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형님, 준비됐슴다.


다들 모였지? 에헴...


자, 펙스 난민 출신인 여러분. 부사령관... 이 아닌, 전 부사령관이다.


우와아아아아아!!!


...고마워. 이 환호도 오랜만이네. 이젠 부사령관직에서 내려왔지만 여기있는 사람들은 날 따르는 애들이라 내가 향후일정 안내하려고 다시 단상에 서게 됐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들 알다시피 오르카호가 아무리 넓다해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는데 이번에 들어온 난민 뿐만 아니라 요안나 아일랜드같은 다른 후방 거점이 망하고 거기 애들까지 전부 몰려들어와서 조금 비좁아졌다.


그러니 전투 모듈이 없어서 싸울 능력이 안되거나 있다해도 전선에서 빠지고싶은 애들은 여기서 머무르게 될거야.

전쟁 끝낼 때 까지 후방보급이나 뭐 그런 일 하면서 지내는 거지. 참고로 나도 여기 머무를 예정이고.


사실 마을 짓고 살기엔 좀 춥긴 해. 요안나 아일랜드가 기후는 적당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여기가 안전하다니까 뭐.


 

원래 후방 거점에 있던 비전투원인 애들은 전부 여기 정착할 예정이고 너희들도 대부분 여기 마을 짓고 살게 되겠지만, 결국은 본인 희망에 따라 머무를지 말지 정할 수 있어. 철충과 펙스와의 전쟁에서 한 몫 하고싶든, 아님 무슨 이유든 간에 원한다면 오르카호 안에 남을 수 있어. 그 반대도 되고.


난 여기서 살래. 애초에 난 택배원이지, 전투원이 아니라고. 여기 마을이 생긴다면 드디어 내 본래 역할을 할 수 있겠는데?


미안한데 누나는 오르카호에서 좀 더 일할 생각이거든? 거기 일손이 좀 부족해서 아직 나오긴 힘들 것 같거든. 우리동생 보고싶어지면 전화할게.


우린 여기서 살래. 역시 바닷속을 잠항하는 것보단 햇볕이 드는 바깥이 좋아.


전 아직 오르카호에 차린 미용실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예약하신 손님분들도 많고... 그래도 휴가때마다 놀러올게요!


난 사부님한테 수련받아야 해서 당장은 못가. 부사령관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그 때 가서 방주에 정착하려고.


사부라면... 아스널 말이군...


나도 그 뭐냐... 친구들 두고 가기 그래서, 좀만 더 있다가 가려고. 


아자즈랑 이터니티 말이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착이지! 주인한테 빚 진 이 목숨, 평생 주인 곁에서 머물며 갚고야 말겠어!


잠깐, 티에치엔? 처음보는 얼굴인데. 나한테 목숨을 빚졌다고?


당연하지! 그 때 워낙 정신없었으니 주인은 날 못봤을 수도 있겠지만 난 똑똑히 봤다고.


그 비열한 레모네이드 제타가 기습했을 때, 주인이 "여긴 우리가 막고있을테니 가라!"고 하면서 난민들을 도망치게 했을 때의 그 등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잊겠어!


 

그런 대사 한 적 없거든... 그보다, 이번에 새로 구출된 난민 중 한명이었구나. 어쩐지 낯설더라.


저도 여기 정착할 거에요! 오르카호 안만 순찰하는 것보단 탁 트인 야외에서 산책하는 게 더 즐거울 거에요!


흠... 새 마을을 짓는다면 치안 유지가 필요해지겠지? 나도 정착할게. 시티가드는 어디에나 있어야지.


나도 여기서 내리려고 해. 사디어스 말대로 여긴 당분간 경찰쪽 일손이 많이 필요해질테니까.


...오.


왜 날 그렇게 봐?


아니, 좀 놀라서. 설마 니 왓슨을 두고 여기 내릴 줄이야.


무슨 말을 하는거야? 왓슨이 누구야?


...엥?


아, 혹시 오르카 리앤이랑 헷갈린거야? 정말! 난 저번주에 부사령관 따라서 여기 왔다고.


잠깐, 그 난민들 중에 리앤도 있었어?


네.


그...렇구나. 

(다시 생각해보니 9지역 드랍 테이블에 리앤이 있었던 것 같기도...)


