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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 된 그 날이 되었어.

 오늘을 위해서 그토록 연습을 해왔고 리허설까지 했지.

 

 준비 됐나 발키리?”

 

 물론이죠사령관 님.”

 

 마지막으로 서로 각오를 확인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지.

 

 

 

 저기사령관님 안 됩니다여긴 환자가 지내는 방이에요.”

 

 인간님께서 오셨는데 다친 곳 하나 없는 년이 쳐 누워있는 걸 봐줬더니환자가 지내는 방씨발 년아 그러면 처음부터 끌고 오질 말았어야지마을의 모든 것은 사령관님의 것이에요하고 꼬시더니 왜 방 하나 마음대로 못 들어가냐?”

 

 죄송합니다정말죄송합니다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사령관님의 것이 맞습니다그러니 제발....”

 

 아니 씨발 왜 마음 아프게 그래발키리야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죄송합니다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그저.... 그저그러니까 환자가 있는 방에 오면 건강에 나쁘시지 않습니까사령관님이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하하우리 발키리머리 많이 굴렸네그래환자가 있는 방당연히 건강에 나쁘겠지근데 씨발아 지금 눈앞에서 짱구 굴려서 나온 말이란게 딱 보이는데 내가 그걸 네 따르겠습니다당연히 그래하집요’ 라고 할 것 같냐?”

 

 “......”

 

 이제는 말도 씹네내가 하는 건 말도 아니라는 거지대화가 그만하고 싶다는 거지?”

 

 아닙니다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면 뭔데무슨 의미였는데?”

 

 그건....”

 

 거봐그런 의미 맞잖아왜 거짓말 하려고 그래내가우리발키리를아끼는 걸 알면서 왜가슴 아프게구라를 치냐고.”

 

 죄송합니다.....”

 

 하이고... 새끼 튼튼해서는 뺨따구 치는데도 내 손이 다 아프네.... .”

 

 사령관님.”

 

 그냥 네가 인간해.”

 

 ?”

 

 씨발 좆같으면 네가 인간 하라고?”

 

 “...아닙니다제가 어찌....”

 

 다 내 꺼라고 해놓고 방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말 걸면 씹고이건 안 됩니다저건 안 됩니다그럼 내가 되는 건 뭐냐?”

 

 사령관님....”

 

 그러니까 네가 인간해나 안 할란다좆같은 새끼 빵 쏴죽이고 네가 인간 해.”

 

 “.... 제 태도가 미흡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그렇지만 저희 바이오로이드는 오로지 인간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첫 원칙입니다부디 용서해 주세요.”

 

 “......”

 

 “......”

 

 두 사람이 힐끗 누워있는 레오나를 보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미동은 없었어.

 그렇지만 묘한 떨림이라고 해야 하나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내뿜을 수 있는 존재감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내가 미안했다우리 발키리이렇게 충직한 친구인데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네그치?”

 

 아닙니다사령관님괜찮습니다.”

 

 아냐이건 내가 괜찮지 않아그렇게 듬직하고 충성스러운 부하인데 막대한 내가 잘못한게 맞지.”

 

 “...제발

 

 뭐라고?”

 

 아닙니다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어허여기서 또 고집부리는 거야?”

 

 “.......”

 

 대답.”

 

 “.....사령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우리 발키리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먹네아무튼 그런 것 보다 내가 잘못을 사과했고 응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풀어낸 것 맞지?”

 

 “......”

 

 그러면 화해의 섹스가 있어야지.”

 

 “......”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풀어내고사이를 돈독하게 하는데에는 이것만한게 없어요 또몸을 겹치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다보면 묵은 감정도 풀어지고 애정도 생긴다니까이게 떡정이란게 무섭거든.”

 

 방 안에는 발키리의 체념한 듯한 숨소리와 함께 금속이 잘그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어.

 물론 당연히 진짜로 벨트를 푸는 일 따위는 없었고 사령관은 무심한 표정으로 금속 조각을 매만지고 있을 뿐이었지.

 그리고 레오나의 손은 움찔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더듬거리기 시작했어.

 아마도 늘 곁에 두었을 개인 화기를 찾고 있을 거야.

 

 제발 사령관님... 제가 잘못했으니 레오나님 옆에서만은...”

 

 낄낄그야 옆에 게스트가 있어야 더 흥이 나는 법 아니겠어?”

 

 쿠당탕탕

 

 그리고 그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미약하게 움찔거리고 있던 손이 권총을 쥐었고레오나는 호랑이처럼 달려들었어.

 

 철컥

 

 관자놀이에서 묘하게 커다랗게 들리는 금속음과 함께 차가운 쇠의 온도가 느껴졌어.

