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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멀쩡히 일하던 사람보고 나오지 말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공사장에 출근하던 인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된다니, 난데없이 밥줄을 잃은 사내는 억울함을 못이겨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랭했다.




"이번 달부터 인부들 대신 바이오로이드들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니 그런 줄 아시고, 다른 일을 알아보시죠."




"안돼, 안돼!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합니다! 저희 집에 마누라랑 아직 학교도 안간 자식 두 놈이 있다고요!"




사내는 제자리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빌었다.

자존심? 그런게 무슨 소용인가. 그에게는 자존심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한다.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그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비굴함을 자아낸다.



그렇게 비굴하게 넙죽 엎드리며 절을 올려도 되돌아오는건 참혹한 현실 뿐. 사내는 그 자리에서 절망했다.

옛적부터 가난해서 대학도 못다니던 그는 청춘을 바쳐가며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대로 공사장 인부가 되어 살림을 차렸다.



누구보다 이쁜 아내를 얻고, 둘 사이에서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들 두 놈을 낳았다. 건설현장에서의 역경과 고난은 뼈를 깎아내는 듯 고통스러웠으나,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아들 놈들의 미소를 보고있으면 피로와 고통이 눈녹듯이 씻겨내려갔다.



한창 해맑은 아이들, 이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것이 삶의 이유이고, 인생 최대의 목표다.


그리고 지금, 공장에서 찍어낸 인공생명체에 의해 목표가 희미해져갔다.




***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사내는 인터넷을 뒤져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다.



"저희 업체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대거 도입한 상황입니다."



그 놈의 바이오로이드. 사내는 절망어린 눈물을 흘렸다. 사람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들만도 못하단 말인가.



그렇게 일자리를 잃고 마음이 피폐해져가는 사내는 툭하면 아내와 싸우곤 했다.

그런 부부 간의 싸움을 지켜보던 두 아들놈은 하루하루를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식당에서 일하던 아내에게도 날아온 소식.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제 저희 가게도 바이오로이드를 사용하기로 해서..."




"대체... 대체 이유가 뭐죠? 제가 실수를 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죄송합니다. 이번 달 월급까지는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똑같이 일자리를 잃은 아내.

아내는 절망한 채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남편과 실랑이를 벌였다.




***




남편은 돈을 불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도박에 몸을 던져버리고, 아내는 돈이 궁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저버린 채 집창촌에 들어가 몸을 팔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남편은 탕진하고 돌아와 애꿎은 가구들을 부수며 울분을 토했고, 몸을 팔고 돌아오는 아내는 가족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런 둘 사이에서, 두 형제는 항상 눈물을 흘렸다.

겨우 여섯 살난 형과 아직 두 살 밖에 안된 어린 동생은 부모를 두려워하며 옷장에 숨어서 숨죽여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집창촌에서도 쫓겨난다.

이제는 집창촌에서도 바이오로이드들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애딸린 아지매에 비하면 훨씬 젊고 튼튼한 바이오로이드가 훨씬 잘 팔릴테니.



다시 일자리를 잃은 아내는 이 모든 것을 가족 탓으로 돌리며 집을 나서버리고, 홀로 남아 자식들을 돌봐야하는 남편은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식들에게서 멀어져갔다.




***




그렇게 모든 재산을 잃고, 집까지 팔아버린 사내는 두 아들들과 같이 블랙존에 발을 들인다.

사내는 실성한 듯 헛웃음을 터트린다. 사회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모이는 이 곳, 블랙존에 자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평생토록 성공은 못할지언정 쓰레기가 되지는 않겠다 다짐했는데, 거짓말같이 어느샌가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도박조차 못하는 처지에 사내는 무고한 아들놈에게 성을 내고, 폭력을 저질렀다.




"애초에... 애초에 너희들을 낳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살진 않았어!"



사내는 결국 아들 놈들을 거리에 버리고 떠나버린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 언제나 항상 웃어주며 놀아주던 아버지는 온데간데 없고, 쓸쓸히 남겨져버린다.




형은 목청껏 울부짖으면서도 품에서 동생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유일한 가족인 동생, 존. 형은 동생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어느 강도 무리에게 발견된다.




