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61060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66740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75115

4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78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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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들은 사령관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 태어나기를 인간을 위한 도구로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거역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이그니스의 전례도 있었기 때문에 레모네이드들은 더더욱 사령관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였다. 지금까지는 제법 잘 먹혀들어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관은 지휘만을 했을뿐 전장에, 그것도 최전선에 나섰던 적은 없었으니까. 사령관이 전선에 나서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레모네이드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과감했다.


전투가 지속되자 AGS와 바이오로이드 가릴 것 없이 사령관의 존재를 깨닫고 멈추기 시작했다. 사령관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침묵의 파문은 어느새 전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멈춘 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가면을 벗었다.


경악의 술렁임이 울려퍼졌다. 더러는 기절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바이오로이드도 있었다. 사령관은 탈론 페더, 유미, 에이다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일련의 과정은 한마디의 대화도 오가지 않는 침묵속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두들 사령관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유미는 짜릿함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묵직하고 통쾌한 한방, 판을 뒤집는, 사령관의 선전포고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촬영하는 영상이 제대로 송출되는 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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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는 차분했다. 

알래스카 사태때 정예 AGS의 대부분을 잃고, 저격으로 시작한 이 '오메가 사냥' 으로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었던 피해였으니까. 사령관의 최전선 투입과 최후의 인간임을 선언하고 바이오로이드들을 흡수하기 시작한 지금의 사태는 예상 밖이었지만 그녀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왜?"


지금 이 싸움은, 소모되는 병력들은 실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사령관 하나만 잡는다면 끝나는 전장이었다. 바이오로이드 노예 계집 들의 치맛자락 안에 숨어 있기만 하면 될 '사령관' 이라는 녀석이 왜 굳이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지 오메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메가는 전세계로 송출된 사령관의 영상을 다시 재생하였다.


"...는... 유일하게 남은 인간, 철충들에 맞서는 오르카호 저항군의 '사령관' 이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데 바이오로이드와 AGS의 정당한 주인이며 해방자이고 너희들의 동반자다."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카메라도 그에 맞춰 사령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차도록 클로즈업 하였다. 오메가는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저렇게 뻔뻔하게..."


뒤로 이어지는 얘기는 별다를 것은 없었다. 이렇게 싸울 의미가 없다, 자신은 모두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싸움을 원치 않는다면 돌아가거나, 오르카호에 합류해 주기를 바란다는 식의 뻔하디 뻔한 가식이었다. 오메가는 사령관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었다. 사령관은 덤덤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오메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남자에게서 끓어 오르고 있는 무서울 정도의 분노를. 오메가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사령관이라는 남자가 이렇게 전면으로 나선 것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조급함과 분노의 도발. 오메가는 사령관이라는 남자가 아주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나올거라면 오메가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은 어울려줄 의향이 생긴 오메가는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는 병력들을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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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불굴의 마리의 얼굴은 무표정하였지만 토모와 그녀의 친구들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분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수복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사령관은 애써 마리의 시선을 피하고는 최대한 빠른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성공적이긴 합니다. 대부분이 투항하거나 흩어졌으니까요. 그리고 각하의 무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 결과가 좋으니 다 좋은거 아니겠어?"


사령관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로 말하였지만 마리는 그 가면 아래 표정까지 하나하나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각하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각하가 단순히 분에 못이기셔서 자신의 지위도 망각한 채 전선에 나서실 분은 아니시니까요."


"마리, 말이 너무 따갑네."


사령관이 웃으며 말하였지만 마리는 웃지 않았다. 마리는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진중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사령관은 말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마리를 바라보았다. 가면 아래 억지로 지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마리가 사령관을 향해 걸어오며 말하였다.


"깊은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각하께서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불안해집니다..."


사령관은 마리의 말에 문득 콘스탄챠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마리의 손을 감싸쥐었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사령관의 머리에서 스멀 스멀 피어 올랐다. 그러던 순간 사령관의 귓가에 다시금 총성이 울려퍼졌다. 불안감과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직도 그 뜨거움이 가시지 않은 분노가 다른 모든 잡념들을 태워버렸다. 사령관은 마리의 손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걱정하지마."


