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저 오늘부터 메이드 그만두겠습니다.”

   

   

“엥? 갑자기 왜?”

   

   

“그냥... 일이 너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매일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지겹습니다. 감히 부탁하는 거지만 그런거 다 때려치고 이제부터 제가 백수로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번아웃이 왔나보구나. 하긴, 스스로 휴일까지 반납해가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힘들만도 하지. 나도 바닐라가 그동안 엄청 수고한건 알고있으니까, 당분간 메이드 일은 내려놓고 편히쉬어도 돼. 물론 다시 메이드가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찾아와.”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백수 바닐라로 주인님을 뵙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함장실 밖으로 나갔다)

   

   

“으아~ 고작 일을 그만뒀을 뿐인데 마음이 너무 편하네. 일단 메이드복부터 벗어야겠다.”

   

   

   

   

“백수 된 기념으로 뭐부터 할까? 막상 자유가 찾아오니까 뭘 해야할지 모르겠네. 생각 정리할 겸 복도 산책부터 해봐야겠다.”

   

   

“으아, 큰일이다 큰일! 어떡하지? 앗, 바닐라언니! 나좀 도와줘!”

   

   

“무슨 일입니까?”

   

   

“베라언니 침대 위에서 음료수 마시다가 이불에다가 음료를 잔뜩 흘려버렸어. 이거 걸리면 엄청 혼날거야! 빨아야 될거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에휴, 칠칠치 못하게 뭐하는겁니까? 음... 다행히 침대 시트는 안 더러워졌군요. 일단 더러워진 이불은 세탁장에 가져다놓은 다음에, 똑같이 생긴 새 이불을 가져와서 아무일도 없었던 척 해야겠습니다. 빨리 이불 옮기죠.”

   

   

   

   

“알비스 나왔어. 어라, 바닐라님이랑 내 침대에서 뭐하는거야?”

   

   

“신경쓰지마. 그냥 바닐라 언니랑 놀고있는 중이었어.”

   

   

“그렇구나. 그나저나 오늘 바닐라님 평소랑 다른 옷을 입으셨네요. 혹시 오늘 휴일이세요?”

   

   

“오늘만 아니라 앞으로도 쭉 휴일입니다. 그런데 거의 처음 경험하는 휴일이라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휴일에 할만한 재밌는 일좀 추천해줄 수 있으신가요?”

   

   

“음... 카페테리아에서 느긋하게 디저트 먹으면서 다른 분들이랑 수다떠는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쉬는날에 카페테리아로 놀러가서 부대원들이랑 수다떨다보면 어느새 5시간이 훌쩍 지나있더라고요.”

   

   

“카페테리아라...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단게 땡겼는데 한번 가봐야겠군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바닐라언니 잘가~ 나 도와줘서 고마워!”

   

   

   

   

<카페테리아>

   

   

쨍그랑!

   

   

“어라? 어디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으아아, 내 파르페가! 괜히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유리 그릇이 완전히 깨져버렸네. 이거 내가 다 치워야겠지?” (깨진 그릇을 잡으려고 했다)

   

   

“그거 만지지 마세요! 깨진 유리를 그냥 만졌다가는 손이 다칠 수 있습니다.”

   

   

“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당연히 빗자루로 쓸어버려야죠. 여기 마침 빗자루가 있군요. 제가 이걸 쓸고 있을테니까 슬레이프니르님은 다른 곳에서 신문지같이 두꺼운 종이좀 가져와 주세요. 깨진 유리는 종이에 감싼 뒤 따로 버려야 합니다.”

   

   

“알았어. 가져올게...”

   

   

“일단 유리는 다 쓸었으니, 대걸레를 가져와서 바닥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전부 닦아버려야겠군요. 대걸레는 또 어디있으려나...”

   

   

   

   

   

“휴우... 다 처리했네. 슬레이프니르님, 음식을 들고 걸을 땐 넘어지지 않게 얌전히좀 걸어주세요. 지금처럼 넘어졌다가는 음식을 쏟을 뿐 아니라 그릇이 깨져서 다른분들이 위험해 질 수 있으니까요.”

   

   

“히잉, 알겠어. 힘들게 참치 모아서 파르페 산거였는데, 넘어져서 먹지도 못하고 다 날려버렸네...”

   

   

“너무 침울해하지 마세요. 제가 못 드신 파르페 사드릴테니 같이 먹읍시다.”

