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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일이 없다는 것은 여유없는 여유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 찾아오길 바라는 것이면서도 내게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일을 하기 좋아하는 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혹여 일을 좋아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일을 하면 돈을 받기에 일을 좋아하는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

 그러나 일이 없다면. 돈을 어떻게 번단 말인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 있다. 저 먼 위의 높은 곳에 사는 자들이라면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겠지.

 아니면 숫자에 불과해진 자신의 재산의 숫자를 늘리려거나.

 뭐가 되었건 그 높은 타워의 저층은 커녕, 타워 근처에도 가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은 생존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쥐꼬리만큼의 월급이라도, 이 돈으로 한달을 버틸 수 있냐고 상류층의 인간도 못한 자들이 의심할 정도의 돈이라도 꾸준히 받을 수 있는 월급쟁이라면 일이 없는 것을 반길지도 모른다. 아무리 일이 없다고 해도 결국은 어디선가 돈은 받을 테니.

 그러나 나와 같은 프리랜서들은 일이 없다는 것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랴. 이 좁은 탐정 사무소에 얼마나 많은 돈을 매달 내고 있는지 말해준다면 사람들은 모두 놀라 자빠질 것이었다.

 빌어먹을 건물 주인. 물려받은 것이라곤 다 무너져가는 건물 한채인 주제에 무엇이 잘났다고 시티 한복판에 있다는 양 월세를 받는 것인가. 좁디좁은 창문은 건너편의 네온사인이 만드는 빛을 전부다 독점하고 있다는 듯, 색만으로도 시끄러운 빛을 사무소 안에 늘어트리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내 눈은 네온사인의 붉은 빛밖에 볼 수 없게 되었겠지.

 일이 없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계속해서 재떨이 위에 담배 꽁초를 만들어냈고. 담배연기를 길게 피워내자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 역시 길게 색소폰의 소리를 늘어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의 제목은 알지 못한다. 누구의 음악인지 알 수 없는 재즈음악은 며칠뒤의 나를 괴롭히겠지. 기억나는 것은 몇몇부분의 멜로디고 그마저도 헷갈릴테니. 그렇게 몇년을 고생한 뒤에야 우연히 길가에서 이 음악을 듣고 그제서야 그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될 것이었다.

 빗방울은 내 음악감상을 방해하겠다는 듯, 유리창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자신의 드럼 스틱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리듬없이 리듬을 만들어내는 빗방울의 불협화음은 재즈의 나긋한 멜로디에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귀는 라디오에 기울인채 나는 네온사인의 빛과 블라인드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문을 바라보았다. 불투명한 유리문의 위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다. 탐정 에릭 발렌타인. 모든 탐정사무소에 있는 문이었다.

 그 문을 나는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와서 일을 맡기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동시에 아무도 오지 않고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어느 만화의 노래에 그랬던가. 아침에 눈을 뜨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한다고. 아무일도. 나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탐정의 일은 재밌는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들고 차 안에서 호텔 앞만을 주시하고 있거나.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지루한 이야기를 몇시간이고 듣고나서 그중에 쓸모있는 한문장이라도 건지려 애쓰거나 하는 것이 탐정의 일이었다.

 살인사건도, 미스터리한 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알지만 의뢰인만이 모르는 것을 알아내 전해주는 것. 그것이 탐정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소정의 보상을 받는 것이 내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탐정일에서 가장 재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지금은 일하기 싫으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저 오늘은 공쳤다 생각하고 내일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 되는 것이니까.

 담배 한대를 다 불에 사그러지자 나는 그 불을 재떨이에 비벼껐다. 그리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나는 문을 바라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벌써 시간은 15시를 지나고 있었다. 퇴근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무소의 사장은 나였다. 퇴근을 한다고 화를 낼 사람은 없었다.

 불 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 붙지 않은 라이터를 책상에 치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대서양 해저 전신 케이블이 설치된지 이미 250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에 찾아오기보다는 전화나 메일을 보내는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있는다고 누가 찾아오겠는가. 내 손 위에 올라가는 작은 기계로 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사무실조차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길거리에 앉아서 의뢰인의 머리에 VR 기기를 씌워준다 해도 그는 차이점을 알지도 못하겠지.

 비싼 돈을 주고 이 허름한 사무실을 쓰는 것은 어쩌면 탐정에 대한 내 편견이 만들어낸 비극일지도 모른다. 탐정이라면 모름지기 탐정 사무소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 그 편견만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할 일 없이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

 그러나 곧 내 걱정으로 인한 지체는 후회없는 일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불투명 유리 너머로 누군가가 문앞에 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세번의 노크소리가 울렸다.

 “안에 누구 있소?”

 남자의 말이 사무실을 잠근 음악과 빗소리를 가르며 들어왔다. 저음의 목소리에는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의 사람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보험판매상이었다. 별로 팔 것이라는 희망은 없었지만 그래도 위에서 내려온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보험을 가입하려 마음먹은 사람조차 보험가입을 거절할 정도로 힘이 빠지곤 했다.

 두번째는 의뢰인들, 그중에서도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사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불륜같은 단순한 사연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욕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가진 비밀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같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해야 했다.

 저 높은 곳에 앉은 사람들. 그들의 속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은 저들이 빠진 심연에 비하면 한참은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문 열렸으니 들어오세요.”

