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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의외네요."


"사실 짐작 못한건 아니였지만...그래도 확실히 의외인 결과네요."


"언니들 제발...제발 부탁드릴게요 뭔지 저한테도 말해주고 대화해요."


스트롱홀드의 뒤에 숨어있던 그렘린이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아자즈와 스카디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제 더이상 적들이 몰려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로크는 하늘에서 내려와 스트롱홀드의 옆에 가볍게 착지하였다. 그리고는 아자즈와 스카디에게 질문하였다.


"뭐가 의외라는 거죠?"


"철충들을 불러 모은 신호가 의외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아자즈가 신호를 보내는 코어를 로크에게 보여주었다. 스카디의 '해킹' 에도 불구하고 내부에는 거의 손상이 가지 않은 그 코어는 신호를 보내며 점멸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 철충들을 부르던 통신은 확실히 팩스 중공업의 신호였어요. 별다른 신호 체계 없이 철충들을 자극하는데 급급한 신호였죠."


스카디가 아자즈의 말을 넘겨 받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발신자가 바뀌더니 굉장히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신호가 발신되기 시작한거죠."


"본기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군, 얘기를 들어보면 애시당초 신호를 발신하기 시작한건 오메가일텐데 어째서 발신자가 바뀐거지? 신호 체계가 바뀐 이유는?"


"좀 차분하게 숙녀들의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로크가 스트롱홀드를 진정시켰다. 


"그래서 저도 의외라는 표현을 하는거에요. 신호의 발신자를 역추적 해보니 사령관이 나왔거든요."


"아..."


스카디의 말에 그렘린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로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고는 사령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스트롱홀드가 스카디와 아자즈에게 되물었다.


"본기는 이해할 수 없다. 합당한 설명을 요구한다."


"사령관님이 철충들에게 신호를 발신해서 제어했다는 얘기죠."


아자즈가 스트롱홀드에게 말하자 스트롱홀드는 할말을 잃은 듯 침묵하더니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말 없이 떠나는 스트롱홀드의 뒷모습을 보던 로크는 기술팀들을 태우고 그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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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충들은 기본적으로 기생을 하잖아?"


통신 너머로 닥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철충들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용량을 가진 기계가 필요해."


콘스탄챠, 마리, 알바트로스는 조용히 닥터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전장의 폭음들 마저도 거의 다 가라 앉아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사령관은 그때 한번 철충에 감염된 적이 있었잖아? 기계 몸이 아니었는데도?"


닥터의 목소리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깐의 흐느낌 이후 포츈의 다독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닥터는 감정을 추스르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령관의 유전자는 철충과 '호환' 이 잘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어...거기에다가 육체 강화 시술로 골격들까지 전부 AGS급으로 바꿔버렸으니까."


"닥터..."


콘스탄챠가 닥터의 말을 끊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콘스탄챠가 다음 말을 이어간 것은 그렇게 닥터를 부르고도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였다.


"지금...무슨 말을 하시는거에요."


불길한 먹구름이 몰려왔다. 마리와 알바트로스 그리고 닥터는 콘스탄챠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였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런 막연한 생각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콘스탄챠가 뭐라도 말해줘서 이 침묵을 깨트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냐고 묻잖아요!"


콘스탄챠의 분노에 찬 고함에 닥터는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보는, 그녀의 분노에 휩싸인 모습에 마리와 알바트로스 마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통신 너머로는 닥터의 숨죽여 우는 소리와 포츈이 콘스탄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어떤 소리도 콘스탄챠의 귀에 닿지 못했다. 울려 퍼지는 듯한 이명이 점점 커지더니 콘스탄챠를 고요 속에 가두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멍한 공허 속에 콘스탄챠는 기절해버릴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를 현실로 돌려 보낸 것은 차가운 비 한방울이었다. 갑작스레 떨어진 한방울의 빗물이 그녀의 눈꺼풀을 타고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차가움에 콘스탄챠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닥터와의 통신은 끊겨있었고 주변의 모든 화면에는 사령관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펙스 회장과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처형식이 있겠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숨긴 사령관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지만 콘스탄챠를 포함한 대부분의 오르카호의 인원들은 알고 있었다. 사령관이 거짓으로 꾸며낸 목소리라는 것을. 


"콘스탄챠."


마리가 알바트로스에게 올라서며 콘스탄챠를 불렀다. 그리고는 콘스탄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콘스탄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리의 손을 잡고 알바트로스에게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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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블랙 리리스가 그의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사령관에게는 닿지 않는 듯 하였다. 사령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펙스 수장의 말라 비틀어진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사령관이 힘을 줄수록 그의 떨림이 점점 커져갔다. 손아귀 아래로 맥박이 느껴졌다. 거의 희미하게 꺼져가는 맥동이 사령관의 손을 망설이게 하였다.


