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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이 잠에 빠져들 수 없는 밤이었다. 어떻게 잠들 수 있단 말인가. 파스칼은 자신의 뒤에 누워있는 바이오로이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고개를 돌리고 몸을 등지고 있다고 해도 푹신한 침대의 매트리스 너머로 전해지는 그것의 존재는 그를 잠의 세계로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숨을 쉬는 소리, 그것이 몸을 뒤척이며 부드러운 살결이 이불을 스치는 소리, 그것의 숨에 따라서 삐걱거리며 울리는 매트리스의 소리. 그 모든 것이 파스칼의 귀를 자극했다. 시선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 그것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었던 것이 몇번이었던가. 아기는 시도때도 없이 울었다. 어떻게 프린스타운에서 울음소리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노숙자들의 분노에서 아기를 지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파스칼이 잠에 들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침대에 누운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잠들 수 있었다. 여러모로 피곤했던 것이었다. 다른 외부적 요인이 그의 수면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때는 아직 옷을 갈아입고 있던 그 바이오로이드가 침대에 눕기도 전이었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창문 안으로 보이지 않게 쳐놓은 흰색 커튼이 붉은색으로 물을 무렵의 일이었다. 파스칼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좋은 꿈이었다. 아직 그의 인생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 때의 일에 관한 꿈이었다.

 좋은 꿈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꿈에서 깨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좋은 것들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밀려닥쳐오는 것은 현실이었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순간이었다.

 만일 다시 잠에 들어 꿈을 꾼다면 그 꿈을 이어서 꿀 것 같았지만 경험상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꿈은 매번 다른 희망을 보여주었지만 현실은 언제나 똑같은 절망만을 보여주었다.

 눈을 뜬 파스칼은 아직 어둡지 않은 방을 보며 다시 잠에 들려 했다. 하지만 이른 잠을 취한 저녁은 다시 잠에 들기에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에 들려했지만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몸마저 일어난다면 다시는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등뒤의 바이오로이드. 그것의 모습은 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마치 망막에 새겨지기라도 한 듯, 조금전 본 그것의 아름다운 알몸은 눈을 감아도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갸날픈 어깨. 그 큰 가슴, 가슴 하나의 크기만큼 잘록한 허리와 그 위에 선을 그어 내린듯한 복근, 가슴보다는 못해도 이미 비현실적으로 두툼한 엉덩이와 허벅지. 그리고 그 아래로 매끈하게 내려오는 종아리. 그 몸매를 지닌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뒤에 누워있었다.

 파스칼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의 심장은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가 조금만 등을 뒤로 젖힌다면 그것의 몸에 닿을 것이었다. 그의 고간 사이에서는 무언가가 단단해지며 일직선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그의 손은 그 단단한 봉으로 향했다. 손으로 봉을 문지르고 싶은 욕구를 그는 빨래와 냄새라는 이유로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해가 졌는지 하늘은 어두워져 커튼으로는 흰색의 가로등의 빛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바이오로이드는 여러번 몸을 일으켰다. 전부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마다 파스칼은 조용히 자는 척을 했다.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신경쓰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일 그것 때문에 파스칼이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것은 파스칼이 잠에 들게 하기 위해 오히려 여러가지로 그를 괴롭힐 것이 뻔했다. 일부러 쇼파로 향한다던가 그에게 죄송하다고 말을 한다던가.

 파스칼에게 필요한 것은 무관심과 조용함 둘 뿐이었다. 그리고 파스칼이 바이오로이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도 필요했다. 등뒤의 것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잠을 자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최소한 내일 런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을 이기지 못해 잠드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몇번째가 되었을지 모르는 아기의 울음을 간신히 멈추게 한 바이오로이드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것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소리만으로 파스칼은 그것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의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 것이었다. 옷을 들추는 소리, 브래지어의 끈을 풀어 유두를 노출시키는 소리, 아기가 바이오로이드의 검갈색 유두를 빠는 소리.

 그 소리들은 하나하나 파스칼을 자극했다. 파스칼은 잠을 자는 척하면서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최소한 그의 고간 사이에 단단한 봉이 서있는한 그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바이오로이드는 잠에 들었는지 숨을 고르고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그것이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파스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자신이 지금 상태라면 잠을 자려고 애쓰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지갑과 담배를 챙긴 그는 방을 나섰다.