사령관이 다른 한 손으로 가면을 벗고 마리에게 활짝 웃어보이며 말하였다.


"마리 말대로 다 계획이 있으니까 말이야."


마리는 사령관의 미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었다. 그녀는 사령관과 맞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사령관의 손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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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점점 더 최전방에 서는 일이 많아지더니 이제 거의 모든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부터 전투는 더더욱 수월해졌기 때문에 사령관이 나서는 곳은 사실 별다른 전투도 없이 끝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오메가의 직접 명령이나 코드 삽입을 통한 격렬한 저항이나 투항하는 바이오로이드나 AGS 사이에 섞인 암살 시도 같은 경우도 있었으나 전부 사령관의 호위 인원들이나 사령관 개인의 무력 선에서 제지되고는 하였다. 맨 처음 호위에서 전투로 임무가 전환되었던 바이오로이들은 사령관의 최전선행에 오히려 기뻐하는 눈치였다, 같이 옆에서 싸운다면 기존의 호위 임무와 별반 다를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지휘관 개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사령관이 단순히 미쳐 날뛰고 싶어서 전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이었다. 사령관은 일개 전투원이 아닌, 말 그대로 그들의 사령관이면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지휘관 회의에서 모두들 사령관의 참전을 멈춰줄 것을 피력하였지만 사령관은 그 어느때보다 완고하였다. 


거듭된 승리와 가시적인 성과에 브라우니들 사이에서는 '무적의' 라는 수식어로도 모자라 그냥 '무적-사령관' 이라는 별명이 공공연연히 사용될 정도로 오르카호는 그 어느때보다 고양되어 있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령관 역시 그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사령관은 이제 아예 잠을 자는 일이 없어졌다.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을 때 마다 LRL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들었을리 없는 총성이 귓전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진 참치캔이 아른거렸다. 먹는 약의 양이 점점 늘어났고 의료진과 기술진을 모아놓고 회의를 갖는 시간이 늘어났다. 쉴틈 없이 밀려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착용하고 있는 가면은 쓰는 시간보다 벗고 있는 시간을 재는게 더 빠를 정도가 되었다. 알바트로스와 양분해서 처리하던 데이터들은 어느샌가 사령관이 혼자 처리하게 되었다. 누가봐도 알 수 있었다. 사령관은 자기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 넣고 있었다.


"오메가는 없고 나한테만 있는게 뭐라고 생각해?"


열띈 지휘관 회의에서 대뜸 사령관이 지휘관들에게 질문하였다. 맥락 없는 사령관의 질문에 다들 꿀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고 사령관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령관은 간만에 가면을 벗어 내려놓고는 지휘관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뭐긴 뭐야 바로 너희들이지."


사령관의 실없는 소리에 긴장이 풀린 지휘관 회의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웃음이 피어났다. 사령관도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것이 사령관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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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말하시오 로크."


무적의 용이 서슬퍼런 목소리로 로크를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에 올라간 손은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이 움찔거렸다. 로크는 일말의 동요도 없는 차분하고 냉혹한 목소리로 무적의 용에게 맨 처음 했던 말을 반복하였다.


"다시 말해드리죠, 각하께서는 일전의 전투에서 모든 아군 병력들을 후퇴시키기 위해 아머드 메이든과 최후미를 방어하시다 아머드 메이든까지 퇴각시키신 후 오메가 측 AGS에 포획되어 지금 실종상태이십니다."


무적의 용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격노하며 로크에게 일갈하였다.


"각하의 경호원이라는 자가 그딴 태도로 말할 처지라고 생각하는건가 지금!"


무적의 용의 분노에 찬 고함에 로크는 잠시 침묵하였다.


"저야 별 수 없지요, 각하의 명령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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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내로 끝내는게 목표인 데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