   

   

“정말? 바닐라 진짜 고마워~~”

   

   

   

(같이 파르페 먹는 중)

   

   

“궁금한게 있습니다. 슬레이프니르님은 혹시 군인의 삶이 지겹지 않으신가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저는 메이드의 삶이 지겹거든요. 매일 반복되는 이 삶이 언제까지 계속 되는건지, 이 지겨운 나날이 끝나기는 하는건지 등등의 생각이 부쩍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에게 허락맡고 메이드 일도 그만 뒀어요.”

   

   

“얼마나 힘들었길래 메이드 일을 그만두는거야? 메이드들도 휴일은 있지 않아?” 

   

   

“저는 휴일 없이 일했습니다. 제가 쉰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더 많이 일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건 별로 원하지 않아서 제공되는 휴일도 스스로 반납하고 매일 일했습니다.”

   

   

“뭐? 쉬지도 않고 매일 일했다고? 그러니까 매일매일이 지겨울 수 밖에 없지. 휴일이 얼마나 소중한데 왜 그때 안 쉬는거야?” 

   

   

“나도 군인으로써 철충과 싸우는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휴일이 되면 마음껏 퍼질러 잘 수도 있고, 이렇게 파르페도 느긋하게 먹을 수 있고, 부대원들이랑 같이 놀러다닐 수 있다는걸 아니까 싸우는게 지겹더라도 휴일만 생각하면서 버티는거야. 너도 매일 일하지 말고 휴일을 가지면서 살아봐. 그래야 삶이 윤택해지지.”

   

   

“굳이 휴일을 가지라고 말 안해도, 저는 이미 백수라 앞으로도 쭉 휴일일겁니다. 파르페 다 먹었으니까 이제 일어나볼까요?”

   

   

“그러자. 나 좀있다가 애들이랑 노래방 갈건데, 혹시 너도 같이 갈래?”

   

   

“아니요. 거절하겠습니다.”

   

   

“가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파르페 사줘서 고마워. 그럼 난 바로 노래방 가볼게~”

   

   

   

   

<카페테리아 나와서 복도를 거니는 중>

   

   

“평소에 일 할때는 하고싶은 일이 진짜 많았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까 뭘 해야할지 막막하네. 재밌는게 뭐 없으려나...”

   

   

“아, 바닐라님! 혹시 저희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무슨 일인데요?”

   

   

“그게... 식당 음식 준비를 도와주기로 한 브라우니 4분께서 뭘 잘못먹었는지 배탈이 나서 오늘 저녁준비를 못 도와주겠대요! 갑자기 인원이 4명이 모자라서 주방이 완전 비상상황인데, 혹시 주방일좀 도와주시겠나요?”

(참고: 많은 브라우니들이 소완 밑에서 주방보조 일을 한다. 출처: 2021년 05.14 GM에게 물어 보세요)

   

   

“뭐요? 주방엔 인원이 1명만 부족해져도 난리가 나는데 무려 4명이나 없다니. 얼른 도우러 가겠습니다!”

   

   

‘어휴... 간만에 얻은 휴일인데도 평소처럼 빨래 청소 요리 전부 다 하고있네. 이것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야겠다.’

   

   

   

   

<몇시간 뒤 저녁시간의 식당>

   

   

   

“전대장. 장난치지 말고 얼른 자리로 와. 평소랑은 달리 왜 이렇게 천천히 오고있는거야?”

   

   

“식판 들고 뛰다간 넘어질 수 있어. 그러니 천천히 가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천천히 가는건 진로방해입니다. 조금만 속도를 내서 비켜주세요.”

   

   

“오, 바닐라 안녕! 근데 너 메이드 관뒀다고 하지 않았어? 여기서 왜 청소하는 중이야?”

   

   

“식당 일손이 모자라다길래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쭉 주방에만 있다가 지금 잠깐 바닥청소 하러 나온겁니다.”

   

   

“바닐라. 아까 전대장이 사고친거 수습해주고 파르페도 사줬다며? 사고뭉치 전대장 때문에 정말 신세 많이 졌어. 고마워!”

   

   

“뭘 그런거가지고 고맙다 하십니까. 메이드에겐 당연한 일인데. 아, 그러고보니 나 메이드 그만뒀었지?”

   

   

“바닐라님. 식당바닥 청소는 어느정도 된거 같습니다. 다시 주방에 오셔서 설거지좀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으아, 잠깐 나갔다 왔는데 그새 설거지가 엄청 쌓여버렸네. 이걸 언제 다 한담...”