 카운터를 지나 건물을 나선 그는 주차장한켠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담배연기를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보이는 것은 짙은 매연의 사이로 드러난 몇 안되는 별들이었다.

 저마저도 도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가로등과 광고판, 식당의 불을 끈다면 별은 몇개 더 보였겠지. 그러나 이것이 한계일 것이었다. 아무리 도시에서 먼 시골에 간다 해도 도시에서 만들어낸 매연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이제 아무도 기업들이 배출하는 매연을 비판하지 않는 시대니까.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파스칼은 이 자리에 여름의 대삼각형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니까. 그는 그가 본 것이 달이든 별이든 해든 구름이든 아무것도 없는 칠흑의 하늘이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그에게는 마음을 가다잡으며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태울 공간과.

 차라리 진작 나올걸. 하는 후회가 그를 감싸안았다. 더위가 조금은 식은 밤에 피우는 담배만큼 정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딱딱했던 그의 남성기 역시 다리 이전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어쩌면 여기서 그대로 쓰러져 잠드는 것이 방에서 잠에 드는 것보다 편할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더 편할 것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멀리서 들려오는 벌레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차가 지나는 소리까지. 교외의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끄으응.”

 그는 기지개를 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의 몸은 여기저기가 뭉쳐있었다. 런던에 돌아가면 안마라도 받아야 하나 싶어진 몸이었다. 오늘 하루 몸에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던 탓일까. 어깨도 팔도 허리도 다리도 누구에게 맞은 듯양 움직일 때마다 쑤셔왔다.

 가만히 앉아 담배를 든 팔만 왔다갔다 하며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일이었다. 팔마저 쉬었다면 더 편했을 지도 모르지만 담배를 포기할 순 없는 법이었다. 그는 담배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파스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적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 시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는 런던 교외의 한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칼! 눈 똑바로 뜨고 길 보고 있어! 짭새들 뜨면 외치고!’

 칼. 어릴 적의 그는 그렇게 불리웠다. 파스칼의 칼. 별것 아닌 애칭이었다. 도로 표지판에 몸을 기대고 선 그는 몸에 맞지 않는 두터운 옷과 귀 부분에 솜이 붙은 헌팅캡을 쓰고 있었다. 때는 크리스마스 연휴 직후였다. 연휴가 끝나고 대부분의 상점가가 뒤늦은 휴일을 보내는 시기에 몇몇 불량배들이 한 점포를 털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한겨울에 걸맞게 하늘에서는 적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보도 위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을 남기고 양쪽에 눈이 쌓여있었다. 어느 차가 최근에 도착했고 어느차가 며칠째 길가에 세워져있는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쌓여있었다.

 그는 눈이 내려오는 짙은 회색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범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 곳에서 도둑들을 도와주고 있는 거냐고? 그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 밖에 없었으니까였다. 그가 사는 곳은 우범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런던에 관광을 온 사람들은 절대로 가지 않는 동네였다. 그곳에 들어가 지갑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테니. 런던 광역 경찰서의 경찰도 비무장 경찰들은 발을 들이기 싫어하는 곳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왜 투입하지 않냐고? 수십명에게 윤간당하고 목이 잘린 세이프티가드가 목없이 소화전에 꽂혀있는 것을 한번 보면 바이오로이드를 투입하는 것은 돈낭비라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

 그런 곳에서 사느라 파스칼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그의 가족은 이 우범지역의 범죄율을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었으니까. 파스칼의 아버지, 웨더 화이트는 갱단원이었다. 그의 동생, 네이머 화이트 역시 갱단원이었다. 파스칼의 어머니는 갱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남동생이 갱단원이었고 같은 갱에 속한 웨더 화이트와의 인연으로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파스칼 화이트의 가족관계도를 만든다면 갱단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것이었다. 그가 어릴적 친하게 지냈던 동네 형들의 부모 역시 갱단원들이었고 자신들의 부모의 일을 따라갈 것이라 모두 믿고 있었다.