우리 엘븐 시리즈도 여기서 살 생각이야. 오르카호 안에선 못해본 일들을 해봐야지! 숲이라도 울창하게 가꿔볼까? 아니면 목장을 지어서 각잡고 낙농업을 해볼까?


새 마을 짓는다면 목공업자가 필수지! 나도 갈게.


엔지니어도 필요하겠죠? 공방 하나 차릴게요.


... (힐끔)


그래, 쟨 이번에 새로 들어온 난민 중 한명이야. 오르카 아자즈는 그 바니걸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던데.


...은퇴하니까 뒤늦게 잭팟이 터지고있네 이거.


자, 그럼. 오르카호 떠나려면 멀었긴 하지만 마을 건설 시작하기 전에 몇 명이나 머무를 지 계산해놔야 하기도 하고, 임시 숙소도 지어야 하니 희망하는 거주장소랑 이름, 등록번호 적어서 나한테 메일로 보내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애들도 있을테니 기간은 일주일 내로. 이상.


좋-았으, 이제 백수 모드로 돌아가볼까... 입이 심심한데 어디 가서 뭐 좀 먹자. 카페 호라이즌이랑 카페 아모르 중 어디가 좋을까...


전 카페 아모르로 갈게요. 오르카 유미 양이랑 같이 마시기로 했거든요.


아직 낮인데?


낮술의 묘미를 가르쳐주겠다던데요. 두 분도 같이 가실래요?


그러지 뭐. 리디아도 데리고 가자.


그러고보니 걘 어디갔답니까?


듣자하니 마리한테 끌려갔다던데.



*



자네를 보니 내 부관이었던 브라우니가 생각나는군. 비록 지금은 전사했지만 멸망 전부터 함께해왔던 전우였었는데, 자네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었지.


대장... 그 브라우니 얘기 귀에 못박히도록 들었지 말임다...


후후, 실레했네. 나도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그러고보니 그 부관 브라우니와 함께했던 이 일화가 생각나는군. 멸망전쟁 때 있었던 일인데...


형님... 살려줘...



*



부어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여긴 그런 술집 아니니까 조용히 마셔!


치, 재미없게스리.


주변에 민폐니까 그렇지!


에이~ 흥겹고 좋은데요 뭐얼~


자, 유미 씨! 쭉 들이키세요 쭉! 금주령이 풀린 지금이 기회라고요!


네, 네... (꼴각꼴각...)


후아아... 되게 맛있네요, 펙스에 있는 동안엔 이런건 상상도 못해봤는데...


여어,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나?


암, 즐겁고말고. 다른 브라우니들은 아직도 술도 못마시고 근무선다더라.


스틸라인은 늘 고생이네...


다른 호드 대원들은 전부 알레스카로 갔는데 하이에나 자넨 남아있기로 했나보군.


캭캭캭, 나야 이젠 리디아네 형님 팀이니까.


근데 까놓고 말해서 좀 심심하긴 해. 부사령관 직속 부대라길래 블랙 옵스 같은 걸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부대였다니... 나도 칸 대장 따라가서 놀고올걸 그랬나?


야임마, 이런 꿀 빠는 곳이 흔한 줄 알아?


힝... 한가해졌으니 신형 폭탄이나 만들어서 터뜨려봐야지.


여기 정착한 기념으로 불꽃놀이라도 만들어서 쏴보는 건 어때?


오! 그거 재밌겠다!


근데 트레저 넌 별로 안마시네?


써... 이딴 걸 대체 왜마시는 거야?


킥, 제조된 지 10년도 안된 응애에겐 무리였나?


아니 이년은 틈만 나면 제조일 걸고 넘어지네.


우린 콜라나 마실래? 대낮부터 취하는건 사양이거든.


아무래도 그래야겠슴다...


콜라 두 잔인가? 금방 가져다주지.


안녕 부사령관. 나도 껴도 될까?


앉아앉아. 그보다 이젠 부사령관 아니라니까.


대신 너한테 명예 부사령관직을 수여하기로 했어. 그건 괜찮지?


명예직? 그래 뭐, 그정도야... 실권은 없지?


있어.


명예직이라매 임마!


부사령관. 자네가 지구상 유일한 두 인간 중 한 명인 이상 실권이 있을 수 밖에 없네. 자, 여기 콜라.


여기 주둔지 세우는 걸 도우라고 강요하진 않겠지만 필요할 때 간섭 정도는 할 수 있을거야. 그 편이 여기서 머무를 애들한테도 편할거고.