 나는 오는 손님을 막지 않았다. 일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동시에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여유없는 여유를 만끽할 여유따윈 없었다. 문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그 남자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갈색 버버리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눌러쓴 남자의 얼굴은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대신 비에 젖은 그의 모자와 버버리 코트가 떨어트리는 빗방울은 볼 수 있었다. 그는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진정한 런던 사람이라면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그가 우산을 쓰지 않은 것은 그가 런던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는 푹 눌러쓴 모자를 벗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리며 말했다.

 “에릭 발렌타인 탐정 사무소 맞죠?”

 그의 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느껴졌다. 두툼하고 동그란 그의 외모와는 달리 그의 저음에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힘이 빠지는 것에는 풍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함께하기 때문이었을까.

 “네. 제가 에릭 발렌타인입니다.”

 “에릭 발렌타인...”

 내 말을 들은 남자는 코트를 벗고 옷걸이에 걸며 내 이름을 곱씹었다. 최소한 어디서 곱씹힐만한 이름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에릭 발렌타인, 그것이 본명인가요? 발렌타인이라는 성은 책에서는 보았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네요.”

 “네. 본명입니다. 제 이름을 딴 날도 있고 저는 그 날에 발렌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제 사무실에는 어쩐 일로 방문하게 되신 거죠? 설마 제 이름이 본명인가 궁금해서 오신 것은 아니겠고요.”

 남자는 내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맞은편의 자리의 의자를 뒤로 빼며 말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마실 거라도 하나 드릴까요? 마침 발렌타인이 있습니다. 12년산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일단은 위스키긴 하죠.”

 “아닙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저 이 부끄러운 일을 남들에게 말할 자신이 부족할 뿐입니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한숨을 연속으로 내쉬었다. 이런 의뢰인은 넘치고 넘쳤다. 말할 자신이 생길 때까지 옆에서 북돋와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먼저 이름부터 말해주시겠나요?”

 “토마스. 토마스 피터슨이오.”

 피터슨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보았다. 이건 농담이고.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누가봐도 맞춤형 양복이었다. 그의 뱃살에 맞는 양복을 맞추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비싼 양복의 여기저기에는 헤진 곳이 보였다. 그의 양복은 그의 부의 상징인 동시에 그가 찾아온 이유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문제는 대부분 부인이나 돈 문제입니다.”

 “네. 그 문제죠. 아내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사진을 꺼내더니 책상 위에 올렸다. 그의 부인이라. 머리가 벗겨진 남자의 부인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납득이 되는 외모의 부인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의 미모에 비할 바는 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지나친다면 한번은 뒤돌아볼 듯한 외모의 여인이었다. 트로피 와이프라 하던가. 남자는 생각보다 높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착한 사람이었죠. 제가 바이오로이드와 함께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심적으로 고생한 모양입니다. 최근 아내가 종교에 빠졌습니다. 코헤이 교단, 아십니까?”

 “네, 알죠. 일본에서 시작된 종교요. 바이오로이드를 앞세운 걸로 유명하죠.”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집단이었다. 종교집단은 탐정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현실이건 창작이건 말이다. 그리고 그 모험소설과 다큐멘터리에는 똑같은 요소가 하나 더 나온다. 목숨을 건 조사라는 것이었다.

 “아내, 베솔로바를 이 교단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코헤이 교단, 그곳은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코헤이 교단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들은 사이비입니다, 컬트입니다. 아내가 그곳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 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의뢰자분의 아내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 종교가 어떠하건 종교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서 나오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저는 탐정입니다. 제 일은 의뢰인이 모르는 사실을 알아내 그것을 전하는 것이지, 의뢰인의 부탁이라면 모든지 해주는 흥신소가 아닙니다.”

 내게 방법은 없었다. 코헤이 교단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고, 종교에 빠진 사람을 그곳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것은 더더욱 없었다. 게다가 이유조차 없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저 사이비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나같은 탐정에게 온 것도 당연했다. 경찰에서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테니까.

 “이게 진짜로 부끄러운 이유입니다. 저는... 후우, 베솔로바는 교단, 그 컬트에 수많은 돈을 붓고 있습니다. 그들이 달라는대로 돈을 다 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번 돈이 아닌 제가 번 돈이죠. 저는 비스마르크 코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매달 벌고 있죠. 그러나 베솔로바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교단에 바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코헤이의 뒤에는 어느 기업이 있는지 아십니까? 덴세츠 사이언스입니다. 위에서는 좋은 눈으로 보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의 월급을 받아가는 이사의 부인이 덴세츠 사이언스가 뒤에 있는 교단에 돈을 붓고 있는걸 말이죠. 이건 단순히 베솔로바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저희 가족이 달린 문제입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 결과 탐정인 나를 찾아왔다. 부자에겐 부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나같은 사람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살 수 있는 자지만 그 돈 때문에 내 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연이 구구절절 가슴아프다 하더라도 내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제 아내를 교단에서 나오게 해주신다면 10만 파운드를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계약서 좀 찾아올게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당연히 아내분을 구해드려야지. 탐정이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일을 가끔은 해야 하는 법이었다. 방법은 떠오르진 않았지만 결국 시간은 답을 찾아낼 것이었다. 혹은 그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