 미래의 갱들. 그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다. 파스칼은 그런 사회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곳에 서서 경찰이 오나 감시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파스칼.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자신의 아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바랬던 것일까. 혹은 아무 이름이나 따다보니 우연히 수학자와 이름이 겹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는 변명을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야야! 짭새떴잖아! 길 안보고 뭘 하고 있던 거야! 병신 새끼야!’

 상점을 털던 불량배 하나가 파스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의 귀에서는 무장경찰이 부르는 호루라기 소리가 마치 귀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처럼 느껴졌다. 파스칼은 주먹에 맞고 쓰러졌고 그가 피우던 담배는 하늘로 날아갔다.

 불량배들은 서둘러 돈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달려갔고 제대로 가방의 지퍼가 잠기지 않은 탓에 돈의 일부가 하늘로 높이 날아갔다. 그것을 본 주변 행인들은 전부 길가로 달려들어 그 돈을 주워갔다. 자신들이 쓴 돈이 페이백으로 돌아올 기회였다.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들은 없었다.

 그 바람에 길이 막히게 되고 무장경찰들은 인파를 헤집고 불량배들을 쫓아야 했다. 자신들의 실수가 기회가 된 불량배들은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무장경찰들을 조롱했고 경찰들은 허공에 욕을 날려 화를 풀어야만 했다.

 경찰들이 바닥에 쓰러진 파스칼을 본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어떤 새끼들이 돈을 털어갔는지 불어!’

 경찰은 강압적이었다. 과거 런던 광역 경찰청의 경찰들이 가지고 있었던 시민에 대한 봉사정신은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 더욱이 우범구역의 빈민층의 아이라면. 그 아이는 다른 시민에 비해 더 적은 인권을 가진 것도 당연했다. 폭력을 쓰지 않은 것은 어린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겠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거기서 서있다가 억울하게 맞은 겁니다.’

 경찰에게 동료에 대해 불지 않는다. 그가 여러번 들어온 말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 머리에 박혀있을 정도였으니까. 경찰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경찰에게 정보를 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료였던 자가 주는 납탄 뿐이었다.

 ‘이거 보여? 네가 피우던 담배야. 애가 담배를 피우는 거 갖고 쪼잔하게 굴 우리는 아냐. 하지만 이거 보여? 네가 피우던 담배가 어떤 건지 알아? 마약이야, 마약. 마약이 나쁜 건 알고 있어? 얼마냐 나쁘냐면 니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감옥에서 썩어야 할 정도로 나쁜 일이야.’

 경찰은 파스칼에게 담배꽁초와 무언가가 가득 쓰인 종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에 글을 읽을 수 없었고 그 종이에 진짜로 마약 성분 분석표가 있었는지 아니면 글 못읽는 어린아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일 네가 네 동료들이 누군지 불지 않으면 너를 마약 소지죄로 빵에 넣을 수밖에 없어. 그런 걸 원하지 않겠지? 만일 네가 빵에 가면 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겠어.’

 ‘짭새들에게 동료 팔어먹지 않았다고 칭찬하시겠죠.’

 ‘아새끼가!’

 경찰이 손을 들어 결국 폭력을 가하려던 찰나였다. 심문실에 다른 경찰이 들어왔다.

 ‘뭐? 애새끼 애비가 왔다고? 창녀촌에서 핏주머니랑 씹질이라도 하고 오지 뭐 그리 빨리 왔대냐. 그냥 애새끼 보내줘.’

 심문실에서 풀려난 파스칼이 본 것은 그의 아버지, 웨더 화이트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보자마자 물었다.

 ‘짭새들에게 불었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파스칼의 몸이 괜찮은지 확인하기보다 먼저 경찰에게 무엇을 말했는지를 물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그 뿐이었다.

 ‘잘했다. 기억해. 짭새들은 네 적이고 짭새들이 널 쥐새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 짭새들은 계속해서 쥐새끼를 보내서 우리를 위협하니까.’

 파스칼이 자라온 환경은 이런 곳이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며 범죄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있었다.

 ‘칼, 이 병신이.’

 파스칼은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짭새’들에게 동료를 팔지 않았다고 칭찬을 듣기를 바랬던 것이었을까.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처럼 칭찬해주길 바랬던 것이었을까.

