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조 작품이라기보단 그냥 원본 - https://arca.live/b/lastorigin/6218952

《[짭얍대회] 뽀끄루는 왜 백토를 공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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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마라, 뽀끄루! 오늘이 너의 마지막이다!"


"하하! 달의 마법소녀! 좋다! 오늘이야말로 결착을 내자!"


『마법소녀와 대마왕, 그 둘의 운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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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


촬영이 끝난 후 방영분을 시청하며 맞이하는 백토와의 뒷풀이. 촬영 과정이 꽤나 고통스럽고, 최종장에서 맞이할 최후에 대해 걱정할 때도 많지만은... 이 때만큼은 그 어떤 고뇌도 잊어버린 채 마냥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되는 시간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는 1화가 방영 될 때부터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얼핏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르는 듯하면서도, 1화부터 나타나 최종장까지도 끈질기게 등장하는 골타리온 XIII세의 존재라던지. 도저히 마법소녀의 무장이라 보기 힘든 수준의 무기 연출이라던지. 당시 인간들 기준으로도 신선한 클리셰 파괴와 더불어 특촬물스러운 성격이 융화 된 특유의 작풍으로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새로운 초신성이 되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최종화가 기대된다며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수고하셨어요, 백토!"


"너도 고생 많았어, 뽀끄루."


촬영 내내 살벌하게 싸워대던 모습은 그저 연기였을 뿐. 우리는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 받으며 마냥 행복하게 웃고 있다.


사실, 백토는 모모와 나에 비해 다소 늦게 극에 합류했다. 원래 주연급 마법소녀는 주인공인 모모 뿐이였지만, 윗선의 부추김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PD님의 변덕이였는지 약간의 시나리오 변경과 함께 새로운 주역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딱히 갈등 같은게 있진 않았고 오히려 모모와 나는 백토랑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친해졌다. 캐릭터로서도 조금 늦게 합류한 것 치고 제법 인기가 많았고, 나름대로 주역 자리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게 되었으니.


"오늘 맞은데는 괜찮아?"


"말도 마요~ 여태 어택 중에 제일 아팠다니까요? 백토가 저한테 뭔가 감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최종장, 그 중에서도 마지막화를 앞둔 촬영이였다. 당연히 여태까지의 전투 장면 중 손꼽히게 격렬한 액션이 나왔고, 그에 따른 후유증도 굉장히 강했다. 물론 백토가 나한테 악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름 제 딴에선 실없는 농담이라고 던진 것 뿐.


"미, 미안... 아프게 하려던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기합이 많이 들어갔나봐... 혹시 아직도 많이 아파...?"


"... 농담이에요~ 벌써 다 나았는걸요~"


아 역시. 이건 언제 보더라도 귀엽다. 모모와 내가 백토와 빠르게 친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맡은 배역이랑 달리 평소 성격은 이 정도로 순수하고 소녀스럽지 않은가. 비록 어택은 많이 아프지만서도 이런 모습을 보다보면 금세 고통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도 자주 받는다.


"정말? 난 엄청 걱정했단 말이야!"


"... 근데 정말로 괜찮아...?"


만일, 백토가 토끼 그 자체였다면 지금쯤 손에 털이 묻을만큼 무지막지하게 쓰담아주고 있었으리라. 격려 반 진심 반으로 모모랑 얼마나 오랫동안 해왔는데, 당연히 괜찮다며 받아줬다.


"아, 그러고보니 모모는?"


"마법소녀는 영원히 미성년자라 술 마시면 안된다더라고요~ 그 전까진 마셨으면서..."


"엩"


그러고보니 왠만해선 뒷풀이에 참석하던 모모가 오늘따라 유독 보이지 않는다. 불참하면서 댄 이유가 정말 모모답다면 모모다워서 딱히 뭔가 의심이 가는 부분도 없었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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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화인가..."


백토와의 뒷풀이가 끝나고 그 다음날. 대기실에서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며 회차들을 세어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1화가 방영 된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 최종화의 촬영을 앞두고 있는 상태.


'... 조금이라도 덜 아프면 좋을텐데.'


알고 있다. 나는 애초에 악역으로서 만들어진 존재고, 거기다 대마왕. 소위 최종 보스라고 부르는 존재가 아니던가. CG도 없이 물리적으로 전투 장면을 촬영하는 그 특성상, 언젠가 처분에 가깝게 최후를 맞이할 것은 자명한 수순이였다. 지금은 그저 각오한만큼 적어도 흔들리지는 말자라며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이다. 단지 한가지 걸리는거라면, 필연적으로 모모나 백토가 파이널 어택을 날리게 될 것이다. 행여나 그녀들이 그것으로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을까? 그 부분만이 제일 큰 걱정거리였다.


