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러 왔다고? 날? 조금 제대로 된 변명을 하는 게 어떤가, 병사?”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흠-”
내려가는 마리의 눈꼬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프리트는 자세를 고쳐잡곤 큰소리로 외친다.
“정말입니다! 인간- 아, 아니. 사령관님 명령 하에 병장 이프리트 포함 6명 인원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뭐, 알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인원들은 지금 어딨는 거지?”
“…”
ㅈ됐다.
***
“어떻게 생각하나, 레드후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비밀리에 움직인 저희를 그 인간님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동감이다.”
팔짱을 낀 마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결심한 듯 눈을 치켜뜬다.
“인사정돈 괜찮겠지. 하지만-”
시험관을 호위한 인원들은 즉시 후방으로 물리도록.
금빛으로 물든 안광을 번뜩이며 홀로 앞으로 나서는 마리. 호위조차 없는 그녀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이번엔 무슨 속셈입니까, 사령관. 기껏 진행 시킨 계획을 방해할 속셈은 아니겠지요…”
조용히 입을 뗀 마리의 얼굴엔 체념의 빛이 역력하다. 걸음걸이 또한 앞서 병사들의 앞에서 보였던 것과는 다소 망설이는 모습.
“당신의 의사가 어떻든 간에- 전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윽고 거대한 무언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리는 지체 없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존나 멋있어…”
그야말로 남자의 로망. 거대 로봇과 싸우는 거대 괴수. 서로의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맞닿는 충격파가 심장으로 전해져온다.
“근데 코코가 원래 저렇게 호전적인 성격이었나?”
“…웬일로 이름만큼은 기억하시네요? 영락없이 AGS라 부를 줄 알았는데.”
날 뭘로 보는 거야, 바닐라. 코코가 타는 저 하얀 로봇의 외형만큼은 완전 내 취향이라고.
“으으읏~! 내가 터트릴 게 없어지잖아-!”
“흐아아… 죽을 것 같아. 알비스 더는 못 움직여.”
그러고 보니 쟤들 별로 쓸모없었네. 뭐, 나도 마찬가진가.
“못생긴 인간. 이제 어쩔 거야? 집에 가?”
“어, 그게…”
아직 마리 4호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런 생각으로 망설일 때쯤 뒤편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오랜만입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죠?”
응? 뭐지? 화났나?
***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가지 않는다니?”
“말씀드린 대로- 절 포함한 스틸라인 인원들은 모종의 작전 계획을 수행 중입니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내가 뭘 놓친 게 있었나? 내 평판이 바닥인 건 알았지만 아예 말조차 들을 생각을 안 하네.
“못생긴 인간, 조심해!”
벙찐 나에게 드라코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제야 눈을 돌려 바라본 곳엔 어느새 코코의 화이트셸을 밀치고 그 커다란 주먹을 내리치는 프레데터의 모습이 들어온다.
“아…”
“병신같이 뭘 가만히 서 있는 거예요-!”
꾸엙!
팔꿈치로 내 옆구릴 강하게 밀친 바닐라와 함께 바닥을 구른다. 하지만 나와 대화 중인 마리는-
“전선에 직접 참여했단 소릴 들었는데… 이래선.”
쯧.
혀를 차고선 뒤를 돌은 마리가 주먹을 말아쥔다. 푸르스름한 자기장이 손목을 감싸곤 이내 발광키 시작하는 금빛의 안광.
-쾅!!
공장이 떠나가라 울려 퍼지는 굉음. 프레데터의 주먹을 맞받아친 것도 모자라 놈의 어깻죽지까지 뜯어져 나가버린 비현실적인 광경이 연출된다.
한순간에 철/충으로 변한 프레데터를 뒤늦게 추격한 화이트셸. 왼손에서 회전하는 두 개의 궤도를 내리쳐 아예 반죽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곳은 전장입니다, 사령관. 어서 빨리 오르카 호로 돌아가시길 권고하죠. 그럼…”
그리곤 망설임 없이 왔었던 길을 돌아가는 마리. 고고하기까지 한 뒷모습에 얼떨떨해진 난 감히 그녀를 붙잡을 여력이 없었다.
***
조금 멍해진 정신을 차리자 눈에 들어온 건 사방으로 찢어진 철충의 잔해. 알비스의 말론 코코 역시 내게 인사를 마치곤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왜 말리지 않았나요?”
“…뭘?”
괜한 심술이 나 퉁명스레 대답하지만, 바닐라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인간이잖아요. 명령만 하면 마리 대장은 즉시 오르카 호로 귀환했을 겁니다.”
설마 쫄은 건 아니죠?
툭 내뱉는 말이 심히 가슴을 찌르지만, 비단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리라.
“그냥…”
그냥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차마 뒷말을 내뱉진 못한다. 자존심 때문에? 아니-
“…매크로 때문이야?”
“네? 뭐라고 했나요?”
“암것도 아냐.”
아무래도 죄책감 같다.
***
“뭐야, 저 괴물 같은 년은…!”
자신보다 몇 배는 큰 철충을 주먹 하나로 날려버린 금발의 바이오로이드. 앞서 경박한 여자와 정체 모를 저격수에게서 도망친 장화는 조용히 숨어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래도 합류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뭐, 좋아.”
그렇다면 상관없다. 다시 한번 놈을 노린다면…
“쥐새끼가 숨어있었군요.”
“…?!”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명백히 들려온 적의에 몸을 날리자 날카로운 살의가 날아든다.
“씨발, 넌 또 뭔데?!”
온통 딱딱한 기계투성이와 이리저리 흩날리는 먼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은 고결한 움직임.
흩날리는 치맛자락과 함께 얼굴의 반을 가린 면사포가 인상적인 인물에게선,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배틀 메이드의 금란이라 합니다.”
“아, 그러셔~ 그럼 얼른 뒈져!”
사방으로 뻗어 나간 와이어에 상대의 시선을 집중시키곤 조용히 손가락을 움켜쥔다. 마녀의 손아귀와도 같은 불그스름한 손길이 금란을 노리고 양쪽에서 찢어발기려 하는데-
-슉!
팽팽하게 좁혀오던 공기가 금란의 손짓 한 번에 흩어져간다. 일순 코끝을 스친 매화향에 정신을 차린 장화가 눈을 크게 뜨자.
-후두둑.
무게감 있는 와이어가 모두 동강 난 채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장화가 뒤편으로 물러나려는 찰나.
“…어, 언제?!”
“용서하시길-”
한 번의 발돋움으로 눈앞까지 다가온 여인이 역수로 쥔 검 끝을 내뻗는다.
“망할, 이놈이고 저놈이고…”
입가로 흐르는 침을 닦을 새도 없이 고꾸라지는 장화. 그런 그녀를 손쉽게 떠받든 금란은 이쪽을 예의주시하는 바닐라에게 조용히 검지를 들고는 자리에서 사라진다.
5시간 뒤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