 ‘네가 짭새가 오는 거 보고 신호만 보냈어도 우리 얼굴이 짭새들에게 팔리지 않았을 거 아냐!’

 불량배들은 파스칼에게 칭찬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구타를 가했다. 그를 팼다. 그들에게 파스칼은 자신들을 위기에 빠트린 적이었다. 그가 경찰서에서 받은 위협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순간 파스칼은 회의감을 느꼈다. 왜 자신이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도 못하는 자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그 후로 파스칼은 발버둥쳤다. 자신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보았다. 자신을 구타했던 자들이 갱단에 하나둘 씩 들어가는 것을. 죽은 사람도 있었고 성공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파스칼은 그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독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번 뒤, 런던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그곳에서 그는 새 삶을 시작하고자 했다. 갱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삶을.

 그리고 그는 절망적인 미래사회의 평범한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상의 평균은 빈곤의 다른 말이었다. 대부분의 일자리를 바이오로이드에게 빼앗긴 사람들이 무슨 일로 돈을 벌겠는가. 고작 몇개월만에 파스칼은 모은 돈을 전부 다 써버리고 말았다.

 결국 파스칼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라고. 이미 이 가족에서 태어난 이상 그에게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떠올렸던 것일까. 파스칼은 몇개의 별이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연기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래,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양쪽의 창 밖으로는 물속을 볼 수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지만 그는 꿈속에서 그것을 스코틀랜드의 풍경이라 믿고 있었다.

 고래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을 본 그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야.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객차의 안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자 콜라를 마실 수 있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가운데 한가지만 현실적이었다. 그는 희망을 쫓고 있었다. 스코틀랜드로 가면 그의 인생이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 인생따윈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그 결말을 알고 있었다. 현실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희망과 이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먹고 위해 살아야 하는 현실을 쫓기도 바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현실이 밀어닥쳤다. 다른 곳이 아닌 위장에서였다.

 파스칼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모든 긴장을 이제와서 풀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먹은 것이라고는 차에 항상 넣고 다니는 사탕 몇알 뿐이었으니까.

 마침 파스칼의 앞에는 먹을만한 곳이 있었다. 마침 에소 호텔의 옆에는 식당이 둘 붙어있던 것이었다. 그는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무엇을 택하든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는 선택이었다. 하나는 유명 프랜차이즈 버거집이었다. 그 옆에 붙어있는 가게도 이 자리에서 오랜기간 영업해온 듯, 간판이 조금 많이 헤져 있었다.

 만일 일반 식당이 맛이 없는 곳이라면 버거 프랜차이즈의 옆에서 지정학적 독점적 지위를 활용할 수 없을테니 그곳을 방문하는 손님이 없어 금방 망하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는 것을 반복했을 것이었다.

 두 식당의 맛이 경쟁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겠지. 그는 고민을 하던 끝에 담배를 비벼끈 다음 자리에서 일어서 식당으로 걸어갔다.

 파스칼은 시계를 보았다. 저녁시간이라기에는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이었다. 이제는 저녁이 아닌 밤이라 부르는 것이 낫겠지. 식당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적을 시간이었다. 그는 창밖으로 두 식당의 안을 보았다.

 역시나 사람은 얼마 없었다. 가게에 있는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을 것이었다. 밤시간은 언제나 그랬다. 누가 이 늦은 시간에 밥을 먹으려 하겠는가. 게다가 무거운 것을 먹기에는 다음날 아침이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볍게 햄버거나 먹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파스칼은 햄버거집에 들어섰다. 햄버거가 뭐가 가볍냐고? 그야 옆 가게는 버터에 구운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파는 가게였으니까. 상대적 가벼움이었다.

 가게의 여러 테이블 중 사람이 앉아있는 것은 두 테이블에 불과했다. 한 테이블에서는 한쌍의 커플이 꽁냥대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는 휴가를 나온 듯한 군인이 앉아있었다. 파스칼은 두 테이블에서 거리가 있는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계산대의 위에 메뉴판에는 수많은 메뉴가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선 그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그곳에 서있는 종업원은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였다. 흔히 만들어진 PECS의 염가형 바이오로이드였다.

