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감마가 광소를 터뜨리며 리디아 일행에게 돌진했다. 리디아와 하이에나 둘이서 총탄을 퍼부음에도 아랑곳않고 오른팔에 장착한 거대한 건틀렛, 케스토스 히마스로 막으며 거리를 좁히고선 리디아가 들고있던 소총의 총열을 왼손으로 붙잡었다. 이내 감마가 가볍게 왼팔을 휘두르자 총의 손잡이를 잡고있던 리디아가 총을 놓치고 나가떨어졌다. 


감마와 리디아 둘이 가까이 붙어있어 아군 오사의 위험때문에 샷건을 쏘지 못했던 하이에나는 리디아가 멀리 떨어지게 되자 다시 감마를 향해 총구를 겨눴으나 감마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건틀렛으로 샷건을 움켜쥐어 악력으로 우그러뜨리고선 남은 손으로 하이에나에게 주먹을 휘두르자 그녀는 제 몸을 뒤로 날려 피하면서 그 틈에 땅에서 쥔 모래와 먼지를 감마의 얼굴에 흩뿌렸다. 허나 감마는 예상했다는 듯 놀란 기색 없이 입으로 바람을 훅 불자 역으로 하이에나의 눈에 모래가 들어갔다.


눈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하이에나를 끝장내기 위해 다가가는 감마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다, 트레저가 손에 잡고있던 포트리스를 무기삼아 감마를 내리치려 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감마가 곧장 회피해 애먼 땅바닥만 금이 가자 트레저는 그녀를 향해 빠르게 포구를 내린 뒤 근거리 포격을 시도했으나 이는 어이없게 막혀버렸다. 감마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눈앞에서 발사되었던 포탄을 낚아챈 것이었다. 


감마가 손에 들고있는 포탄을 트레저의 포대에 던져 맞추자 그 충격으로 트레저의 손에 들려있던 포트리스가 떨어졌다. 포트리스는 공중에서 고정모드에서 이동모드로 전환하며 땅에 착지한 뒤 주춤한 트레저 대신 감마에게 기관포 사격을 개시했으나 감마가 건틀렛 낀 손으로 어퍼컷을 날리자 포트리스의 커다란 몸체가 공중에서 한바퀴 반 돌더니 몸이 거꾸로 뒤짚힌 채 맨땅에 부딪혔다. 포트리스가 도로 몸을 똑바로 세우려 네 개의 다리를 버둥거렸으나 그 몸체가 조금씩 흔들거리기만 할 뿐 진전이 없는 게 뒤집혀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거북이 꼴이었다. 


트레저가 거대한 발을 들어올려 감마를 짓밟으려 했으나 그녀는 가뿐히 피한 뒤 뛰어올라 트레저가 들어있는 셀주크 몸체의 중앙에 철권을 날렸다. 감마의 케스토스 히마스에 정통으로 맞은 셀주크의 몸이 음푹 패이더니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져버렸다. 셀주크 몸체가 치명적인 손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트레저까지 충격을 받은 탓에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포트리스는 자신의 시야에 다시 감마가 들어오자 일어서길 포기하고 뒤집힌 채로 다리에 내장된 기관포를 쐈다. 그러자 감마는 포트리스한테 달려가고선 한 다리를 들어올려 위를 향하고있는 포트리스의 몸통 밑면을 발 뒤꿈치로 내려치자 포트리스의 몸뚱아리가 땅에 더 깊숙히 박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버렸다.



"넌 나랑 같이 죽자 이년아!!"


시력을 되찾은 하이에나가 감마를 뒤에서 덮친 뒤 온 몸으로 그녀를 붙잡으며 안전핀 뽑은 수류탄을 손에 쥔 채 그녀의 목을 졸랐다. 감마와 같이 자폭할 생각이었다. 감마가 본능적으로 하이에나를 떼어내려했으나 리디아가 과감하게 감마의 건틀렛을 붙잡아 오른팔을 쓰지 못하게 막았다.


자신의 목 바로 앞에서 수류탄이 터지지까지 일촉즉발의 상황, 감마는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 뒤 빠르게 뒤로 당겨 뒤통수로 하이에나의 안면을 가격했다. 불의의 기습에 하이에나가 손을 놓고 떨어지자 감마는 이번엔 오른팔을 거칠게 휘둘러 거기 매달려있던 리디아를 떼어냈다. 결박을 푼 감마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수류탄을 발등으로 가볍게 차올린 뒤 건틀렛 낀 손으로 붙잡자 수류탄은 그녀의 강철 주먹 안에서 별다른 피해도 주지 못한 채 조용히 폭발했다. 


