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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they're sharing a drink they call loneliness

그래요, 우리는 외로움이라고 불리는 술을 나눠마시죠.

 

But it's better than drinkin' alone

하지만 혼자 마시는 것보단 낫겠죠.

 

-Piano Man 2절 中

 

 

한가한 토요일 아침. 일정이 있는 인원은 오르카 밖으로 나가고, 나머지 일원은 휴식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다프네는 수복실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고, 그렘린과 유미는 스틸라인 온라인 랭크를 올리겠다고 방에 틀어박히는 등 모두가 자신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가운데, 오르카 구석에 어느 한 빈방에서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사방이 방음재로 막혀있는 창고 한가운데, 구식 노래방 기계 앞에서 티아멧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A job that slowly kills you~♪

 Bruises that won`t heal~♩”

 

화려한 연출도, 신나는 안무도 없는, 우중충하고 슬픈 가사의 노래. 그런 노래를 부르는 티아멧의 옆에는 몇몇 동료 바이오로이드들이 소파에 앉아 조용히 노래를 듣고 있었다. 추임새를 넣거나 합창을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 키르케가 입을 열었다.

 

“다음 노래는 [Gloomy Sunday]네요. 누구시죠? 레이시 씨인가요?”

“아, 제 노래 맞아요. 감사합니다.”

 

티아멧에게 마이크를 건네받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레이시. 연달아 이어지는 우중충한 곡에 노래방 또한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지만, 딱히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키르케나 샌드걸은 어디선가 가져온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Gloomy is Sunday~♩

 With shadows I spend it all~♪

 My heart and I have decided to end it all~♬”

 

고통스러운 삶에 지쳤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 티아멧, 자살을 암시하는 노래를 부르는 레이시.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면 오르카 

내부에 심리상담소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할 지경이다. 하지만 레이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나무 같은 기세로 노래를 이어갔고, 

2절까지 완창하며 자신의 차례를 끝냈다. 레이시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샌드걸이 노래를 검색하는 동안, 키르케는 자신의 옆에 앉은 사령관에게 맥주캔을 건네며 말했다.

 

“어때요, 손님? 생각하신 만큼 즐기고 계시는가요?”

“...”

“손님? 혹시 주무세요?”

“안 자. 잠시 생각 좀 하느라.”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나?”

“글쎄? 토요일 아침에 한가롭게 컴퓨터 앞에서 스틸라인 온라인을 하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여기로 끌고 온 것에 대한 이유라던가?”

 

사령관이 따지자, 이미 술에 취한 키르케는 흐릿한 미소를 띄웠다.

 

“후후, 그랬었죠? 그래도 그게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나도 그 계획이 뭔지는 알만 한데, 굳이 내가 필요한 이유가 있던 거야? 얘들 분위기 띄우는 정도면 써니나 캐롤 같은 애들을 

 부르면 되잖아?”

“에헤이~ 아신다는 듯이 얘기하시더니? 그게 아니니까 그렇죠.”

 

너스레를 떠는 키르케를 본 사령관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는 건 아무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불려온 이유는 뭘까? 샌드걸의 느릿한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사령관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I'm the dust in the wind~♪

 I'm the star in the northern sky~♬”

 

우울한 분위기 속 사연 많은 바이오로이드들. 분위기를 띄우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을법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사령관은 지금까지의 선곡을 되돌아보고는 갈피를 잡은 듯했다. 아리송한 채로 노래를 등록하자 그 모습을 본 키르케가 

사령관에게 미소를 보였고,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 사령관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는 키르케의 다음으로 올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웃고 있나요~ 모두 거짓이겠죠~♫

 날 보는 이들의 눈빛 속에는 슬픔이 젖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키르케의 선곡을 본 사령관은 자신의 판단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자신만 할 수 있는 것. 오르카에 존재하는 모든 인원의 과거사, 고민, 성격을 파악하고 있는 사령관으로서 가장 알맞은 행동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거나 억지로 희망을 주는 게 아닌, 이곳에 모인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서히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리라.

  

키르케의 차례가 끝나고, 자신의 차례가 오자, 사령관은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리면 통기타 소리와 함께 시작할 것 같았던 사령관의 신청곡에서 피아노와 하모니카 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의 이목이 사령관에게 집중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술집에 모여 힘들고 지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는, 그리고 그 한탄에 공감이나 응원 없이 묵묵히 들어주며 함께 술울 나누는 노래. 이런 상황에 이보다 더 적절한 노래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뒤를 살짝 돌아보니, 모두가 사령관을 보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간주를 지나 2절이 끝나고,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은 사령관은 옆에 앉은 키르케를 보며 말했다.

 

“됐지? 이게 네 계획이었던 거지?”

“후후, 예나 지금이나 눈치가 빠르시네요.”

“말도 마. 이래 봬도 머리 꽤 굴린 거니까. 예전에도 그 놀이공원 좀 박살 내달라는 거 알아채기까지 좀 걸렸는데, 대놓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에이~ 마녀는 원래 미스테리해야죠. 마녀가 너무 단순무식하면 아이들이 실망한다니까요?”

“말은 청산유수지...그나저나, 왜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부탁한 거야? 같은 오르카 속에서 사는 식구들이니까 걱정됐다는 건 

 이해하지만, 굳이 노래방으로 끌고 올 필요가 있었어? 그냥 상담 신청을 하지?”

“뭐, 손님이 며칠 전 노래대회를 열었으니, 마침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은 거죠. 방보다는 여기가 더 술 마시기 좋기도 하고.”

 

키르케는 방을 둘러보았다. 레이시와 티아멧은 함께 노래를 찾아보고, 샌드걸은 마이크를 잡고 기계 앞으로 느긋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전주는 여전히 우울했고, 제목과 가사 역시 밝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각자 속으로만 끙끙거리던 예전에 비하면 훨씬 밝은 모습이었다. 먼 미래에는 모두가 상처를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르케는 말을 이었다.

 

“상담은 너무 딱딱하잖아요? 노래 한 곡과 맥주 한 캔만큼 벽을 허물기에 좋은 것도 없죠.”

"...틀린 말은 아니네."


그날, 오르카 구석에 노래방에서는 저녁까지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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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수고했어 오늘도-옥상달빛

티아멧 : No surprises-Radiohead

레이시 : Gloomy sunday-Billie Holiday

샌드걸 : Forever-Stratovarius

키르케 : 광대-리쌍

사령관 : Piano man-Billy Joel


드디어 끝났다

근데 다음주 기말고사 어떡하지