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42816573





눈을 감기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당황한채 나에게 달려오는 바이오로이드들과 목에 깊숙히 박힌 커터칼의 은빛 날이었다.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마치 영화에서 페이드 아웃이 되듯 천천히 주변이 암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쯤, 호흡이 완전히 멈추기 직전 나는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죽음의 두려움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아닌, 답답함이었다. 코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은 너무나도 적었고, 최대한 많은 산소를 들이 마시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나는 오직 코로만 숨을 쉬었다. 그렇게 갑갑하게 숨을 들이키던 와중,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이 점점더 많아지는듯 하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산소 마스크를 낀 듯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공기에 깜짝 놀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하윽! 크허억…”


드디어 숨통이 트인 나는 입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를 계속해서 들이마시며, 정신을 바로 잡기 시작하였다. 산소가 충분히 들어오자, 들어오지 않던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온통 검은 공간, 수많은 침대와 시체처럼 드러누운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 으아악!”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다시 일어난 나는 놀라 침대 아래로 떨어졌고, 어깨부터 모든 고통이 온몸으로 전파되었다.


“으으윽...”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온갖 수를 써가며 일으킨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숙면자들과 끝이 희미하게 보이는 커다란 방에서 나는 혼자 우뚝 서있었다. 전등이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모든 곳을 밝게 비추기는 커녕, 앞만 희미하게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고개만 이리저리 돌렸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후, 나는 곧장 뼈가 시리는 추위에 어쩔줄 몰랐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얇은 잠옷에 불과했고, 영하의 기온이 느껴진 나는 덜덜 떨며 천천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소리도 내지 않은채 차가운 바닥을 챱챱거리며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그럼에도 보이는 것은 잠든 사람들과 잠든 사람들, 그리고 또 잠든 사람들 뿐이였다.


더이상 안되겠다 생각한 내가 입을 열려고 할 순간이였다.


“씨이발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검까? 그 에바라는 걸 따르면 안됬지 말임다, 이게 뭠까? 우리가 로봇도 아니고.”


저 멀리서 들리는 사람, 아니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달려갈려 했지만, 전등에 모습을 드러낸 2명의 여성의 모습에 나는 주눅이 들어 곧장 어느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2명의 여성이 있었고, 한명은 갈색머리에 총을 들고 있었고, 군인처럼 보였다. 바이오로이드였다. 나머지 한명은 빨간 장발에 가방엔 주사기를 잔뜩 담고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투약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절대 인간을 위하는 짓이 아니라 생각하였고, 그녀들이 나와 멀어지길 빌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내 빈 침대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고, 비상사태가 선포된듯 온 방이 붉은 사이렌 빛과 경보음으로 가득찼다.


“씨이발…”


곧장 침대에서 벗어나 침대보다 낮은 자세로 빠르게 벽쪽으로 달려갔다. 저 년들에게 잡힌 순간,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발바닥과 바닥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도 최대한 죽여가며 벽에 있는 문으로 달려나갔다.


“...브라우니! 저기! 당장 약 풀어요!”


결국 나는 사이렌 불빛에 비친 그림자 때문에 들켜버렸고, 이젠 어쩔 수 없겠다, 상채를 꼿꼿이 피고 전력질주로 문을 향해 내달렸다. 고개를 드니 바이오로이드들이 2명이 아닌 대략 20명 정도가 방 곳곳에서 잠든 사람들의 목에 뭔가를 꽂고 다녔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나를 추격해왔다.


“씨발… 씨발씨발씨발씨발!!!!”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빠르게 달려갔지만, 그 갈색머리의 여군이 내 옆으로 달려와서 나를 덮쳤고, 나는 그녀와 함께 바닥으로 몇바퀴 굴렀다. 눈을 떠보니 내 위로 올라서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 브라우니가 보였다. 꿈속에서 스틸라인 군 소속 바이오로이드, 브라우니 말이다.


“...브라우니?”


“으음, 이름은 맞추셨지만, 이제 다시 잠들 시간임다!”


다시 잠든다니, 다시 그 꿈속으로 들어가 오르카 호에서 끝없이 시간을 보내란 말인가?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수갑이 채워질려 하는 순간, 브라우니의 옆구리에 있던 권총을 꺼내 그녀의 배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탕!’


