 무슨 일 있냐는 메이 대장의 질문도 무시하고 곧바로 닥터의 방으로 달려갔다.

 

“닥터! 나랑 얘기 좀 해!”

 

“이봐, 나앤. 노크할 줄도 모르는 거야? 그 정도로 멍청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면 멍청이 대장과 다니다 보니 멍청이 병이 옮기라도 했나? 킥킥.”

 

닥터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시답잖은 농담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닥터에게 장단 맞출 시간은 없다. 지금 나에겐 그 저택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하다. 어째서 우리와 닮은 사람이 그 저택 그림에 있는지, 진짜 그 저택의 주인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냐. 내가 부탁한 자료. 그 자료 빨리 줘봐.”

 

“저택에서 뭘 찾았길래 이렇게 성급히 온 거야? 미안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자료를... 뭐?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네가 나한테 부탁한 게 오늘 아침이야. 반나절 안에 네가 원하는 자료를 뚝딱하고 만들 능력은 없다고. 최소 하루 정도는 시간을 주지 그래. 그보다 대체 뭘 찾은 거야?”

 

맞는 말이다. 닥터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무작정 달라고 한 게 내 착오였다. 나였어도 반나절 안에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판단력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일단 내가 알아 온 정보라도 공유해야겠다. 

 

“미안 닥터. 마음이 급한 나머지 실례했군. 다름이 아니라 저택에서 나와 메이 대장을 닮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어. 그것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무언가 관련 있는지 궁금해서 온 거야.”

 

내 말을 끝나자 키보드를 두들기던 닥터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의자를 돌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닥터는 믿기지 않는 눈빛이었다. 내가 그 그림을 봤을 때도 저런 눈빛이었겠지. 닥터는 말없이 잠시 멈춰 있다가 말을 꺼냈다. 

 

“그거 사실이야? 너와 메이를 닮은 사람이 있었다고?”

 

“믿기지 않을 거야. 나도 처음 봤을 땐 그랬으니까.”

 

닥터는 생각에 빠진 듯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의자를 모니터 쪽으로 돌리며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오늘 안으로 자료 찾아볼게. 내일 아침에 보자고.”

 

평소 같으면 어영부영 미루는 닥터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래도 내가 찾은 단서가 궁금했나 보다. 내일이면 모든 걸 알아낼 수 있겠다. 

 

“고마워”

 

나는 닥터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양 볼에 바람을 넣고 뿌우하는 우리 대장이 있었다. 

 

“나앤, 대제 무슨 일이야. 이제 닥터랑 일하는 거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말씀?! 황급히 오르카 호로 복귀한 게 단지 닥터랑 얘기하기 위해서야? 이러다가 나 버리고 닥터랑 둘이서 임무 나가겠다. 아니면 이젠 내가 싫어진 거야?”

 

이런, 아무래도 대장이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다. 빨리 삐진 대장을 달래줘서 풀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대장을 버리고 닥터와 바람난 쓰레기 부하라고 오르카 호에 소문날지 모른다. 빨리 풀어줘야 한다. 하는 수 없군. 이걸 써야지.

 

“그게, 닥터가.... 약을 개발했다고...”

 

“약? 무슨 약?”

 

이 말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가슴.... 커지는... 약이요.”

 

“아...”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얼굴이 머리색보다 빨개졌다. 결국 이걸 쓰다니. 진짜 치욕스럽다. 이 수치는 나중에 배로 돌려줄 것이다. 하지만 먹혔는지 대장은 혼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아... 미안. 그럼 열심히 얘기해. 나는 방에서 쉬어야겠다.”

 

“알겠습니다.”

 

메이 대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황급히 방으로 갔다. 나는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 내 인생...

 

“그런 약은 없는데 필요하면 만들어줄까?”

 

닥터는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채 말했다. 

 

“뭐야? 어디서부터 들은 거야?!”

 

“메이가 나랑 일하냐고 물어볼 때부터?”

 

다 들었구나...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하 인생... 대장 미워! 미워! 미워!

 

“크크크. 원하면 언제든지 말해. 아니다, 이참에 개발해볼까?”

 

“닥치고 빨리 자료나 모아. 내일 아침에 바로 갈 테니까.”

 

닥터는 나를 비웃으며 문을 닫았다.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다른 건 몰라도 둘은 꼭 죽인다! 반드시 철충밥으로 넘겨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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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가씨,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싫어, 불편하단 말이야.”

 

아가씨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투정을 부리며 자꾸 움직이고 있다.