한창 남의 집을 털고있던 강도 집단. 그들의 우두머리가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 꼬맹이들 잡아!"




그 말에 형은 동생을 품에 안은 채 필사적으로 달렸다. 눈물이 쏟아지고, 겁에 질려 실금까지 했음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달렸다. 적어도 동생만큼은 절대 저들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는 아이. 거기에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서있었다.

아이는 겁에 질린 채 엉엉 울고있는 어린 동생을 꼭 껴안았다. 공포에 집어삼켜져 벌벌 떨고있음에도 동생은 지켜야 했기에...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노인은 형제들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멀리서 달려오는 강도 무리를 발견한다.




"얘들아, 날 따라오거라."



노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뒤늦게 도착한 강도무리들. 두목은 잔뜩 성이 난 듯 씩씩대며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이 새끼들 어디로 튀었어!"




"이봐, 기껏해야 꼬맹이들이잖아.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가진 것도 없을텐데..."



일행의 말에 두목은 그의 뺨을 철썩 때리고는 이성을 잃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고기를 마지막으로 먹은게 언제지?"




"어... 한 6개월?"




"그래, 알고있네. 그럼 가서 잡아와!"




우렁찬 외침에 모두가 흉기를 들고 뿔뿔이 흩어지고, 노인은 형제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노인은 아이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얼마없는 식량을 아이들에게 먹여주었다.

며칠 굶은 듯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아이들. 노인은 아이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왜 여기있는게냐.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없어요."



아이의 말에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

노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갈 곳이 없으면 이 할애비랑 같이 지내자꾸나. 이름이 뭐니?"




"...전 아놀드에요. 이 아이는 존이고요."




"난 스콧이라 부르렴. 밖은 위험하니 여기서 자거라. 여기는 못된 어른들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노인과 형제가 만나게 된 것이다.




***




노인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보려 했으나, 바이오로이드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도입되면서 그가 발을 들일 곳이 사라졌고, 블랙존으로 들어오는 인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수 년을 지내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고 자라준 것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겨우 이겨냈다.




아이들 역시, 노인과의 생활에 행복을 느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프고 힘들 때면 노인은 항상 아이들을 품에 안아 달래주었고, 가끔은 밤에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노인의 이야기는 아이들을 텔레비전처럼 빠져들게 했다.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슈퍼히어로가 나타나 우릴 도와줄거란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요~."




"나 그거 만화책에서 봤어. 키가 크고 근육빵빵하고! 그리고... 맞아, 여자친구도 많았어!"




"하하, 그러니? 아무튼, 그 슈퍼히어로는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재주꾼이란다. 밑에는 아주 멋있고 늠름한 부하들이 많이 있고, 존이 말한 것처럼 예쁜 여자친구도 많이 사귀었단다. 그리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못된 괴물들과 악당들을 물리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감싸안아주지."




"그런 사람이 진짜로 있을까요?"




"그럼~! 이 할애비가 살아온 세월이 몇년인데. 언젠가는 슈퍼히어로가 나타나 사람들을 도와줄거란다."




슈퍼히어로. 형제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키가 크고, 근육빵빵하고, 여자친구가 많은 영웅. 그 영웅이 멋있는 부하들을 이끌고 악당들과 괴물들을 물리치는 모습.




형제들은 노인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 채 여느 때처럼 하루를 보냈다. 언젠가 자신을 구해줄 슈퍼히어로를 상상하며...




***




형제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와 쓰레기들을 줍는 동안, 노인은 서랍장을 열어 약품을 뒤적인다.



그리고 꺼내드는 알약 두 정.

그는 그것을 입에 넣고 물을 한 모금 벌컥 들이킨다.

그 스스로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몸이 점차 쇠약해진다는걸. 이미 칠순을 넘긴 나이, 그 나이로 이런 척박한 곳에서 수 년을 살아왔으니 몸이 성할리가 없다.



문제는 이제 약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는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고자 가슴팍을 쿵쿵 친다.




한편,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쓰레기와 먹을만한 식량들을 잔뜩 주워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재수가 없는 듯하다.


