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느와르 팬텀


느와르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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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구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걱거리는 소파위에서 일어난 닥터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헤진 머리를 긁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자신이 소음의 원인임을 깨닫고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슬리퍼를 신었다.


그녀는 덮고 있던, 분명 누군가가 잘 때 자신의 위에 얹어준 롱코트를 어깨에 걸쳐 여맸다. 거의 바닥에 질질 끌릴만큼 내려온 밑단은 하등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펄럭거렸다. 그리고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수 향. 기분 좋은 냄새에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제 자신을 얼마나 아껴주는지를 안 소녀에게는 꽤나 자극적이었기에.


여하튼 그녀는 깨어난 김에 제 할일을 하기로 했다. 자신의 본 업무가 아닌 다른 의무. 지금은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사령관인 ‘보스’와 ‘언더 보스’ 아르망. 그리고 최근 ‘외근’을 자주 다녀온 리리스의 총을 손 보는 일이었다.


닥터는 가장 먼저 사령관의 총을 손에 들었다. 싱글 액션을 채용한 고풍스러운 장식이 박힌 예장용 리볼버. 특이하게도 이 총엔 손잡이 부분에 장식이 없었다. 오히려 손때 묻은 반들거림이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삐걱거리거나 찰칵거리며 긁는 쇳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관리를 잘 했다는 의미였지만, 닥터는 이 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히 싱글 액션은 너무 구식이라는 이유였다. ‘기술은 진보를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녀에겐 그저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총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위해 가장 열심히 조이고 기름칠했다. 언제나 여섯 발의 탄창 중 다섯 발 밖에 들어있지 않은 이 리볼버는 사령관이 단 한 번, ‘그녀’를 잘라내었을 때 사용했었다. 닥터는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다시는 잊지 못할 기억.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겨눠지는 총구와 초연한 ‘그녀’. 이를 악 물어 억지로 감정을 죽이고 한 번의 행운을 바라는 그의 눈빛.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단 한 발의 총알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비극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짊어진 무게와 상반된 감정적인 인간. 억지로 찍어누르는 감정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닥터는 아마 그 날을 기점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아마 죽어버린 것은 사령관이 아닐까 고민했다. 시체는 다른 이였지만.


그녀는 철컥거리는 마지막 나사가 조이고, 은백색의 실린더를 손을 튕겨 굴렸다. 차르륵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렸다. 닥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 쪽 구석의 방석 위에 올려놓고 다른 총을 집었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기껏해야 최근에 세네발 쏜 듯 신품에 가까운 스미스앤 웨슨 60이었다.


이 총의 주인인 아르망은 닥터가 생각하기에 ‘역시는 역시’라는 인물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가장 유능하고, 가장 확실하게 선을 긋는 이. 다르게 말하면 겉모습과 내면이 일치하다는 의미였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하지만 닥터는 그것을 좋은 쪽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더욱 심해지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피해가 오지 않았기에.


마찬가지로 그녀는 스미스앤 웨슨이 정말 아르망스러운, 심플하면서 확실한 리볼버라고 생각했다. 자로 잰 듯한 반듯함. 그러나 아르망은 의아하게도, 바이오로이드의 머리를 한 번에 뜷을 수 있는 정도의 파괴력을 원했다. 이것은 닥터로써도 상당히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주문이었다. 그녀스럽지 않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언질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아르망의 주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꼭 머리에 총구를 박아넣어야 하는 이가 꼭 적이나 내부자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 생각에 닥터는 조금 침울해져서 포도당을 입에 우겨넣어 씹어대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마지막은 ‘외근’을 자주 나가는, 리리스의 금빛 대구경 리볼버였다. 총구에 가까운 총열의 밑에는 컴패니언들의 이름이 이니셜로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고 손잡이에는 컴패니언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해머에는 사령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우악스러운 구경의 권총은 너무 험하게 사용한 듯 실린더와 강선이 조금씩 엇나가 있었다. 담긴 사랑과는 정 반대의 아이러니였다. 아마 자존심 강한 그녀의 선에서 수리하지 못할 일이기에, 조금 머리를 숙인 것임이 분명했다.


닥터는 리볼버를 이리저리 손 보며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충성으로 비롯된 행위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언제나 충성이나 충의라는 말로 포장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총기 정도는 사랑을 담아서 보듬어 주기를 바랬다. 마치,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사령관과 컴패니언들처럼.


문득, 그녀는 리리스가 리볼버를 험하게 다루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그 날 이후였다. ‘그녀’의 죽음 이후 리리스는 꽤나 외근을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지금은 일에 어느 정도 사심을 채워넣는 것이 눈에 보였다. 원래 목적에 마음을 조금 섞는다고 달라질 일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해도 지난번 임무에 감정을 넣어 사령관에게 벌을 받고 있는 팬텀보다는 몇 배 나은 행동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동생들을 위해 움직이는 그녀를 비난하거나 힐난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언니가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본적이 있었다. 한순간이지만.


닥터는 마지막 수리까지 마치고 어깨를 움츠리고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쭉 폈다. 일의 마무리는 역시 기지개라는 지론을 가지며 뻐근한 어깨도 매만졌다. 그녀는 모아 놓은 세 개의 리볼버들을 가장 잘 보이는 책상 위에 놓고 다시 소파로 천천히 쓰러지는 것 처럼 누웠다. 저 리볼버들은 분명 누군가가 가져갈 것이었다. 운반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노곤노곤해진 눈빛과 하품을 내뱉었다. 여며놓았던 롱코트를 더욱 그러모아 소파에 한층 더 웅크렸다.


숨이 서서히 느려지고 눈꺼풀이 거의 감기던 그 때에, 문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문에서 만들어진 그림자는 닥터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것을 맞이했다.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지는 머리에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이기도 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남들에게는 잘 보여주지 않는 애정어린 손길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닥터. 고생했다.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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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조금 쉬어가는 느낌으로다가 써 봤다 막 맨날 죽이면 사람 피폐해져서 안됨 아무튼 그럼


원래는 몇 명 더 넣고 싶었는데 다음이나 다다음  문학이 과거 이야기 써 보려고 떡밥에 집중해보기로 함


언제나 읽어줘서 고맙다 '개추 줘'


근데 왜 닥터는 아카콘이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