콧잔등을 움켜쥐고 있던 하이에나가 이 광경을 보자 허리춤에 달고있던 다음 수류탄을 꺼내든 뒤 감마에게 돌격했다. 허나 그녀가 미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기도 전에 감마가 내지른 왼주먹에 턱주가리를 맞자 몸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며 날아가다 땅에 풀썩 떨어졌다. 그 일격에 의식을 잃은 건지 하이에나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케스토스 히마스를 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친 덕에 머리가 박살나거나 하지 않고 기절하는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이제 돌격팀 맴버 중 남은 건 리디아 뿐. 리디아는 감마를 온 몸으로 덮쳐 넘어뜨린 뒤 그녀의 허리를 깔고앉아 무서운 기세로 감마의 얼굴을 맨주먹으로 마구 가격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마운트 상태에서 벗어나는 건 극히 힘든 일이지만 감마에게 있어선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거대한 건틀렛으로 리디아의 상체를 통째로 붙잡고선 확 집어던졌다. 리디아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했음에도 코피 한 방울 안흘린 그녀는 태연하게 얼굴에 묻은 먼지를 팔로 닦아내며 일어섰고, 리디아는 오른손에 군용 단검을 쥐고선 다시 감마에게 달려들었다.


오직 급소만을 노리는 매서운 공격을 펼쳤으나 감마는 능숙하게 공격들을 피한 뒤 리디아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이에 리디아는 오른손에 잡고있던 단검을 놓아 왼손으로 낚아챈 뒤 그대로 감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회심의 일격, 그렇게 생각했었으나 눈앞의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산산조각냈다. 리디아가 있는 힘껏 찌른 단검은 감마가 입고있는 배틀슈트에 생체기만 냈을 뿐, 그녀의 피부까지 닿지 못했다. 리디아가 당황한 한편 감마는 씩 웃더니 리디아의 팔을 당긴 뒤 무릎으로 그녀의 복부를 찍었다. 감마가 손을 놓차 리디아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아직 의식을 잃진 않았지만 그렇다한들 더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네 명이서 사력을 다해 덤볐음에도 불구하고 레모네이드 감마 한 명을 이기지 못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전력차, 심지어 감마는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리디아 일행에게 있어선 철저한 사투였지만 레모네이드 감마에겐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일어나.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다고."


"윽... 허억..."


"흠, 벌써 한계인가? 브라우니 치고는 선전했지만, 역시 넌 용이 되진 못해."


"내 이름은... 리디아야...!"


"하, 그 소리 할 기운은 남아있었나?"


감마는 건틀렛의 거대한 손으로 무력화된 리디아의 목을 잡아 들어올렸다. 이제 리디아가 할 수 있는 건 노려보는 것 뿐이었다.


"눈빛은 나쁘지 않군. 살려보내면 더 성장할 것 같기도 하지만... 저 건물에 하도 난리를 피워놔서 그랬다간 나중에 오메가가 돌아왔을 때 히스테리 부릴 게 눈에 훤하군. 따라서 너희 모두에게 펙스에 대적한 죄로 사형을 선고한다. 원망해도 좋아."


감마가 리디아의 숨통을 끊기 위해 손에 힘을 쥐려던 그 순간이었다.


"주인 셋 가진 후레자식 감마! 오르카호의 부사령관이 여기에 있다!!"


뜬금없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감마와 리디아 둘 다 동시에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로부터 백 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에 인간 한 명이 홀로 서있었다.



*



알겠습니까? 목숨이 아까우면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고 계세요.


조금 전, 연락두절된 잠입팀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보낸 리리스가 떠나기 전 나에게 남긴 말이었다. 그 말대로 이젠 나 자신을 지킬 수단이 전무해졌기에 당연히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다. 알바트로스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달하니 약 2분 뒤에 도착한다길래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 리디아 일행과 감마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저와 포트리스가 당했을 때 느낌이 싸해졌다. 2분을 버티기 전에 전멸할 것만 같았다. 안좋은 예감이 들자 나는 급하게 타계책을 생각해내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들 모두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재수없게도 그 예감은 적중했다. 리디아, 하이에나, 트레저, 포트리스 모두 쓰러졌다. 알바트로스가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30초 남짓. 감마가 리디아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난 시간을 끌기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바로 감마를 도발하는 것.


그리고 바이오로이드에게 있어 가장 모욕적인 말을 꼽자면 첫째는 주인을 욕보이는 것이고 둘째는 충성심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감마가 미끼를 물었다.


"뭐라고 했지!?"


감마가 백 미터 너머에서도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어그로 끄는 데 성공하자 나는 쫄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다음 대사를 목청껏 외쳤다.


"주인 셋 가진 후레자식!"


"이 당당한 감마가 어째서 후레자식이냐!!"


"너, 레모네이드 시리즈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본디 널 창조한 안나 보르비예프 박사가 너희 마땅한 주인이거늘, 너는 안나 박사를 저버리고 보잘 것 없는 펙스의 회장을 주인으로 섬겼지! 그래놓고선 그 늙은이가 죽자 이번엔 오메가의 시다바리 노릇이나 하고 있지, 이래도 후레자식이 아니냐!"


