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령관은 대원들한테 명해 오르카호에 동물원을 만들게 시켰다. 쓰지 않는 넓은 강당 하나를 통째로 개조해서 아예 동물원으로 꾸민 것이다.


동물원이라 봐야 소수의 동물을 데려다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르카호의 한정된 편의시설에 질린 바이오로이드에겐 충분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동물원은 개장 이후로 줄곧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AT-4 파니 대원은 개장 첫날부터 양 우리 앞에서 떠날 줄 몰랐는데, 그 바람에 며칠 뒤엔 양이 더 무서워할 지경이었다.


한편, 구경하러 온 이들 중에는 LRL과 그리폰 콤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물원에는 탐사 나가서야 가끔 보거나 혹은 책이나 화면에서만 본 동물도 있었다.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들로선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저 양은 목이 왜 이렇게 길어. 기린인가?"


어느 우리 앞에 선 그리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LRL이 안내 책자를 읽어보며 말했다.


"아니야. 저건 양이 아니라 알파카란 거야. 낙타과 비쿠냐속에 속하는 포유류래."


"낙타? ……이상하네."


알파카도 멀뚱멀뚱하게 둘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괜시리 머쓱해진 그리폰은 머리를 긁고 지나갔다.


우리 안의 동물들은 LRL이 다가올 때마다 시선을 돌렸다. LRL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주보았다.


그렇게 동물들을 한바퀴 둘러 본 그리폰이 말했다.


"좋긴 한데 가짓수가 좀 적은 거 같아. 인간들의 동물원엔 이거보다 동물이 많다고 했는데."


LRL은 대답하는 대신 어딘지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폰이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항상 말이 많던 LRL이 아까 전부터 말수가 적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그게, 저 동물들 보고 떠오른 건데."


"고기 맛있을 거 같다고?"


"그런 게 아니라…… 있잖아. 저 애들은 원래 다른 데서 태어난 애들이야?"


"설명 못 들었어? 와처 오브 네이처 애들이 가져왔대잖아."


동물 관리는 세띠 자매와 엠프리스, 아크로바틱 써니 등이 맡았다. 안 그래도 동물을 좋아하는데다 사육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녀들이라, 적임자로 여겨진 것이다.


"다들 육지에서 데려온 거겠지."


때마침, 세띠 7호가 가이드를 마치고 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매님들. 설명이 필요하세요?"


그리폰이 얼른 말했다.


"으음, 있잖아. 얘가 저 동물들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서 말이야. 전부 너희 자매가 데려 온 거 아냐?"


세띠도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데려온 아이도 있고, 여기서 태어난 아이도 있어요."


"어?"


"저희 자매들이 탐사 나갔다가 주워 온 애들이 있고, 닥터 양이 연구실에서 복원시킨 애들이 따로 있거든요. 후후."


세띠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LRL은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령관님 덕분에 이제는 구하기 힘든 아이들도 복원되서 정말 기뻐요. 여러분도 많이 귀여워해 주세요."


설명을 들은 그리폰은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LRL을 툭 쳤다.


"야. 들었지?"


"으응."


"귀찮게 따지지 말고 가자. 복원한 거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동물이 거기서 거기지, 뭐."


"……."


LRL은 계속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리폰을 따라 동물원을 나섰다.


다음에 또 와주세요- 세띠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도 동물원 왔구나. 어때, 괜찮았니?"


동물원을 나선 둘은, 마침 이편으로 시찰을 오던 사령관하고도 마주쳤다.


그리폰은 일부러 별로인 체 하고 말했다.


"흐음. 뭐, 볼만은 했어. 근데 동물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LRL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신기한 애들도 봤고, 책으로만 본 애들도 있었어. 즐거웠어."


"다행이다. 나중에 동물 종류도 더 늘려야겠네."


사령관이 기쁜 빛을 띠며 대답하는데, LRL은 잠깐 주저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기, 권속. 하나 물어봐도 돼?"


"응. 얼마든지."


"동물원에 있는 애들은 밖에서 가져온 애들도 있고, 여기서 태어난 애들도 있잖아."


"그렇겠지. 닥터와 라비아타가 복원한 동물도 있으니까. 그런데 왜?"


LRL은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말야. 여기서 태어난 애든, 데려온 애들이든…… 말을 잘 들어야 착한 동물이지?"


"아마도?"


사령관은 LRL이 왜 이런 질문을 하나 몰랐다.