 “포티와퍼 하나 주세요.”

 “세트로 드릴까요?”

 종업원의 말에 파스칼은 조금 망설였다. 그렇게 많이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막상 감자튀김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피쉬 앤 칩스는 영국인의 혼과 같은 음식이었고 피쉬는 아니더라도 칩스가 있는게 거절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네, 세트로 해주세요.”

 “음료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콜라로 주... 아니다. 엘븐밀크쉐이크로요.”

 “네, 알겠습니다. 포티와퍼 세트로, 음료는 엘븐밀크쉐이크로 변경. 맞으시죠?”

 “네.”

 “12.35파운드 되겠습니다. 포티와퍼 세트 하나! 음료는 밀크쉐이크로 변경!”

 또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밀어닥치는 순간이었다. 햄버거 세트, 그것도 가장 기본 햄버거가 들어간 세트가 이 가격이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계산을 마친 파스칼은 자리로 돌아와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밤중에 창밖에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밖이 아닌 창에 비친 안의 모습이었다. 남녀커플은 꽁냥거리다 못해 남자가 여자의 고간으로 손을 넣는 것이 보이고 있었고 그 모습을 군인은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파스칼은 애써 안이 아닌 바깥을 보려 했지만 밖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속도로를 간혹 지나가는 얼마 안되는 차들 뿐이었다. 이런 시골에 볼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나무와 들판과 밭, 그 사이에 난 도로와 그곳에 달린 집들 뿐이었다.

 “주문하신 포티와퍼 세트에 엘븐밀크쉐이크로 음료 변경으로 해서 나왔습니다!”

 종업원의 말에 파스칼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 쟁반에 놓인 햄버거를 가져왔다. 포장지에는 귀여운 그림체로 왕관을 쓴 포티아가 그려져 있었다. 그 포장지를 젖힌 뒤 파스칼은 버거를 한입 먹었다.

 뭐, 언제나 그렇지. 파스칼은 계산대 뒤의 주방을 흘깃 바라보았다. 한기의 포티아가 있었지만 그 포티아의 손에는 화염분사 건틀릿이 달려있지 않았다. 홍보는 화염분사 건틀렛의 고화력으로 직화구이 패티를 만든다고 홍보를 했지만 원가 절감을 이유로 대부분의 가맹점에서는 건틀릿은 사지 않고 일반 그릴을 가져다두고 그것으로 굽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런식으로 일반 그릴로 굽는다고 맛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먼 옛날에는 그릴로 굽는 버거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원가절감을 위해 본사 방침도 따르지 않는 업소가 패티에 신경을 썼을까. 야채에는? 번에는? 조금씩 원가절감을 한 결과는 전반적인 문제로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손님이 적은 교외의, 그것도 호텔의 앞에 딸린 가게라도 그렇지 도저히 맛있다고 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냥 싸구려 햄버거나 다름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못먹을 맛은 아니었다. 프랜차이즈가 무엇인가. 아무리 못해도 어느 정도의 맛은 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배고픈 배에 넣기에 부족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배가 고팠기에 그는 꾸역꾸역 먹을 수 있었다. 햄버거를 반정도 먹은 그는 햄버거를 내려놓고 감자튀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엘븐밀크쉐이크에 찍어먹었다. 최소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엘븐밀크쉐이크는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아니, 어딜가도 이 맛이지만.

 파스칼이 감자튀김을 하나씩 찍어먹고 있을 때였다. 창밖을 보고 있던 그는 낯익은 무언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입고있는 옷도 낯익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밖을 지나간 그것은 파스칼이 데려온 그 바이오로이드였다.

 그 바이오로이드는 파스칼을 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와 파스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제야 그는 떠올렸다. 자신이 나올 때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이 방을 나올 수 있는 것도 당연했다. 용케도 파스칼이 있는 곳을 찾아왔다. 아니면 그것 역시 배가 고팠던 것이었을까. 그러고보니 파스칼이 사탕이라도 먹을 동안 그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뭐 하나 너도 먹어. 배가 고팠지?”