   

   

   

   

<밤 10시 바닐라의 숙소>

   

   

“다녀왔습니다....”

   

   

“바닐라 너 왜 그렇게 지쳐보이니? 메이드 그만 뒀다고 오늘 너무 심하게 논거 아니야?”

   

   

“하나도 못 놀았어요. 알비스양이 주스 흘린 이불도 빨고, 슬레이프니르님이 깬 유리그릇도 치우고, 주방일도 빡세게 도와줘가지고 평소처럼 힘든 날이었어요. 간만에 백수가 됐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문 벌컥) “바닐라 언니 여기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어라, 알비스양이 여긴 왜 오신건가요?”

   

   

“아까 우리가 베라언니 이불을 몰래 교체했잖아. 근데 다행히도 교체했던걸 아직도 몰라! 언니 덕분에 베라언니한테 혼나는걸 피할 수 있었어. 진짜진짜 고마워! 그래서 답례로 초코바 주려고!”

   

   

“아...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알비스양, 오늘 저녁은 맛있으셨나요?”

   

   

“응! 엄청 맛있었어. 그건 갑자기 왜 물어?”

   

   

“오늘 식사준비 제가 도왔거든요. 주방 인원이 평소보다 적었는데도 음식이 맛있게 나갔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어쩐지 평소보다 맛있다 했더니 언니가 요리한거였구나! 앞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 자주 해줄거지?”

   

   

“저는 그냥 돕기만 했을 뿐 요리는 제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알비스양이 좋아하시니까 주방일 자주 돕는건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난 자러 가볼게! 콘스탄챠 언니랑 바닐라 언니 안녕~ 잘자~”

   

   

알비스가 손을 흔들며 숙소 밖으로 나갔다. 바닐라는 침대에 눕고 알비스에게 받은 초코바를 깨작깨작 먹기 시작했다.

   


   

“달다...”

   

   

“콘스탄챠 언니. 언니는 메이드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으신가요?”

   

   

“나? 나도 힘들때면 당연히 메이드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지. 하지만 우리의 일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보람된 일이잖아. 아까 알비스가 너한테 고맙다고 말했을 때 처럼, 누군가 나에게 수고했다 혹은 고마웠다고 격려 해주면 메이드 일을 하면서 누적된 피로가 싹 가셔.”

   

   

“...맞아요. 그동안 힘들어서 잊었었는데, 메이드일을 하다보면 종종 그런 때가 있었죠. 작은 격려 하나로 피로가 전부 사라지는 순간.”

   

   

“그래. 자주 있는 순간은 아니지만 그런것들이 나에겐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곤하지. 그리고 그런 격려를 못 받는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휴일이 찾아오잖아? 휴일과 작은 격려 때문에 힘들더라도 메이드 일을 계속 하는거야.”

   

   

“...”

   

   

   

   

   

<다음날 아침 함장실>

   

   

“주인님. 저 백수 그만두고 다시 메이드로 일하고 싶습니다.”

   

   

“정말? 최소 일주일은 쉴 줄 알았는데 하루만에 다시 찾아왔네. 어제 푹 쉬어서 에너지를 회복한거야?”

   

   

“아니요. 어젠 바쁜 일들이 많아서 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제 여러 가지를 느꼈거든요. 역시 저는 편하게 백수로 살아가는 것 보단, 힘들더라도 메이드의 삶을 사는게 좋은거같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잘부탁할게. 그러면 오늘부터 다시 일할거야?”

   

   

“아니요. 딱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메이드가 될겁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휴일 반납하는건 이제 안할래요. 아무리 저라도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는거 같더라고요. 다시 취직 했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알겠어. 잘 쉬고 내일보자!”

   

   

바닐라는 사령관에게 인사를 하며 함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바닐라는 복도 저편에서 소리치면서 뛰어오는 슬레이프니르를 발견했다.

   


   

“스카이나이츠랑 같이 노래방 갈 사람 급구! 우리랑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 어디없어?”

   

   

“저 노래방 가겠습니다. 제가 껴도 괜찮으시죠?”

   

   

“물론이지! 바닐라는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를지 기대가 되는걸? 얼른 따라와!”

   

   

“뛰지 마십시오. 그러다 또 넘어지면 어쩌시려고.”

  

   

“그러고보니 다른 분들하고 어디 놀러가는건 처음인거같네. 한번 제대로 놀아봐야겠다. 오늘 확실히 피로를 풀어둬야 다음 휴일이 오기 전까지 버텨낼 수 있을거야. 오늘 신나게 놀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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