"그러면 나랑 자매들도 저 애들처럼 동물일까?"


"뭐?" 사령관이 무심코 되물었다.


LRL이 눈을 깜박였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잖아. 사령관 말도 잘 듣고. 그럼, 우리도 착한 동물이야?"


"……."


사령관은 LRL의 말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옆의 그리폰도 말문이 막혀서 LRL을 보기만 했다.


오르카호를 이끄는 사령관은, 많은 바이오로이드를 구조하거나 복원하면서 병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LRL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령관을 경호 중이던 펜리르가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LRL이 말이 많다고 전부터 거슬려하던 그녀였다.


"야, 작은 녀석. 이상한 질문 하지 마. 주인님 바쁘시단 말야. ……주인님. 빨리 가서 일하자. 나 고기 주기로 했잖아."


LRL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기묘한 표정으로 물러갔다. 그리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얼른 그 뒤를 따라갔다.


사령관 또한 펜리르의 팔에 이끌려 떠나면서도 LRL의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날 오후, 근무를 마치고 온 에이미 레이저는 LRL의 곁에 앉아 사과를 깎아 주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아이를 좋아하는 그녀에겐 - 하지만 아이를 갖기 거의 불가능한 바이오로이드였다 - LRL은 동생이자 딸 같은 존재였다.


"그리폰하고 동물원 잘 갔다 왔니?"


"응. 재밌었어."


"사령관님 앞에서 싸우지도 않았고?"


"안 싸워. 그런 일 하면 무서운 언니한테 혼나…… 에이미도 나중에 동물원 가봐. 재밌어."


"후후. 고마워."


LRL은, 에이미가 깎아 준 사과 조각을 집어들다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에이미는 동물이란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해?"


"응? 동물이란 뭐, 포유류 같은 거 말하는 거 아니니. 사전에 찾아 보렴."


에이미는 LRL이 동물원에 갔다 와서 이렇게 묻나 생각했다.


LRL은 잠시 뒤에 다시 물었다.


"저기, 에이미는 우리가 동물이라고 생각해?"


"……."


그 질문에는 에이미도 멈칫했다. LRL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인간하고 같이 생겼지만 인간이 아니잖아. 그럼 동물이야?"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


LRL은 아까 전 사령관에게 물었던 일 등을 이야기했다.


흐음-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에이미가 문득 싱긋 웃었다.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에이미도 잘 모르는구나."


"그럴까? ……흐음. 좋아. 오늘의 숙제는 그걸로 할까."


그 말을 듣고 LRL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숙제인데 별로 안 싫어하네."


"응. 그건 나도 궁금해서."


"후후…… 기특하네요. 이제 우리 공주님도 철이 많이 들었어." 에이미는 미소 지으며 LRL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에이미와 헤어진 뒤, LRL은 아까 들었던 대로 사전을 찾아 가며 조사했지만, 자신 같은 바이오로이드가 동물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없었다.


바이오로이드의 사전적 정의 - 금속 내골격과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유기 합성 생명체 - 에 대해서는 나왔지만 그것이 동물이라는 말은 적혀 있지 않은 것이다.


LRL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그리폰이 찾아왔다.


"야. 뭐 해?"


"사전 봐. 찾아 볼 게 있어서."


이야기를 들은 그리폰이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또 그 생각하냐. 그냥, 속편하게 우린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래?"


"예를 들어, 내가 너보고 개돼지라고 하면 기분이 좋겠니?"


"그건 그렇지만."


그리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하르페이아한테 가서 묻던가.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아는 것도 많겠지."


LRL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LRL은 하르페이아를 찾아가 의문점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하르페이아도 얼굴을 굳히고 생각에 잠기더니,


"흐음. 뜻밖의 질문인데."


하면서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피는 책 많이 읽었다고 들었는데."


LRL이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하르페이아가 얼른 말했다.


"어, 일단. 내가 전에 읽었는데, 어떤 철학자가 그랬어.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생각을 하니까 동물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 ……그런데 왜 인간이 아니란 걸까."


하르페이아는 바이오로이드답게 세뇌된 대로 즉시 대답했다.


"그야, 바이오로이드니까."


"그러면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은 왜 달라? 둘 다 생각을 하잖아."


"……."


거기까지는 하르페이아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미 인류 멸망 전부터 수많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제기해 온 불합리함이었기 때문이다. 하르페이아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로부터 LRL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속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루는, LRL이 콘스탄챠 S2 416호를 도와 간식을 만들고 있었다.