"....죄송합니다..."


블랙 리리스와 사령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오자 어안이 벙벙해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바닥을 기며 사령관의 발목을 잡고 빌고 있었다.


"제발...시키는 건 뭐든 대신 할테니 주인님 만은...제발..."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울고 있었다. 그 오메가가 사령관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령관의 마음 속 무엇인가가 끊어져 버렸다. 블랙 리리스는 다급히 사령관에게 달려가 사령관의 손목을 잡아챘다. 사령관은 자신의 양쪽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블랙 리리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인님...안돼요...제가 할게요."


그녀의 주인이 해서는 안됐다. 자신이 해야 했다. 주인의 손을 더럽히기 싫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사령관은 충분히 복수의 자격이 있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그 권리는 이미 사령관을 삼켜버린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이런 식은 아니여야만 한다고 리리스는 생각했다. 사령관의 도구인 그녀가, 그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의 주인이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릴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리리스를 옥죄었다.


"리리스..."


사령관이 자신을 잡은 리리스의 손을 부드럽게 풀어내자 리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령관의 손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제발..."


오메가의 울음 섞인 부탁에 사령관의 망설임이 잠시 짙어지더니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사령관읜 리리스의 손을 뿌리치고 의식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펙스 회장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리리스는 눈을 감았다.

사령관의 흡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가죽과 살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두번 세번....

소리의 간격은 점점 짧아졌다. 한참이 지나 더이상 파열음도 들리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령관의 숨소리가 들릴 때가 되서야 리리스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피범벅으로 서있는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피칠갑을 하고 무릎 꿇은 채 황망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오메가가 있었다.


리리스는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오메가의 처지를 동정해서? 

오메가의 자리에 그녀가 있고 사령관이 죽었다면 이라는 가정 때문에?

리리스는 그정도로 박애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주인이 느끼고 있는 공허함과 상실감에 눈물 흘릴 뿐이었다.


넋이 나가 버린 오메가는 펙스 회장이었던 살점들을 주워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라도 한 것 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피와 살점들이 씻겨져 내려가기 시작하자 오메가는 황급히 흘러내리는 핏물들을 모아 담았다. 빗소리와 철퍽 거리는 물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허우적 거리던 오메가가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광기도 분노도 슬픔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타고 남은 잔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오메가가 사령관에게 말하였다.


"왜...."


오메가가 악에 받혀 소리 지르려 하자 사령관이 손을 까딱였고 그러자 주변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철충들이 오메가에게 달려들었다.

오메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철충들에게 난자당하였다. 철과 살점이 부딪히고 찢어지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익스큐서너가 마지막 칼질을 휘두르자 소란과 함께 오메가의 처형도 끝이 났다.


실로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사령관은 가면을 벗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에 빗물이 스며들어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리리스는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신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철충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주인님?"


리리스는 불안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애써 미소 지으며 사령관을 불렀다. 사령관은 리리스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령관의 모습은 빗줄기에 가려 흐릿해졌다. 빗줄기 때문일까? 자꾸 그녀의 눈앞에 뿌옇게 이는 물기들을 닦아내며 블랙 리리스는 사령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붉은 안광.


목덜미 부터 올라와 얼굴의 반절을 삼킨 하얀색 금속 피부.


블랙 리리스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주인이 어떤 모습이던지, 그녀에게 있어 주인님은 단 한분이었으니까.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하찮은 감정 때문에 주인을 향한 미소를 일그러 트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령관에게 말하였다.


"돌아가요 주인님...다들 기다릴거에요."


사령관은 리리스와 자신 사이에 서있는 철충들을 물리고는 블랙 리리스에게 다가가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요동치는 감정이 담긴 그 억센 끌어안음에 리리스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블랙 리리스가 사령관에게 울며 애원하였다.


"제발...제발 돌아가요 주인님, 방법이 있을거에요."


"리리스."


"명령을 어기지 않을게요, 도구를 벗어나고 싶다는 건방진 생각도 하지 않을게요 제발..."


사령관은 끌어안은 팔을 풀고는 리리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주었다. 빗물과 뒤섞인 리리스의 눈물을 닦아주며 사령관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무엇인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의 주변에 있던 철충들이 동요하며 경계하기 시작하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알바트로스가 사령관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철충들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움직임을 취하자 사령관이 조용히 그들을 노려보았고 그러자 철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묵하였다.


알바트로스가 착지하자 주변의 철충들은 도망치듯이 알바트로스에게서 멀어졌다. 알바트로스에게서 내린 콘스탄챠와 마리는 조용히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의 모습을 바라본 콘스탄챠와 마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후회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잡았었던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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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진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