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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시타는 검은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검은색은 언제나 불길함을 불러왔다. 그래서 하나뿐인 검은 정장을 옷장 깊숙히 넣어놓고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만일 오늘 입지 않았더라면 몇 년 더 옷장에 묵혀있었을테지.

마츠시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를 악물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아무리 입을 다물려 해도 입을 비집고 나오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간신히 눈물을 참는 것이 전부였다. 어째서 눈물을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눈가가 붉게 변해 화장으로 간신히 가렸지만 눈물 때문에 화장이 망가질 판이었다.

마츠시타는 장례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언제나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면 더욱 더. 처음에는 장례식에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장례식에 오게 된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장례식에 오지 않는 것은 죽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내줘야 할 때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며 마츠시타는 세면대 앞에 서있었다. 인상을 썼던 탓일까. 약간의 눈물이 흘러내리며 화장을 망쳐놓았다.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마츠시타는 손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장례식이란 그런 법이었다.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조문객이 아니라 가족의 몫이었다.


“마츠시타, 왜 이리 오래 걸렸어. 변비야?”

토모는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장례식장에 오기 전에 토모에게 절대로 웃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지만 토모의 말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별로 웃긴 농담은 아니었지만 진지한 얼굴에서 오는 갭 때문이라도 살짝 웃기긴 했다.

“이것저것 정리할 게 많았어.”

감정과 표정과 화장 말이지. 장례식장 밖에서 마츠시타는 토오노의 관이 놓인 식장을 바라보았다. 조촐한 식장이었다. 토오노의 영정과 흰 꽃들이 놓인 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토오노의 집은 부잣집이 아니었다. 아마 저 장례를 준비하는데만도 큰 힘이 들었을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은 슬픔만이 아닌 수많은 고통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마츠시타는 토오노의 가족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무슨 낯으로 토오노의 가족을 만난단 말인가. 눈만 감으면 눈앞에서 죽어가던 토오노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녀였다. 죽어가던 토오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 자신이었다.

어쩌면 식장에 들어갈 용기조차 없었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품속에 있는 조의금을 내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식장 앞 벤치에 앉은 마츠시타는 토모의 옆에서 한숨을 쉬며 장례식 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 선배. 선배도 오셨나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츠시타는 고개를 들었다. 일간지에서 일하는 후배였다.

“아, 이토. 오랜만이네.”

창고 폭발사건 현장에서 보고 처음 만난 이토였다. 이토는 자신에게 후배였지만 토오노에게 후배기도 했다. 장례식 소식을 듣고 오지 않을 녀석이 아니었다.

“세상 너무 흉흉하네요. 중의원 보좌가 총격을 당하다니요. 진짜 언론에서 말하는대로 일본이 망할 날이 오는 걸까요.”

“언론인들끼리 할 소리냐.”

“그걸 그렇네요.”

씁쓸하게 웃는 이토를 보며 마츠시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대 꺼내 입에 물었다.

“선배, 아직도 그 담배 피우고 계시네요. 몸에 안좋다니까요.”

“네 말대로 세상을 말세야. 담배로 암걸려 죽을 확률보다 세상이 망해서 죽을 확률이 더 클 거야.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겠지.”

무책임한 말을 하며 마츠시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보다, 이토. 너는 사건에 대해 뭐 들은 거 없어? 경찰쪽에 정보통이라든가 있을 거 아냐.”

이토는 메이저한 일간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방 월간지 기자보다는 정보를 입수할 루트는 많을 것이었다.

“경시청쪽에서도 꽤나 민감하게 다루는 모양이에요. 공안에 전부 넘기고 일반 수사부에는 정보를 안주고 있어서 내부에서도 말이 많더라고요. 대낮에 일어난 총격사건에, 게다가 피해자가 일반인도 아닌 중의원 보좌관이잖아요. 덕분에 저뿐만 아니더라도 경시청 출입기자들까지 정보가 제대로 없어요.”

“그렇군…”

큰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경시청도 발표할 게 있으면 기자회견을 해서 발표하겠죠. 아마 그쪽도 별 정보가 없으니 조용한 것 아닐까 싶어요.”

언젠가는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마츠시타가 기대한 답은 하염없는 기다림이 아니었다. 아무 정보도 없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마츠시타는 현장에 있었다. 어쩌면 경찰은 그 사실을 알아냈을지도 몰랐다. 야마다조 사무실 사건처럼 경찰이 언제라도 자신을 찾아올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불안함만은 떨쳐내고 싶었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슬픔의 옆에 자리잡고 마츠시타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지난번 선배 기사는 잘 봤어요. 의원들 성접대 기사였죠? 그리고 세토 선배가 도와준 거고요. 맞죠?”

“도움받을 사람이 그녀석 뿐이었거든. 인맥이 넓지 못한 기자라서 말야.”

마츠시타는 오랜만에 만났던 세토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제는 보지 못할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마츠시타의 머릿속에서 죽어가는 세토의 얼굴로 변해갔다. 마츠시타는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그 얼굴을 애써 지우려 했다.

“얼마전에 세토 선배한테 연락이 왔어요. 고백을 받았다고 말이에요. 헤어진 전 여친에게 고백을 받아 어쩌다보니 승낙을 했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이에요. 이미 상대를 실망시킨 자신이 어떻게 재결합을 할 수 있냐고요. 왜 모쏠인 제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화를 내긴 했는데 이것 저것 도움을 주긴 했어요.”

“그 이야기는 왜?”

“그 상대가 선배잖아요. 선배 성격 잘 알고 있어요. 남들에게 말하기도 전에 사건이 일어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거죠? 연인으로서 울지도 못하고 단순한 대학 동창의 모습으로 있으려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여기는 식장 밖이에요. 남들 눈치 볼 거 없어요.”

이토의 말에 마츠시타는 억누르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츠시타는 이토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토오노와 관계가 끝날 줄은 몰랐어. 아무리 싸운다 해도 화해할 방법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면 싸우지 말걸 그랬어.”

이토는 말없이 마츠시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지금껏 조용히 앉아있던 토모 역시 마츠시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혹시, 아는 분인가요?”

이토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토모를 보며 말했다.

“토모야. 일종의… 조수라고 하는게 편하겠네.”

마츠시타는 이토의 품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토모라면 성은… 아, 가명입니까. 저는 이토 카오루라 합니다.”

이토가 목례를 가볍게 하자 토모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마츠시타를 보려던 이토는 사람들의 무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선배. 의원님의 등장인데요.”

이토의 말에 마츠시타는 부시시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를 든 한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에워싸고 있었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마츠시타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츠즈라누키 이치카. 토오노의 상관이자 일본 국회 중의원이었다.

“우리가 저기에 가있을 필욘 없겠죠?”

이토는 기자무리를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가서 취재하고 와. 나는 안말릴게.”

“이 복장으로요? 농담하지 마세요.”

기자무리의 뒤쪽에서는 커다란 조화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조촐한 장례식장에 두기에는 너무 크고 화려한 조화였다.

“의원님,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오노의 어머니의 말이었다. 식장의 바깥까지 나와 츠즈라누키를 맞은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츠즈라누키가 자신을 발견하지 않길 바랬던 것이었을까. 자신이 츠즈라누키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마츠시타는 츠즈라누키가 식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사진기의 셔터음이 멀어지고 나서야 마츠시타는 고개를 들었다.

“선배, 화장 다 망가졌네요.”

“알아. 이미 몇번이고 고친 화장이야.”

마츠시타는 손가방을 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