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령관이 아니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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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켜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오르카폰이 망가져서 알람도 미리 맞출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당분간은 이렇게 꼭 확인해 줘야 한단 말이지.

 

“크으으읏...!”

 

가볍게 기지개를 핀 나는 내심 내 몸 상태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테이지를 만든다고 여기저기 쫒아 다니느라 쌓인 어제까지의 피로가 싹 가셨다고 해야 하나?

정말 충분한 수면이라는 것을 취한 것 같았다. 

 

그래, 마치-

 

“한 달 동안 잠만 잔 것 같아.”

 

뭐, 실제론 그럴 리가 없지만.

 

잠시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다가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이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모처럼 사령관 아니, 프로듀서가 한 번쯤 스카이나이츠 애들이 연습하는 거나 같이 보자고 했었고.

마침 오늘 그 ‘Blooming Heart’의 연습을 참관하는 날이니까.

 

미리미리 움직여 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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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해...”

 

사령관의 진심어린 감탄.

그 말대로 정말 대단하긴 하더라.

 

드럼에 흐레스벨그, 키보드에 하르페이아, 기타에 슬레이프니르.

각자의 머리색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이른바 ‘아이돌 밴드’컨셉.

 

짧은 연주임에도 아이돌 노래라는 걸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정말 훌륭한 연주였다.

그래서 홀린 듯이 박수 치는 사령관 따라 박수의 갈채를 퍼붓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치! 엄청 연습했어!”

 

기타를 살포시 내려놓은 슬레이프니르가 총총걸음으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런 그녀를 따라 다른 둘도 한껏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키보드 치는 거, 은근히 재밌다? 나중에 프로듀서도 같이 쳐볼래?”

 

“익숙해지기까지 힘들었습니다만... 그만큼 보람이 있군요.”

 

저마다 할 말을 대충 끝냈을 때.

슬레이프니르가 발작하듯 외쳤다.

 

“맞아! 드러머야말로 밴드의 심장이거든!”

 

확실히.

다른 악기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드럼만큼은 밴드의 다름 이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간지가 나는 법!

 

“드러머. 솔직히 멋지긴 하죠. 나도 모르게 드럼만 바라볼 정도니까.”

 

“ㅈ, 저만 바라보신다고...?”

 

내 말에 흐레스벨그가 멈칫했다.

 

“현란하기도 하고 그 특유의 경쾌함에 시선을 빼앗긴다고 해야 하나요? 아, 물론 드러머가 흐레스벨그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뭐, 게임으로 접했을 땐 뭐든지 척척해내는 엘리트라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정말 뭐든 척척 혼자서도 잘 해내는 그녀니까 프로에 준하는 실력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뭐 쿨한 인상의 미인이니까.

 

“어? 으...? 그게... 칭, 칭찬 감사합니다...”

 

흐레스벨그는 조금 멋쩍은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거의 개미 기어가듯 말을 이었다.

고개를 따라 늘어진 하늘색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귀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의외로 흐레스벨그는 칭찬에 약한 타입인가 보다.

 

“어흠, 두 사람 다 그쯤 해두고... 어떻게 노래연습은 잘 돼가?”

 

잠시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한 우리의 프로듀서는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나이스! 사령관!

하마터면 어색해질 뻔했다고!

 

“아아! 그래! 둘 다 들어봐! 글쎄...”

 

“자, 잠깐! 그 애기는 하지마아...”

 

그렇게 시작된 스레이프니르의 폭로전!

물론 폭로라기엔 그 내용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말랑한 것이었지만.

당사자인 하르페이아에겐 아니었나보다.

 

“으으... 몸으로 익히는 건 너무 어려워... 평생 책만 읽으며 살고 싶다...”

 

“아하하! 뭐야 그게! 히히, 그래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처음보단 훨씬 좋아졌잖아!”

 

이어지는 잡담 속에서 분위기는 전보다야 좋아졌다.

물론 신나게 재잘거리는 슬레이프니르와 열심히 변명 비슷하게 해명하는 하르페이아를 두고.

나와 사령관은 순조로워 보이는 현 상황에 만족하긴 했다.

 

그래도 뭔가 미묘한 점을 꼽자면.

 

힐끔.

 

“아... 으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쿨한 이미지가 망가지고 계시는 드러머 한분이려나.

이렇게 효과가 굉장한데 이 정도면 그냥 칭찬에 약한 타입이 아니라 2배 약점 수준인데.

 

“그럼 우린 나중에 또 올게. 열심히 해.”

 

어느새 이야기가 다 끝난 걸까.

나가자고 손짓하는 사령관을 따라 나가니 등 뒤로 “응! 나중에 봐!”라고 슬레이프니르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사령관을 따라 복도를 거닐며 이제 아자즈를 만나 폰을 고쳐 달라 말해볼까 생각하던 순간 사령관이 내 쪽으로 획 돌았다.

