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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그의 옆에 앉아 열심히 참치캔을 까먹는 LRL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LRL은 뭐 그런걸 물어보냐는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흘러내려 입에 들어가기 직전인 LRL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사령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들판의 풀들을 넘기며 파도소리를 만들어냈다. 파란 하늘에 듬성 듬성 뿌려진 흰 구름이 천천히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참치를 다 먹은 듯 LRL은 빈캔을 내려놓고 만족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숙여 사령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령관도 LRL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새하얀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안대까지 벗고 있는 LRL은 싱긋 웃어보였다. 사령관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100년을 기다리며 홀로 등대를 지키던.

고독과 두려움에 지쳐 책속으로 도망치던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소녀가 앞에 있었다. LRL은 치마에 묻은 잔디들을 털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사령관의 질문에 LRL은 뒤돌아 웃기만 할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사령관은 덜컥 가슴에 내려앉는 불안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 하였다. 그러나 무엇인가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탓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사령관은 자신의 팔목을 붙잡은 새하얀 손을 보았다. 뼈를 깎아 만든 듯한, 섬뜩할 정도로 창백한 그 팔에는 붉은 색의 눈알 몇개가 박혀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창백한 팔에 붙들린 손목부터 시작된 날카로운 차가움과 시린 고통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손목을 잡아 끄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사령관의 몸을 짓누르자 그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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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제발 눈 좀 떠보세요..."


리리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사령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황급히 사령관의 손목을 잡았다. 미약하지만 맥박이 뛰고 있었다. 사령관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이자 느리고 얕게 펄떡이는 심장소리가 그녀의 몸을 타고 퍼져나갔다. 리리스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사령관의 손을 꼭 붙들며 말하였다.


"주인님 제발...착한 리리스가 될게요, 제발 저를 떠나지 마세요...너무...너무 무서워요..."


격전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그녀의 기백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먼지 하나 묻지 않았던 그녀의 옷이 사령관의 피로 얼룩졌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답 없는 주인의 모습에 할말을 잃어버린 그녀는 마치 고장난 것 처럼 연신 '주인님...' 만을 중얼거리며 사령관의 손을 붙들고 하염 없이 울기만 할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명령을 어긴 자신을 꾸중해야 했다. 

실망하고 미워하고 버림 받아 평생 먼 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해도 좋았다.

그저 나의 주인이 눈을 떠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리리스는 붙잡은 손을 있는 힘껏 움켜 잡았다.


"아파..."


금이 간 가면 아래로 들려오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리리스는 화들짝 놀라며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우는 사령관을 허둥지둥 부축하며 리리스는 황망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몇번 앓는 소리를 내더니 그때까지도 자신의 손을 놓고 있지 않는 리리스의 손을 보았다. 당황한 리리스가 손을 떼려 하자 사령관은 양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사령관의 중얼거림에 리리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령관에게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명령을 지켜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사령관은 말 없이 맞잡은 리리스의 손을 엄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리리스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주인님 나쁜 리리스라고 미워하시고 저를 버리셔도 할말이 없어요. 하지만 너무 무서웠어요, 혹시라도 주인님을 잃을까봐 영영 못보게 될까봐...그래서 주인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어요..."


"기뻐."


사령관의 말에 리리스는 순간 사고가 멈춰버린 멍한 표정이 되었다. 사령관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리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리스는 멍하니 사령관의 손을 잡고 사령관이 당기는 힘에 끌려 일어났다.


"리리스 스스로 결정한거잖아? 나는 기뻐..."


사령관이 말할때 마다 가면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가까이 다가와 사령관을 살펴보려는 리리스를 제지한 사령관은 뒤돌아 가면을 벗고 기침과 함께 피를 뱉어내고는 다시 가면을 썼다. 몇번 숨을 고른 사령관이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에 닦아 내고는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힘들었을텐데..."


평소였다면 사령관에게 달려들어 힘껏 안겼을 리리스였지만 지금의 사령관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묘한 이질감과 불안함이 피어올라 리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불안감에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키며 사령관에게 리리스가 질문하려던 찰나 사령관이 먼저 리리스에게 질문하였다.