 상처 입은 암사자는 마지막 남은 가족을 위해서 최후의 인간에게 이빨을 들이밀었고그건 방아쇠를 당기기만 해도 끝났지.

 

 “......”

 

 “.....,”

 

 사령관은 처음으로 철혈의 레오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어.

 보통 풍만한 여타 바이오로이드와 다르게 환자답게 비쩍 마르고 앙상한 몸이었지.

 그러나 흐려진 눈동자에는 열기가 가득했어.

 광기분노집착의무사명혐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상념들이 타오르며 마지막의 마지막 불길을 일으키고 있었지

 그건 비단 눈 뿐 아니라 모듈의 과부하로 인하여 뜨거워진 몸이 알려주고 있었어.

 그녀는 분노였고그녀는 불이었으며그녀는 최후의 지휘관이었어.

 

 찰칵

 

 그리고 적을 쏘아 죽이는 병사였지.

 

 

 

 

 

 

 

 “.....”

 

 당연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권총의 총알은 미리 빼어놓았으니까.

 그렇기에 사령관에게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었어.

 지금 이것이야말로 그런 연극을 하면서까지 사령관이 가지고 싶었던 기회니까.

 

 나를 봐라.”

 

 “....”

 

 네 상관은 나다.”

 

 방금 전의 비열하고 야비한 목소리는 집어 치우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렸지.

 점차 또렷해지는 눈동자를 그대로 쏘아보며 하나하나 새기듯 또렷하게 일러주었어.

 

 너 따위 바이오로이드가 지휘권이 있다고 나서지 마라너희는 평등하게 인간의 도구이며나를 위한 비품일 뿐이다.”

 

 그 강한 어조는 암시가 되어서 레오나에게 달라붙었지.

 

 너의 공은 나의 것이며 너의 과 또한 나의 것이다.”

 

 감정이 격렬하고 아직 의식이 혼탁할 때.

 

 네가 한 일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만 이루어진 일이다.”

 

 사령관은 이 상태를 원했어.

 

 감히 도구 주제에 내 전공을 탐내지 말아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녀를 유도할 수 있도록.

 목표가 없어진 그녀에게 증오를 심어 넣을 수 있는 지금을 말이야.

 

 명심해라너는 내 것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령관은 주인 등록을 끝마쳤지.

 그리고 그러자마자 레오나를 바닥에 적당히 패대기쳤어.

 

 콜록콜록.”

 

 사령관의 말 때문인지아니면 내동댕이치면서 폐가 자극 받은 것인지 레오나는 엎드려 기침을 했지.

 그건 환자로서 반응이긴 했지만반대로 그녀가 환자로 되돌아왔다는 뜻이었어.

 그녀는 더 이상 시체가 아니었어살아있는 사람이었지.

 

 레오나 님!”

 

 죽여야해... 너 때문이야... 죽여야해... 네가... 자매들을....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지만상관없었어.

 그건 시체가 아니라 사람의 반응이었으니까 말이야.

 죽은 사람 하나 살려냈는데 부작용이 없을 리가.

 그리고 사령관은 그 부작용을 감수할 자신이 있었어.

 

 일단 침대로 모실게요.”

 

 발키리... 그자를.... 죽여야....

 

 “.....돌봐줘라.”

 

 사령관은 밖에서 대기 중이던 간호 인원들을 부르고는 방을 나섰지.

 

 

 

 

 

 “....레오나 님이 깨어나셨습니다.”

 

 그런가연극이 잘 통했다니 다행이군.”

 

 그날 밤.

 발키리는 사령관의 방으로 찾아왔어.

 오랜 세월 바라마지않던 일이 해결 되었으니 좋아해야 했건만어둑어둑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는걸 말해줬지.

 그랬기에 사령관 앞에서의 발키리의 얼굴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이었어

 

 대신에 사령관님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고 계시지만요.”

 

 다행히 원하던 반응이로군저번에도 말했지만간호하는 애들에겐 입단속 제대로 하라고 전해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증오가 옅어지면 안 된다.”

 

 사실상 가장 가능성이 낮았던 도박이 성공 했으니 나머지는 적당히 유도를 하면 될 일이었어.

 설령 갑작스럽게 미쳐서 사령관 본인을 쏴 죽인다고 하더라도 조금 흔들릴지언정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말이야.

 적어도 발키리와의 약속과 이곳에서 해야 하는 제 목표는 이루었다고 봐도 무방했지.

 

 하지만 사령관님....”

 

 발키리.”

 

 “.....”

 

 그녀석의 상황을 보았겠지누가 보아도 불 꺼진 재에 불과했던 사람이 있을까 말까 했던 잔불을 긁어모아 피워 올렸어만약 나를 쏘아 죽이는데 성공했다면 그것마저 꺼지고 완전히 재가 되었겠지만... 내가 장작을 넣었다재는 불을 바라는 법이니까.”