 

“억! 쓰읍... 갑자기 뒤 돌지 마. 하마터면 감탄욕이 나올 뻔했잖아.”

 

진짜 갑자기 저러니까 존내 놀라서 무심코 ‘어멋, 시발!’이라고 말할 뻔 했지만 그럭저럭 잘 참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한국인으로서의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한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면서도 저 새끼가 왜 저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뭔데?”

 

“...”

 

내 물음에도 사령관은 나를 무슨 아둔한 사람 보듯 바라보고 있을 뿐.

그렇게 1초. 2초 3초를 넘고 넘어 대략 10초.

여전히 사령관을 나를 바라본다.

 

뭐지, 때릴까?

 

진짜 진지하게 내가 재를 때리면 반역이나 쿠데타의 범주에 들어가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드디어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사령관의 말했다.

 

“너 정말 눈치 없다. 어떻게 그렇게 플래그를 꽂아놓고... 그걸 모른다고?”

 

“뭔 소리야.”

 

“헛! 설마!! 레오나나 다른 애들이 꽉 붙들고 있어서 일부러 모른척하는 거야?”

 

“이젠 개소리야?”

 

내 말에 사령관은 환장하겠다는 듯 펄쩍 뛰었다.

과연 강화된 인간의 점프력은 실로 어마 무시했다.

그렇게 한바탕 슈퍼점프를 끝내고 다시 착지한 사령관은 내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제발! 컨셉이라고 말해!! 답답한 러브코미디의 남주도 아니고! 그러니 말해!! 알면서 모른척한 거라고!”

 

“너... 뭔 갑자기...”

 

내 말은 거기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날 붙잡고 흔드는 사령관의 눈에서.

멸망한 세상의 인간의 눈동자 그곳에서.

타오르는 광기를 보았기에.

그래서.

 

타앗-!

 

“아앗!! 어딜 도망가!”

 

나는 도망쳤다.

 

“으아아앆!!! 동네 사람들!! 들어봐요! 사령관이 미쳤어요!!”

 

달렸다. 그냥 무작정 달렸다.

뛰어가다 마주친 바이오로이드들이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듯이 웃고 있었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

 

“도망치지마라!! 남자라면 남자답게 가서 알콩달콩 야스를 하라고!!”

 

나는 그냥 사령관이 존나 무서워서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저 도망만 치느라 몰랐는데.

나중에 듣기론 그날 나와 사령관의 광기의 술래잡기를 보고 팝콘을 안 뜯은 애들이 없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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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 이상하다.

 

흐레스벨그는 생각에 잠긴 채 가볍게 하늘색 머리를 쓸었다.

 

“하아.”

 

쏟아지는 깊은 한숨을 숨기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패널을 꺼내.

최애 애니를 재생한다.

 

“...”

 

눈을 확실히 영상속의 매지컬 모모를 쫒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슬레이프니르가 매일 같이 말했던 아이돌.

매번 듣는 입장에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아이돌을 해보자고 직접 찾아올 때 까지는 말이다.

 

사령관. 그러니까 지금은 아이돌인 만큼 프로듀서와 함께 찾아온 남자.

둘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하나.

 

‘원래 이렇게 생겼나?’

 

...딱히 남자가 고프거나 한건 아니었다.

그 남자를 발견해 오르카로 데려온 것은 전대장과 자신.

물론 그 뒤론 별 다른 관심이 없어서 가끔 들려오는 소문으로만 접했을 뿐.

그래서 흐레스벨그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선 놀랐다.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했네요.”

 

물론 사령관도 잘생겼다. 다만 그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취향에 어쩌다 가까웠을 뿐.

단지 그뿐이어야 했는데...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흐레스벨그는 조용히 패널을 바라보았다.

마침 영상속의 매지컬 모모는 사악한 적들을 일도양단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토막을 내고 있었다.

 

“그 사람 입에서 모모가 나올 줄은...”

 

솔직히 조금 놀랐었다. 자신이 모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에서 당황했고 그가 모모를 알고 있다는 부분에서 묘한 반가움이 있었으니.

 

그런 이유여서 인걸까.

왜 그 사람이 모모를 알고 있는지 어쩌다 알게 된 건지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물론 그러진 못했지만.

 

대신 틈틈이 스태프라는 이름으로 프로듀서인 사령관과 함께 찾아올 때면 몰래 조금씩 그를 관찰했다.

 

의외로 퇴폐미가 흘러나오는 잘난 얼굴로 몹쓸 드립이나 가벼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운다던가.

자신의 손이 닿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자 굳이 나서면서 돌아다닌다거나.

칭찬을 서슴없이 자주 해준다는 점이나.