오르카호 군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와 달리 LRL까지 출격할 만한 일은 거의 없어진 상황이었다. 이에 LRL의 임무는 주로 탐사나 내근으로 변한 지 꽤 되었던 것이다.


LRL은 쿠키 반죽을 담은 오븐 팬을 건네주면서, 콘스탄챠에게 예의 질문을 슬쩍 물어보았다.


콘스탄챠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흐음. 글쎄? 우리가 동물인가 아닌가, 라……."


"콘스탄챠도 모르는 거야?"


콘스탄챠는 오븐 문을 닫으며 말했다.


"실은 그런 생각은 별로 해 본적이 없어서 말야. 일단, 라비아타 언니께 배운 바로는, 인간 님들도 동물이라고 해."


"어?"


"인간 님들도 원래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거라고 해…… 그러니 동물이라면 동물이지만, 우리 동물원에 있는 애들하고 같다고 할 순 없지. 옛날 인간님 말마따나,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면 될까."


콘스탄챠가 오븐을 작동시켰다. LRL은 한층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었다.


"결국 인간 님을 따라서 만들어진 우리도 동물이긴 동물이지만, 동물원의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인간님들처럼 아예 동물과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고."


"……."


말을 마친 콘스탄챠는 쪼그리고 앉아 LRL을 마주보았다.


"있지, 어쨌든 중요한 건 주인님께서 우릴 잘 대해주시는 것 아니겠니?"


"사령관이?"


"그래. 그리고, 주인님께서 잘 되시면 우리도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될 거야. 우리가 동물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야. 주인님은 좋은 분이잖니."


듣고 있던 LRL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콘스탄챠가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주인님한테 죄송하다고 사과는 했니?"


"응?"


"주인님께서 우릴 동물처럼 대하신 적이 없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좀 실례잖니. 사과는 했어야지."


그 말을 듣고 LRL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날 근무를 마친 LRL은 간식을 전달할 겸해서 함교에 왔다. 마침 여가시간이던 사령관이 반가운 표정으로 LRL을 맞이했다.


"오늘은 LRL이 간식 만들어 왔구나? 고맙다."


"으응. 난 그냥 도운 거야."


LRL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쿠키 쟁반을 한쪽에 내려놓고 물었다.


"저기 있잖아, 권…… 아니, 사령관. 내가 그때 했던 질문 기억해?"


그녀는 근처에 무서운 언니가 있자 얼른 호칭을 고쳤다.


"응. 기억 나."


실은 사령관도 LRL을 보자마자 그 질문이 연상되었다. 그는 LRL에게 넌지시 물었다.


"있지, LRL은 그 질문의 답이 뭐라고 생각해?"


그러자 LRL은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말했다.


"음,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역시 나나 자매들은 동물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해?"


LRL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골똘히 생각한 다음,


"그게, 인간은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하니까. 그런데 우리도 생각은 하잖아. 그러니까 동물이라고 할 수 없는 거 같아." 라고 대답했다.


"음……."


"무엇보다, 사령관이 우릴 정말 인간처럼 대접해 주니까. 그러니 사령관 입장에선 우린 동물이 아니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거 같은데…… 어때?"


LRL이 자신없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 듯이,


"거기까지 생각해 줄 줄은 몰랐는데. 그래, 맞아. 어차피 인간은 나 빼고 아무도 없으니. 지금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사령관이 기특하다는 눈으로 LRL을 쳐다보았다. LRL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꾸벅 사과해 왔다.


"그리고 미안해. 사령관."


"뭐가?"


"사령관이 우리한테 정말 잘해주고 존중해 주는데, 난 우리가 동물이냐고 이상한 질문이나 해 버렸어…… 잘못했어요."


미안한 얼굴로 사과해 오는 그녀를 보고 사령관은 빙그레 웃었다.


"아니야. 좋은 질문이었어. 덕분에 나도 생각을 좀 하는 계기가 됐단다. 앞으로 너희를 어떻게 대할지 다시 숙고할 수 있었거든…… 고맙다."


칭찬을 받은 LRL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정말? 헤헷. 에이미한테 가서 숙제 다 했다고 해야지."


"그래. 좋은 답안이야. ……자, 쿠키 하나 먹고 가."


사령관은 들떠서 멀어져 가는 LRL의 뒷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LRL의 작은 체구에 다른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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