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래도.. 전 주인님께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에 함께 앉아 다른 부대의 자매들과 휴식을 즐기던 도중 아스널 대장이 중얼거렸다. 분명 그녀가 한 '어째서 주인님께 그렇게 헌신 만을 할 뿐이냐' 라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한 것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영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콘스탄챠, 자네는 그렇게 생각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네?"


아스널 대장은 홍차를 느긋한 자세로 마시며 내 눈치를 보는 듯 보였지만 이내 스스로의 머리를 마구 긁으며 찻잔을 내려놓고 나를 응시했다.


"아~ 정말! 돌려 말하는 것은 내 성미에도 맞지 않으니 탁 까놓고 말하겠네."

"네..."

"자네는 그저 도망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서 말이야."


도망치다. 아스널 대장의 짧은 한마디는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가시와 같이 큰 울림을 주었다. 물론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확실히 난 도망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자네는 사령관을 좋아해. 이건 내 감일 뿐이지만, 사령관도 자네를 싫어하지 않아."

"그, 그건.."

"물론 메이드로 만들어진 자네는 주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랑한다면.. 정말 사령관을 사랑한다면 조금은 더 솔직하게 자네의 마음을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솔직히 마음을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아스널 대장의 말처럼 난 언제나 한발 물러서 주인님을 바라보고 있을 뿐,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물론 나 역시 주인님께 사랑을 주고, 주인님에게서 사랑을 받는 일들은 무척 하고 싶고, 갈구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망설임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 저는 메이드일 뿐인걸요! 주인님께 더 도움이 되시는 분들이 있는 이상, 전 주인님의 곁에서 시중만..!"

"그게 틀렸다고 하는 거야."

"그런..."


초창기 오르카 호에는 인력이 언제나 부족했다. 그래서 미숙하나마 내가 비서의 역할을 맡기도 했고, 군사적인 부분도 많이 관여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오르카 호는 다르다. 수많은 유능한 인적 자원들이 합류했고, 그녀들은 아주 훌륭한 솜씨로 주인님을 돕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뛰어난 분들이, 더 적성에 맞는 자리에서 주인님을 보좌하는 것이야 말로 내게 행복이 아닐까.


"물론 곁에서 바라만 보는 것이 자네의 행복이고 사랑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어."

"그럼 왜 이런 이야기를.."

"과연 그게 사령관도 바라는 것인가 의문이 들어서 말이지."


이어진 아스널 대장의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몰려왔다. 확실히 나는 주인님께 더 도움이 될까 싶어 내 마음을 접고, 내 욕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곁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주인님께서 지금의 상황을 기뻐할까 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자네 얼굴을 보니 그건 생각도 못한 모양이군.. 하.."


아스널 대장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사랑한다면! 정말 사령관이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면 당장 용기를 내서 먼저 권유해보게."

"주인님이.. 행복하길 원하지만.. 정말 그걸로 주인님께서 행복하게 되실까요?"


언제나 갖고 있던 의문이자, 주인님을 향한 마음에 언제나 브레이크를 잡아주던 의구심. 그것을 아스널 대장에게 전하자 그녀는 호쾌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비록 자네만큼 사령관을 오랫동안 봐오지는 않았지만, 그건 확실하게 장담하지. 사령관이란 남자는 마음이 아주 넓어! 그는 그에게 향하는 사랑을 외면할 정도로 냉철하지도 못하고, 말랑말랑한 심성을 지닌 남자야."

"푸훗! 그건.. 확실히.."


우유부단한 점이 확실히 주인님께서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단점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것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지만.. 항상 가혹하고 육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진 주인님을 옆에서 바라보며 그를 짓누르는 무게를 나누어 지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 그는 야수로 돌변하고 평소 말랑말랑한 심성과는 달리 아랫도리의 물건은 무척 두껍고 아주 길고 정말 딱딱하지만!"

"하하..."


진지한 듯 보이면서도 항상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아스널 대장의 모습이란 언제 보아도 임팩트가 강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이기에 이런 조언도 해주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니 그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듣자 하니 최근 사령관은 비서실의 계략에 모든 업무들을 빼앗기고 백수행 티켓을 끊어버렸다고 하던데.. 모처럼 온 기회가 아닌가? 본래 내가 그에게 쳐들어갈 작정이었지만, 하핫! 내 인심 써서 순번을 자네에게 양보하지! 이참에 사령관에게 확실히 권유해보게. 자네의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말이야."


어쩌면 나는 모든 콘스탄챠 자매들 중에서도 큰 복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날 생각해주고 조언해주는 동료들이 있고, 언제나 모두를 사랑해주는 주인님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용기를 내 먼저 주인님께 권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정말 고마워요 아스널 님.. 조언해주신 대로 지금 주인님께 찾아가 봐야겠어요."

"하하핫! 내가 큰맘 먹고 양보한 거니 꼭 성공하게. 그렇지 않으면 많이 서운할 테니."

"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딱히 그렇게 감사 받을 일은 아니니까 그럴 시간에 약속이나 잡으러 가게, 늦으면 내가 새치기 할지도 모르니까."


등을 떠 미는 아스널 대장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나는 휴대용 단말기를 들어 주인님의 방에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한 발짝, 나는 주인님께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처음의 행복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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