"뽀끄루, 있어?"


"네! PD님!"


메인 PD님이 나를 불렀다. 촬영 방식이 이렇게 잔혹하니, 메인 PD님도 나를 무섭게 대하진 않을까 싶으면서도 지금까진 딱히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태프진 사람들 중에선 제일 나를 상냥하게 대해줬고, 지금은 내가 몇 안되게 진심으로 따르는 인간들 중 한명이다.


"자, 여기 이번 화 대본 가져왔어."


"우와! 직접 대본까지 가져다주시다니, 감사해요!"


"아니야, 지금 이게 이렇게까지 시청률이 높은 것도 다 뽀끄루 덕분인데 뭘. 하하."


뭐, 후속작이라도 나온다면 다시 만들어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라도 하고는 일단 생각한 것들을 접어두고 대본을 펼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인데 최선을 다 해야하지 않겠는가.


'...?'


그렇지만, 이번 대본은 정말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항상 없었다지만 이번엔 정말로 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내용들이다.


"이제 슬슬 임팩트 있는 장면이 나와야 되잖아? 그래서 한번 생각을 해봤거든?"


"동료의 희생으로 각성하는 매지컬 모모!라는 느낌인데, 괜찮지 않아?"


"저... PD님...?"


안돼.


"모모를 지키기 위해 백토가 대마왕의 강력한 공격에 당하고!"


"PD님...?"


제발.


"백토의 숭고한 희생으로 시청자들이 슬퍼할 때..."


"PD님?"


이것만큼은.


"백토의 영혼이 모모를 위로하고 떠나면서 모모가 빡!하고 각성하는거야~"


"PD님!"


더 이상은...


"...? 왜? 뭔가 이상한게 있어?"


"네! 왜 제가 백토를 죽여야 하는거에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시리즈가 분명 참신한 클리셰 파괴로 화두에 오른 것은 맞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파괴하지 않고 지켜져온 클리셰가 있었다. 바로 악역이 선역 캐릭터를 죽이지 않는 것. 적어도 이것만큼은 깨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왜냐니? 알고 있는거 아니였어?"


"대충 짐작은 가지만요!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이미 엑스트라들은 선역이든 악역이든 수 없이 파괴하며 촬영한 것이 이 애니메이션 아니였던가. 그래도, 백토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굉장히 억지스러운 논리라도 한번만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고, 결국 본심은 그거였다.


"뭐가 아닌데?"


"... 한번만, 한번만 다시 생각해주세요..."


시큰둥한 PD의 반응에 기가 한참이나 꺾였지만, 제발 한번만 다시 생각해달라며 울먹이면서까지 설득을 해봤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너희를 만들었고, 너희들은 무조건 대본에 적은대로만 해야 해. 이미 알고 있는거였잖아.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해왔잖아. 근데 이제 와서 이것만큼은 안되는 이유가 있어?"


분명 다른 인간들처럼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하진 않았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나긋나긋하게 이유를 캐물으며 반론할 뿐이였고, 오히려 나는 이 모습에서 여태까지 인간들에게서 봤던 모습들 중 제일 강렬한 공포감을 느낀 채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 대충 이해했나보네. 이건 명령이야 뽀끄루. 대본대로 해."


그 말을 끝으로 겉치레 뿐인 수고하라는 말만 툭 던지고는, PD님은 대기실을 나갔다. 나는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본을 끝까지 읽고 연습하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되는 것이 바이오로이드의 기본 법칙이였다. 복잡한 감정들을 떨쳐내지 못한 채로, 그렇게 촬영 시간이 되자 나는 촬영장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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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토...?'


그렇게 촬영을 강행하고 내 눈 앞에 보이게 된건 그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참상뿐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뒷풀이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던 백토는 지금 그들이 짠 시나리오에 의해, 내 손으로 죽임을 당한 채로 바닥에 널부러져있다.


당장이라도 촬영도 내팽겨치고 아직 살아있을거라, 그렇게 현실부정을 하며 백토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들의 명령을 따라야 했고, 행여나 NG 판정이라도 나는 날엔 또 다시 만들어진 백토를 또 다시 내 손으로 죽이는 꼴만 반복될게 뻔했다. 차라리, 우선 차라리 이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보자는 생각이 잠시나마 머릿 속에 강하게 자리잡았다.