평소에 자주 이용하던 지름길에 건달 무리가 모여있던 것이다. 저마다 길바닥에서 주운 담배를 입에 문 채 척박한 삶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형제는 겁에 질려 되돌아가 우회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스락.



발을 스치는 비닐봉지.

가뜩이나 예민해진 건달들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시야에 들어오는 두 아이들. 아이들 품에는 쓸만해보이는 잡동사니와 식량들이 잔뜩었었다.



이에 광분하는 건달들. 그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겁에 질린 두 소년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십대 아이들이 건장한 성인에게서 벗어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순식간에 따라잡는 건달들.




"이 개새끼들! 빨리 잡아!"



"잡히면 죽었어!"




잔뜩 흥분한 그 모습은 이성을 잃은 짐승과도 같다.

형제는 광분하는 짐승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앙상한 다리를 분주히 움직여 달려보지만, 결국 뒷덜미가 잡혀버린 형제.



건달들은 형제들을 끌어당긴 뒤 바닥에 내던지고는 단체로 몰려와 짓밟기 시작했다.

무자비하게 덮쳐오는 폭행. 아이들은 의식이 점차 흐려져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노인에게 전해줄 잡동사니들을 품에 꼭 끌어안아 필사적으로 지켜냈다.



"할... 아버지..."




두 형제가 애타게 노인을 부르던 그 때, 멀리서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와 각목으로 건달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소년들을 기다리던 노인이었다.

노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건달 중 하나가 맥없이 쓰러지자, 다른 건달들이 노인을 노려보며 에워싸기 시작한다.




"이 늙은이가 미쳤나!"



그렇게 노인에게 달려드는 건달들.

노인은 각목을 휘두르며 건달들에 맞섰고, 그 사이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돕기 위해 돌맹이를 주워 건달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건달들은 소년들을 발로 걷어차 멀리 날려버리고는 다시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제아무리 체격이 크다해도 결국 노인. 젊은이들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필사적으로 각목을 휘두르며 건달들을 하나둘 쓰러트렸다. 그에게는 지켜야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이 천벌받을 놈들!"



노인이 각목을 휘두르며 맞서싸우던 그 때, 그의 움직임이 멈추고만다. 심장에 무리가 온 것이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춤거리며 중심을 잃는 노인. 이 틈을 노린 건달들이 다시 몰려와 그를 짓밟기 시작한다.




"이 늙은이 새끼가! 죽어!"




"이 씨발, 노인네가 죽고싶으면 곱게 뒤질 것이지!"




건달들에게 짓밟히는 와중에도 노인의 시선은 저멀리 떨어진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뒤늦게 다시 일어선 형제가 노인을 구하기 위해 돌맹이를 주워서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힘겹게 손사래치며 형제들에게 외쳤다.




"어서... 도망가거라...!"




노인의 필사적인 외침에 형제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고, 건달 중 하나가 형제들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이 씨발, 저 새끼들 잡아!"




그 말에 건달들이 노인을 밟는 것을 멈추고는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그제서야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형제. 건달들이 차례로 형제들을 뒤쫓으려하자, 노인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건달들의 발목을 잡았다.




"안돼...! 아이들 만큼은... 건들지마라!"




"이 개새끼가!"




건달들이 곧바로 노인을 거세게 밟아버리고, 가장 체격이 큰 건달이 그의 목을 힘껏 밟아버리자 그대로 우둑 하고 경추가 부러지며 노인은 그대로 숨이 멈추었다.




그러는 동안, 형제는 골목길로 들어가 쓰레기더미 속에 들어가 몸을 숨겼고, 뒤늦게 둘을 쫓던 건달들은 혀를 차며 욕짓거리를 뱉고는 되돌아갔다.




그렇게 한참이 흘러, 건달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밖으로 나오는 형제.

형제는 노인이 걱정되어 황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 기껏 챙겨온 잡동사니들이 품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둘이 현장으로 되돌아가자 마주하게 된 것은 바닥에 널부러진 노인의 모습이었다.

형제는 아예 품에 있던 것들을 내던진 채 노인에게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형제가 노인을 잡고 흔들어보지만, 노인은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노인의 모습에 형제는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고 힘껏 노인을 흔들어 깨워보았다.



