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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시타! 해피 뉴 이어!”

장을 보고 돌아온 토모의 첫마디였다. 벌써 그런 이야기가 들릴 시기였다. 2060년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었다. 1월만해도 올해는 언제 지나가게 될까 까마득했는데 어느새 12월이었다. 그것도 이제 12월도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앤드 메리 트리스마스!”

“그게 아니잖아.”

동시에 크리스마스가 지난 시기기도 했다. 연말의 대연휴였지만 마츠시타에게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츠즈라누키 이치카에 대한 기사 준비만으로도 벅찬 그녀였다. 연휴 같은 것이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해피 뉴 이어, 앤드 메리 크리스마스.”

토모는 식탁에 장바구니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누가 그렇게 말한단 말인가. 마츠시타는 타자를 치면서 토모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 잖아. 크리스마스뒤에 새해가 오는 거야.”

“나도 알아. 해피 뉴가 새해란 뜻이잖아? 그리고 이어가 좋다는 말이고.”

몇 달동안 자주 느낀 일이었지만 토모의 언어중추에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다시 한번 느낀 마츠시타였다.

“새해는 뉴 이어야. 그리고 해피가…”

“즐겁다는 뜻 맞지?”

행복하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말하려던 마츠시타는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해피가 즐겁다는 뜻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해피 뉴 이어는 즐거운 새해! 라는 뜻인 거야!”

토모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츠시타는 그런 토모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정확히는 행복한 새해 되세요. 라는 뜻이야.”

“하지만 마츠시타. 행복한 새해보다는 즐거운 새해가 더 좋지 않을까?”

“행복하든 즐겁든 그게 그…”

“아, 방송 시간이다. 마츠시타 조용해줘.”

토모는 마츠시타의 말을 끊고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집어 TV를 켰다.

“토모, 사온 물건은 정리…”

“마츠시타, 쉿!”

토모는 검지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토모가 그러는 이유는 얼마전 시작한 덴세츠 동화의 새 드라마 때문이었다. 과거 유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는데 마츠시타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토모가 유독 관심을 가지고 빠져있던 것이었다.

“정리하라니까…”

마츠시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궁시렁거리면서 토모가 사온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음식재료들이었다. 양배추를 냉장고에 넣을 때였다.

“마츠시타! 오늘 휴방이래!”

꼴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냉장고에 사온 물건을 다 넣은 마츠시타는 토모에게로 갔다.

-연말을 맞아 각종 휴양지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2060년 새해를 맞아 전국의 각 신사에는 수백만명의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TV에서는 연말을 기념하는 뉴스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뉴스 말고 드라마 했어야 하는데…”

토모는 토라진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뉴스에 나오는 신사의 풍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마츠시타, 마츠시타는 저기 가본 적 있어?”

“별로 없어.”

신사는 종교시설이었다. 신토를 믿는 것도 아닌데 굳이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물론 신사라는 것은 유명무실한 관광지가 된 지 오래였다. 관광지에 돈내고 찾아가는 것처럼 신사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세전함에 돈을 넣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고 운세를 본다. 신사에서 하는 일은 그정도에 불과했다. 마츠시타는 고작 그정도의 일로 굳이 신사까지 가고 싶진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렇구나.”

토모는 다시 TV에 집중했다. 마츠시타는 뒷정리를 하고 토모의 옆에 앉았다. 어느새 창밖에서는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2059년 단 하루 남게 되는 것이었다.

“내일 신사 한번 가볼까?”

“신사는 새해에 가는 거라잖아. 내일은 12월 31이야.”

이럴 때만 날카로운 토모였다. 물론 마츠시타도 알고 있었다.

“새해가 되면 새해 소원 빌려고 신사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오는데 그 사이에 끼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 누가 새해 전날에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겠어.”

마츠시타는 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사할 것들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키리시마 공업이 발표한 실적 보고서와 덴세츠 사이언스가 발표한 실적 보고서를 분기별로 비교분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 미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마츠시타는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해 전날에 누가 신사에 참배하러 오겠어. 그런 생각을 한 수만명이 치바 신사에 몰려온 것이었다. 잠시 신사에 들려서 참배나 하고 오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신사에 왔지만 참배는커녕 줄서있는 참배객들을 보다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와. 사람 엄청 많다.”

토모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츠시타는 죽을 맛이었지만 토모는 의외로 즐거운 모양이었다. 밖에 자주 나갈 일이 없던 그녀였던 만큼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좀 둘러볼까?”

그런 토모의 앞에서 마츠시타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 지는 몰라도 하다못해 참배는 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녀였다. 최소한 기다리다 신년이 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정월에는 언제나 홍백가합전을 보며 새해를 맞는다. 그것이 마츠시타의 신년이었다.

“마츠시타, 저거봐, 저 옷 이쁘다.”

토모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무리의 여성들이 전통 후리소데를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격식을 차린 화려한 기모노였다. 단순한 단색이 아니라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고 허리끈도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었다.

마츠시타는 한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옷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 자란 어른인 마츠시타가 입기에는 너무 어려보이는 복장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 인생에는 이제 인연이 없는 옷일지도 몰랐다.

“정말이네.”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 이어진 줄을 바라보았다. 한명당 참배에 1분을 쓴다면 마츠시타는 2061년의 새해를 여기서 맞게 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인파였다.

“마츠시타, 저거 봐. 옷 대여래.”

대여료 하루 5천엔. 마츠시타는 고개를 돌렸다. 5천엔이면 무얼 사먹을 수 있는 거야. 그 돈이면 돌아가는 길에 와규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저거 이쁘지 않아?”

토모는 계속해서 말했지만 마츠시타는 애써 모른척했다. 위아래 옷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옷을 빌린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마츠시타, 저 옷 빌려줘.”

토모가 본론을 말했다. 마츠시타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토모를 보자 그 고민은 사라졌다. 토모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피한, 즐거운 얼굴을 한 토모였다.

“가서 옷 빌려와.”

마츠시타는 주머니에서 5천엔 지폐를 꺼내 토모에게 건네주었다.

“마츠시타, 고마워!”

토모는 즐거운 얼굴로 대여점으로 총총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마츠시타는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죄송하지만 신사내는 금연입니다.”

주변에서 안내를 하던 무녀의 말이었다. 마츠시타는 한숨을 쉬며 물었던 담배를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답지 않게 맑은 하늘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을 하늘도 기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저런 하늘을 바라보면 담배는 필요없을 것 같았다.

“마츠시타! 세금은 별도래!”

그렇게 생각하던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에 역시 담배를 꺼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디 구석에 가서 몰래 피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500엔 동전과 담배케이스를 꺼낸 마츠시타는 500엔은 토모에게 주고 담배케이스에서는 담배를 한대 꺼냈다.

그리고 토모를 보낸 마츠시타는 구석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