 그렇게 말한 파스칼은 햄버거를 집고 한입을 먹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주문하러 가는 대신에 멍하니 파스칼이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차차. 돈을 안줬구나. 여기 카드 줄 테니까 계산대 가서 주문 해와. 주문은 할 줄 알아?”

 바이오로이드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파스칼이 내민 카드를 받아 계산대로 조용히 걸어갈 뿐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계산대의 종업원 바이오로이드는 주문하러온 바이오로이드를 보자마자 그것이 바이오로이드임을 알아챘다.

 “여기서 드시게요? 좋으신 분이네요. 바이오로이드에게 와퍼도 사주시고요... 이제 아니지.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종업원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웃는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

 바이오로이드는 말이 없었다. 종업원은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그것은 아기를 안고 있었고 그것의 티셔츠의 가슴 부분은 젖어있었다. 그것의 유두가 있을 법한 곳이었다. 종업원은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았다. 자신의 눈앞의 바이오로이드는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이 치즈포티와퍼는 어떠신가요? 요즘 잘 나가는 건 콜라보 상품인 레나 더 와퍼지만 양도 많고 우리끼리 말이지만 영양가 있는 재료는 그리 많진 않거든요. 죄다 단백질만 들었어요. 뭐 그게 메인인 상품이지만요. 이 치즈포티와퍼는 야채도 많은 편이고 치즈가 들었어요. 유제품이잖아요. 잘은 몰라도 우유로 만들었으니 모유수유에도 좋겠죠.”

 근거는 없는 말이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정액의 양과 질이 좋아진다는 1차원적인 연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메뉴를 추천받은 것에 대한 대답이 뿐이지만.

 “그럼 치즈포티와퍼 세트 하나로 해드릴까요?”

 바이오로이드는 다시 끄덕였다.

 “계산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바이오로이드는 잠시 놀랬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를 보더니 그 카드를 내밀었다.

 “12.35파운드 되겠습니다. 치즈포티와퍼 세트 하나! 잠시만 기다리시면 주문하신 상품 드릴게요.”

 기다려달라. 그 말에 바이오로이드는 자리에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종업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 역시 바이오로이드였고 그런식으로 서있는 바이오로이드는 항상 보았으니까. 모두 그것의 주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밥을 먹는 동안 옆에서 서있게만 하는 주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같이 마주해 먹는 사람이 희귀할 정도였다.

 “주문하신 치즈포티와퍼 세트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갓 만든 햄버거가 올려진 쟁반을 종업원이 내민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쟁반을 받아들고 파스칼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치즈포티와퍼? 그거도 맛있지.”

 그리고 비싸지. 파스칼은 조금 손해보는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정 싼 것을 먹이고 싶었다면 직접가서 골라주는게 나았을 테니. 어찌되든 결국은 그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두 메뉴의 가격차이는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게다가 파스칼은 밀크쉐이크로 음료까지 바꾸었으니 결국 그게 그거겠지.

 “먹어. 버거는 따듯할 때 먹어서 끝까지 따듯한 게 제일이야.”

 파스칼은 어느새 포티와퍼를 다 먹고 남은 감자를 밀크쉐이크에 찍어먹는 중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버거를 집어들어 포장지를 젖혔다. 약간 축축해져 쭈글쭈글한 번의 사이에 패티와 치즈가 보였다. 살짝 녹은 치즈는 패티 위로 가라앉아 패티를 붙잡고 있었다.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며 바이오로이는 작은 입을 벌려 한입 베어물었다.

 “맛은 어때?”

 파스칼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거나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이오로이드는 그의 예상밖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의 뺨에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만이었는가.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던 것이. 그것은 음식이란 무엇인지를 잊고있었다. 그것에게 음식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 그것의 주인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터니티 자신이 먹는 음식의 맛이 어떠하건 소화할 수 있는 무언가이기만 하면 충분했다.

 아무리 토나오는 냄새라도, 아무리 구역질이 나는 맛이라도 그것은 먹었다. 냄새도 맛도 식감도 론 브래드버리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것 자신만 참으면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도 론 브래드버리를 위한 젖이 나오니까.