“크아악!”


브라우니는 그자리에 쓰러졌고, 나는 한손에만 채워진 수갑을 풀려 하였지만 벌써 따라온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인식하고는 쇠고랑을 짤랑이며 다시 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그들에게 내 달리기 속도는 식은 죽 먹기 정도였다. 다시 한번 다른 브라우니가 나를 덮쳤고,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다른 수를 생각했다.


“잡았다!”


나는 순순히 그녀에게 등을 양보했고, 그녀가 내 등을 잡자마자 빠르게 몸을 돌려 브라우니의 목을 팔로 걸었고, 권총을  그녀의 머리에 겨눴다.


“브라우니!”


“오지마… 다들 오지마 이 쒸발년들아!”


나는 권총을 내게 인질로 잡힌 그년과 나를 다시 잡으려는 브라우니들에게 번갈아서 겨눴다.


“이, 이년 뒤지는거 보고싶나? 응? 구멍 뚫어줘 씨발? 앙?! 오지 말라고 씨발!”


“상병님, 약 배포 아직임까?”


브라우니들은 약 배포를 기다리는듯 섯불리 움직이질 않았고, 나는 천천히 인질로 잡힌 브라우니를 끌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몇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문에 다다를 때쯤, 붉은 사이렌 빛 사이로 허공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빛의 교집합에서 붉은빛과 푸른빛이 만나면 보랏빛이 된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푸른 가루가 점점 허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머릿속엔 잠들기 전 매일매일 먹던 푸른 약이 상기되었다.


“...!”


이곳에 있다간 다시 잠들 것이다. 나는 권총을 브라우니의 등에 겨누고 2발을 발포했고, 그녀가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쓰러지자 브라우니를 그들에게 밀치고는 문으로 달려들어갔다.


“저새끼 잡아!”


잠금장치와 문잡이를 총알 3발을 쏴 망가뜨리곤 두꺼운 문을 밀어열었다. 좁은 틈으로 미끄러지며 들어갔고, 옆에 있던 기다란 사물함을 넘어뜨려 약하게나마 문을 막았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인간들을 겨눈 CCTV 모니터와 벽에 걸린 방독면, 그리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또다른 브라우니. 두 명중 먼저 움직인 건 나였다.


“이런 씹-”


브라우니가 깜짝 놀라며 주머니 속 권총을 꺼낼려 했을때, 나는 이미 의자를 집어들고는 그녀에게 집어던졌다. 주머니에서 간신히 권총을 꺼내자마자 브라우니는 의자를 정통으로 맞고는 뒤로 자빠졌고, 나는 그녀가 떨군 권총과 벽에 걸린 방독면을 채가고는 ‘계단실’이라 적힌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어갔다.


‘철컹!’


철소리 가득한 문을 닫고, 잠금장치까지 사용해 문을 닫은 나는 잠시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잠시후, 사물함으로 막은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화들짝 놀라 방독면을 쓰고, 계단실의 계단을 마구 울렸다. 잠시후, 브라우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목소리는 점점더 희미해졌다.


“인간님, 인간님! 이러실 필요 없슴다! 이러면 인간님만 힘들어지니까 일단 문좀 여십쇼!”


“무슨 설득을 하고 있어! 열어! 당장!”


“얼른 문 여십쇼! 안그럼 강제개방하겠슴다?”


.

.

.


“허억… 허억… 하윽…”


얼마나 올라갔을까, 끝없는 계단을 오르며 느낀건 이 계단실도 푸른 환각제로 가득 차있으며, 방독면을 쓰지 않았으면 이미 끝없는 잠에 다시 빠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누런 나트륨등에 의존하며 얼마나 더 많은 계단을 올랐을까, 마침내 나는 계단의 끝을 맞이했고, 나는 다시 한번 굳게 잠긴 문에 탄창이 빌때까지 권총을 갈겼고, 마침내 날 가로막던 문이소름끼치는 소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밝은 빛이 나의 눈을 부시게 하였고, 나는 방독면의 눈 부분을 손바닥을 이용해 가로막았다. 문이 열리며 나를 맞이한 것은


혹독하게 내리는 눈과 어딘지 모르는 끝없는 설원, 지평선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의 불빛 뿐이였다.


“...이런 씹 여긴 또 어디야…”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