"할아버지, 왜... 왜 안 일어나세요... 왜!!!"



"흐윽... 흐아아아아앙!"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형제는 목청껏 울부짖었다. 그 와중에 시끄럽다며 욕짓거리를 하거나 쓰레기를 집어던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년들은 그치지 않고 눈물을 쏟아냈다.




- 쓰레기 발견. 깨끗한 거리를 위해 무단투기를 자제합시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음성. 둘은 곧장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체수집기가 어느새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은 커다란 기계가 노인을 잡아가지 못하게 그를 들어서 옮기려 했으나, 앙상하게 마른 소년 둘이서 사람 하나를 옮기기에는 무리였다.



시체수집기가 팔을 뻗어 노인의 시신을 붙잡았고, 형제는 절대 빼앗길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노인을 끌어안았다.




- 쓰레기를 치웁시다.




무감정한 목소리로 노인을 수거하려는 시체수집기.

형제는 그것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쓰레기가 아니야! 쓰레기가 아니라고!!!"




"우리 할아버지 데려가지마! 우리랑... 우리랑 같이 도심에서 살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기계를 이겨낼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결국 힘이 딸려 노인을 놓치고만 형제는 바닥에 널부러지고, 시체수집기는 묵묵히 노인의 시신을 통에 실어담은 채 유유히 떠나갔다.



"흐윽... 흐으윽.... 으아아아아아!!!"



두 형제는 멀어져가는 노인을 향해 목이 쉬어라 울고, 또 울었다.



하늘은 참으로 무심하다. 어린 소년이 하늘에 닿도록 울부짖음에도 하늘은 그저 눈을 감고있을 뿐이니...




***




끼기긱... 텅!



우악스런 손아귀에 뜯어지는 환풍구.

그 속에서 존이 몸을 비집으며 빠져나온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오는 존.

그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몸뚱이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철컥. 철컥. 



고요한 오르카호의 광장 한가운데, 묵직한 기계음만이 적막을 타고 울려퍼진다.



"아저씨, 어디가는거야?"




그 때,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존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 목소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허리에 겨우 닿을만한 작은 소녀. 더치걸과 LRL이 거기 서있었다.



"두 번째 권속이여~, 짐을 두고 어딜 가는것이냐!"



장난스레 외치는 LRL. 존은 소녀의 농담을 무시한 채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으이잇, 더치걸. 저 아저씨가 나 무시해!"



LRL이 투덜거리자 더치걸은 그녀를 잘 달래준 뒤, 존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아저씨, 어디가려는거야. 지금 오르카호는 바다 속에 있어서 나갈 수 없어."



"......."




존은 한참 동안 더치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때,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나타나는 실루엣. 더치걸과 닮은 소녀가 나타나 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존 아저씨... 너무 아파요..."




"허엇..."




존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녀. 존은 크게 당황한 듯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너, 너...!"




그리고, 그 뒤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실루엣.

그것은 블랙 리리스였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권총을 들어 소녀에게 겨누었다.

그 순간, 존은 뭔가에 홀린 듯 그대로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이 개새끼가!!!"



하지만, 아무리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도 그녀는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그에게 속삭였다.



"왜 그러시죠? 이 아이도, 당신도... 버려진 쓰레기일 뿐이잖아요?"




"으아아아아아!!!"




존은 이성을 잃은 채 닥치는 대로 사물을 부수고, 집어던지며 난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LRL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고, 더치걸은 그녀를 꼭 껴안아 달래주며 존을 불러세웠다.




"아저씨! 그만둬요! 여기에 저희말고는 아무도 없다고요!"




그녀의 외침에 겨우 움직임을 멈추는 존. 그는 고개를 돌려 더치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비치던 어린 소녀가 더치걸과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로 미안해...!"




존은 더치걸 앞에서 꿇어앉은 채 흐느꼈다. 강철의 육신을 지녔기에 눈물을 흘릴 수 없었지만, 그는 분명 울고있었다.

더치걸은 크게 놀란 듯 그를 보더니 이내 그에게 다가가 꼭 껴안아주었다. 존은 가녀린 소녀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

본 내용은 공식설정과는 전혀 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