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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의 등장

두번째 인간의 등장 -2- 

두번째 인간의 등장 -3-

두번째 인간의 등장 -4-


 






사령관이 내 건의사항을 수용한지 3일이 지났다.


나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이제는 적어도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경계하는 인원이 많지만


벌레랑 오물에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덕분에 밥도 편하게 먹고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사람도 생겼다.


아직 근황토크는 무리지만.


이렇게 점점 나의 취급은 나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딱히 설명은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부족하다 외치는 바로 그것! 


그렇다 답은 담배와 술이다.




나는 애연가이자 애주가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꼴초에 주당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근무 틈틈이 담배를 태웠고 틈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담배를 빨아 댕겼다.


근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평일에는 매일 맥주 한 캔이나 칵테일 한잔 정도


꾸준히 마셔왔다. 


그런 내가 100년 조금 넘게 금연과 금주중이다.


금단현상이 오고야 말았다.


담배가 마렵다. 술이 마렵다.


입이 근질근질하고 손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느낌이다.


확실한건 술보다는 담배가 더 급한 것 같다.



 

자각하지 못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인지하고 난 이후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내 머릿속 한구석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내가 아우성을 친다.


나는 지금 몹시 흡연이 마렵다.



 

‘100년 안폈는데 이참에 금연하면 안 됨?’


안 된다 씹새들아 지금 나는 인간의 삼대욕구중 하나인 성욕에 내 스스로 금제를 걸어 놨다.


그런 상황에 금연? 정신을 놔버릴거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정신을 놓으면 큰일이 난다.


그렇다. 


나의 흡연에는 인류의 존망이 달려 있는 거다.


당장 니코틴과 타르가 필요하다.



 

상상해봐라 당신이 흡연자라면 알 것이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을 때 다시자긴 애매하고 그렇다고 딱히 할 건 없을 때


담배나 한 대 태우지 뭐 라는 생각과 함께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긴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오는 바로 그 느낌과 감정들!



 

쭈욱 빨았을 때의 흡입감 


연기를 입안에 머금었을 때의 텁텁함


폐로 넘어갔을 때의 묵직함


다시 내뱉을 때의 해방감과 약간의 어지러움


그 뒤에 이어지는 호흡에서 느껴지는 새벽공기의 상쾌함과 청량함


그 감정이 지금 나는 몹시 그립다.



 

우선 담배를 구해야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대화 할 만큼의 우호도를 쌓은 사람이 없어서 무작정 사령관에게 갔다.

 

사령관실에 가니 자기는 비흡연자인데다가 담배자체도 보급품이 아니라서 담배를 구하려면 


다른 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흡연실에 가면 있을 수도 있으니 거기에 가보라고 했다.


망했다. 


대화조차 못하는데 담배를 빌려라? 난이도가 너무 높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잘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흡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잠수함은 기본적으로 금연이라 다음 상륙까지 존버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이거는 나쁘지 않다.


나는 당장 흡연실방향으로 달려갔다.



 

오르카호의 흡연실.


넓다. 


의자도 편안해보이고 재떨이 주변도 깔끔한 것이 보기가 좋다. 


한 쪽 벽 전체에는 화면인지 실제인지 모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문 쪽에는 유의사항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다행히도 흡연실 안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담배를 빌리고 싶었지만 선뜻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에 미쳐있어서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담배를 빌려달라 말할 용기가 있었지만


지금 흡연실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힘들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힘들어 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다.



 

나를 이렇게나 어렵게 만드는 사람.


흡연실에 먼저 와 있던 선객은 더치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