흔들리는 동공을 최대한 진정시키려는 그 찰나에 잠시 모모를 쳐다봤을 땐, 모모의 반응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모모의 눈은 백토와 나를 향하지 않았고, 마법봉을 쥐고 있는 손은 연기라기보단 진심에 가까울만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머릿 속에 새로이 자리잡은 생각은, 모모도 백토도 분명히 나를 원망하고 있을거라는 불안감이였다.


잔혹한 참상이 펼쳐진 후엔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백토의 영혼이 모모를 위로하며 떠나는 장면까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만 들어있던 씬들의 촬영이 끝났다. 소름 돋을만큼 조용했던 몇 초간의 침묵을 깨고 이 참혹한 시나리오를 끝마치기 위해 모모가 내뱉은 한 마디는 이랬다.


"... 각오하세요, 이번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에요! 뽀끄루 대마왕!"


진심인지, 아니면 연기인지. 이젠 모든게 헷갈리기 시작하지만 연기일 것이라 믿고 나 또한 모모의 대사를 받아쳤다.


"먼저 떠난 네 동료의 곁으로, 빠르게 보내주마!"


이미 이 대사를 뱉을 때 즈음의 내 속마음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상태. 더 이상 무어라 하나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만큼 무너져 있었다. 지금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머리를 비운 채 전투 장면을 쭉 촬영했다. 촬영이 거의 끝나갈 즈음엔 모모의 파이널 어택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끝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하자 비워졌던 머릿 속이 온갖 잡생각들로 채워진다. 정말 머리가 아파 올만큼.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기계다. 물론 바이오로이드는 일반적인 기계라고 치기엔 다소 다른 존재라지만 적어도 우리를 만들고 소비하는 인간들은 그냥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신세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들이 걷히고 난 뒤, 어쨌든 백토를 죽인 것은 결과적으로 내가 맞지 않는가 라는 생각에까지 닿아버렸고, 나는 더 이상 머릿 속을 비울 수가 없게 되었다.


미안해요, 모모. 미안해요, 백토. 거스를 수 없었어요. 이번에도 여러분을 상처 입히게 되었어요. 분명 제가 원망스러울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벗어나려고 시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상처 입히고 괴롭히는 장면만이 되풀이 될 뿐이라. 여러분을 괴롭게 만드는 장면만이 반복되고 있어요. 다음 시즌에도, 다음 화에도, 저는 계속 여러분을 상처 입히게 될 거에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 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아, 


아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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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끄루! 너 괜찮아?"


"... 앗, 네! 사장님! 듣고 있어요!"


"그래, 어디 아프거나 피곤한건 아니지?"


"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렇지, 지금은 다른 이야기 중이였지. 왠지 모르게 떠올랐던 고통스러운 기억 회상에서 벗어나 다시 원래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야기가 뭐였냐면... 백토가 복원되었고 나는 기쁜 나머지 백토에게 달려들었지만, 백토의 성격 조율이 이상하게 되어있어 자신의 배역이 진짜라고 믿고 있다. 그런 나머지 백토는 내가 정말 대마왕이라 생각해서 공격하려 했고 나는 그런 백토를 피해다닐 수 밖에 없다가 어찌저찌 오르카 호에 합류했다. 지금은 백토를 합류시키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 하던 참이다.


"응. 그래서 말인데, 지금 백토랑 말이 안 통하잖아? 그럼 백토를 진정시킬만큼만 공격할 수는 없는거야?"


상식적으로,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을 법하고 이해 못할 질문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 안돼요..."


나는 할 수 없다.


"안돼요..."


할 수 없었다.


"... 그것만큼은 안돼요..."


그 날 백토를 내 손으로 죽이고 후속작 촬영을 위해 다시 복원 되었던 백토를 또 다시 공격하게 되었을 때, 나는 백토를 절대 공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설령 내가 백토에 의해 죽게 된다고 한들.


"... 제발..."


이번엔 부디, 그런 다짐이 깨지지 않게하고 싶었기에. 난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사령관의 의견을 만류했다.


이번엔, 이번만큼은 뭔가 다를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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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킨이나 이벤트에서 풀린 설정이랑 링크 건 작품의 타임라인을 섞으면서 헷갈렸을 사람들을 위한 내 딴에서의 해설 : [시즌 1 백토(소설/만화 원작 시점) - 시즌 2 백토(중간) - 다시 복원 된 백토(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