그러고보니 네가 맡겠다고 한 일은 어떻게 됐어? 다들 어떻게 하겠대?


날 따르는 난민 출신 애들 중 7할은 이 곳에 마을 세워서 정착하고 3할은 로테이션 돌려가며 오르카호에서 근무하다가 여기와서 쉬는 식으로 일하기로 했어. 


...근데 어떻게 앉자마자 바로 일 얘기냐?


그치만... 일이라도 안하면 너도 심심한걸... 대체 뭘 해야될지 모르겠어...


어떻게 내가 할 일을 하나도 안남겨놓을 수가 있지?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이 뭔...


넌 안그래? 하던 일이 전부 사라져서 심심하지 않아?


전혀. 오히려 자유로워져서 즐거운데.


큭, 너라면 내 고통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얜 대체 언재부터 워커홀릭 속성이 붙은 거야?


심심하면 놀면 되잖아, 다른 애들이랑 같이. 데이트든 뭐든 하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그것도 좋지만...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싶어.


2세를 생산하는 일은 어떤가?


넌 그 얘기 할 줄 알았다.


그럼 심심하지 않게 재밌는 사건 하나 만들어줄까? 야, 리디아! 나랑 결혼할래?


콜!


와우.

...시원시원하네


오, 이렇게 갑자기 결혼해버리는 건가. 시원섭섭하군 그래.


야 트레저! 들었지? 이제부터 형수님이라고 불러 이 쉐끼야ㅋㅋㅋㅋ


조카 얼굴 보고나면 그때부터 그렇게 불러준다.


어쭈,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형님, 우리 애 갖자!


사령관네 아이 태어난 뒤에.


...그게 언젠데?


나도 몰라. 그치만 체면이란게 있잖니, 좀만 참고 기다려줘.


우우~


하하...



그나저나 새 집은 뭘로 할래?


오! 마침 잘 물어봤어! 우리 수영장 딸린 집 하나 마련하자!


그럼 전 대빵 큰 차고가 있으면 좋겠지 말임다. 지프차 한 대 사서 넣고, 탱크도 한 대 넣고.


탱크가 왜 필요해?


왜냐면 내가 갖고싶으니까. 


맙소사, 넌 무슨 남자 브라우니냐?


 

캬핫! 니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레후 상뱀, 이런 기분이셨슴까... 오늘따라 그립지 말임다...


 

야 생각해봐, 어디 놀러갈 때 차고에서 탱크 꺼내서 몰고가면 기분 쩔지 않겠냐?


퍽이나 이새끼야.


후... 되게 담배 땡기지만 끊기로 결심했으니 참는다.


잉? 언제부터 그런 결심했는데?


오늘부터. 난 이제 예비 애엄마라고.


근데 그럼 전에 쓰던 셀주크는?


사실 셀주크 쓰던거 탑승형으로 개조해서 들고갈 수 있다고 하던데 정비점검 힘들것같아서 오르카호에 두고 오기로 했슴다. 필요할 때만 빌려쓰는 걸로.


야, 탱크 정비점검은 쉬어보이냐?


수영장 관리는 쉽고 그럼?


얘 유미야! 넌 뭐 새 집 살림으로 갖고싶은 거 없어?


전 그냥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랑 담요만 있으면 돼요.


 

넌 욕심 좀 가져야겠다.


글쎄요, 그건 그다지...


안마의자는 어떻슴까?


아, 그건 좀 갖고싶네요.



*



 

어디... 거주구역은 여기다 짓는건가? 포트리스, 여기서 내려줘.


알겠습니다.


(비행중이던 포트리스가 속도를 조금씩 줄인 뒤 지상에 네 발을 딛고 착륙한다.)


아오... 엉덩이야...! 좀 더 살살 착륙할 순 없어?


저는 탑승형 AGS가 아닙니다 부사령관님. 저를 택시처럼 쓰는 것은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그치만 당장 태워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더라. 다들 나가거나 바빠서 말이지.


 

제 최우선 목표는 부사령관님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본 기체 위에 올라탄 뒤 비행을 시키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긴급상황이 아닌 이상 자제해주십시오.


 

장거리 비행도 아니잖아, 너무 째째하게 그러지 마.


더치, 손님이 왔네.


응? 아... 


...방금 저 포트리스가 날아온 거야?