 

“메이, 움직이지 말라 했지.”

 

“아버지, 저는 싫어요. 저는 움직이고 싶단 말이에요.”

 

누가 봐도 귀족처럼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누군지 알고 싶었지만,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앤, 네가 가서 붙잡아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이리와 나앤. 나앤도 그려줄 수 있지?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을게.”

 

“네? 아가씨 그런 부탁은 안 됩니다.”

 

“그럼 나 안해. 안한다고!”

 

내가 거절을 하자 아가씨는 다시 투정을 부렸다. 여전히 아가씨의 얼굴은 불투명하게 보였다. 

 

“나앤, 메이 뒤에 서 있거라. 이대로 진행하지.”

 

“알겠습니다.”

 

아가씨의 아버지인 귀족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아가씨의 뒤에 서 있었다.

 

“헤헤, 나앤이랑 같이 나온다.”

 

아가씨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흐릿하게 보였던 아가씨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메이 대장이었다.

 

허억허억

 

오늘 꾼 꿈을 통해 안 것은 메이라는 아가씨와 나앤이라는 메이드가 있고, 저택의 주인인 귀족이 있다. 이것뿐인 건가.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며칠간 꿨던 꿈에선 노래를 불러 달라 했으며 아가씨는 왜 피를 흘리며 죽었는지. 모든 궁금증은 닥터가 알아낸 자료를 통해 알 수 있겠지. 빨리 아침이 밝았으면.

 

 


//

 

 

 

아침이 되자 나는 곧바로 방에서 나와 닥터 방으로 갔다.

 

“닥터! 자료 조사는 끝난 거지?”


“어... 왔어..?”

 

닥터는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몰골을 보아하니 밤샌 모양이다. 눈은 퀭하며 반중파된 상태로 있었다. 어찌나 불쌍하게 보였는지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닥터, 괜찮은 거야?”

 

“어? 난 괜찮아... 밤샘은 익숙하니까... 수복실에 조금만 있으면 될 거야...”

 

닥터는 멍하니 있다가 뭔가를 떠오른 듯 황급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만... 그 망할 저택에 대해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아 찾았다. 여기.”

 

닥터가 나에게 건낸 건 한 장의 신문지였다.

 

“이게 뭐야?”

 

“네가 원하던 저택에 관한 정보.”

 

“닥터, 미안하지만 너랑 장난 칠 시간은 없어.”

 

“나도 미안하지만, 장난이 아니야.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기록이 하나도 안 남아있냐. 내가 밤샌 이유도 이 망할 저택 조사 때문이었어. 보통은 금방 나오기 마련인데 이 저택만 아무것도 없더라. 이 신문쪼가리도 겨우 찾은 거라고!”

 

내가 장난치냐고 핀잔준 게 닥터를 건드렸나 보다.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겠군. 나는 닥터가 준 신문지의 헤드라인을 읽어봤다.

 

‘모 귀족의 저택에서 미사일 테러 발생... 전원 사망’

 

미사일 테러? 건물 한쪽이 무너져 있던 게 이 테러로 무너진 건가. 나는 이 기사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미사일 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기사였다. 고작 이것뿐인가.

 

“닥터, 고작 이것뿐이야?”

 

나는 기사를 다 읽지 않고 물어봤다. 아니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미사일 테러로 저택이 무너졌다는 등 무슨 이유인등 쓸데없는 주석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별 볼 일 없는 정보인 줄 알았어. 하지만.”

 

닥터는 내가 쥔 신문지를 낚아채 한곳을 찍으며 말했다.

 

“이걸 보면 달라질 거야.”

 

나는 닥터가 가리킨 문장을 찬찬히 읽어봤다.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귀족의 자제가 있던 방이었습니다. 귀족의 자제는 평소 몸이 아팠으며 방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어?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귀족의 자제가 아팠어? 그럼 환자인가? 환자라고? 

 

“나앤! 내가 다 나으면 너랑 꼭 산책을 나갈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환청인가? 내가 아직 꿈에서 덜 깬 건가? 뭐야... 정신 차려...

 

“아가씨와 산책하게 된다면 제가 솜사탕을 사줄게요.”


뭐야? 이 기억은 뭐야?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뭐야? 뭐야? 

 

“나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닥터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내가 잠시 딴생각을 했나보다. 

 

“미안 닥터.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자꾸 환청이 들리네에....”

 

나는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닥터가 뭐라 말하며 소리치는 것 같은데 안 들린다.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