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라오단편) 아니 든든누나로 해피ㅗㅜㅑ썰을 어떻게 써와 

참치주먹밥


"선의 같은건 없다고 믿었어. 누나는 꽤 계산적인 사람이었거든."


그녀답지 않게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장비의 이상증세로 도움을 구하러온 나에게, 그녀는 그런말을 꺼냈다. 평소라면 들고온 일거리에 반쯤은 들뜨고, 반쯤은 실망한 듯한 느낌으로 나를 대하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조금 특이했다. 그녀가 지금은 다른 일에 열중이기 때문일까.



어디를 바라보며 대답하면 좋을지 모를만큼, 그녀는 산더미같은 기계에 파묻혀 있었다.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는건 두 다리 정도였기에

나는 기계뭉치 너머를 적당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그 안에서 내가 온줄은 어떻게 알고 말을 건거야..? 뭐, 아무튼 그래서 과거형이었으니 생각이 바뀌었다는거겠지?"


"정확히는.. 사령관을 만나고 나서 변했어. 내가 틀리는 일은 만번중에 한번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틀렸다고 생각하기엔 누나가 너무 우수했거든~"


"맞아. 우수하다는건 부정못하지."


"어머. 그렇게 띄워줘도 아무것도 안나오거든~? 흠, 흠! 뭐, 거기 책상위에 장비제작 수정안 정도는 줄 수 있지만-"



어질러진 책상 위에는 그녀가 말한 것으로 보이는 노트가 놓여있었고,

적혀있는 것 만으로 장비에 대해서 별다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녀는 내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갑작스러웠던 그 말은 아마, 그녀 나름 일 말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 고마워 포츈. 뭐, 일단은 얘기를 계속 들어보고 싶은데? 내가 포츈의 생각을 바꿨다기엔 나는 딱히 짚이는게 없는걸."


"사령관, 누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후후~ 그러면 좀 부끄러워도 말해버려야지. 큰건 아니구. 그냥 나한테 접근하는 인간에 대한 인식이었어."



그녀는 여전히 기계더미 너머에서 말하고 있었다. 섬세한 작업을 하고 있는 듯 꼼지락 거리는 그녀의 발가락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며, 나는 잠시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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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을 처음 봤을 때 이 누나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


어.. 듣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고생길 열렸다고 생각했거든.



후후. 실망한거 아니지? 음~.. 그치만 사령관. 그 생각에는 두가지 감정이 담겨있었어. 단 한명밖에 남지 않은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희열과, 해결할 막중한 일거리들을 떠올리며 드는 절망같은거지.



누난 엔지니어거든. 철충을 상대로 사령관이 살아남기 위해선 앞으로  내게 차고도 넘치는 일거리만 기다리고 있는거나 다름 없었어. 누나가 만들어진 목적이 그거였으니 오히려 기쁜 일이지만~.. 사령관이 어떤 사람일지 조금 불안했달까?



인간은 '포츈'에게 언제나 무리를 강요하고 억지를 들이밀었어. 그야, 멸종 위기인 상황에 누가 포악하지 않을 수 있겠냐만.. 누나에겐 그런 '이해'같은건 당시엔 불가능한 일이었거든.



그래서 머리속으로 식을 정립시켰어. 생산하는 나와, 제공받는 인간.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만 나를 찾으니까 행동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겠지. 무리를 시키면 무리를 해서 만들고, 억지를 부리면 억지로라도.. 사령관, 누나에게 인간이란 그런 고생길이었어.



그런데 사령관이 딱 누나 앞에 나타난거야~ 사리사욕을 위한 무리한 개발도 요구하지 않고, 자기가 아니라 바이오로이드를 위한 개발같은걸 요구하는 인간이 말이야.



끝까지 거기에 선의같은건 없다고 생각했어. 다 좀 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계산이다. 이렇게 하는게 내게 이로우니까 하는거다. 같은 생각으로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사령관은.. 보면 볼 수록 그게 아니란걸 깨달았어.



바이오로이드를 구하는 결정에 사심이 없고, 모두를 아끼는 마음에 계산 같은건 없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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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작업이 끝났거나, 긴 이야기를 끝내고 지쳤기 때문이려나.


"그래서 결론은~.. 이 누나는 사령관이 무지무지 좋..다는..건..데....

..사령관은 따스하고.. 항상 진심이고~.. 멋있기도하고-.. 음~.. 가, 갑자기 덥고 그러네-.."



이리저리 몸을 꼬며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는 그녀를, 나는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아마도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저기서 나올 생각이 없는거겠지. 이제는 나도 그녀의 의도를 조금 알것만 같다.



"포츈. 아무리 그래도 거기 계속 있으면 좀 더울 것 같은데."


"괘괘괘 괜찮거든!? 뭐냐, 누나는 원래 좀 피부가 차서 전혀 문제 없거든!?! 걱정 안해도 되거든!?"


"그래? 그런 것 치고는 아까 덥다고.."


"그 그거는 잠깐 그런거거든!! 이젠 춥거든!? 막 춥고 그래서 나가기 싫거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면 내가 거기 들어갈게."


"무, 무슨 소리하는거야 사령관! 여기 엄청 좁아! 들어오려면 딱 붙어 있어도 힘들 정도로.."


"누나."


"으응!?"


"나 좀 더운데."


"...어...응."




더우면.. 옷은 벗어야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녀가 오늘 한가지 정도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피부는 하나도 차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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