장화에 더치걸에 토미 워커라. 뒤에 둘은 그렇다쳐도 장화까지 낀 건 보기 드문 조합이구만.


어서와. 부사령관이지?


명예 부사령관이지만 뭐, 그냥 그렇게 불러도 돼. 근데 너 여기서 일하는 거야? 


아직 건설엔 안들어갔어. 지금은 구역만 책정하는 중이야.


그게 아니라, 사령관이 애들은 일하지 못하게 했을텐데. 게다가 넌 이번에 사령관이 데리고 온 더치걸이지? 여기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내 말이. 다른 꼬맹이들이랑 같이 쉬면서 지내도 되잖아?


내가 지원했어. 토미랑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저번에 정말로 영영 헤어질 뻔 해서...


 

내 걱정은 안해줘도 되네, 더치.


내가 할 말이야. 내가 남고싶어서 남는 거니까.


으음... 근데 장화 너는 여기서 뭐해? 넌 오르카호에 남는 쪽이라서 집 지어달라고 요청할 것도 아니잖아.


그냥 뭐... 꼬맹이 잘 지내나 보러 왔지...


아하, 밖에서 같이 살아남으며 정들었구나.


왜, 문제 있어?


전혀, 아무 문제 없지. 아무튼, 이번에 난민 출신 애들이 살 예정인 마을 있지? 거기 우리집도 끼워달라고 요청하려고 왔어.


아, 그거라면 이미 사령관이 와서 말해줬어. 촌장 역도 해야하니 마을 중심에 배치해달라던데.


잠깐, 무슨... 난 그런 말 못 들었는... 뭐, 그러던가.


그리고 또, 우리집에 넣고싶은 리퀘스트가 있거든. 여기 목록.


어디... 우선 2층집이고... 수영장에, 차고에... 사당... 정비실... 화약고...? 그리고 격납고도?


집 안에 다 넣을 수 없다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짓는 걸로 부탁해.


거기다 방 갯수가... 뭐야, 몇 명이서 사는 집이야? 7명?


8명이야, 포트리스 포함해서.


제가 제조된 후 수행한 임무는 2개뿐인데 벌써 전선에서 물러나긴 이르다고 판단됩니다만.


그건 내가 정할 일이지. 넌 앞으론 우리집 경비하면서 살 예정이걸랑.


 

저택 경비 임무입니까...


경비 범위를 마을 전체로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유사시엔 부사령관님의 저택 외에 마을과 난민 출신 바이오로이드 분들을 지키는 추가임무를 맡아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럼 만족합니다.


화약고는 거주구역에서 떨어뜨린 데 지을게. 차고랑 격납고, 정비실은 합치고, 사당은 마당에 설치하면 되겠다.


일단 윗선에 전달해야 자세한 견적이 나올텐데, 얼핏 봐도 요구사항이 많아서 짓는데 특히나 오래 걸릴 것 같아. 괜찮을까?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해. 그때까진 임시 숙소에서 지내면 되니까.


응... 알았어. 기대해줘.


근데, 그... 사령관은 지금 뭐하고있어?


몰라. 카페에서 나오고 나서 헤어졌거든. 보나마나 변태짓 하고있던가 바보짓 하고있던가 겠지. 아님 둘 다 거나.


너...! 니까짓 게 뭘 안다고 사령관 험담을...



역바니야말로 최고의 의상이다! 모든 바니걸을 역바니로!


니히힛! 바로 그거야, 바니 대왕 씨! 더 크게!


이제부터 역바니의 시대다! 전부 붙잡아서, 역바니로 만들어버리자!



...


너보단 잘 알지. 


 

그건 그렇고, 아까만 해도 심심하다고 하더만 지금은 즐겁게 잘 놀고있네. 잘됐구만.


저기... 역바니가 뭐야?


애들은 몰라도 돼...


그럼 난 간다, 수고해. 포트리스?


거듭 말씀드리지만 본 기체는 탑승형이 아닙니다. 다른 분께 픽업을 요청하시는 것이-


오기 전에 한 얘기 반복하지 말자 우리.


...꽉 잡으십시오.



*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부사령관 일행의 임시숙소)


역바니 소동 보고 왔더니 벌써 저녁이네... 얘들아, 나왔어.


아, 오셨슴까 형님.


뭐하고있어? 저녁밥 준비중이야?