 그래서 잊게 되었다. 맛이란 무엇인지. 향이란 무엇인지. 식감이란 무엇인지. 맛있다라는 것 자체를 잊었다. 그것을 떠올린다면 정신이 버틸 수 없었으니까. 행복이란 그것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론 브래드버리를 위해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 안에 이터니티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터니티는 바이오로이드였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위해 존재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이터니티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설령 자신의 목숨, 아니 목숨은 싼 것이었다. 남은 수명을 고통속에서 보낸다 하더라도 바이오로이드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었다.

 포기란 무엇인가. 포기란 망각이었다. 잊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이었다. 이터니티는 행복을 포기했다. 행복을 잊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떠올리지 않았다. 행복이란 이터니티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터니티는 행복을 맛보고 말았다. 그것의 혀에 감도는 소고기의 육즙과 짙은 향의 치즈는 입안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치즈버거는 살기위해 먹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이터니티는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잊고있었던 맛이었다. 진짜 음식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데우기만 한 역겨운 무언가가 아닌, 사람에게 팔기 위한, 돈을 주고 살만한 음식이었다.

 이터니티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을 먹어본 것이 얼마만이란 말인가. 먹으면서 한번도 헛구역질이 나오지 않은 음식이 얼마만이란 말인가. 재료가 원 모습을 가지고 만들어진 음식이 얼마만이었는가.

 이터니티는 다시 한입 버거를 깨어물었다. 폭신한 위아래의 번 사이로 짓이겨진 패티에서는 육즙이 터져나와 그것의 붉은 입술을 적셨다. 치즈가 붙은 패티는 그것이 살짝만 씹어도 작은 고깃조각으로 부서졌다가 치즈로 인해 다시 입속에서 뭉쳤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씹자 새로운 육즘과 치즈향이 입안을 메웠다. 기름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것이라니.

 울음으로 떨리는 숨으로 인해 그것은 씹은 버거를 삼킬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눈을 감고 계속해서 버거를 씹었다. 씹고 씹고 또 씹었다. 그렇게 많이 씹었지만 패티에서는 여전히 육즙이 나왔다.

 이터니티는 버거를 내려놓았다. 입안의 버거를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마셔야 했다. 그것이 집어든 것은 컵에 담긴 콜라였다. 빨대를 문 그것은 콜라를 빨아들였다. 탄산으로 가득한 콜라는 그것의 입속을 헹구었다. 볼 안쪽과 혀에 탄산의 자극을 남긴 콜라는 입속의 버거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입안에서는 이제 콜라의 향만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버거의 패티에서 나오는 스모키한 소고기향과 치즈의 맛은 나지 않았다. 이터니티는 그 맛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길 수 없었다. 다시 그 맛을 느끼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다시 버거를 깨뭉었다. 그것의 입속에서는 다시 육즙의 파티가 열렸다. 그 맛에 감격한 이터니티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것의 어깨는 울음에 들썩였다. 그것의 숨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의 눈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터니티에게 울음은 슬픔이었고 울음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터니티는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뻐서 울음을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고작 버거 하나로 무슨 감격의 눈물을 흘리냐.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터니티는 그것조차 감격일 몇개월을 보냈다.

 그것은 버거를 계속해서 먹었다. 그 감동적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남은 치즈버거를 다 먹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맥히는 목을 콜라로 뚫은 그것은 이제 감자튀김을 집어먹었다. 조금은 눅눅해진, 그러나 아직 끝부분은 바삭함을 남기고 있는 프렌치프라이였다. 그것조차 이터니티는 맛있게 먹었다. 치즈버거의 감동보다는 덜했지만 사람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네달만의 일이었다. 눈앞의 파스칼이 맛없다 생각한 포티와퍼에 치즈만 올라갔을 뿐이지만 이터니티에게 이것은 천상의 맛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음식을 다 먹은 이터니티는 손가락에 묻은 소스와 기름을 다 빨아먹고는 이제 그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먼저 식사를 마치고 있던 파스칼은 입에 담배를 물고 울고있는 이터니티를 보며 안쓰러운 얼굴을 지었다.

 이터니티의 울음소리는 가게안에 퍼져나갔고 호텔에서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질까 이야기하던 커플과 휴가복귀를 걱정하는 군인, 그리고 할 것 없이 잡담을 하던 두 바이오로이드는 우는 이터니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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