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라오단편) 그야, 당신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참치주먹밥



"그러니까.. 코어 링크를 추가할 수 없는 오류라는게 정말 있을 수 있는거야?"


"죄송해요 주인님..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더치 걸' 모델이 아무리 그.. 경제적인 측면에서 개발이 되었다곤 하지만 안하는 경우는 있어도 불가능한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나를 방안에 남겨 두곤 밖에서 얘기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꽤나 당혹스러워 보였다. 기껏 합류한 바이오로이드가 이런 '불량품'이어서 그런걸까? 뭐, 어차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발견되어 구조될 때까지도 큰 희망은 갖지 않았다. 누구여도 결과는 같으니까.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해도 결국, 다른 인간들처럼 나를 버릴 것이다.


..차라리 아까 구조되지 않고 철충에게 죽었더라면..


"뭐.. 어떻게 보면 특별한 더치걸이네. 전투에선 조금 위험할 수 있으니 안전한쪽의 보급임무를 맡아주면 될거야. 이상이 있거나 한건 아니잖아?"


"예? 어..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음-.. 하긴, 주인님은 그런 분이셨죠?"


"..? 라비아타답지 않은 모호한 대답이네. 뭐 아무튼, 너무 혼자 기다리게 해도 좋지않으니 돌아가자."


"네! 분명 기뻐하겠네요."


오랜 동굴에서의 작업 때문에 청각모듈이 뛰어나다는걸 그들은 알지 못했던걸까. 그들이 하는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그 기능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청각모듈까지 고장난 불량품이 분명했다.


그야 방금 나눈 대화로 봐선 영락없이..



"자리를 비워서 미안해. 다시한번 소개하지. 이 오르카호의 사령관이야. 앞으로 잘부탁해."


사령관은 손을 내밀며 내게 미소지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발로 걷어차여 쫓겨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정말로, 정말로 이곳에, 이 사람에게

쓸모있는 존재로 있을 수 있는걸까?


그날, 그곳에는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폭언도, 폭행도 없이. 어떠한 목적도 없이.


이내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다 울음을 터뜨렸고, 당황한 사령관은 한동안 내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달랬다.


그날 나는 결국 그가 내민 손을 잡지 못했지만, 그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로와 슬픔이 녹아든 두 눈이 올려다본 그곳에, 태양같이 빛나는 미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이 내게는 최고의 보물이다.

어둡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겨우 발견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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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은 흘러 지금이 된다.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비명과, 자해를 시도하는 바이오로이드들. 다가오는 철충의 소리, 폭발음과 포탄의 소리..


모두 생소한 것들이었다. 평화롭던 시간들은 어디로 간걸까.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런일이 되어버린걸까.


이번 전투에서 철충은 생전 처음보는 무기를 꺼내들었다고 한다. 그 기계는 바이오로이드가 거역하기 힘든 무장해제의 뇌파를 송출하고 있었고, 덕분에 사령관의 직접적인 음성명령이 닿지 않는 모든 전장에서 우리는 무력하게 패배했다. 대체 무엇이 그런걸 가능케 하는걸까.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항할 수 없는걸까.


그런것들을 천천히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시시각각 피해보고가 들어온다. 최전선이 무너졌다고 한다.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철충은 사령관의 코앞까지 진군했고, 이제 그 기계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간단히 말하자면


통속에 담긴 뇌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어떻게 뇌파를 발산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엔 분명 사람의 뇌가 들어있었다.


방어병력 뒤에 숨지도 않은 그 기계를, 그리고 당당히 그 기계를 앞세워 전진하는 철충을 우리는 바라볼 뿐이었다.


절망에 빠져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명령을 발산하고 있었으니까.



"아.. 이젠 정말.."


누군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드릴을 붙잡았다.

지금 이 순간, 머리에 떠오른 이 생각만이

이 무너지는 동굴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더치..?"



사령관의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기계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누구도 막지 않았고, 누구도 막지못했다.


이는 본래 일어날리 없는 상황이니까.


그도 그럴것이 나는,


공정 오류로 인해 만들어진 실패작. '더치 걸' 개체에서 처음으로 직접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였다.






방금 철충이 쏴서 날린 것이 내 다리였던가. 아니면 왼쪽 팔이었던가.

그게 어느것이든 상관 없었다.

잡고있는 드릴의 감촉은 여전했으니까.


나는 통속에 뇌에 다가가 드릴을 꽃아넣었다. 당황이라도 한 듯이 철충들의 반응은 늦었고, 방어벽력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의 일은.. 모르겠다.

나는 철충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쓰러졌고, 곧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앞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우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어떻게든 해봐!! 방법이 있을거아냐!!"


"본체의 코어가 파괴되서 지금은 어찌 방도가.."


"그럼 만들어내!! 뭐라도 할 수 있을거아냐!"


"오르카호는 이제 겨우 수복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해당 개체는... 공정오류로 인해 발생한 오류로 백업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령관은 쉰 목소리로 욕을 쏟아냈다. 이렇게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화가 단단히 났나보다.


"사령관, 거기 있는거야?"


사령관의 목소리는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아마 나는 무릎위에 눕혀져 있나보다. 아.. 눈이 보였다면 좋았을걸.


"...!!! 그래. 더치. 여기있어. 괜찮은거야!?"


"전..투는.."


"덕분에 성공했어. 대체 어떻게.. 아니, 안들어도 괜찮으니까 쉬어. 지금은 치료가 우선이니까 먼저.."


"사령관."


나는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잡지 못하면 영원히 잡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단 한번이라도, 마지막 한번이라도 네 손을 잡고 싶으니까.


"사령관.."


나는 애원하듯이 손을 뻗었다. 이내 사령관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내 얼굴엔 따뜻한 물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넌.."




그야..



그거야 당연히..




" ㅡ "









말을 마치고 나는 잠들었다.


사령관의 품속에서

누구보다 밝은 태양아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둠속에 있지 않았다.


나의 보석이 아직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비추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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