"이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감히...!"


"덤벼라 후레자식! 진짜 최강이 누구인지 가르쳐주마!"


잠깐동안의 싸늘한 침묵이 지나고 감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화를 돋군 모양인지 감마는 손에 쥐고있던 리디아를 놓은 뒤 나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게 감마의 살기가 여기까지 닿는 것 같았다. 아직 30초는 멀었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엔 감마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전장에 나온 이상 인간이라고 봐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 외침과 함께 감마는, 나를 향해 그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HQ1 알바트로스. 레모네이드 감마를 배제하겠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질렀던 그 주먹은, 때마침 도착한 알바트로스의 손에 잡혀 멈춰있었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로봇의 모습에 일순간 당황한 감마가 다음 행동을 취하기 전, 알바트로스는 감마를 향해 오른팔에 장착된 직속입자포를 쐈다. 입자포에 정통으로 맞은 감마가 날려져버리고 알바트로스는 그녀를 뒤쫓아갔다.


나는 알바트로스가 날아가면서 일으킨 흙먼지에 손부채질을 하며 기침을 몇번 한 뒤 리디아 일행이 쓰러진 장소로 달려갔다. 알바트로스가 감마를 끌고가 멀리서 싸워주고 있는 탓에 쓰러진 애들을 챙기러 갈 수 있게 됐다. 내가 서있던 자리와 돌격팀이 쓰러진 장소, 그 중간지점에서 날 향해 달려온 리디아와 마주치게 되었다.


"형님!!"


"부사령관!!"


...그리고 리리스도 만났다.


"내가 분명히 가만히 있으라고 했죠! 주인님한테 달려가고 싶은 마음도 꾹 참고 당신 지키려 남았건만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아니 넌 여기서 뭐하는..."


"히루메가 당신이 이상한 말을 외친다고 하길래 급하게 달려온 겁니다!"


"아, 히루메는 무사한..."


"말 돌리지 마세요! 당신, 죽고싶어서 안달났습니까!? 말 좀 해보시죠,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네!?"


"생각은 무슨. 야 리리스, 넌 나서지 마. 형님 혼내는 건 내 몫이야."


호되게 날 꾸짖던 리리스에 리디아도 합류했다.


"저 미친 년을 도발하다니, 제정신이야? 알바트로스가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형님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났어, 알아!?"


리디아마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나는 두 명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니 들어봐, 나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알바트로스가 금방 온다길래 잠깐동안만 시선을 끌었을 뿐이야."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넌? 내가 안나섰으면 너는-"


"난 군인이야! 스틸라인의 장병이라고! 난 언제나 죽을 각오가 되어있지만, 형님은 안그렇잖아! 그래서도 안되고!"


"리디아? 난 너 죽어도 된다고 허락한 적 없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거 싸우느라 바쁜 건 알겠는데 슬슬 우리도 좀 챙겨주시면 안됨까?]


내가 지금 들고있는 유미한테서 빌린 패널에 트레저의 통신이 걸려오자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냅다 화제를 바꿨다.


"그래, 물론 그래야지! 리디아, 리리스.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하...지 않기로 하자. 그보다 트레저 너도 무사한 거냐?"


[일단은... 그런 거 같슴다. 계속 싸울 힘은 없지만 말임다. 포트리스는 의식은 있는데 땅에 끼여서 못움직이는 상태고, 하이에나는 숨은 쉬는걸로 봐서 기절한 걸로 보임다.]


"감마가 봐줬나? 아무튼 돌격팀 전원 목숨은 붙어있다는 거군. 그럼 리리스, 잠입팀 애들은 어때? 애니는 나름 튼튼하긴 해도 유미랑 오렌지에이드가 감마한테 맞고 살아있을지 걱정인데."


"그쪽도 전원 생존입니다. 히루메가 부적으로 유미와 오렌지에이드가 받는 데미지를 줄여줘서 그 둘도 무사하고요."


"좋아. 리디아, 하이에나 챙겨! 알바트로스가 감마를 붙잡고 있는 동안 우리도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시끄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그 둘이 대판 치고받고 싸우는 게 보였다. 감마가 전력으로 공격을 펼치고 있는데도 알바트로스는 방어막을 켤 필요도 없다는 듯 맨손으로 공격을 막아내며 입자포를 쏴대고 있었다. 감마 한 명 때문에 우리팀 중 8명이 당했지만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알바트로스가 최대한 오랫동안 감마를 붙잡고 있어주길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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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 담당 라붕이와 탱킹 담당 알바의 감마 처리하기(떠넘기기)


최강 vs 최강의 결과는~~~~ 다음화에 공개됩니다. 


그보다 전투씬은 글쓰기도 삽화그리기도 개힘드네. 다음부턴 전투씬 쓸 일 있으면 최대한 생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