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저녁 숲속 산책로에서 리리스와 사령관은 단둘이서 손을 맞잡은 채 걷고 있다.




하아~ 슬슬 밤이 돼가서 날이 선선해지니 좋네요.



그러게. 여기에 바람까지 살살 불어주니 더 시원하네. 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더웠는데.



후후, 이제는 슬슬 추워지려 하는데, 우리 팔짱 끼고 걸을까요?



응, 당연히 나야 좋



!!!




둘의 낯간지러운 언동도 잠시, 리리스는 잡던 손을 뿌리치는 동시에 사령관을 등지고 총을 겨눈다.




어? 무슨






이내 부스럭 거리던 풀숲 안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가던 길 갈까요?



어, 그...래.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다시 둘은 팔짱을 낀 채 걷는다.



고마워. 역시 우리 경호대장이야.



에이~ 아무것도 아녜요. 이것도 엄연히 제 소임인걸요.




리리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능글맞게 맞받아친다.




(그나저나 내가 전혀 몰랐는데도 빠르게 경계태세에 들어가는구나. 저 공과 사를 칼같이 가르는 마음가짐도 그렇고, 정말 매번 볼 때마다 놀랍고, 멋진데다, 경이로워.)



우리 리리스랑 팔짱 낄 때마다 생각나는데, 네 팔은 생각보다 가냘프게 느껴져.



아? 아하하하... 요즘 운동을 좀 소홀히 해서 그런가 봐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너는 그 가녀린 팔로 내 목숨을 수도 없이 지켜줬잖아.



음... 어쨌거나 저는 경호인이고, 주인님은 피경호인이시니까요. 어쨌든 계속 말씀하시겠어요?



그렇지. 근데 말이야, 난 어떻게 하면 널 지켜줄 수 있을까?



네? 경호원은 저인데... 무슨... 말씀이시죠?



그게, 우리는 연인인데, 동시에 너는 여자고, 나는 남자잖아. 그러다 보니 난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너를 보호해주고 싶단 느낌이 계속 드는데, 반대로 너한테 계속 경호를 받기만 하니까 뭔가, 좀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어.



에이~ 저는 바이오로이드고, 주인님은 사람이신데 당연히 더 강한 쪽이 지켜주는 게 맞는 거죠. 무엇보다 저는 존재의의 자체가 경호원인걸요? 저는 전혀 상관 안 하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하하... 그렇지. 그래도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봐. 너에게 보호받을 때마다 자꾸만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력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




리리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골똘히 생각한다.




주인님, '경호원'이란 단어의 정의를 아시죠?



그야, 피경호인을 지켜주는 게 경호원이지.



아뇨, 아뇨, 좀 더 본질적인 의미요.



음, 대상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



그렇죠! 경호원의 본질은 바로 대상의 목숨을 지켜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주인님은 이미 저보다 훨씬 훌륭한 경호원이세요.



어? 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 계속 말해볼래?



주인님, 이 세상이 멸망하고 주인님이 오시기 전에,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땠는지 아시죠?



응, 싸우다가 죽고, 다치고, 자살하고, 하여튼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목숨을 잃었다 들었어.



네. 저 역시도 주인님을 만나기 전까지, 가망 없는 삶을 계속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너무 지쳐서 스스로 삶을 등질까 여러 번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더니 짜잔! 사람님, 다시 말해 주인님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거예요! 저는 너무 기뻐서 한달음에 주인님께로 달려왔죠.



그리고 주인님과 함께하면서, 또 주인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손길로 말미암아, 저는 주인님을 평생토록 지키기로 마음먹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늘내일하던 이름뿐인 경호원이, 진짜 경호원 리리스가 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저를 포함한 수많은 분은 자기 삶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주인님은 저 리리스보다도 훠얼~씬 훌륭한 경호원이신거나 다름없죠.



주인님, 저는 주인님 단 한분만을 지켜드리고 있지만, 주인님은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을 지켜주고 계세요.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아... 하하하하. 그러게.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난 너희들을 지켜주고 있는 거겠지. 멋진 말 고마워 리리스. 한 방 먹었어.



후후, 저흰 언제나 주인님에게 감사하고 있답니다.



근데 말이야, 리리스 네 말대로 난 수많은 이들을 지켜주고 있고, 넌 그런 나를 지켜주고 있잖아? 그러니 여전히 너는 훌륭한 경호원이야.



아하하하하... 칭찬 감사하지만 이러다간 끝도 없을 거 같아요. 갈 길 가죠.



어, 그래야지. 근데 시간이... 아직은 여유가 좀 있네. 마침 앉을 곳도 있는데 좀 쉬었다가 갈까?



네, 그러죠. 근데 주인님, 혹시 아직도 저를 지키고 싶단 느낌이 '본능적으로' 드시나요?



음... 솔직히 그래.



그렇다면 주인님, 제 총을 잠시 들어주시겠어요?



어? 어...




리리스는 총을 건넨 후, 사령관을 등지고 옷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기 시작한다. 잠시 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고, 양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간신히 가리는 자세를 취하더니 다시 돌아서 사령관을 바라본다.




자, 주인님? 리리스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었어요. 지금의 리리스는 위험에 노출되었어요... 이대로 있으면 다칠지도 몰라요... 주인님, 어서 이리 오셔서 리리스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지켜주시겠어요?



...




그리고, 둘은 서로서로 온 마음과 온몸으로 지켜주는 경호원이 된다.




언젠가 그릴 만화 소재를 일단 콘문학으로 만들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