 

 그건 증오라는 이름의 연료였고살해라는 이름의 목표였지.

 정말 생존까지 놓아버린 무의식을 자극해야 했고설령 자극에 성공했다고 한들 반응할지도 확실치 않은 도박이었지만성공했어성공해버렸지.

 그 모든 건 레오나 본인이 무의식 하에 자신의 생존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던게 있던 덕이었어.

 

 네 존재가 그녀에게는 마지막 잔불을 사용할 만큼 소중했던 거야.”

 

 그랬기에 사령관은 발키리를 똑바로 바라보았지.

 아직도 번민하고고민하며두려워하는 자신의 부하를 말이야.

 

 너는 레오나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다그러니 걱정마라.”

 

 색이 다른 두 눈가에는 물기가 서려있었어.

 기묘한 표정 그대로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은 어쩌면 기괴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사령관은 신경쓰는 기색 하나 없이 다가가 눈가를 매만져 주었지.

 

 레오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싫어하지 않아.”

 

 아아.....”

 

 그날 자신에게 있어서 레오나가 짐이라고 여겼던 그날.

 그리하여 도망치듯 마을을 뛰쳐나오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있었다.

 

 그녀가 책임감 속에 버거움을 숨기고 있었듯레오나 또한 헌신 속에 원망을 숨기지 않았을까.

 사령관의 존재로그를 사령관으로 여기게 된 날 밤의 위로로 삭혀 녹이고 있었지만그럼에도 레오나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자각하지도 못했던 두려움이 가슴 한 켠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 사람은 그것을 알아주었다.

 있는지조차 몰랐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번에도 위로해주었다.

 

 ...그랬기에 발키리는 이 상황이 더없이 서러웠어

 

 사령관님... 고맙고마워요.... 그치만... 레오나 언니가... 사령관님을 싫어하고증오하고미워서.... 죽여 버리겠다고..... 나 때문에 사령관님이 괜히.....”

 

 괜찮아계획 설명할 때 이야기 했잖아너의 사령관이니까이 정도는 문제없어.”

 

 그치만.... 그치만.....”

 

 어느새 사령관의 품에 안긴 발키리는 울면서 띄엄띄엄 이야기를 꺼냈지

 드디어 레오나가 일어났다는 기쁨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주었다는 감사자신을 그렇게나 생각해준 것에 대한 기쁨반면에 잔불이라 말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죄책감 등등.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증오를 사는 처지가 된 것에 대해서

 그 모든 감정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사령관은 그녀를 달래며 묵묵히 기다렸지.

 

 이윽고 눈물이 잦아들기 시작하고사령관을 껴안았던 팔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어.

 아이처럼 울었던 자신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않고 오히려 푹 숙였지.

 사령관이 그런 발키리의 뒷머리를 쓰다듬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

 

 잠시 멈칫거렸던 손짓이지만이내 계속하라는 듯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

 그에 용기를 얻은 발키리는 마저 말을 끝낼 수 있었지.

 

 이렇게나 번거롭게 해드리고은혜만 입고무엇하나 보태드린 것이 없지만그래도 부디저를 조금이라도 아껴주신다면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사랑의 고백이 아닌 애원간청이었어.

 그만큼 발키리는 사령관에게 깊은 감정을 품고 있었고무엇보다도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의 거리는 이와 같았지.

 사령관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품에 안겨있던 발키리의 얼굴을 들어 올렸어.

 얼굴을 보이기 싫다는 듯 잠시 힘을 주던 발키리는 이내 마음을 꺾고 사령관의 손길에 따라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었지.

 

 “.....”

 

 “.....”

 

 평소의 단정하고 아름다웠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눈물과 콧물로 흐려져 아주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었어.

 발키리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 꼴을 잘 안다는 듯 사령관의 눈을 피하고 있었지.

 

 나를 봐라.”

 

 “......”

 

 허락하겠다.”

 

 “.....?”

 

 발키리네가 내 부하인 이상넌 내 것이다.”

 

 사령관은 발키리의 턱을 잡고서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던 얼굴을 무시하고 입술에 키스를 했지

 잠시 놀라서 눈이 땡그랗게 커진 발키리는 이내 눈을 감고서 그가 주는 선물에 감사했어.

 

 그리고 이제 이전 날에 약속했었던 그 다음 일을 할 차례가 왔지.

 시간은 밤이었고바로 옆에는 침대가 있었으며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확인을 했으니까.



https://arca.live/b/lastorigin/54868546?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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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짤때는 재미있었는데 막상 쓰고나니 별로임.

역시 너무 쉬고 와서 그런가... 이어쓰고 나서부턴 마음에 드는 편이 하나도 없네.

미안하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