드물게 은은한 미소를 짓거나 피식 웃을 때 얼굴이 정말 잘났다거나.

 

그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사심이 조금 들어갔지만 어쨌든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 결론이 나왔으니 이제 그만 선을 긋고 그만두면 됐지만 그러질 못했다.

 

-나도 모르게 드럼만 바라볼 정도니까.

-아, 물론 드러머가 흐레스벨그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읏...!”

 

전에 들었던 그의 말들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것이 생생하게 귓가를 속삭이기 시작해.

흐레스벨그는 다시 자신의 뺨이 붉게 익어가는 걸 느꼈다.

 

잘도 그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그것도 웃으면서!

저번에도 그랬다.

 

“남의 머릴 함부로 쓰다듬다니!”

 

흐레스벨그는 그녀답지 않게 벌떡 서서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일어나서 떨어진 패널을 급하게 주워들곤 무릎을 끌은 채로 앉았다.

 

“그래도... 좋았...”

 

말을 하다 말았다.

 

그 이상 말하게 된다면 그녀의 자존심도.

가슴한쪽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마음도.

어떻게든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후우.”

 

그냥 여기선 머릴 비우고 매지컬 모모를 정주행하고 역주행까지 하면 해결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패널에 집중하려던 때였다.

 

타닷!

 

꽤나 다급하게 들려온 발소리에 고갤 돌렸고.

 

“아...”

 

“아, 안녕하세요? ...그 연습하고 계셨어요?”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퇴폐미까지 느껴지는 다크서클로도 가려지지 않은 잘난 얼굴.

방금 전까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또 뺨을 밝히게 만들었던 그 남자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상황에 이 타이밍은 또 뭔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는 말했다.

 

“저 좀 숨겨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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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지 말고 나와라... 여긴가? 아니면 여기?”

 

광기에 사로잡힌 목소리가 들리자 안심하던 나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흐읍...!”

 

방금 전까지 미친 듯이 달려서 가뜩이나 숨고르기도 못한 상태여서 답답해 미칠 것 같은데 심장은 주제도 모르고 두근두근 거리며 나대고 있었다.

 

아름다운 로맨스로 푸근한 공기에 감싸져 두근거리는 거면 몰라도 이런 생존 스릴러 영화 뺨치는 상황 속에서의 삶을 향한 생명의 고동으로 두근거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렀다.

 

블루밍 하트의 연습을 보고 나와서부터 미친 듯이 돌고 돌아 거의 오르카를 일주했다시피 하고서 돌아온 이곳은 웃기게도 그 연습실 근처.

그리고 그 구석에서 쭈그려 앉은 나는 빨리 저 사령관이 자리를 뜨기를 바라고 있었다.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제발 좀 가라고!

 

어느새 광란의 술래잡기에서 나홀로 스릴러로 장르가 변해버린 현 상황.

정말이지 히어로는 언제 도착하는 건지 모를, 아니 애초에 날 구원해 줄 영울 조차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대다가 죽는 공포영화의 엑스트라와 다르게 신중하게 숨어있는 것 밖에 없잖아!

 

혼자서 오들오들 떨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음산하게 중얼거리던 사련관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거 소리만 들어보면 사령관이 다른 장소로 떠난 것 같지만....

 

이걸 나가봐 말아?

 

하지만 계속 한곳에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나는 기민한 족제비까진 아니고 뭐 길단또 마냥 잽싸게 고갤 내밀었다.

 

“음, 없어.”

 

일부로 말로 확인까지 했는데 영화와 달리 여긴 현실이라서 방금 내가 말했다고 떠났던 미친 사령관이 나타나 내게 달라들거나 하진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것은 연습실.

좀 전에 블루밍 하트가 연습하던 그 장소.

 

타닷!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곳으로 향했고.

 

“아...”

 

“아, 안녕하세요? ...그 연습하고 계셨어요?”

 

무언가 못볼 것 보고 놀랐듯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있는 흐레스벨그와 마주쳤다.

그런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할 새도 없이 나는 본론만 일단 말해두기로 했다.

 

“저 좀 숨겨주세요.”

 

“...네?”

 

흐레스벨그는 상당히 얼빠진 소릴 내었지만 일단 재빨리 그녀 쪽으로 몸을 옮겼다.

내가 다가가자 크게 움찔이기 시작한 그녀였지만 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녀 옆에 쭈구려 앉았다.

 

“...”

 

“...”

 

내가 옆에 좀 앉았다고 우리 사이의 대화는 기적처럼 사라졌다.

그건 좀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보다도 흐레스벨그가 자꾸 내 눈치를 보며 무언가 자꾸 꼬물거리는 게 신경 쓰였다.

 

설마, 얘가 나 불편해하나?

하하, 설마.

 

“저기...”

 

“ㄴ, 녜헷?”

 

...아니 진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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