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막     2막     3막


리리스와 리제의 차례는 끝났지만, 아직 스무 명은 족히 되는 바이오로이드가 강당에서 광란의 노래판을 벌이고 있고, 심지어 그 

노래들이 하나같이 괴상한 마당에 덫에 걸린 생쥐처럼 여기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황이라니. 블랙 코미디도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I'm on the highway to hell~♫”

“괴상한 건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니가 상황을 좀 봐봐! 밴시가 지금 [Highway to hell]을 부르고 있고, 방금은 레아랑 알렉산드라가 쌍으로 올라와서 

 [Thunderstruck]을 불렀는데, 이 꼴이 정상이야?!”

“그리고 보니 레아 양, 샤우팅이 참 깔끔했는데 말이죠. 쿠후후, 역시 20대의 저력이라는 걸까요?”

“네 그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참 좋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말이야, 좀 더 위기감을 가지는게 좋지 않을까?”

“아니죠, 사령관님.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즐겨야 하는 겁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말을 말자.”

 

그렇게 앉아있기를 몇십 분. 메이가 누군가를 도발하듯 [아무것도 없잖어]를 부르고, 나이트 앤젤이 그에 대한 답변으로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를 부르고 난 직후였다. 참고로 난 이 시점에서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올라 무념무상의 태도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 저런...사령관님?”

“왜 그래, 알프레드. 네 말대로 한창 즐기고 있는데.”

“죄송하지만, 제가 한 말은 잊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또 왜?”

“저기...무대를 봐주시겠습니까?”

 

무대? 또 누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건가? 솔직히 방금 메이와 나이트 앤젤의 참혹한 디스전 이후로는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뭐 때문에 그렇지?

 

“뭐? 시티가드들이 단체로 [Smooth criminal]이라도 부르려 하디? 어, 뭐야? 소완이네?”

“더 심합니다. 지금 소완 양이 부르려는 노래, 뭔지 아시나요?”

“아니 모르는데. 저 그룹 노래는 잘 몰라. 엄청 유명한 그룹이었다고는 하는데.”

“어,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저 노래가 제목이 [The winner takes it all]인데 말입니다, 그...가사가 좀....”

“가사가 뭐 어때서?”

 

알프레드가 한동안 눈치를 보며 뜸을 들이더니 작게 말했다.

 

“요약하자면 ‘난 내 사랑을 남에게 빼앗긴 패배자에 불과하니 이곳에 외로이 있을 것이다’라는 투의 가사입니다만.”

“그게 왜? 레오나처럼 자기 처지를 돌려 까는 것도 아닌데...아.”

 

한순간 머리에 든 의문은 소완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자마자 해소되었다. 대놓고 곁눈질로 리리스와 리제를 바라보면서 히죽이고 있는 소완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그 둘을 놀리는 모습이다.

 

‘전 주인님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했으니, 패배자인 당신들은 저기 구석에서 쭈그려 계세요~’하는 소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굳이 그렇게 속을 긁어야 시원한거냐?!

 

“네. 아무래도 자신을 위해 부르는 노래는 아닌 모양인 것 같은데 말이죠? 저쪽에 두 분이 무시무시한 한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은데...”

“미리 말하는데, 나도 쟤들 눈 돌아가면 못 막아. 소완의 찌개 때문에 취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그래도 주변에서 힘으로라도 

 말리면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아이고, 사령관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가시방석 위에서나마 앉아 계실 수 있었던 이유를 까먹으신 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조금 전 알프레드의 말대로라면, 리리스와 리제가 나머지 인원들을 견제하고 있고, 그 둘 또한 나머지에게 견제받고 있으므로 내가 

덮쳐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둘이 소완에게 덤벼든다면, 나머지 인원에 대한 견제가 약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곧 이 강당 구석진 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하이에나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나 혹시 지금 정조의 위기 같은, 뭐 그런 상황인 거야? 정말로?”

“사령관님, 지금 저기서 앨리스 양이 사령관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미 늦었나. 주위를 둘러보니 리제와 리리스의 주의가 소완에게 쏠린 것을 알아차린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의 분위기가 묘했다. 

앨리스, 샬럿, 펜리르, 에키드나, 포이...하나같이 명령을 내린다고 들을 놈들이 아니네, 젠장.

 

“알프레드. 내가 너를 들고 튄다면 버틸 수 있겠어?”

“맨살은 무리지만, 입고 있으신 외투로 한 겹 감싸신다면 필사적으로 버텨보겠습니다.”

 

퇴로를 확인한 후, 조심스레 외투를 벗고 알프레드를 감쌌다. 소완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소완의 노래가 끝나고,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본 소완은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하며 한마디 했다.

 

“들어주셔서 황송하옵니다, 특히, 거기 계신 리제 양과 리리스 양.”

 

저거 지금 대놓고 맥이는 거지? 그런 거지? 아니나 다를까, 리리스와 리제가 소리없이 무기를 꺼내 들고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소완도 허리 뒤로 슬그머리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알프레드는 서둘러 뛸 준비를 했다. 요정 마을에서도 그렇고, 리엔과 

함께했던 VR 속에서도 그렇고, 최근에는 왜 이리 뛸 일이 많은 거지?

 

잠시간의 정적. 그 와중에도 누군가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조용히, 하지만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눈빛 교환이 

끝난듯한 둘은 나직이 말했다.

 

“...어디 맡을래, 스토커?”

“팔다리.”

“그럼 난 머리.”

 

“사령관님? 제 계산에 따르면, 지금이 도망칠 최적의 시기-”

“주인님~”

“폐하~”

“주인님♡”

“지랄도 풍년이다, 진짜! 알프레드, 꽉 잡아! 너희들! 사상자는 금지다!”

 

가장 중요한 내용만 짧게 당부한 뒤, 알프레드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앨리스와 샬럿,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위험인물들의 목소리 덕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뛸 수 있었다. 걸리는 날에는 아마 몇주 동안 이성과의 접촉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다. 

 

“오호, 사령관님의 품 속도 상당히 착용감이-꺄아악! 너, 너무 꽉 잡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꼬마 사령관 하나와 축구공만 한 코어 하나를 잡기 위해 시작된 추격전은, 새벽이 되어 모두가 곯아떨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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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Run boy run-Woodkid

밴시 : Highway to hell-AC/DC

레아&알렉산드라 : Thunderstruck-AC/DC

메이 : 아무것도 없잖어-장기하와 얼굴들

나이트 앤젤 :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장기하와 얼굴들

시티가드들이 부르려고 했던 노래 : Smooth criminal-Michael Jackson

소완 : The winner takes it all-ABBA


마지막화


외전 내지는 후일담 형식으로 한편 정도 더 쓸 예정


아 제발 교수님 강의하기 귀찮으시다고 글쓰기 과제만 5주 연속으로 내시는 건 아니죠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