"오메가는?"


사령관의 질문에 리리스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오메가의 것이었던 듯 한 케스토스 히마스의 잔해와 핏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오메가는 보이지 않았다. 리리스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 본 사령관은 오메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 쉽게 잡히면 재미 없지."


사령관은 리리스를 지나쳐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피는 전부 멎어 있었다.

휘청거리던 몸놀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듯하게 정돈되었다. 블랙 리리스는 불안감에 자신의 앞서가는 주인의 뒷모습에 대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려 하였지만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리리스는 그저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사령관은 리리스가 따라오지 않자 멈춰 서더니 뒤돌아서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사령관의 그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리리스의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리리스는 빠른 걸음으로 사령관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고는 밖을 향해 나아갔다.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미약한 불씨를 남긴 채로 그녀에게 남아 있었지만 지금 잠깐 동안은 무시하기로 했다. 자신의 주인을 향해 눈물 흘리며 달려오는 자매들, 그들을 웃으며 맞이하는 주인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열기를 머금고 타오르는 불안감이, 달궈진 가시처럼 파고들며 그녀의 마음을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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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미친놈..."


오메가가 넋이 나간 상태로 중얼 거리며 말하였다. 미친놈이라는 말 외에는 저 사령관이라는 남자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분하지만 그녀는 인정해야했다. 자신이 사령관을 너무나도 과소평가 했다는 것을.

오르카호의 전력을 얕봤다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사령관의 집착과 광기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던 것 뿐. 그렇지만 그런 사령관도 결국에는 실패했다.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생존.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바로 사령관이 실패했다는 증거였다. 오메가는 조소를 지으며 다친 몸을 끌며 그늘 속으로 숨었다.

펙스 중공업의 실질적인 수장인 자신이 어둠 속에 숨어 다니는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메가는 말 그대로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도망가지 마."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란 오메가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마리 4호기, 스틸라인의 대장이 팔짱을 낀 채 서서 오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분노도, 경멸스러운 눈초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측은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사령관이라는 작자도 그렇고 이놈들은 왜 이렇게 헛소리만 늘여놓는 걸까."


"다시 한번 말하겠다 도망가지 마라."


마리의 주변에 정전기가 일며 파편들이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에게 죽는게 그나마 가장 관대한 처사일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푸는 관용이다."


"싫다면?"


"장담하지, 너한테 있어서 가장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거다."


마리의 협박에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마리의 얼굴에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침을 뱉고는 독기를 품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죄다 미친놈들 밖에 없네.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죽이 잘맞는 건가?"


마리는 자신의 뺨에 묻은 오메가의 침을 닦아 내고는 오메가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거의 폭발음과 비슷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오메가는 주저 앉아 버렸다. 마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오메가의 앞에 앉고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려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나도 당연히 너를 찢어 죽이고 싶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게 아니라 각하를 위해서 이러는거다. 그냥 여기서 나한테 죽어라."


마리의 말에 오메가는 재밌다는 듯이 웃더니 마리를 노려보았다. 다 꺼져가던 눈빛에 다시금 표독스럽고 사악한 불꽃이 일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더욱 끝을 봐야겠는데?"


오메가의 말이 끝나자 AGS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강하해 마리와 오메가를 갈라 놓았다. 마리가 바로 반격을 개시하자 이번에는 중무장한 AGS들이 벽을 뚫고 나타났고 마리가 잠시 떨어진 사이 오메가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오메가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하였지만 어금니끼리 부딪히는 살벌한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마리의 머릿속에 아르망의 말이 맴돌았다.


"폐하는 죽습니다."


마리는 자신에게 달려들기 시작하는 AGS들을 처치하며 가까스로 아르망의 말을 떨쳐내고는 누군가에게 통신을 보냈다.


"알바트로스, 여기는 마리. 오메가를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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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습니다 왜냐? 잠을 못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