어... 그냥 탁자만 닦고 있었슴다.


그래? 잘했어. 곧 밥 차릴건데 식탁이 깨긋해야지.


그나저나 조용하네. 다른 애들은?


히루메랑 애니는 나가서 아직 안돌아왔고. 리디아하고 유미, 하이에나는 낮에 곯아떨어져서 아직까지 자고있슴다.



대낮부터 술 거하게 때리더니 그럴 줄 알았다...


으음... 형님 왔구나... 지금 아침인가? 저녁이네...


아, 깼냐? 옮기는 내내 안깨더만 이제야 일어나네.


꿀잠 잤지. 꿈 속에선 니가 나한테 존댓말을 하던데.


헷, 놀고있네. 잠이나 계속 자라.


우리가 좀 시끄러웠나?


딱히... 형님 뇌파가 느껴졌을 뿐이야. 저녁은 먹었어?


아직, 이제 먹으려고.


라면 끓여먹자. 계란도 풀어서.


 

좋지. 너 그 메뉴 은근 좋아하더라.


히히, 나한테 이 맛을 알려준 건 형님이라고.


라면에 계란을 왜풀어?


먹어봐. 너도 마음에 들걸.


흐아아... 그대여, 보고싶었느니라...


오, 마침 히루메 왔네. 뭐하다 왔길래 그리 지친거야?


배틀 메이드 쪽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며 도와달라길래 갔는데...


그 앨리스란 아이가 군기 잡는답시고 어찌나 거들먹거리던지! 그대여, 언젠가 그대를 따를 배틀 메이드를 제조하게 된다면 앨리스는 빼고 제조하거라!


아이고... 고생했어. 푹 쉬어. 그래도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고 끝까지 일한 게 어디야.


...머리 좀 쓰다듬어다오.


그래그래, 자 자.


흐...


정의의 보안관, 아이언 애니 등장!


흐엑 깜짝이야!


어라, 히루메가 놀라는 건 되게 오랜만에 보네. 항상 누가 접근하는지 먼저 감지했는데.


그, 그건... 긴장이 좀 풀려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서와. 뭐하느라 이리 늦었어? 드라이브?


이번에 새로 보스의 마을이 지어질 구역 보면서 순찰 코스 견적 좀 짜고 왔지. 그리고 드라이브도 하고!


이게 바로 인류 멸망 후 내가 꿈꿔왔던 이상이야. 펙스의 마수에서 벗어난 난민들이 드디어 평화를 찾고 마을을 꾸렸는데 시티가드에게만 맡겨둘 순 없지. 나 또한 마을을 지킬 보안관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이 말이야!


그대의 마을이라... 후훗, 그대의 손으로 이룩해낸 결과이지. 정말 대견하구나.


생각해보면 멀리도 왔네. 내 목숨만 신경쓰다가 이젠 수백명을 챙겨야 하게 생겼잖아?


부사령관직에서 내려왔더니 이번엔 마을 촌장이라... 사령관이 준 실권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론 무슨 후방 거점 사령관 같은거겠지만... 전선에서 물러날 수 있었으니 됐어.


그래. 첩 또한 그대가 무탈하기만 하면 됐다.



킁킁... 앗, 지금 라면 끓이는거야?


어어, 오늘 저녁은 라면이다! 거의 다 됐어.


테이블 세팅해놨으니까 와서 앉으십쇼.


난 유미랑 하이에나 깨우고 올게.



무슨 라면이야? 이 냄새는 진라면...


순한맛...


뭐?


-이 아니라 매운맛. 난 농담도 못하냐...


아하핫, 정말! 사람 놀래키기는!


 

라면이야? 라면이네! 숙취해소엔 이것만큼 좋은 게 없지!


네, 네... 빨리 먹고 다시 일해야...


아, 일 없지 참. 먹고 마저 자야지...


 

잘먹겠습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별 거 없는 평범한 일들이었다.


다같이 저녁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런 일상적인 일들 뿐이었다.


나는야 두번째 인간.


오르카호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인간. 혼자서 오르카호 밖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불쌍했던 인간.


하지만 살아남았다. 혼자가 아닌 다함께.


그동안 오르카호 밖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오르카호 밖에서 살아갈 것이다.


-끝-

























참, 내일 사령관 생일잔치를 할 예정이라고 하더구나.


그걸 왜 지금말해!?




이제 진짜로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